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폭설로 사방에 도로가 통제된다는 흉흉한 소식에 서울촌닭(-_-;)이 좀 겁먹었지만 이번 시합은 반드시 봐야겠다 싶기에 무조건 내려갔습니다. 걱정돼 기차로 내려갔는데 생각보다 체육관까지도 멀지 않고 개인적으로는 기차가 좀더 편하더군요. 차시간이 자주 없다는 점을 제외하곤 괜찮았습니다.
이날 경기는 TG에게는 우승을 판가름할 중요한 일전이기에 상당히 긴장되었습니다. 물론 전자랜드과의 게임이 남아 있었지만 삼성전을 잃으면 막말로 우승컵의 향방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선수들도 그런 기분이었는지 묵묵히 연습에 집중했습니다. 삼성 쪽도 보통 아닌 분위기로 경기에 집중하는데 오랜만에 보는 노장 표필상이 머리를 바짝 잘랐더군요. 찰랑찰랑 흔들리는 갈색 생머리가 상당히 멋졌는데 아깝더군요.
플레이 볼이 되고 맨 처음 토스된 볼은 서장훈이 잡았습니다. 점프볼이야 누구나 잡을 수 있는 거지만 분명 TG쪽으로 유리하게 떨어진 볼을 낚아채는 서장훈을 보며 삼성 역시 호락호락 우승을 내줄 수 없다는 강한 결의를 엿봤습니다.
주희정이 빠진 삼성은 객관적인 전력상으로는 상당한 차이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게임은 반대로 처음 시작부터 TG가 내내 끌려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TG 외곽이 잘 터져 주지 않았다면 이날 경기는 95%의 확률로 졌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문제는 신기성의 매치업 상대였던 하나발입니다. 삼성이 주희정의 부상으로 들고 나온 응급처방인데 강혁과 하니발이 서로를 보충해주며 상대팀 가드를 압박하는 것은 정말 상당한 부담을 주었습니다. 하니발의 높이 탓에 신기성은 패스를 포스트로 제대로 넣어주질 못했습니다. 하니발은 평소에 실책이 좀 많았는데 이날은 완벽하다 싶을 만큼 무리한 플레이가 없고 실책이 적었습니다.
The King 서장훈.
이날 경기는 진지한 서장훈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한판 승부였습니다. 서장훈에게 제대로 볼이 투입되면 반드시 득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오펜스리바운드는 서장훈과 김택훈 또는 강혁이 잡아냈습니다. 삼성의 공격탬포는 결코 빠르지 않았지만 그 압력은 가공할 정도였습니다.
그나마 TG는 1쿼터 내내 외곽으로만 도는 패스에도 다행히 홀과 양경민이 외곽감을 잊지 않아 겨우겨우 평형을 유지했습니다. 그렇다고 TG가 못했다고 하기엔 TG 역시 집중력을 가지고 절대 쉽게는 점수를 내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디펜스와 디펜스팀
TG의 디펜스는 지역방어와 협력수비, 재빠르고 영리한 스위치 디펜스라면 삼성의 디펜스는 맨투맨입니다. 안양의 끈끈한 맨투맨 수비와는 좀 다른 빠른 스탭과 체력을 내세운 터프한 디펜스는 TG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습니다. 삼성의 벤치멤버들의 파이팅은 정말 너무나 돋보였습니다. 박영민의 모습도 정말 의외이고... 슈팅에 자신감이 넘치더군요. 곱상한 외모와는 틀리게 강심장인듯
겉은 강아지 같이 생긴 주제에 속은 호랑이를 때려 잡는 풍산견 같은 강혁도 그렇고... 삼성에 섬세한 선수는 어째 서장훈 뿐인듯... -_-;;
그런 가운데서도 TG는 집중력을 잃지 않았지만 솔직히 이대로는 어렵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오가는 효율적인 경기운영을 하지 못하면 외곽 감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겁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는 2쿼터 중반 허코치가 코트에 들어왔습니다. 빠른 경기운영과 과감한 엔트리패스로 TG는 동맹경화가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TG는 허재가 들어와서 생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두어 번의 실책으로 날려버렸습니다. 쉽게 균형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흐름은 바뀌어 나갔습니다. 이대로 흐름을 타는가 생각했을 때 서장훈이 나서더군요.
