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 공략집(Guide to Jingyeongsansu Paintings)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국가보물
「정선 필 경교명승첩」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한강변의 명승지를 그린 진경산수화 시화첩이다. 정선이 60대 후반 양천현령으로 근무할 때 주로 한강변 명승을 그린 것을 바탕으로 한다. 친구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여주자는 약속에 의해 그려졌다.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은 65세 때인 1740년 말부터 1745년 초까지 양천현령으로 근무하였다. 현령 근무 초기 친구 이병연(李秉淵, 1671~1751)과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즉 이병연은 시를 짓고 정선은 그림을 그려 서로 바꾸어 보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따라 1740년 세밑부터 1741년 동짓달까지 만 1년간 이병연의 서찰과 정선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그 후에 추가로 그려 보완한 작품들을 합장한 것이 「경교명승첩」이다.
◆ 전국의 겸재 그림 장소.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보물) 중 소악후월(小岳候月),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 화첩 형태, 27.4×27.4㎝, 간송미술관 소장.
화제는 ‘소악루에서 달을 기다리다’라는 뜻이다. 『양천읍지』 누정조(樓亭條)에 의하면, “악양루 옛터에 소악루가 있으니 현감 이유가 지은 것이다. 그는 자를 중구, 호를 소와 또는 소악루라 하는데 영조 조에 동복현감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서 중국 악양루 제도를 모방해 누각을 창건하고 소악루라 이름 했다”고 한다.
악양루(岳陽樓)는 중국 후난성[湖南省] 동정호구 악주부(岳州府)의 성(城) 서쪽 문 누각으로, 동정호의 동안(東岸)에 위치하여 호수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고 풍광이 아름다운 것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소와 이유(笑窩 李渘, 1675~1753)가 소악루의 경치가 이런 악양루 경치에 버금간다 하여 작은 악양루라는 의미로 '소악루(小岳樓)'라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술, 시문, 서화를 사랑하여 사람들은 그를 ‘강산주인(江山主人)’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악루가 양천현아(陽川縣衙)의 지척에 지어진 것은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부임하기 불과 2, 3년 전의 일이었다.
巴陵明月出(파릉명월출) 파릉에 밝은 달뜨면,
先照此欄頭(선조차난두) 이 난간머리에 먼저 비춘다.
杜甫無題句(두보무제구) 두보의 시에 제구 없으니,
終爲小岳樓(종위소악루) 마침내 소악루 뿐이라 해야 하겠지.
―소악후월(小岳候月)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 파릉(巴陵)은 중국의 악양(岳陽) 일대를 가리키는 이름인데 양천현(陽川縣)의 옛 이름이기도 했다.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보물) 중 행호관어(杏湖觀漁),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 화첩 형태, 27.4×27.4㎝, 간송미술관 소장.
‘행호(杏湖)에서 고기잡이를 보다.’ 행호는 현재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덕양산 부근의 한강이다. 예전에는 한강이 개화산과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 앞에서부터 호수처럼 넓어져 행주(杏州) 또는 행호(杏湖)라고 불렀다. 지금 그 행호에서 여러 척의 배들이 한데 모여 고기잡이에 한창인데, 너른 물길에 쳤던 그물을 좁혀가고 있는 중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이런 고기잡이가 벌어지는 것은 별미 중의 별미로 알려진 행호의 웅어와 황복어을 잡기 위해서다. 모두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는 계절의 진미여서 사옹원(司饔院)에서는 음력3,4월이 되면 고양군과 양천현에 진상을 재촉했다 한다. 그래서 때가 되면 고양군과 양천현에서 어선을 모아 본격적으로 웅어와 황복어 잡이에 나서게 되는데 이 그림은 그 때의 풍경을 그린 듯하다.
春晚河豚羹(춘만하돈갱) 늦봄에는 복어국,
夏初葦魚膾(하초위어회) 초여름에는 웅어회.
桃花作漲來(도화작창래) 복사꽃 물 가득 떠내려 오는데,
網逸杏湖外(망일행호외) 그물질 바삐 하세, 행호 멀리.
―행호관어(杏湖觀漁)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
강 건너편은 한강변의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던 경승지로, 당대 고관들의 별서들이 들어서 있었다. 맨 좌측 벼랑 위 수풀에 숨겨진 기와집 두어 채는 김동필(金東弼, 1678~1737)의 별서인 낙건정(樂健亭)으로 지금 행주대교가 지나가고 있는 덕양산의 끝자락이다. 김동필은 이병연의 이종사촌 아우였다고 하며 그의 둘째 아들 김광수는 당대 서화골동 수집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정선의 그림을 매우 좋아하였다고 한다.
가운데는 행주대신으로 불리던 송인명(宋寅明, 1689~1746)의 장밀헌(藏密軒)이다. 세 별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데 송인명은 당시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세도를 좌우하던 인물이었다 한다. 맨 우측은 김시좌(金時佐, 1664~1727)가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던 집과 귀래정(歸來亭)이다. 당시의 귀래정 주인은 김시민(金時敏)이었는데 농암 김창협(金昌協)과 삼연 김창흡(金昌翕)의 삼종질인 동시에 그들의 문인이어서 정선, 이병연과는 동문이자 시벗이었다. 그 역시 진경시의 대가로 이름이 높았다.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보물) 중 설평기려(雪坪騎驢),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 화첩 형태, 27.4㎝×27.4㎝, 간송미술관 소장.
