폴리아모리
노병철
이혼율이 갈수록 늘고 있단다. 우리 땐 주례 선생님이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같이 살라고 해서 그 약속 지킨다고 버티는데 요즘 사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목욕탕 강 사장은 바람피우다가 세 번 걸려 삼진 아웃 감인데도 아직 이혼하지 않고 산다. 마누라가 부처라는 말을 하면서 부러워하고 있는데 옆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던 물레 다방 김 마담이 마누라에게도 애인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에 허를 찔린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세상이 남자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판세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대놓고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조금은 당황스럽다.
결혼이란 제도가 수명이 오십일 때 생겼다는데 지금은 대부분 팔십을 넘긴다. 이십 대에 결혼하면 육십 년을 같이 살게 된다. 은혼식이 결혼 25주년을 말한다. 금혼식은 결혼 50주년이고. 결혼 60주년이면 금강혼식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진단다. 영어로 하면 다이아몬드 기념식이다. 결혼 30주년을 훨씬 넘긴 우리 부부는 말을 아낀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쉰다. 같은 얼굴을 몇십 년 더 볼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힌다는 말인가.
“모노가미란 말을 아나?”
‘모노가미(Monogamy)’는 일부일처제를 말한다. 이 모노가미 제도를 법으로 택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 25%밖에 안 된다. 나머지 75%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린 이런 줄도 모르고 온 세계사람들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지내왔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고 있다. ‘모노아모리(Monoamory)’라는 독점적 사랑에 질려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노아모리, 모노가미를 부정하고 ‘폴리아모리(Polyamory)’라는 다자간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반박해 본다. 하지만 이미 나 자신도 그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터라 정확한 이론 성립이 어려워 말을 버벅거리게 된다.
인간 자체가 원래 일부일처제에 맞지 않는 생명체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나라도 일부일처제가 완전히 확립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흔적이 ‘본처’라는 단어가 우리 기억에 있다는 것이 증거라고 들이민다. 난 ‘후처’라는 단어까지 기억한다. 이들은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가 평생 결혼은 하지 않은 채 서로 사상적 동지로, 연인으로 동등한 관계로 살면서 때로 제삼자와도 사랑을 나누는 ‘폴리아모리’를 실천했다면서 아직 구세대 생각에 머무는 나를 무식하게 쳐다본다.
입에선 욕이 나오는데 머리는 관심이 있는지 몰입되고 있는 자신을 본다. 일부일처제의 사랑은 위선적이며 인간은 다자간 사랑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게 과학계의 정설이라고 항변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이상한 말로 ‘완전한 하나’가 되라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지 말고 온전한 인간 본성을 찾자는 말에 혼란해진다. 사랑이란 어느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우위나 독점을 주장할 수 없다면서 종교적 또는 위정자의 입맛에 맞춘 역사적 전통에 의해 규범화된 기존 결혼제도에 대해 혹평을 한다. 사성을 보내느니 마느니, 혼수를 어떻게 하고 함은 없애고, 폐백도 이바지 음식도 없애고 하는 잡다한 결혼 예법에 말이 많아 자료를 정리하면서 결혼 예법이란 돈 많은 인간들의 허영심이 만들어낸 허례허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기가 찼는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 ‘결혼’에 대한 정체성마저 흔들린다. 나이 먹고 어른스럽게 반박하자니 기본부터 모자란다. 그저 아무 생각 말고 향교나 들락거리며 뜻도 아리까리한 붓글씨나 쓰는 게 더 어른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옆 테이블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부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헷갈린다.
“우리 집 화상은 오식이야. 앞으로 몇십 년 더 밥을 해다 바쳐야 할지 앞이 깜깜해.”
첫댓글 유당 선생님의 글 솜씨가 일품입니다. 책으로 묶으시면 베스트 셀러가 될 것입니다.
유당선생 글을 읽고나니 나도 헷갈리네요. 젊었을 때는 모두가 너무 어렵게 살아
먹고 살려 정신없이 뛰었고, 조금 정신 차리고 나니 아이들 다 커서 시집 장가
보낼 때 까지는 어쨓든 붙어 살아야 했고, 정신 좀 차리고 어찌 해볼까 하니 병들어
버리지도 못하겠고....요양원에 넣어놓고 도망이라도 갈까 음모를 꾸미다 보니
이제 본인도 병이 깊어 옴작달삭도 못하게 생겼는데 어찌하라고.
우리 세대 사람들은 사랑이나 결혼 가족 문제에 있어서는 참 불쌍하게 살았던 세대.
지금에야 너들 마음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남평선생님 댓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의리로 사는 것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나 여자나 오직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의리!"
제가 보기에는 우리 국장님 지금이라도 이혼하면 여자들이 결혼하자고 일개 중대는 줄을 설듯 합니다.그러나 다른 사람 만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훨씬 어렵다는 현실을 무시 못하니 현명하신 국장님도 있을 때 잘하고 사세요. ㅋ
만약에 폴리아모리가 성립하려면
남자 하나에 여자가 여럿이거나
여자 하나에 남자가 여럿이거나
남자 여럿에 여자가 여럿이어야 할 텐데
어휴!
참 여러모로 복잡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인기 선생님의 댓글을 읽다가 문득 장예모 감독이 만든 영화 <홍등>이 생각 났습니다. 틀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다 약자를 가두고 성을 독점하는 인간.
유당선생님은 그 반대로 성의 자유를 구가하는 인간을 그리고 있지요.
사실 이 작품에서 성은 하나의 소재로서 틀을 벗어나려는 인간과 틀을 고수하려는 인간의 욕망(본능)을 들추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요즘 카페가 활발해져서 감동입니다.
@정임표 사실을 바로 말하자면
위의 제 댓글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몸은 남자이나 지향은 여자이고자 하는 사람
또 여자로 났으면서 자신은 남자이고자 하는 사람
이 둘 사이를 오가는 사람
이들의 아모리는 어쩌지?
저는 아예 언급조차 안 했습니다.
원효니 의상이니 하는 분들이 활약했던 시대에도
이런 일로 설왕설래를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 들어 제가 의적 스님의 [보살계본소]를 구해 읽어봤는데
여기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불법(佛法)이야 누구나 다 배운다지만
절집에서 아무개를 승려로 받아들이는 건
그때도 좀 따졌던 모양입니다.
1.남성과 여성을 다 갖춘 자
2.어느 것도 갖추지 않은 자
3.남성으로서 갖추기는 했으나 영 신통찮은 자
이들은 자격 미달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 한 가지.
1번이나 2번은 그렇다 하더라도
3번은, 왜?
#공연히 싱거운 소리를 한 듯하여
여러 회원님들께 죄송합니다.
@김인기 규칙 자체가 틀이니까 틀이 없는 세상이 자유로운 세상이겠지요.
헤르만 헷세는 그의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성공하고 부유해 질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실패한 사람들로 부터 증오 받을 자유"를 얻는다고 했더군요. 사랑 받을 자유가 주어지면 그로 인해 질투 받을 자유가 따른다는 것이지요. 자유의 양면성인데 독재자는 증오받을 자유를 포기하려고 사람들의 입을 틀어 막지요. "신통치 않는 자"는 근성이 없음으로 불법(양성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을 이루기가 예시당초 글렀다는 것이 아닐지요. 싱거운 소리가 아니고 김인기 샘과 대화하면 재미 있습니다.
우리 지금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이런 이야기는 술집에서 해야 하는데 ~.ㅋ
술집 번개 한번더 할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