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선조(先祖) 문집(文集)의 교류기록(交流記錄)
족보의 서문과 보의기록 이외에 선조들의 개인 문집에도 적잖은 관북종친의 교류기록이 남아 있다. 왜 그런 기록들이 햇빛을 보지 못하고 수 백년 동안 책속에서 잠자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으면 남북종친 교류사를 보다 알차게 장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문중의 역량을 쏟아 흩어져 있는 개별교류 기록을 찾아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남종 선조들의 문집에 들어 있는 관북종인의 장흥방문 사실을 한시(漢詩)로 지어 문집에 수록해 놓은 것을 제목(解題)만 나열해 정리한 것이다.
1) 관북종인관련(關北宗人關聯) 문집해제(文集解題)
(1) 詠而齊(文德. 1704~1784)=送咸興宗人(挺振)還鄕
(2) 書溪(伯純. 1737~1815)=泮村逢咸興宗人萬庵共和(2首)附萬庵詩, 魏上舍服前咸興持平(迪喆)答書(戊辰)
(3) 竹塢(道僩. 1763~1830)=咸興魏氏派譜序
(4) 茶嵒(榮馥. 1832~1884)=次桂巷萬庵和韻贈咸興宗中
(5) 春坡(瓘植. 1843~1910)=與咸興宗人(大源), 與咸興宗中
(6) 春軒(啓泮. 1848~1939)=關北宗人(鍾卨)寄書來, 敬次忠烈祠新建韻(在咸興), 送宗人(鍾卨)歸關北, 贈別咸興宗人文玉(楨瑞), 答咸北宗人(鍾卨)
(7) 復齋(啓玟. 1855~1923)=送咸興宗人(鍾卨)歸北, 送咸興宗人(楨珪)歸故山亭, 咸興宗人(鍾卨)北歸序
(8) 桂史(澤基. 1858~1940)=贈咸興宗人
(9) 梧軒(啓龍. 1870~1948)=奉酬咸興宗人(鍾卨)行. 次咸興月明山忠烈公院宇韻
(10) 重窩(洪良. 1881~1961)=贈咸興宗人進煥在弼在學在麟, 題咸北魏進煥墅軸, 和咸興宗人在弼告別韻
이상의 10인의 선조문집에 실린 관북종인 관련 한시(漢詩)는 모두 23편에 이른다. 이들 한시 가운데 우리 족보 지장록에 실린 것은 서계공 문집(書溪公 文集)에 들어 있는 「泮村逢咸興宗人萬庵共和」 정도에 불과하다. 관북출신 종인도 정진(挺振)어른을 비롯해서 그 유명한 만암(萬庵)ㆍ적철(迪喆)ㆍ대원(大源)ㆍ종설(鍾卨)ㆍ정서(楨瑞)ㆍ정규(楨珪)ㆍ진환(進煥)ㆍ재필(在弼)ㆍ재학(在學)ㆍ재린(在麟) 등 11명에 달하고 있다. 또 문집에는 등장되지 않았지만 휘 창빈(昌彬)과 도량(道良)을 포함하면 13명이나 된다.
족보서문과 문집의 한시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관북종인 중 역사상 최초로 장흥을 방문한 인물은 정진공(挺振公)인 듯하다. 그의 방문 시기는 영이재공(詠而齋公)의 문집에 「送咸興宗人(挺振)還鄕」이란 한시 제목으로 보아 1760년대쯤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관북최초의 족보초안을 남종에 전달하고, 남종의 최초 족보인 1759년에 발행된 기묘보를 관북종중에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남북에서 발행된 족보를 통해 남종에서는 총렬공 묘소를 찾아냈고, 북종에서는 씨족의 근원과 갈래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매우공(梅尤公ㆍ文祖)이 쓴 관북 정해보(丁亥譜) 서문에 “지난 甲申年(1764) 겨울에 정진(挺振) 어른께서 우연히 장흥에 가시어 그 보첩을 얻어옴으로 비로소 그 근원과 갈래의 내력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과 일치된다. 따라서 충렬공 묘소 발견과 관련, 정진이 庚申年(1800) 10월에 장흥을 방문했다는 기록은 오기임이 분명하다. 갑신이 경신으로 잘못 표기됐다고 보여 진다. 경신년은 영이재공이 타계하신지 16년째 되는 해이기에 정진어른의 환향에 따른 시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시에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은 종설(鍾卨) 종인이다. 그는 춘헌ㆍ복재ㆍ오헌과 계사 등 4인의 문집에 나온다. 이유는 당시 문집의 주인공들이 1848년부터 1870년에 태어난 같은 시대의 인물이라 함께 어울려 자주 수창(酬唱)한 종인들이기 때문이다. 손님인 종설어른도 같은 연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정서(楨瑞)ㆍ정규(楨珪) 종인과 재필(在弼)ㆍ재학(在學)ㆍ재린(在麟) 종인은 형제간이 아닐까 짐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존재공(存齋公) 문집에 들어 있어야 할 관북종인 창빈(昌彬) 및 도량(道良) 종인에 관한 기록이 빠져있어 참으로 아쉬울 뿐이다.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들의 옛발자취와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관북종인 문집과 이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이고 후손에게 전할 귀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