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김광한
작고(作故)하신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선생님을 기억하는 분들이 아직도 계시리라 믿습니다.이분이 70년대 중반에 서울 용산 청과시장(지금의 전자상가)안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고 계셨을 때 한달에 한두 차례 접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이병주 선생님은 소설가로서 "지리산", "산하", "행복어 사전", "바람과 구름의 비" 등 굵직한 작품을 많이 쓰신 분이시지요.
해박한 지식과 위트, 그리고 격의 없는 농담 속에 든 번뜩이는 기지 등, 참으로 아시는 것이 많은 분이었습니다.이분과는 제가 당시에 여원(女苑)이라는 여성지의 편집인으로 있을 때 독자문예를 제가 부탁 드렸었지요. 독자들에게 접수되는 글을 뽑아서 가져다 드리면 그분이 심사를 해서 선발된 분에게 원고도 드리고 글도 실리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때 아주 좋은 수필을 하나들고 그분을 찾았지요. 수필의 주인공은 경북 금릉에 사는 어떤 주부였는데 글 솜씨가 깔끔하고 내용이 그럴듯해서였지요.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하면 주인공이 어느 날 콩나물을 사러 시장에 가서 좌판을 놓고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에게 물건값을 깎고 나와서 깎은 돈을 담임선생님의 양말을 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제가 이병주 선생님에게 이 것 괜찮지요?
하고 물었더니 이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이 작품은 틀렸소. 문장은 되겠지만 인간성이 형편없소. 이런 사람은 글을 쓸 자격이 없소.설명을 할까?"
그분의 아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좌판 앞의 그 할머니는 비교적 정직한 사람이고, 그 아주머니의 손가락에 낀 금반지로 보아서 중산층 이상이 될 것이오.그런 사람이 콩나물을 깎아서 그 돈을 자식 놈의 담임선생에게 줄 양말을 산다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기에 충분하오. 할머니가 콩나물을 팔아서 도대체 몇 푼이나 남겠소. 할머니에게 돈을 좀더 보태준다는 생각을 가져야 글 쓸 자격이 있소.그걸 깎는 인간에게 어떤 희망을 기대하겠소? 따라서 그것은 글이 아니오."
하면서 그 원고를 제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글은 문장의 이어짐이 아닙니다.글은 손가락으로 쓰고 치는 것이 아닙니다.마음으로 쓰는 것입니다. 글안에 눈물이 있고 정직한 마음과 그리고 남의 말을 들어 줄줄 아는 다소 어리석음이 있어야합니다. 정직한 생각과 그 실천이 있어야합니다.교언영색(巧言令色),그리고 왜곡된 글들이 판치는 세상에 그분의 말씀은 참으로 진리가 아닐 수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