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 환자 여전히 1만명… 절제가 病 막는다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물랭 루즈-라 굴뤼(Moulin Rouge-La Goulue: 프랑스 파리 댄스클럽 물랭루주와 유명한 캉캉 춤 댄서 라 굴뤼를 알리는 광고 포스터 )’, 189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9세기 말 파리 댄스클럽 물랭루주와 댄서들을 많이 그려 유명한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그는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다양한 장애를 안고 살았다. 다리가 짧아 키가 매우 작았고, 불완전한 골형성으로 지팡이 신세를 졌다. 유전적 결함으로 재발성 부비동염, 시각·청각장애도 있었다. 요즘 의사들은 이런 장애 종합을 ‘로트레크 증후군’으로 부른다.
도시의 밤 문화만이 선천적 장애와 타고난 그림 재능이 혼재된 로트레크를 품어줬다. 그 과정서 그는 물랭루주 광고 포스터를 많이 그렸다. 당시에는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비평을 받았지만 훗날 이런 작업은 광고를 예술로 격상시킨 팝아트 시조라는 평을 받았다. 포스터 그림 속 구불구불한 선과 역동적인 댄스 장면은 그가 꿈꾼 신체 발랄함을 대신한 것이라고 한다. 로트레크는 술집과 매춘업소를 전전하다가 매독 합병증으로 37세에 세상을 떠났다.
매독은 트레포네마 팔리덤이라는 세균 감염으로 발생하는 성 매개 감염병이다. 성행위 때 피부 점막이나 미세 상처를 통해 매독균이 들어와 온몸으로 퍼진다. 3주 정도의 잠복기가 지나면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 증상은 무통증 피부 궤양이다. 주로 음경, 항문 주위, 여성 외음부 쪽에 나타난다.
김지은 한양대구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매독은 조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감염 후 수주에서 수개월 이내에 증상이 없다면 잠복 매독이 된다”며 “이 시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후기 매독으로 진행해 다양한 합병증을 낳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요양원 입소를 위해 매독 검사를 하는데 이를 통해 후기 잠복 매독이 진단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전했다.
수 십년만년 동안 인류를 위협한 매독은 20세기 중반 항생제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기세가 꺾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여전히 1만여 명의 매독 환자가 의료 기관을 다닌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사태 기간 신규 매독 환자가 급증, 지난해 1만5000명에 이르렀다. 일본 감염학회는 성 풍속 산업이 활발한 데에 중장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 금전 거래를 통해 교제하는 문화가 은밀하게 퍼진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로트레크의 매독 교훈, 절제가 질병 위험을 줄인다.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자화상.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는 순수예술개념을 거부한 19세기 프랑스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물랭 루즈 라 굴뤼>와 <물랭가의 살롱에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영향으로 스케치를 시작했으며 청소년 시절 사고로 대퇴골이 골절되면서 장애를 입은 뒤 미술에 집중하게 되었다. 르네 프랭스토에게서 회화를 배웠고, 페르낭 코르몽에게서 그의 개성을 인정받았다. 이후 뛰어난 심리적 통찰력으로 관찰한 1890년대 파리의 사람들과 밤 풍경 및 프랑스의 연예계를 그렸다. 그는 순수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포스터 작업도 많이 했는데, 그의 포스터 작품도 극히 단순화된 윤곽선과 운동감, 그리고 넓은 색면을 이용한 매우 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아델 백작 부인의 초상’, 1883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키스, 침대에서’, 1892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침대’,
1892년경, 목판 위 종이에 유채, 54×70.5㎝, 오르세 미술관, 파리.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몸단장’, 1889년, 종이에 유채, 67×54㎝, 오르세 미술관, 파리.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물랭 루즈로 들어서는 잔 아브릴’,
1892년경, 보드에 유채와 파스텔, 102×55.1cm.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물랭가의 살롱에서(Salon at the Rue des Moulins)’, 1894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물랑루즈에서 춤추는 사람들’.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세탁부’, 1889년, 캔버스에 유채, 93×75cm, 개인 소장.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거울 앞의 여인’, 1897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의료 검사’, 1894년, 나무에 판지에 유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의학부 시험’, 캔버스에 유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대리석 연마기’, 1882~87년.
툴루즈 로트레크(Toulouse-Lautrec, 1864-1901), ‘The Paris of Toulouse Lautrec’.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조선일보 2024년 05월 30(목) 〈名作 속 醫學(김철중 영상의학과 전문의, 논설위원 겸임, 의학전문 기자·안상현 기자)〉, 인터넷 교보문고,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