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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9월 16일 수요일
[(홍)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고르넬리오 성인은 251년에 로마의 주교로 서품되었다. 그는 박해 시기에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공동체에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 이단에 맞서 투쟁하였고,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였다. 갈루스 황제가 252년 6월 다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면서 그에게 유배형을 내렸고, 253년 6월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성 갈리스토 카타콤에 묻혔다.
치프리아노 성인은 210년 무렵 카르타고(현재 튀니지 일대)의 이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246년 무렵 체칠리아노 사제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고,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례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제품을 받고, 249년 카르타고의 주교가 되어 어렵고 힘든 시대에 모범적인 덕행과 저술로써 교회를 훌륭히 다스렸다.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유배당하고, 신임 총독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재판받다가,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되는데,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먹보요 술꾼이라고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31─13,13
형제 여러분, 31 여러분은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
13,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10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1-35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코린 4,7-15)와 복음(요한 17,11ㄷ-19)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복음 말씀을 묵상할 때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올바른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놓인 상황이나 최근에 가지게 된 고민들에 복음 말씀을 꿰맞추어 내가 듣고 싶은 말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닌 한계나 잘못, 그리고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분까지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때 복음 말씀이 전하는 바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루카 7,33-34).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성경을 읽는 것은 내 생각과 내 주장에 하느님께서 동의해 주시기를 바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칭찬받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느끼려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을 이용하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같은 복음 말씀을 묵상하더라도 우리가 처한 상황에 알맞은 하느님의 다양한 가르침을 얻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솔직하고 겸손하게 성경 말씀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왕태언 요셉 신부)
죄인들과 밤늦도록 포도주잔을 기울이시는 예수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랜 세월 메시아를 목 빠지게 기다려왔던 유다인들이 그린 메시아상은 한 마디로 대단한 메시아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꼬질꼬질한 이 세상의 현실을 한 단계 뛰어넘는 메시아, 보통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초인(超人) 메시아, 이 부조리한 세상을 한방에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의 메시아, 오랜 인간의 소원을 넘치도록 충족시켜줄 기적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드러난 메시아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기대밖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초라했습니다. 범인들의 삶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밥 같은 것 안 먹어도 되는 메시아, 화장실도 안 가는 고상한 메시아를 기대했던 유다인들은 동네잔치 상에 자연스럽게 끼어드는 예수님, 세상 사람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포도주잔을 기울이는 예수님의 모습에 엄청 실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메시아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인간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주고받는 메시아, 한잔 술에 기분이 좋아져 죄인인 인간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는 메시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메시아...
존경하는 가경자 반 투안 프란치스코 추기경님의 일대기를 생생하게 그린 ‘희망의 기적’(바오로 딸)을 밑줄 그어가며 읽고 있습니다. 얼마나 따뜻한 분이며 얼마나 인간적인 분인지를 새삼 배워갑니다.
투안 추기경님은 노년기 힘겨운 투병 생활 중에도 언제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방문객들을 맞이했습니다. 활짝 두 팔을 벌려 환영했습니다. 방문객들이 하나같이 남긴 증언은 이것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마치 내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어떤 사람이든 즉시 무장해제를 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방문객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메시지, 영혼 저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린 따뜻한 메시지를 방문객들에게 건넸습니다.