양천현아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그림은 ‘설평기려(雪平騎驢)’다. 눈 온 평원에 나귀 타고 간다는 뜻이다. 새벽 무렵 한 나그네가 나귀 타고 길을 나선다. 앞에는 두 봉우리가 우뚝하다. 최완수 선생에 의하면 화곡동 우장산이라 한다. 찾아보니 고도 96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산이다. 나그네는 겸재라 한다. 눈 오는 아침 잠도 없는 중노인네가 길을 나섰다. 현아에서 나와 양천향교역을 지나고 마곡나루역을 향해 간다. 나귀 타고. 사천은 제화시를 달았다.
長了峻雙峰(장료준쌍봉) 길구나, 높은 두 봉우리,
漫漫十里渚(만만십리저) 아득한 십리 벌판일세.
祗應曉雪深(저응효설심) 다만 거기 새벽 눈 깊을 뿐,
不識梅花處(불식매화처) 매화 핀 곳 알지 못하네.
―설평기려(雪坪騎驢)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보물) 중 종해청조(宗海廳潮),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 화첩 형태, 27.4㎝×27.4㎝, 간송미술관 소장.
‘종해헌에서 조수(潮水) 소리를 듣다’ 종해헌(宗海軒)은 양천 관아의 동헌 이름이다. 종해(宗海)는 ‘모든 강물이 바다를 종주(宗主·우두머리)로 삼아 흘러든다’는 옛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한강이 모든 강물을 대표하고 한강물은 양천 앞에서 바닷물과 부딪치므로 이곳을 종해(宗海)로 비유한 것이다. 한강이 흘러드는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역으로, 그 중에서도 한강물이 바다로 물머리를 들이미는 강화만 일대는 그 격차가 가장 큰 곳이다. 한강 하류 강변에 있었던 양천현의 동헌에서도 물이 들고 나는 그 요란한 소리가 들렸던 모양이다. 그림은 관아가 들어서 있는 궁산 중턱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종해헌을 위시한 양천관아와 부근의 풍광을 담았다. 종해헌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는 선비는 아마도 정선 자신일 것이다.
大哉滄海信(대재창해신) 크구나 믿을 만한 너른 바다,
感槪佐潮歌(감개좌조가) 밀려드는 감개가 조수의 노래를 돕는다.
路阻朝宗後(노조조종후) 조종(朝宗) 길 막힌 후에,
乾坤怒氣多(건곤노기다) 하늘과 땅의 노기만 가득하다.
―종해청조(宗海廳潮)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
정선 필 경교명승첩(鄭敾 筆 京郊名勝帖, 보물) 중 목멱조돈(木覓朝暾),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 화첩 형태, 27.4㎝×27.4㎝, 간송미술관 소장.
이른 아침 목멱산에 돋는 해를 비단에 그렸다. 어둠이 걷히는 새벽의 차가움과 떠오르는 붉은 해가 조화를 이루는 때에 부지런한 뱃사공이 견지대를 들고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다.
曙色浮江漢(서색부강한) 새벽녘 한강에 떠오르니,
觚稜隱釣參(고릉은조삼)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
朝朝轉危坐(조조전위좌)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初日上終南(초일상종남)첫 햇살 남산에서 오르네.
―목멱조돈(木覓朝暾) 사천 이병연(槎川 李秉淵, 1671∼1751)
현재 2권 중 상권 20폭에는 그림이 19폭, 하권 22폭에는 그림이 14폭이 실려 있다. 상권에 실린 그림은 독서여가(讀書餘暇), 녹운탄(綠雲灘), 독백탄(獨栢灘), 우천(牛川), 미호(渼湖, 2점), 광진(廣津), 송파진(松坡津), 압구정(狎鷗亭), 목멱조돈(木覓朝暾), 안현석봉(鞍峴夕烽), 공암층탑(孔巖層塔), 금성평사(錦城平沙), 양화환도(楊花喚渡), 행호관어(杏湖觀漁), 종해청조(宗海廳潮), 소악후월(小岳候月), 설평기려(雪坪騎驢), 빙천부신(氷遷負薪) 등이다.
하권에 실린 그림은 인곡유거(仁谷幽居), 양천현아(陽川縣衙),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홍관미주(虹貫米舟), 행주일도(涬幸洲一棹), 창명낭박(滄溟浪泊), 은암동록(隱岩東麓), 장안연우(長安烟雨), 개화사(開花寺), 사문탈사(寺門脫簑), 척재제시(惕齋題詩), 어초문답(漁樵問答), 고산상매(孤山嘗梅), 장안연월(長安烟月) 등이다. 작품들 외에 이병연의 서찰들, 정만수의 서간과 심환지의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부 그림의 옆에는 정선이 쓴 이병연의 시구가 적혀 있다.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그림들은 한강변 명승지를 그린 대표적 진경산수화로서 의의가 깊다. 지금은 도시 개발 등으로 파괴된 한강의 원래의 모습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인 것이다. 또한 회화적으로도 정선의 원숙한 진경산수화풍의 다른 일면을 잘 보여준다.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서 주로 보이는 수묵의 강렬한 필묵 대신 청록, 혹은 연한 담채 등을 잘 구사하여 한강변 실경의 서정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했으며, 동시에 이병연의 시와 함께 한국적 시화 일치의 경지를 잘 보여주는 명작이다.
✺ 겸재 정선 필 진경산수화(謙齋 鄭敾 筆 眞景山水畵) 감상:
https://cafe.daum.net/201s/AYJ5/4222
[출처 및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완수, 『겸재 정선』 전3권(현암사, 2009)/ 최완수, 『겸재의 한양진경』(동아일보사, 2004)/ 최완수,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범우사, 1993)/ 김가희, 「정선과 이병연의 우정에 대한 재고: 경교명승첩의 시거화래지약을 중심으로」(『미술사와 시각문화』 23,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