이정도로 철저히 박스아웃을 해 공을 잡아내는 서장훈을 언제 봤던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서장훈도 몸이 아직은 정상이 아닐텐데 너무 악착같아서 도저히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양팀다 점수를 번갈아 주고 받는 지루한 공방전이 지작되었습니다.
TV로 이 경기를 보셨던 분들은 상당히 재미있으셨을 것 같지만 정말 응원하는 팀팬으로서는 피가 마르는 게임이었습니다. 무수한 승리와 패배를 곁에서 지켜봤지만 이 정도의 압박감은 이번 시즌 들어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안양과의 게임에서 숨통이 막힐 것 같은 질식감과는 좀 틀립니다.)
오늘 허재는 더블팀 수비로 서장훈을 직접 막아섰는데 발이 좀 느리더라도 허코치님 수비감각은 그냥도 좋은 편인데 이날만큼은 정말 젊은 선수 못지 않은 빡센 수비를 펼쳤습니다. 뛴시간이 짧은데도 나중에 상당히 지쳐버린 얼굴...
그러나 그런 수비에도 불구하고 서장훈을 완벽히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적절한 피딩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한 피봇으로 더블팀을 뚤어 슛을 성공시키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허코치님도 그 순간만은 상당히 약올랐는지 백코트 하는 서장훈의 등을 찰싹~ 때리더군요. 그 순간 서장훈 선수 표정은 제대로 못 봤지만 웬지 피식 웃었을 것 같습니다. 그건 허재의 솔직한 칭찬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마냥 허재도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말 생각지 못한 순간 생각지 못한 방향에서 파고 들어가 눈앞의 강혁을 페이크로 완벽히 속이고 레이업을 올려놨습니다. 그 외에 2쿼터 마지막 40초를 남겨놓고 완벽한 삼점찬스를 마련해주었고 마지막 몇초를 남겨놓고 직접 파고 들어갔는데 아쉽게 블록 당했습니다.
골탠딩인지 블록인지 제가 앉아 있는 위치상 정확히 알기는 좀 애매했지만 허코치님은 암만해도 약올랐는지 터치아웃 판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얼굴을 맞대다시피 하고 황순팔 심판을 지긋이 노려보더군요. 후후후 거기서 뭐 더 이상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심판판정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니 재밌더군요.
코트에서는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는데 신기성이 잠깐동안 마음에 여유를 갖고 나자 후반전부터는 플레이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TG는 올아웃으로 김주성이 외곽까지 나와 일단 서장훈을 인사이드에서 끌어냈습니다. 삼성은 이번에 페리를 주옵션으로 경기를 풀어가더군요. 정말 노련한 페리의 스탭 앞에 아이크의 수비는 막으나 마나 였습니다.-_- 우승으로 가는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하더군요.
노장인 페리도 상당히 체력의 부담을 느꼈는지 중간에는 운동화 끈이 풀어진 것처럼 해서 코트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내놓고 쉬더군요. 그 쇼맨쉽하고 밉지 않은 잔머리가 귀여웠습니다. 삼성이 어떤 결정을 내릴진 모르겠지만 애매한 선수보다는 재계약도 안전한 결정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긴 워낙 삼성도 뒤로 처지는 편이라 애매하긴 합니다.
삼성은 이번 시즌 여러 차례의 시련을 통해 몇가지 고질적인 문제를 해소했다는 느낌입니다. 일단은 벤치멤버들이 자긴감과 경험을 쌓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큰 부분은 주희정이 자기 위치와 자신감을 찾았다는 부분입니다. 서장훈 역시 요새 경기를 보면 마인드 면에서 더욱 더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지난시즌부터 많이 달라진 모습을 느꼈지만...) 이제 팀에 주희정만 돌아오면 되겠군요.
그러나 이 삼성 선수들의 끝을 알 수 없는 저력과 파이팅은 팀팬들을 정말 지옥에 밀어 넣었습니다.
마지막에 양경민의 슛이 들어가고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느낀 순간 다시 서장훈이 바스켓 카운트를 얻어내고 다음 순간 아이크가 자유투를 얻어냈지만 모두 놓치고 다시 얻어낸 자유투도 하나만 성공시키고 마지막 김주성의 블록슛과 하니발의 슛실패...
결국 서장훈의 자유투 한 개 실투와 아이크의 자유투 한 개 성공이 승부를 갈랐습니다.