방문객들은 투안 추기경님과의 만남이 비록 짧은 한순간의 만남이었지만 돌아서면 마치도 피정을 한 느낌이었답니다. 그분의 말을 듣는 동안 영혼의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이렇게 투안 추기경님은 자신의 삶의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을 존중했습니다. 세심하고 깊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영혼, 그들 내면의 성장을 위한 관심과 노력은 한 평생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당신을 배신하고 박해하고 고문한 사람까지도 포함되었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이처럼 따뜻하고 친근한 분이십니다.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키 작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키를 낮추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낯설어 할까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메시아이십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님의 만담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있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여기서 ‘고뿌’는 컵을 뜻합니다. 아무리 마실 것이 많아도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마실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가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악기가 있어도 연주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지식과 능력과 재물을 가지고 있어도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참된 가치를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존재합니다. 소금은 스스로 녹아 음식의 맛을 내고 부패를 막습니다. 빛이 빛을 잃고 소금이 짠맛을 잃는다면 더 이상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사랑을 잃어버린다면 신앙의 참된 맛과 빛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랑의 송가’를 들려줍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만들어져 혼배미사의 축가로도 자주 불립니다. 그러나 사랑의 송가는 단순히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하는 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신앙의 선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큼 큰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고 몸까지 내준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도 사제로 살아온 지 어느덧 35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본당에서도 사목했고, 교구청에서도 일했으며, 청소년 수련원과 해외 공동체에서도 지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여러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 모든 일 안에 사랑이 없었다면, 제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사목의 결실은 건물의 크기나 행사의 숫자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가보다, 그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이 위로받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보다,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성공과 권력과 명예도 사랑이 없다면 빈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작은 말 한마디와 따뜻한 미소라도 사랑을 담으면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꾸짖으신 이유도 그들의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율법을 몰랐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고통받는 사람을 바라보는 연민과 자비가 부족했습니다. 율법의 조문은 잘 알고 있었지만,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사랑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는 상처 입은 이웃에게 다가가는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돌아온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는 죄인을 기다리고 용서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가난해도, 부족해도, 아파 신음할 때도 사랑한다. 나는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이며, 너의 사랑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모두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사람들은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마음속에 결론을 정해 놓았습니다. 요한이 단식해도 비난하고,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어울려도 비난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해하려 하기보다 판단하게 됩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보기보다 겉모습만 바라봅니다. 드라마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벌써 결말을 결정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고 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다가 정작 달을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보아야 할 것은 거친 옷이나 단식이라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회개를 선포한 그의 용기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고백했던 그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보아야 할 것도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겉모습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지극한 사랑입니다.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며,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신 자비입니다. 배반한 제자들을 다시 찾아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신 용서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지식도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남는 것도 사랑입니다.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처럼 우리도 진리를 지키되 자비를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고,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이웃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내님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루카 7,34)
굶주린 벗들과
함께 배부른
먹보이고 싶다
먹보이신 내님처럼
움츠린 벗들과
함께 흥겨운
술꾼이고 싶다
술꾼이신 내님처럼
내쳐진 벗들과
함께 어울리는
벗이고 싶다
벗이신 내님처럼
오늘의 성인
성 치프리아노(Cyprian)
신분 : 주교, 교부, 순교자
활동지역 : 카르타고(Carthago)
활동연도 : 200/210?-258년
같은이름 : 치쁘리아노, 치쁘리아누스, 치프리아누스, 치프리안, 키프리아노, 키프리아누스, 키프리안
200-210년경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유복한 이교 가정에서 내어난 성 타스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또는 치프리아노)는 수사학자이자 법률가였고 또 교사였다. 그는 246년경 속세의 불의와 부패에 회의와 실망을 느끼던 중 하느님의 은총으로 노사제인 코일리키우스(Coelicius)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즉시 당대의 저명한 성서학자이자 유명한 저술가가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후 그는 사제품을 받았고, 249년 초에 카르타고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249년에 일어난 데키우스(Deci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피신하였으나, 은밀히 피신처에서 편지 등을 보내는 방법으로 자기 교구를 계속 지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피신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251년에 교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교구민들이 박해 동안에 배교하였고, 또 자신의 주교 선임을 반대하던 사제 노바티아누스(Novatianus)가 이단에 빠져 있음을 알았다. 노바티아누스 신부는 배교한 신자들에게 아무런 회개 행위도 요구하지 않고 교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그의 지나친 관대함을 나무라고, 박해 당시 배교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규율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배교자를 제외하고는 새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 배교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유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51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성 코르넬리우스(Cornelius, 9월 16일)가 배교자들에게 관용과 용서를 베풀자, 노바티아누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배교자들은 영원히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배타적인 엄격주의자로 돌변하였다.
로마(Roma)의 주교로 선출될 것을 기대했던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대립교황으로 등장하며 이교적인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즈음에 성 키프리아누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가톨릭 교회 일치"(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와 "배교자들에 관하여"(De lapsis)를 저술, 배포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지 않고 교회 안에 일치를 이루도록 촉구하였다.
배교자 문제가 해결된 지 얼아 안 되는 252-254년 사이에 아프리카 지역에 몸서리치는 흑사병이 창궐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이를 물리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를 반대하는 이들과 신자들은 흑사병을 그리스도교와 성 키프리아누스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며 박해의 빌미로 삼았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 때문에 하늘이 분노하여 전염병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사람들의 낭설을 반박하고 위로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데메트리아누스에게"(Ad Demetrianum)과 "죽음에 대하여"(De mortalitate)라는 책을 썼다.
