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로
- 제만자
돌아보지 않아도 보이는 길이 있어
일손 다 제쳐두고 선뜻 나서는 곳은
하나쯤 열어두었던 문 나에게로 가는 길
아직 내게 높은 저 산을 찾아가자
산색이 변하면 다짐도 멀 것 같아
머리채 흔들리는 갈대 가뭇한 나 찾는 길
-제만자 시조집 『아직 곁에 두고 있어』-중에서 (2023년 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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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영주제일고등학교 보통과 동문회 송년모임이 있었습니다
1회부터 13회까지 졸업생 중에서 아직까지 건강하게 지내는 이들이
코로나 휴지기를 보내고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모인 것인데요
다달이 만나던 동기들 말고 어쩌다 마주치는 낯익은 얼굴들로 그저 반가운 시간이었네요
'그땐 그랬지' '아직 정정하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
주고받는 일상의 안부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는 회로를 돌려보는 것이지요
선배라고 더 늙은 모습도 아니고, 후배라고 해서 팔팔한 모습도 아니니...
모교 교가를 부를 때는 아직도 카랑카랑하였으니 백발도 탈모도 자랑스럽더라구요^*^
마무리할 때 쯤에는 거나해진 몇 분의 비틀거림에서 세월 무상을 확인할 수는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