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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차 부산23산우회 낙동강길/원동-삼랑진/2018.11.17
1. 모임 : 구포기차역 9시반
2. 출석/6명 : 안호창 김영기 김상영 최인식 박재완 송충송
3. 코스 : 원동역 - 가야진사 - 낙동강 자전거길 - 작원잔도 - 작원관지 - 삼랑진역
4. 시간 : 4시간 반 5. 회비 : 무
결산 1) 수입 : 508.7631만원 (전이월)
2) 지출 : 3.98 (교통비/열차/경로/왕복/1.98 + 간식/빵.주류.커피.육개장드등/2.0
3) 잔금 : 504.7831만원
** 저녁식사(17만원상당) 김영기가 쏨. 감사합니다
사진모음(클릭/확대해서 보세요. 답사사진도 섞었음)
9시반 구포기차역 집합
커피를 한잔씩 하며 기차를 기다린다 (9시44분 기차)
박재완 좌석은 매진되어서 입석표로 원동으로 ,,,,
입석이지만 하기 나름 ^^ 등산용 의자에 안자서 창밖 구경을 하고 ,,,,
예전에 많이 해본 솜씨다 일등석이 따로있남 ? 여기가 일등석 ㅎㅎㅎ
10시5분 원동역에 도착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서 삼랑진으로 향한다
역사를 나서자 아침 청량한 공기에 기분이 상쾌하다
최인식 길가에 싱싱한 갓이 밭데기를 이루고 있다.
이 길은 옛길이라서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갓이 오염이 안됬을것같다 . 쪼금 오염됐으면 또 어떼서 ,,,,
가던길을 멈추고 갓을 캔다. 다음 산행때 갓김치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함 ,,,,,
그림같이 아름답다
좌측 능선은 천태산 우측 능선은 토곡산 중앙은 배내골로 간다
가야진사 도착
(인터넷)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616-1에 가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어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고 있는,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가야진사(伽倻津祠)’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신라초기부터 전해오는 국가적 제사의식의 하나로, 신라 제2대 남해왕이 즉위한 3월에 시조대왕 혁거세의 묘당을 세워 친누이 아노로 하여금 용신제를 지내게 한 것이 시초라 한다. 매년 5월 5일에는 이곳 제단에서 가야진용신제를 올리고 있다.
김영기 안호창 박재완 최인식 김상영
(인터넷) 현재의 사당은 1406(태종6)년에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이곳은 지금의 한강과 금강, 포항의 곡천강 등과 함께 신라가 국가의 주요 4대 강에 제사하였던 ‘사독(四瀆)’의 하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4독의 하나로 받들어졌다. 그리하여 나라에서는 매년 향축(香祝)과 칙사(勅使)를 보내어 국가의식(國家儀式)으로 이곳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매년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제사를 지내고 홍수로부터 마을을 지켜 줄 것을 기원하고 있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비를 내려 줄 것을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한다
무척산이 보이고 ,,,, 그아래 강가에 용(용산)한마리가 낙동강을 건널려고 하고 있다
예전에는 김해쪽에서 무척산을 올라가 이 쪽 용산으로 하산 나룻배를타고 지금 가야진사쪽으로 건너와 원동에서 기차로 부산으로 갔었다. 그때 원동에서 막걸리 안주로 민물새우와 봄이면 딸기를 사먹던 기억이 난다
그당시는 민물새우와 딸기가 엄청 헐었는데 ,,,
가야진사 나루터에서 강건너 우람한 용산이보이고
(인터넷) 가야진사 맞은편(김해 쪽)에는 용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한 용산이 있고 그 아래에 '용이 살았다'는 용소(용굴)가 있다.
문헌에는 눌지왕이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나루터였던 용당마을에 사당을 건립하고 국가 차원의 제례의식(신라 사독 중 한 곳)을 치렀고, 고려와 조선시대 때에도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용신제가 중단되기도 했다. 일제가 문화 말살 정책으로 가야진사를 옮기고 용신제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용신제에 풍악과 굿을 가미해 그 명맥을 이어왔다.
김영기
다음 산행은 가능하면 높고 험한 산을 택해 극기 훈련을 하자는데 ,,,,
아이고 나이 칠십에 극기훈련요 ?? 산행대장 죽었다 ㅠㅠㅠㅠㅠㅠ 킥
조아요 ^^^ 한달에 한번은 영남알프스 천고지를 올라가 봅시다요
가야진사 멀리 토곡산이 보인다.
