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2일 화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성실한 종의 태도
사실 하루 종일 일을 시켰는데 저녁 늦게 집에 와서까지 종을 부려먹는다면 인정머리가 없는 일이지만 기왕에 품삯을 주어야 한다면 그 종을 철저하게 일을 시키는 일이 잘 관리하는 주인이기도 합니다. 정당한 대우를 해주고 정당한 일을 시키도록 서로 계약된 관계이며, 종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서약한 상하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종의 태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십니다.
1) 종은 안팎의 일에 구분이 없습니다.
밖에서 힘써 일했지만 집에 들어와서도 조금도 쉴 새가 없는 것이 종입니다. 젊었을 때 우리는 밖에서 하루 종일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면 어머니와 아내가 식탁을 차리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정성어린 식탁에 감사한 마음으로 들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나는 같이 맞벌이로 학교에 근무했기 때문에 온종일 지쳐서 들어온 아내는 쉴 새도 없이 또 식탁을 차려야 했습니다. 요즘도 아내는 나의 종이 아니라도 종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하느님의 일도 안팎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선교분과장이니까 노인분과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고, 나는 레지오 단원이니까 다른 분야의 일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은 관계입니다. 교회에서는 천사처럼 살면서 교회 밖에서 신자인지도 모르도록 산다면 어떻게 그가 참된 주님의 종일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나는 아내의 종이 되지 못하고 산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겨우 두 노인이 살고 있으니 설거지를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거지를 가끔 도와주면서 느끼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평생을 밖의 일만 신경 쓰고 한 번도 제대로 도와준 일이 없었구나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2) 주인의 고마운 인사는 받을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이 고맙다고 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못하는 것이 종의 신분입니다. 부부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서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하고, 칭찬해주고, 대신 무슨 일이든 함께 도와 줘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는 그런 칭찬이나 위로나 격려가 없다고 해서 섭섭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동생들에게 은근히 위로나 격려의 말을 자주 듣고 싶어 했지만 그런 공치사를 항상 듣기를 원했다면 나는 형제들과 사랑의 관계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았다고 말하거나 너희들을 키우면서 등뼈가 다 굽었다고 자랑한다면 이미 형제나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이미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그 모든 공치사를 받고 받지 않고를 떠나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3) 종은 분부 받은 일이 있어야 합니다.
분부를 받지 못하면 그 종은 그 집에서 내 쫓깁니다. 공무원들도 직위해제를 당하면 마땅한 업무가 주어지지 않을 때, 곧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는 밥줄이 끊어지는 일입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일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분부하신 것을 잘 모르고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인이 일을 시킬 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건성으로 들으면 그 종은 곧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인의 말을 아주 건성으로 들으면서 자기가 가장 최선을 다하여 그 일을 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합니다. 우선 분부 받은 일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맡은 일을 분명히 알고 행하는 것이 종의 첫째 임무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께 분부 받은 일은 무엇인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해서 제대로 알고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종으로서 의무를 다하며 살 수 있습니다.
4) 종은 분부 받은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해야 합니다.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지를 주인의 뜻에 따라서 잘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이 일일이 그 일을 자상하게 가르쳐주고 손을 잡고 일러주는 주인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무조건 주인의 마음에 들도록 그 일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의 눈에 들어 잔치 상에서 후한 상차림을 받고 주인이 차려주는 음식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주님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우리의 신분이나 처지를 완전히 망각하고 주인이 되어서 주님을 옹졸한 가슴에 담아두고 내 작은 손아귀에 욕심과 같이 묶어두었습니다.
외천종 내천주(外賤從 內天主)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안으로 만유위에 계시는 천주이시면서 밖으로 이주 비천한 종의 신분을 취하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겉의 모든 화려함을 비천한 하인의 신분으로 감싸고 있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