그 후 얼마 뒤에 그와 아프리카의 다른 주교들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와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황은 이단자들과 분리주의자들이 베푼 세례도 유효하다고 인정한 반면, 그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255년 성 키프리아누스는 지역 주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르타고에서 주교회의를 열고 이단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재세례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성 키프리아누스는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또 모든 주교와 사제와 부제들이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 예식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지방 총독인 파테르누스에 의하여 카르타고에서 50마일 거리에 있는 쿠루비스로 유배되었다.
또 다음해에는 모든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렸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새 총독인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소환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끝까지 이교의 신에게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됨으로써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그는 교회, 사목, 성서, 성사 그리고 배교자 문제에 관하여 박해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13편의 저서와 65편의 서간들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성 고르넬리오(Cornelius)
신분 : 교황, 순교자
활동연도 : +253년
같은이름 : 고르넬리우스, 꼬르넬리오, 꼬르넬리우스, 코르넬리오, 코르넬리우스
로마(Roma)의 평범한 사제이던 성 코르넬리우스(또는 고르넬리오)는 성 파비아누스(Fabianus, 1월 20일) 교황이 순교한 후 여러 사정으로 14개월 동안 지연되었던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교황 선출이 지연된 것은 데키우스 황제의 극심한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이었다.
그가 재임 기간 중 이룬 주요 업적은 박해 기간 중에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과의 화해 정책이었다. 그는 배교자들에게 합당한 통회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한편, 배교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죄하며 교회가 그런 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던 노바티아누스(Novatianus) 일파를 공격하던 카르타고(Carthago)의 주교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를 끝까지 옹호하였다.
그리고 그는 배교자를 용서하는 권한이 교회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교황으로 선언했던 로마의 사제 노바티아누스와 그를 정점으로 모인 엄격파들을 단죄하여 교회의 평온을 회복하였다. 노바티아누스는 소수의 지지자들과 함께 새 교회를 세운 대립 교황이었다. 노바티아누스의 극단주의를 옹호하던 무리들은 재차 힘을 규합하여 동방에서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에 성 코르넬리우스 교황은 교회가 통회하는 배교자들을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재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성 코르넬리우스 교황의 제의로 251년 10월에 개최된 서방 주교들의 교회회의는 노바티아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파문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단죄하여 교회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
갈루스 황제가 252년 6월에 다시 그리스도교 박해를 재개하자, 그는 체포되어 첸툼첼레(Centumcellae, 현재 로마의 항구도시 치비타베키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이듬해 6월 순교자로서 삶을 마감하였다. 그의 시신은 후에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의 루치나(Lucina)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명은 라틴어로 새겨진 최초의 교황 비문이다.
성녀 둘치시마(Dulcissima)
활동년도 : +연대미상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수트리(Sutri)
같은 이름 : 돌치시마, 돌치씨마, 돌키시마, 돌키씨마, 둘치씨마, 둘키시마, 둘키씨마
성녀 둘치시마에 대해 알려진 것은 오로지 그녀가 옛 교황령이었던 이탈리아 수트리의 수호성인이라는 것뿐이다. 그녀는 돌치시마(Dolcissima)로도 불린다.
성녀 루드밀라 (Ludmila)
활동년도 : 860-921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보헤미아(Bohemia)
같은 이름 : 루트밀라
성녀 루드밀라는 슬라브 왕자의 딸로 태어나 보헤미아의 공작 보리보이(Borivoy)와 결혼하였는데, 남편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의 성 메토디우스(Methodius, 2월 14일)로부터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보헤미아에 첫 번째 성당을 세웠다. 그러나 왕가에서는 이 신흥종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반대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마저 운명하였다. 그녀는 덕스럽고 배움이 많은 부인이었다. 그녀는 늘 주민들을 돕고 있었기에 백성들은 그녀의 높은 덕을 늘 칭송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싫어하던 왕가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체코에서 더 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에우페미아 (Euphemia)
활동년도 : +307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에우뻬미아, 유뻬미아, 유페미아
고대 저술가들과 교회는 성녀 에우페미아에 대하여 큰 소리로 찬양하고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451년에 공의회가 열린 칼케돈(Chalcedon)을 포함하여 수많은 지역에서 그녀를 높이 공경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녀는 아마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에 순교한 듯하다. 당국이 그녀에게 온갖 고문을 다하였어도 죽지 않자, 마침내 야생 동물에게 던져 죽게 하였다고 전해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