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时敏《杜甫诗意图》,共12开,每开上均有作者自书杜甫七言诗一句。纸本,墨笔或设色,纵39厘米,横25.7厘米,现藏于北京故宫博物院。每幅隶书杜诗二句,后幅页又自跋云:“少陵诗体宏众妙,意匠经营高出万层,其奥博沉雄,有掣鲸鱼探凤髓之力,故宜标准百代,冠古绝今,余每读七律,见其所写景物,瑰丽高寒,历历在眼,恍若身游其间,辄思寄兴盘礴。适旭咸甥以巨册属画,寒窗偶暇,遂拈景联佳句,点染成图,顾以肺肠枯涸,俗赖填塞,于作者意惬飞动之致,略未得其毫末。诗中字字有画,而画中笔笔无诗,漫借强题,钝置浣花翁不少,惭愧!西庐老人王时敏。”上册页画巫峡弈棋,松云绝壁,山村春色,藤月荻花。用笔颇为潇逸,满纸墨韵,非常生动。
第一开设色·丛山落涧。自识:“蓝水远从千涧落,玉山高并两峰寒”。小青绿写夏日景色,小全景式构图,略学宋人,山崖壁立,茂树葱笼,飞瀑直泻。近景为长松翠竹,一渔人自溪中泊舟而归,负网沿山径走向山坳中隐现的两间瓦屋,一片山明水秀,景色怡人。钤印“王时敏印”(白文)。
第二开设色·江村月色。自识:“白沙翠竹江村暮,相送柴门月色新”。画暮色迷蒙,新月如钩,峰峦、平湖、茂竹都被薄云雾气所笼罩。临溪草堂,柴门前二友人依依话别,意境深幽。全图纯以湿笔绘成,苍润中富清秀,诗画相应,可观,可游,可居。钤印“逊之”(朱文)。
第三开设色·山村春色。自识:“花径不曾缘客扫,柴门今始为君开”。钤印“烟客”(朱文)。
第四开墨笔·松云绝壁。自识:“断壁过云开锦绣,疏松隔水奏笙簧”。钤印“烟客”(朱文)。
第五开设色·秋山红树。自识:“含风翠壁孤烟细,背日月枫万木稠”。钤印“烟客”(朱文)。
第六开墨笔·落木江帆。自识:“无边落木萧萧下,不尽长江滚滚来”。钤印“逊之”(朱文)。
第七开设色·山城夕照。自识:“孤城返照红将敛,近寺浮烟翠且堇”。钤印“时敏”(白文)。
第八开墨笔·山庄草阁。自识:“百年地僻柴门过,五月江深草阁寒”。钤印“烟客”(朱文)。
第九开墨笔·藤月荻花。自识:“请看石上藤萝月,已映洲前芦荻花”。钤印“时敏”(白文)。
第十开设色·秋山枫菊。自识:“石出倒听枫叶下,橹摇背指菊花开”。钤印“烟客”(朱文)。
第十一开设色·巫峡弈棋。自识:“楚江巫峡半云雨,清簟疏帘看弈棋”。钤印“烟客”(朱文)。
第十二开设色·雪涧寒林。自识:“涧遣余寒历冰雪,石门斜日到林止。乙巳腊月写少陵诗意十二帧似旭咸贤甥,时年七十有四,时敏。”钤“王时敏印”(白文)、“真寄”(朱文)。
本幅鉴藏印有“乾隆御览之宝”、“石渠宝笈”、“御书房鉴藏宝”、“嘉庆御鉴之宝”、“宣统御览之宝”、“三希堂精鉴玺”等十二方。后页有王时敏自题记。乙巳为康熙四年(1665),王时敏时年七十四岁。《石渠宝笈·初编》著录。此册是王时敏依据杜甫诗意为为外甥董旭咸精心绘制的。画家在笔墨技法上承袭了黄公望兼取北宋董源、巨然和元王蒙诸家,用笔工稳,设色明快,皴擦点染兼用,具苍润浓厚中蕴清秀雅丽的艺术特色。该册为王时敏晚年炉火纯青之作,与其常见作品相比,颇多变化之妙,体现了他较为全面的创作素养和山水画功底。
저자 소개:
왕시민(王-16, 1592-1680), 자손지(逊), 호(客), 서려(西庐), 장쑤(江苏) 태창(太仓), 강희(。) 19년(1680)은 89세였다.명말 청초 화가인 명만 역년 내각수보왕 석작손, 한림왕형의 아들은 24세 때 상보승, 숭유초년 관천 태상사 소경으로 왕봉상(王"。)으로 불렸다.숭정 5년(1632)은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했다.청초 궁중화풍의 주요 대표는, 왕翚, 왕감, 왕원치와 함께 황실의 부축을 받은 "사왕"화파를 형성하여, 청초화가 "사왕"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게다가 수평이라고도 불리었다.
