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개다리를 보면서 앞의 글(1), (2)에서 마저 못한 이야기들을 생각나는 대로 올려 본다)
'노성현의 풋개다리'를 '뇌성풋개다리'라고 구어체로 옮겨놓았다. <춘향가> 사설대목에서
- 회다리로 불리우는 초포교 ( 사진 모습 우측)-
옛 초포석교 돌다리 잔해 만이 유일하게 남아 옛날 다리를 떠올리게 한다.
고려 시대 때는 몽골군을 피해 현종이 나주로 몽진 시에도 지나갔을 곳,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시 아산 뱀치 마을 고향을 떠나 권율 장군 휘하가 되어 지나가기도 했던....
현재 초포다리 '풋개다리'로 표석( 우측 )이 박혀 있다.
현재 초포교 시공판
현재 다리 아래쪽에는 예전 일제시대 때 '회다리' 흔적이 냇물 양쪽에 남아있다.
항월1리 마을 이장을 지내신 바 있는 이상우씨(발치에 붉은 점 표시)의 안내를 받으며 이야기를 듣는다.
노성천이 왕덕천과 합류하는 지점과, 연산천 일대를,,,, 왜 은진 관촉사의 미륵불이 세워졌는지 , 왜 가야곡면이 있는지..
주변에는 황산성, 노성산성과 같은 석성의 산성들이 있고 얕은 야산에는 토성도 많이 있고...
백제의 수도방위선과 최전선을 방불케하는 산성들의 배치를 그려본다.
상류쪽으로 멀리 계룡산 줄기가 동쪽 대둔산 쪽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계룡산 상봉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향적산(국사봉)에서 그 산줄기를 동쪽으로 틀어 양정고개를 지나 천호산 황령재(누르기재)를 지나면 깃대봉이 나타나고 그 깃대봉 아래 너른 들판은 황산벌. 백제 최후의 결전 대회전의 전장터,
천호산 아래에는 고려 거국한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최후의 결전장이 있고,
이곳 초포 근처에는 구한말 1894년 갑오동학농민군 4만여 명이 집결해서 우금치 전투를 치뤘던, 그 중 대부분인 3만 5천여명이 전사 한 곳. 백제 황산벌 전투시 전몰장병의 영혼, 고려 건국시의 전몰 장병들, 조선 말엽의 동학군농민들 영혼
아아 어찌 잊으랴! 이 다리 위에서 계룡산 신원사, 우금치 위령탑, 연산 개태사와 팔관회 행사, 계백장군 기념 박물관, 논 제2훈련소까지를 그려본다.
지명 속에 있는 황산, 연산, 논산은 모두 한문 지명들. 그러나 속 뜻은 모두 한뿌리에서 나왔다. .
그 속살은 ' 누르기ㅡ> 노랗다'에서 나온, '길게 늘어진 산줄기'에서 나온 땅이름이 누르 황(黃-> 황산), 이을 연(連-> 연산) 놀뫼가 논산(論山)으로 변신해서 나타난다.
풋개다리(초포교)위에서 바라보는 동쪽의 산줄기와 그 곳에서 벌어졌던 역사의 피비린내나는 전투, 층층 겹겹이 쌓인 역사의 지층들을 떠들어본다.
계룡산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의 페이지들이 펼쳐지는 곳의 한 쪽 면만 보고 지나간다.
바닷물이 민물과 만나는 곳에서 가까운 곳(강경)이라 노성참게가 많아 진상품으로 유명하고,
계룡군문화제가 10월 6일부터 열린단다.
어제와 오늘을 꿰뚫어볼 수 있는 기회,
게다가 평소에는 출입금지 된 곳들 (대궐터, 추춧돌, 계룡산 정상 근처가지) 한시적으로 출입이 가능하기도 하고.
(2023.10. 6일 자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