산이 험하기로 부산근교 산중에 제일 악명이 높은 산이다
우리 할배들 극기훈련으로 눈오는 날 올라가기로 약속하고 ,,,
용산
낙동강으로 용머리를 쭉 내밀고 있다
가야진사를 지나 다시 삼랑진으로
천태산은 저산 옆으로 나있는 도로를 따라 천태사로 가서 올라가지만
정면에 보이는 산을 올라서 천태산 으로 갈수 있다 급경사에 힘이 들지만 아주 아기자기한 코스다
중간 급유를 하고
갈대숲이 강바람을 막아서 아주 따뜻하다 마치 봄날같다
잠이 슬슬 온다. 여기 누워서 한숨 자고싶다
도시의 검은때가 스르르 다 씻겨나간다
다시 길을 계속 가고
수로의 푹신한 잔디위를 걷는다 발바닥 감각이 이루 표현을 못할 정도로 편하다
기차도 지나가고
갈대숲을 지나고
우리 조상님들은 이길을 따라서 옛날 부산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보러 갔을것 같다 저렇게 개나리 봇짐지고 ,,,,,
지금 우리는 등산화를 신었지만 그당시 우리 조상님 들은 짚신을 신고서 그 먼 한양으로,,,,,,
스치는 강바람에 갈대가 춤을 춘다.
점심시간
송다방도 문을 열고
오늘은 푸짐하다 김밥. 빵. 과자. 육개장. 우동 ,,,,,,,
이제는 이 맛있는 것도 끝이다 인식이 동생분 수제빵은 열외로 합시다용 ^^^
다음 산행 부터는 김밥 한줄과 물 한병만 들고 산행을 하기로 결의하고 산행전 베낭검사를 하기로 했다 ㅎㅎ
적게 먹는것이 장수의 비결 !!!!!!! 과하게 먹으면 그것이 독이 된다. 맞는 얘기다.
우리나라 산객들은 건강을 위해서 산에 간다고 하고는 산행중에 더 마시고 더 먹는다
멀리 보이는 저 바위가 일명 망바위다
저 바위 이름은 지도에도 없다. 70년도 기차를 타고 지날때 마다 저 바위를 보고 궁금 했는데
선배를 따라서 저 바위를 오르기위해 여기에 왔을때 당곡 마을 할아버지 한분이 저 바위를 망바위라고 한 기억이 난다
망바위를 줌으로 당겨본다 (답사사진)
임진왜란때 왜군이 부산 쪽에서 낙동강을 따라서 한양으로 갈려면 여기를 지나야 되는데
그때 삼랑진 동네 사람들이 밤낮으로 저 바위위에서 왜군이 오는지 망을 보았다고 한다
낙동강 황포돛대는 어디로 가고 존슨모타를 단 배가 낚시를하고 있다
이 구간은 워낙 절벽이라 자전거길을 강위로 다리로 만들어 놓았다
작원잔도
(인터넷에서) 자전거길이 놓이기 전 아주아주 오래전에는 낙동강과 산이 딱 붙어 있었고 영남대로는 그 산사면의 깎아지른 벼랑에 아슬아슬 놓여 작원잔도(鵲院棧道)라 불렸다. 삼랑진 깐촌에서 양산 원동 용당리에 이르는 꽤 긴 길로 양산 황산잔도(黃山棧道), 문경 관갑잔도(串岬棧道)와 함께 영남대로에서 험하기로 이름난 벼랑길이었다.
일제가 경부선 철도 공사를 벌일 때 이 구간은 철도마저 놓을 수 없어 터널을 뚫은 자리다. 천길 벼랑이 잔도를 보존하게 한 것이다. 잔도는 벼랑에 겨우 매달려 있다. 돌을 다듬어 조적해 낸 한 뼘 길. 차안과 피안의 경계마냥 신비롭기까지 하다.
작원잔도
(인터넷에서) 영남대로는 관로(官路)여서 양인이나 하층민이 함부로 다닐 수 없었다. 누군가의 오체투지와 같은 길, 그러나 함부로 다닐 수 없는 길. 여기에는 밤새 씨줄 날줄 엮어 기어코 긴 삼베자락 지어낸 여인들처럼, 돌 하나하나 다듬고 한발 한발 전진해 길 놓은 이름 모를 백성들이 있었을 것이다.
