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믿음과 소망
고전15: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기에 바쁩니다. 임종을 앞두고 열흘만이라도 더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시던 교인처럼 우리는 하루라도 이 세상에서 더 살아남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의 삶이 소중해도 부활의 소망가운데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의 삶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활의 영광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
히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두려움 없이 떳떳하게 서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 심판대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라 만민을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밝히 보여주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성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역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입니다.
고전15:13절“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부활의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으로서, 죄사함을 얻게 해주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이 만드는 불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실제적으로 부활의 믿음이나 소망없이 살아가는 성도는 죄사함의 은총을 거부하는 자입니다. 부활의 믿음과 소망 없이 죄사함의 은혜를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사도에게 삶의 푯대는 부활의 영광에 있었습니다.
빌3:10,14“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부활의 영광과 동시에 이 세상의 영광을 붙잡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듯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는 이 세상의 모든 자랑이나 영화를 배설물처럼 여깁니다.
요일2: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활의 소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고자 했던 사도의 삶을 본받는 자만이 주님을 본받는 자입니다. 주님 없는 삶이 헛된 삶이듯이 부활의 소망 없이 사는 삶 또한 헛된 삶입니다. 부활 신앙만이 우리로하여금 세상에 대하여 죽게합니다.
고전15:19“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부활의 소망 때문에 사도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이 땅의 안전이 아니라 환난과 핍박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사도의 삶이란 강권적인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여 살다간 삶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복된 삶입니까? 아니면 부활의 영광입니까? 진정한 복이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이 땅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드는 부활의 권능에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믿음에 자기 목숨을 거는 대신 피상적으로 살게하는 경박한 세상입니다. 끝까지 부활의 영광에 자기 인생을 걸고 달려간 사람만이 믿음의 확실함에 이릅니다.
빌3:20“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성도는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해주실 주님을” 오늘도 기다립니다. 24. 10. 12 장기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