너무 애를 먹였기에 끝나고 축포가 터질 무렵에는 그저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꼭 허코치님만을 위해서 기뻤던 것은 아니고 이 경기로 드디어 정규리그 우승을 일궈내고 마음에 부담을 덜었을 신기성이 생각나더군요.
허코치님이 대표로 트로피를 받았는데 그 트로피는 바로 다음 순간 김주성에게로 그리고 신기성, 홀, 아이크, 벤치에 앉아있었지만 불려나와 같이 화환을 목에 건 데릭스, 신종석, 지형근, 송완희까지 TG 선수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씩 돌아갔습니다.
억지로 끌어내려는 허코치님의 강권을 뿌리치고 챔피언 결정전 이후에나 헹가레를 받겠다고 거절했던 전창진 감독이나 내내 담담한 표정이었던 허코치나 다 아직 남아 있는 진정한 승부인 PO를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저에게는 PO 이상으로 정규리그 우승이 값졌습니다.
정말 TG의 정규리그 일정은 단 한 주도 마음놓고 편히 경기를 본적 없는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강팀을 만나서나 약팀을 만나서나 반드시 이길 거라고 확신을 갖고 봤던 경기도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팀 중심이 어린 팀이 비틀비틀 서투른 걸음을 걷는 동안 잘 이끌어 주었던 TG 코칭 스탭 여러분 감사합니다.
자기 욕심을 최대한 억누르고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농구를 보여줬던 선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시즌 내내 53경기를 기쁨과 안타까움을 TG와 같이 한 것 같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이 정도로 집중했던 정규리그가 있었나 싶습니다. 아니 앞으로도 이런 집중력으로 한팀을 응원하며 정규시즌 내내를 보내게 될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이 길었던만큼 기쁨도 크군요.
그리고 무엇보다 허코치님 감사합니다.
누군가 한 선수의 팬이 된다는 게 이렇게 기쁠 수 있다는 거 당신으로 인해 깨달았습니다. 널널한 박애주의자 해파리 농구팬에서 당신으로 인해서 애면글면 조바심 내는 단 한 선수의 팬이 된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ps. 이날 경기가 끝나고야 TG가 삼성에게 5승1패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말 한번도 편하게 이긴적이 없어 적어도 한번쯤은 더 진 줄 알았다는... -__-;;
첫댓글 흠냐 갠적으로 삼성팬인 저는 삼성이 우승하길 바랬는데 ㅋㅋㅋ 삼성밴치가 약하다고 하지만 그동안 서장훈이 빠저있을때도 잘해왔듯이 주희정이 없어도 잘해주리라 밑습니다^^
정말멋진경기였습니다..TG의 3점으로따라잡고3점으로도망가는동안..간간이터지는의지의3점슛과...바스켓카운트로 따라잡는 삼성...삼성에경기를보면서 시간이얼마남지않은상태에서5점차벌어지니 이기기힘들겠다 싶은 생각이들더군요...
삼성에게현재가장필요한부분은 박빙내지는 위기상황에서의 성공률높은3점인듯...
아이크..자유투정말 감없더군요...정말...플옵 챔편결정전올라가면 골치일듯...
참 마지막 순간 거의 들어갈거라 여겨지지 않던 각없는 슛을 바스켓 카운트로 얻어내고 서장훈이 박수치는 것 보셨습니까? 스스로도 만족한 표정...^^ 정말 서장훈이 그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며 집중하는 것도 쉽게 보기 힘든 진풍경이었습니다
글잘쓰시네요..잘읽었습니다..
아..글 잘쓴다아~~부럽당.. 하면서,, 뒤늦게 글쓴이가 무몽님임을 확인 ^^... 항상 무몽님의 글은 경기장에 가서 보고싶게끔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재미있고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당^^~
서울에서 원주까지 가실정도니...^^ 서장훈 없는 각 뚫고 올라가 바스켓 카운트...멋졌습니다...우린 오늘 이긴다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죠...
저도 팬이라 무뭉님글을 즐겨 읽는데... 하얀능선님께서 무'몽'님이라 부르시니 색다른 맛이 있군요... '무몽'님이라... ㅋㅋ
앗.. 무뭉 님이셨군요. ㅋ ㅑ~ㅠㅠ... 여지껏 무몽 님으로 알고 있었슴당.ㅠㅠ 흑... 민망..땀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