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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성씨 이야기? 도강 김씨 시조에 대한 의문점
통장 추천 0 조회 875 21.01.24 16:58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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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1.01.24 17:40

    첫댓글 유전으로 보면 5대만 가도 시조와 공유하는 유전자가 10분의 1도 안되고 조금만 더 남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공유할텐데 족보라는게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조작도 많고...

    특히 크킹하면서 진짜 의미 없다고 느꼈습니다...ㄷㄷ

  • 21.01.24 17:48

    오히려 가문 족보 따지기는 이기적유전자로서 보는것이 아닌 밈(문화)의 입장에서 보는 확장된 표현으로 봐야할거같아요

  • 작성자 21.01.24 17:55

    요즘에야 좀 많이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습니다만, 예전엔 중요한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중 하나가 혈연이고 더 크게 보면 문중이었던 시대이니, 문중의 산물인 족보, 시조는 정말 중요했고, 그만큼 높이고 싶었을테죠. 분명하게 소속된 공동체란 면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고요. 이런 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라서요. 저도 이렇게 찾아본걸 보면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요 ㄷ

  • 21.01.24 20:40

    @통장 저도 조선시대까지는 중요한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직계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집안에서는 족보가 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21.01.27 12:06

    @철학짜 아, 다시 읽어보니 철학짜님의 생각이셨네요. 조금 댓글을 잘못 읽었습니다. 아니 근데 크킹은 족보로 계통 나뉘는 재미로 하는건데 의미가 없긴 하네요 생각해보니 뻐꾸기가 많네(?)

  • 21.01.24 19:22

    저는 어른들이 족보 보여주면서 김해김씨 감무공파라고 듣기는 했는데, 막상 제사나 장례 지낼 때 보면 -_- 어설프게 구전되는 몇 가지 가례만 있을 뿐 전례서도 없고 몇 항렬 윗분들도 업자한테 물어보면서 하는 등의 작태를 보면서 그런 거 별로 의미도 없고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죠. 솔직히 현 시대에는 사촌하고도 만날 일이 많지는 않은지라..

  • 작성자 21.01.24 19:50

    그분들에겐 자부심, 혹은 연대감 같은걸테죠 ㅎ 사실 요즘에는 줄어드는 회식문화, 연고전 고연전 말머리 장난 같은 것들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어보입니다. 다만 구식으로, 허례허식으로 보여서 이해하기 꺼려지는..

  • 21.01.25 06:48

    @통장 과거에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사회가 변했으니까요. 차라리 연대감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뒤로는 서로 등쳐먹거나 외면하는 일도 보고 듣다보니 현재로서는 형편 좋은 도구로 쓰인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겠더군요. 심지어 젊은 세대 이야기도 아니고 어르신 세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오히려 요즘 세대가 이 점에서는 더 낫더군요. 유대감이든 도덕성이든 간에 말이죠.

  • 작성자 21.01.25 08:30

    @ACrookedMan 재물이 연관되면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네요. 저희쪽은 그런게 없이 잘 지내서 생각 안해봤습니다. 재물은 쥐뿔도 없는 방계끼리의 만남이라서 그런가(?) 복잡하네요.

  • 작성자 21.01.24 19:58

    이후 뭔가 다른 느낌이 와서 다시 족보를 봤는데,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얼핏 느낌이 오네요. 조선 개국원종공신 김회련이 태인파 3세손입니다. 그러면 1세는? 바로 중시조 사형제중 한명이죠. 그러면 개국원종공신 김회련의 활약은 언제였나? 1390년대....무려 김희조와 40년이나 차이납니다(..) 사실 이 이전까진 제대로된 가문사 하나 없이 존재하던 씨족 수준에다가, 김회련의 로또급 활약으로 드디어 제대로 된 족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이정도면 김회련이 시조여야 될 것 같은데... 정작 그 모자란 역사를 채우려고 중시조들과 무대가 겹치는 김희조를 훨씬 윗줄로 넣은 걸 보면 당시 종친회도 가문사 관련 컴플렉스가 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조금 드네요..

  • 21.01.25 22:48

    족보에 가작을 할 수 있지만 족보가 아예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족보가 있다고 해서 그게 증명 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보학자료가 데이터베스로 구축되어 있지 않아 족보에 가작이나 가보를 가리기가 좀 어렵긴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가작이나 가보는 1910~1930년 이후에 많이 일어나는데 족보를 데이터 접근도 쉽고 가작을 만들 물량이 되었기도 합니다. 그때 가작 족보는 대체로 파악이 잘 된 것으로 압니다. 다만 몇몇 족보중 파시조 중시조중 몇대가 엇 나갈 순 있는데 이는 문헌학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현재 한국사에서 족보를 후대 가작으로 보고 연구를 소홀히 하는데 족보의 데이터내 존재하는 기록은 문헌학상 아주 좋은 보고 입니다.

  • 21.01.25 22:44

    물론 족보를 가문의 뒷배경으로 여기는 것은 구시대 문화라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명문가라고 해서 다 사람들이 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니깐요.. 하지마 문헌이나 사서에 기록된 사람들 흔적으로 가문의 족보를 실제화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헌적 자료서 족보의 가치에도 큰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실제 향토사에서 가지는 보학의 문헌적 기록의 가치는 지대한 것입니다.

  • 작성자 21.01.27 12:07

    생각 외로 족보로 얘기할만한게 무궁무진 하더군요 ㄷㄷ 지금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ㄷ

  • 21.02.02 10:16

    족보없이 월남한 사람들을 삼팔따라지라고 부르죠. 저의 집안이 그렇습니다. 단신월남하셨다보니 집안에 대한게.남아있는게 없습니다.

  • 작성자 21.02.02 20:36

    그런 경우도 있네요... 요즘이야 족보가 중요하지 않다지만, 그래도 사람마다 느낌은 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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