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설교 내용 요약
제 목 : 성경적 실천의 현장과 클레로스(270) – 사도들의 실천과 클레로스(249) – 베드로전서 강해(6)
베드로전서 강해(6) – 베드로전서 5장
베드로 사도가 명령하는 것은 마음에 대한 명령이다
베드로는 장로들과 젊은 형제들에게 권면하면서 클레로스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명령문을 많이 사용했다. 그것은 수신자들이 명령의 내용을 잘 알고 받아들여서 삶에 적용할 마음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명령을 하는 것이다.
먼저 베드로는 그대들 중 장로들에게 나는 함께 장로된 자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사람으로서 권면하고 있다. 사도들도 장로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들은 양육을 담당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라고 명령하고 있다. 피치 못해 하지 말고 자진해서 하고, 부정한 이익을 위해서 하지 말고 아낌없이 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양육과 구제에 대한 권면이다. 사람들이 자진해서 아낌없이 하는 것은 노림수가 있어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명령은 마음 가짐에 대한 명령으로서 행동이나 이성적인 판단이나 결단을 위한 명령이 아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지 말고 저런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명령이 통하지 않는다. 내 마음도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 자세에 대해서 명령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따라서 베드로 사도가 장로들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명령한다는 것은 그들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 새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명령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싸르크스가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두 마음(법)이 싸우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장로들은 이미 자진해서 아낌없이 양떼를 돌보는 마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명령은 깨어 있으라는 명령과 동일하며, 싸르크스에 휘둘릴 수 있는 시간을 줄이라는 명령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새 마음을 받지 못한 정상적인 인간이 이 명령을 듣고 결단하려는 것은 그 명령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진해서 양떼를 돌보고 아낌없이 양떼를 돌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신자들은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 구원 사건이 일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베드로가 명령하는 것이다. 싸르크스에 휘둘리면 장로들이 피치 못해 하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노림수가 있어서 양떼를 돌보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편지를 읽고 자신들이 싸르크스에 휘둘렸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회개와 간구를 하게 되면 다시 자진해서 하는 마음, 아낌없이 하는 마음이 다시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1장(22절)에서 어린 형제들까지도 서로 가식 없는 사랑을 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즉 새 마음을 받고 신성이 임한 사람들에게 하는 명령인 것이다.
그러면서 장로들은 그대들의 몫으로 주어진 클레로스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무리의 본인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클레로스들이란 하나님이 불러 모아서 은혜를 배분하여 나누어 준 자들이다. 지배한다는 것은 상대를 남으로 보는 것이며 이용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무리의 본이 되는 것은 무리가 나처럼 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에 본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목자장에 나타나실 때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장로들에게 공손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은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하나님의 강력한 손 아래에서 스스로를 낮추라고 권면하고 있다. 때가 이르면 그대들을 높이신다는 것이다.
공손은 낮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며 정상적인 인간은 모두가 우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교만한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성소 밖으로 안 나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구원 사건이 일어난 클레로노모스들을 제외하고는 겸손한 자들이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세상의 겸손의 의미는 자기를 위한 겸손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겸손이란 하나님의 강력한 손 아래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 사건이 일어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낮출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하는 권면인 것이다. 하나님의 강력한 손 아래에 있다는 체험은 새로운 창조를 체험한 사람들이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령의 은사가 임하면서 실제 체험하는 것이다.
고난을 받은 수신자들을 위한 위로와 권면
그대들이 모든 근심, 걱정을 그분께 맡겨버리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분께서 그대들을 보살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은 항상 살펴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살피신다는 것이 현실이 된 자들에게 하는 권면이다. 함께 그런 체험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맡겨 버릴 수 있는 자세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 표적이 누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대들의 적인 악마가 포효하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길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의 형제들 또한 같은 고난을 겪고 있음을 알고 그대들은 확고한 신뢰를 가지고 대항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대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으로 불러들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잠시 고난을 받은 그대들을 완전케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권면하고 있다. 변화와 성장이 현실이 되지 않으면 고난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끝으로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그분께 아멘, 하면서 편지를 마치고 있고, 마지막으로
이 편지는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형제 실루아노의 손을 빌려 쓰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니 그대들은 이 은혜 안에 굳게 서라고 권면하면서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성회와 내 아들 마가가 그대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서로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대들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베드로전서의 주제는 고난에 대한 인내와 영광스러운 결과이다. 그리고 고난은 하나 된 삶을 살게 되면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니 인내하라는 것이다.(요15:16-20) 하나가 되어가기 때문에 핍박이 오는 것이다.
2.공지사항
다음 주 기도는 연동흠 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