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세계사 변곡점에 선 한국경제
중앙선데이
입력 2023.01.14 00:29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올 4월 최대인구국 인도로 바뀔 것
중국 성장세 둔화는 한국에 큰 부담
‘영구적 위기’ 경고 나오는 지금이
경제 체질 개선과 체력강화의 적기
2023년 4월은 현대 세계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적어도 글로벌 인구 분포 면에서 그렇다. 중국 인구가 14억2600만을 정점으로 꺾이면서 세계 최대 인구국 자리를 14억2800만을 넘어설 인도에 넘겨준다는 유엔 통계가 눈길을 끈다. 2050년 중국 인구는 13억 이하로 줄어들고 인도는 16억을 넘어갈 추세다. 게다가 2030년 중위연령(총인구를 연령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 사람의 연령) 예상도 중국 42세에 비해 인도는 31세로 열 살 이상 젊어 ‘인구 보너스’가 본격화하고 미국(40세)과 한국(50세)보다 유리해질 것이다. 중국의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중국의 경제적 위상 약화 신호로 읽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종전 3.0%에서 1.7%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충격 시기를 제외하면 지난 3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글로벌 경기침체 경고음을 높이고 있고 중국발 리스크를 최대 복병으로 꼽고 있다. 중국 경제 둔화는 부동산 부실, 국가 부채 급등, 고령화 같은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만큼 고성장 시대로의 회귀는 불가능해 보이고 향후 10년간 연평균 3%대 성장에 그치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저성장 구도 고착화로 중국의 세계 성장 기여도는 과거 40% 수준에서 20%대로 떨어질 전망이고 급작스러운 제로-코로나 정책 파기 여파로 번진 재확산 불길과 변이 가능성은 지경학(Geoeconomics)적 불확실성을 키운다. 3년 전 터진 코로나 사태가 국제질서 재편의 게임체인저가 되리라는 예측이 실현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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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크 차이나(Peak China·정점 중국)’ 이슈가 화두다. 국제관계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G2 패권 경쟁에서 미국을 넘어서기 쉽지 않은 이유를 몇 가지 요인에서 찾는다. 첫째, 지정학적 측면에서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을 품고 우호적인 두 나라(캐나다와 멕시코)와 접하고 있는 반면에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일본, 인도, 베트남 등 상당수 국가와 영토 분쟁에 휘말려 있다. 둘째, 석유, 석탄 등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중국은 확고한 에너지 자립체제를 갖춘 미국에 비해 불리하다. 셋째, 국제금융 파워에서 중국은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압도적 지위와 거리가 멀다. 넷째, 인구 구조로 보면 향후 10년간 세계 주요 15개국 중 절반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은 5% 증가하고 중국은 9% 감소할 전망이다. 다섯째,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경쟁력에서 미·중 격차는 앞으로 좁혀지더라도 뒤집히기는 어렵다.
G2 패권 갈등의 최대 수혜국은 인도다. IMF에 따르면 현재 세계 7위인 인도 국내총생산(GDP)은 2027년 영국·독일·일본을 차례로 제치고 세계 3위에 오를 전망이다. 인도는 올해 글로벌 경기침체 와중에도 지난해에 이어 주요국 중 가장 높은 6%대 경제성장률 예측이 나오면서 4%대의 중국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세계 최대 투자사 블랙록은 2023년을 새로운 국제질서가 가시화하는 해로 내다보고 있다.
중국 성장세 둔화는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다. 무역수지는 9개월째 적자 행진 중이고 대중 수출 감소 폭이 확대되면서 지난해 12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27%나 줄어들어 국내 제조업 경기 지표는 악화일로다. 올해도 대중국 수출은 10% 정도 떨어질 전망이 우세하다. ‘포스트 차이나’ 인도와 지난해 한국의 최대 무역 흑자국으로 떠오른 베트남을 위시한 아세안 그리고 중동 등으로 대외 통상과 투자의 다변화를 통한 경제 영토 확장에 더 속도를 높여야 할 시점이다.
세계질서 전환기의 국가 흥망은 외교력과 경제력에 달렸다. “미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공산당을 잃고 중국과 너무 가까워지면 나라를 잃는다.” 오래전 필자가 세계은행 재임 시절 베트남 출장 중 만난 현지 고위 당국자의 말이다. 글로벌 체제변화 시기의 생존전략은 ‘중심 잘 잡고 힘 키우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현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노력과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참여는 확대되어야 한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 이분법적 전략이 통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다만 중국에 대한 과대평가가 문제이듯, 성급한 과소평가는 금물이고 중국의 고성장 시대가 지났더라도 잠재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리는 무엇보다 대외 환경변화에 당당히 대처해 나갈 경제·안보 역량을 키워야 한다.
장기 불황을 뜻하는 ‘영구적 위기(Permacrisis)’ 경고까지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경제 체질 개선과 체력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통화 확장 여지가 별로 없는 현 상황에서는 민간 투자 활성화를 촉진할 노동 개혁과 규제 혁파 등 인플레를 자극하지 않는 정책 대안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은 잠재성장률 회복을 위해 시급한 과제이고 과감한 개혁 실천은 국익을 앞세우는 생산적 정치풍토와 성숙한 시민의식에 달렸다. 글로벌 역학 구도 변화 속에 살길은 국가 경쟁력 강화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