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배기 싸락눈/황동규
골목길 언덕배기
목덜미 페인트 벗겨진 세발자전거
싸락눈을 튕기고 있었다.
언덕 아래선 연탄 리어카 한 채
아낙이 끌고 사내가 뒤에서 밀며 오르고 있었다.
하늘이 언덕 아래로 잔뜩 접혀 있었고
그 위로 싸락눈이 흩날리고 있었다.
땀 젖은 사람 둘과 까맣게 안면 굳힌 연탄들이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누군가 허리 펴고 숨 한번 크게 내쉬자
하늘이 다시 위로 제켜졌다.
세발자전거 뒤에 개 하나, 검은 안경 낀 사내 하나
뵈지 않는 얼굴에서 뵈는 얼굴로 바뀌며
싸락눈을 맞고 있었다.
개 얼굴이 먼저 움직였다.
싸락눈 한 자락이 환해지고
조그맣지만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음성들이 새나왔다.
―『불교문예』2007년 겨울호
* 가난한 산동네 “골목길 언덕배기”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시이다. 이들 풍경 속에서는 우선 “페인트 벗겨진 세발자전거”가 “싸락눈을 튕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언덕에는 “연탄 리어카 한 채”가 “아낙이 끌고 사내가 뒤에서 밀며 오르고 있”다. 하늘은 “언덕 아래로 잔뜩 접혀 있”고, “그 위로 싸락눈이 흩날리고 있”다. 이윽고 “땀 젖은 사람 둘과 까맣게 안면 굳힌 연탄들이/언덕배기”로 올라선다. “누군가 허리 펴고 숨 한번 크게 내쉬자/하늘이 다시 위로 제켜”진다. 다시 언덕배기에는 “세발자전거 뒤에 개 하나, 검은 안경 낀 사내 하나”가 “싸락눈을 맞고 있”다. “개 얼굴이 먼저 움직”이자 “조그맣지만 살아 움직이는/사람의 음성들이 새나”온다. 이 시에서 시인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이들 풍경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인가. 풍경의 선택은 세계관의 선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자못 분명해진다. 이들 풍경이 함유하는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지극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이 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