잔도 옆으로난 자전거길을 따라서
다리구간이 끝나고 대나무 숲길로 들어 간다
작원관지에 도착 작원관 한남문이 보이고 그위로 위령탑이 보인다
(인터넷) 천태산 자락의 벼랑이 낙동강에 내리 꽂히는 자리에 영남대로의 첫 관문인 작원관(鵲院關)이 있었다. 원(院)과 관(關)과 진(津)의 역할을 담당하던 그 문은 산세가 험해 날짐승들만 넘나들 수 있다 하여 까치 작(鵲)이라 했다.
문은 ‘한남문(南門)’,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왜적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한남문 앞에서 김상영 김영기 박재완 안호창 최인식 찍사 송충송
(인터넷) 왜적. 이곳에 무려 1만8천700명의 왜적이 진격해 온 적이 있다. 1592년 4월17일, 임진왜란 발발 나흘 뒤였다.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이틀 만에 함락시키고 거침없이 북진하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제1군은 작원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진군을 저지한 것은 밀양부사 박진과 민관군 300여명이었다. 우리군은 이 좁은 길목에서 왜적과 싸웠다. 기록에는 백병전까지 벌였다고 한다. 작원관 전투는 임란사에서 전쟁다운 전쟁으로 꼽히며 박진 장군은 임란 초기의 장수 가운데 두드러진 인물로 평가된다.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 사야가(김충선)가 투항한 이가 바로 박진 장군이다
할배들 작원관지에 대한 열공중
우리 할배들은 산에 왔어도 항상 공부를 한다
" 야 총무야 옛날에 저문에서 통과하는 사람들을 검문 검색을 했다고 하는데
경비를 보던 문지기들은 짭짭하게 재미가 있었겠다. 그자 ? ^^^ ㅎㅎㅎ "
한남문 옆 산중턱에는 작원관 위령탑 이 서있다.
탑에는 왜적과 싸우는 장군과 군관민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작원마을(일명 깐촌)
작원관을 지나 우리는 다시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삼랑진으로 올라간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삼랑진이 보인다 오늘도 미세 먼지가 심하다
삼랑진철교와 낙동대교 가 희미하게 보이고 삼랑진 매봉산도 보인다
수로도 지나고
물이 거울같이 깨끗하다
삼랑진 구역으로 들어서니 강변 정비가 상당히 잘되어 있다
저 잔디에 앉아서 고도리 한판을 ,,,,,
삼랑진 뚝방을 올라서 뚝위로 걸어서 역으로 간다
뚝위에서 보니 멀리 만어산과 만어사가 보인다. 다음에 만어산을 오를 산행계획도 잡아보고 ,,
빨간 웃통의사나이 최인식
도데채 이할배는 늙지도 안는다. 누가 이 할배를 나이 칠십이라고 할꼬 ?
경치가 한폭의 그림이다
우리 23산우회는 이렇게 쉴멍놀멍 걸어서 언젠가는 안동까지 갈계획이다
늦가을 붉은 감이 주렁주렁 달린 작은 마을을 지나고
삼랑진역
원동에서 삼랑진까지 걸어서 4시간반만에 도착했다
역전 정자에 앉아서 아이스케키 하나씩 입에 물고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를 기다리며
사진의 커다란 원통같은 타워는 옛날 증기기관 기차시절 기차에 물을 공급하던 물탱크라고 한다
지금은 쓸모가 없어졌지만 재완이 얘기로는 사진찍는 명소라고 한다
저 물탱크를 감싸고 있는 담쟁이 나무가 멋진 사진 포인트라고 한다
담쟁이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줄기가 우리 허벅지보다 더 굵은것같다
삼랑진에서 무궁화 열차로 화명동에 도착
갈비구이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늘 산행을 끝낸다
김영기 김상영 최인식
잔을 부딧치며 ,,,,, 즈그끼리 ,, 킥
산행 끝
친구들아 항상 건강하게 구십까지 산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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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너거만 다니면서 만나자카나?
강을 끼고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주위 풍경에 취해 엉터리 같은 말을 해도 시비걸 시간이 없어서 좋고,흘러가는 강은 법(法)대로 흐르면 되고, 우리는 자연에 묻힌채로 간섭받지않고 나를 뒤돌아 볼 시간을 가졌다는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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