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쉬트 #5
(창1:26-31)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
창세기 1장에서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1:26)
사람은 우연히 존재하게 된 생명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땅에서 맡겨진 책임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단순히 사람이 특별하다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답게 이 땅을 살아야 한다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2.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
그런데 이사야 43장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나타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3:8)
눈이 있는데 보지 못하고, 귀가 있는데 듣지 못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었는데, 죄와 불순종 속에서 사람은 자신을 지으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사43: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지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가 누구신지를 알고 그분을 증언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11절은 더욱 분명합니다.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요한복음을 읽으면 아주 깊은 질문이 생깁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에서도 "보지 못하는 사람과 알아보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빛이 왔지만 모두가 그 빛을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 왔지만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세 본문을 한 줄로 이어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사야 43장 — 여호와를 알고 증언하도록 택함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 빛을 알아보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4. 오늘의 묵상
"나는 누구의 형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눈이 있다고 모두 보는 것은 아니며 귀가 있다고 모두 듣는 것도 아닙니다.
창조 세계를 보면서도 창조주를 보지 못할 수 있고, 말씀을 읽으면서도 말씀하시는 여호와를 알지 못할 수 있으며, 빛이 앞에 있어도 그 빛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의 마지막은 참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טוֹב מְאֹד — 토브 메오드, “심히 좋았다.”
사람의 출발점은 버림받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지음 받음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은 내가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분께 돌아가 그분의 뜻을 따라 다시 걷는 것입니다.
5. 기도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주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주의 백성으로 불러 주심에 감사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주를 알고 믿으며 주의 빛을 알아보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여호와를 나타내는 증거가 되게 하시며,
주의 자녀답게 말씀을 따라 걷게 하소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