소년은 그림을 배워, 동치창·진계유로부터 깊은 상과 조언을 받은 적이 있다.가장대역 법서의 명화를 반복적으로 보고, 어릴 때부터 모고의 길을 걸으며 모고는 회화의 최고 원칙이라는 사상 이론을 형성했다.송원의 명적을 깊이 연구하여 옛 법을 따라가는데 힘쓰고, 옛 스승의 뜻을 깊이 새겨 그림을 그리는 데는 옛 사람의 정수를 빼놓을 수 없다.입청 후 은거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정시문서화를 보내며 산수에 뛰어났으며 황공망만을 전문으로 하여 모사하였으며, 붓과 잉크가 함축되어 창윤송수가 풍부하고 청일하여 구도가 비교적 변화가 적다.회화는 붓이 둥글고, 묵법순이 두텁고, 작품의 운치가 뛰어나며, 의경이 깊고, 그 그림은 청대의 영향이 매우 크며, 왕翚, 오력과 그 손왕원기 모두가 직접 수여를 받았다.
일찍이 여러 해 전에 옛 그림을 모사하였는데, 모두 송원 고화의 원래 자취를 그대로 옮겨 쓴 것으로, 필묵이 정교하고 단아하다.일찍, 중반의 그림들은 비교적 세세하고 수려하다.37세에 만들어진 '운구연탄도축'과 같이, 현재 상하이박물관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이, 마른 붓과 습필을 상호 사용하며, 순한 먹색을 겸비하고, 황공망으로 높은 색을 띠며, 탁 트인 붓을 가지고 있다.42세 때인 ','사진은 장백산으로 말아, 펜, 잉크 색이 곱고 윤이 난다 담백하고 더 많은 경지가 있지 않으면 제인. 동기창 글씨만년에 이르러서는 황공망(宗公望)을 종(。)으로 삼아 동(東)과 거(王)와 왕(王)을 여러 집안으로 모셨으니, 더 많은 힘과 후한 정취가 있다.72세의 '낙목한천도', 75세의 '선산누각축', 84세의 '산수축'은 베이징 고궁박물관원, 봉산수를 소장하고 있다.접고, 수풀은 풍부하고, 실을 그을리고, 이끼는 가늘고, 붓은 건조하고, 습하고, 연하며, 皴은 점과 염색을 겸용하여, 늙고 맑은 예술적 특색을 수 있다.
왕시민은 옛 법을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스스로 새로운 뜻을 나타내며, 스승의 필법이 엄격하고 진지하며, 규례와 작품이 비교적 판에 박혔으며, 대부분의 면모가 서로 비슷하여, 새로운 뜻을 적게 발휘하여, 청초산수화를 임고
作者简介:
王时敏(1592-1680),字逊之,号烟客,晚号西庐老人,江苏太仓人,康熙十九年(1680)卒于家中,时年89岁。明末清初画家,明万历年间内阁首辅王锡爵孙,翰林王衡之子,24岁时就出任尚宝丞,崇桢初年官至太常寺少卿,人称“王奉常”。崇祯五年(1632)称病辞官,回故乡隐居。清初宫廷画风的主要代表,与王翚、王鉴、王原祁形成受皇室扶植的“四王”画派,居清初画家“四王”之首,外加恽寿平、吴历合称“清六家”,开创了山水画的“娄东派”。
少年学画,曾得到董其昌、陈继儒深赏及指点。反复观摩家藏历代法书名画,自幼走上摹古道路,逐步形成“摹古是绘画的最高原则”的思想理论。精研宋元名迹,力追古法,刻意师古,作画无一不得古人精髓。入清后隐居不仕,寄情诗文书画,擅山水,专师黄公望,刻意追摹,笔墨含蓄,苍润松秀,浑厚清逸,然构图较少变化。绘画用笔圆润,墨法醇厚,作品气韵神逸,意境精深,其画在清代影响极大,王翚、吴历及其孙王原祁均得其亲授。
早年多临摹古画,均按宋元古画原迹临写而成,笔墨精细淡雅。早、中期的画,风格比较工细清秀。如37岁作的《云壑烟滩图轴》,现存上海博物馆,干笔湿笔互用,兼施以醇厚的墨色,用黄公望而杂以高克恭皴笔,具有苍浑而秀嫩的韵味。42岁时的《长白山图卷》,则用笔细润,墨色清淡,意境疏简,更多董其昌笔韵。至晚年,以黄公望为宗,兼取董、巨和王蒙诸家,更多苍劲浑厚之趣。如72岁的《落木寒泉图》、75岁的《仙山楼阁轴》、84岁的《山水轴》,均藏北京故宫博物院内,峰峦数叠,树丛浓郁,勾线空灵,苔点细密,皴笔干湿浓淡相间,皴擦点染兼用,形成苍老而又清润的艺术特色。
王时敏主张恢复古法,反对自出新意,师古人笔法严谨、认真、规矩,作品相对刻板,大多面目相近,较少新意,将清初山水画的临古之风发挥到极致,但也有其匠心所在,其临古之作《山水》扇面,就集众家所长,浑然一体,味道深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