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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천리교 교리
천리교는 천리왕을 유일신으로 모시되, 나카야마 미키를 그보다 격이 낮은 신적 대상으로 모신다. 천리왕을 어버이신, 미키를 어버이님이라고 부르면서 신자들을 자식이라고 말하며, 종교적 가족제를 매우 강조한다.
천리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창조될 무렵의 이야기는 '으뜸인 리(理)'라고 부르는데 아래와 같다.
나카야마 미키가 첫 신내림을 받기 9억 9만 9999년 전, 지금의 천리교 터전(천리교 본부 신전) 자리에서 월일(月日)이 사람들이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는다. 그 때에 세상은 온통 진흙 바다였고 미꾸라지들이 진흙 속을 돌아다녔는데, 그중에 인어(이자나기)와 흰 뱀(이자나미)이 있었다. 월일(천리왕)은 이들을 부부의 본으로 삼으려고 둘을 불러들여, 처음에 낳을 자녀들 숫자와 같은 해(年)가 지나면 신으로 예배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북서쪽에서 범고래, 남동쪽에서 거북이, 서쪽에서 검은 뱀, 동쪽에서 장어, 남서쪽에서 가자미, 북동쪽에서 복어를 불러들여 일일이 먹어보며 그네들의 마음씨를 살펴본 뒤 인류창조의 도구로 삼았다.
이후 천리왕은 진흙바다에 사는 모든 미꾸라지를 먹어 인간의 씨앗으로 삼았다. 달은 이자나기(인어) 몸 안에 들고, 해는 이자나미(흰 뱀) 몸 안에 들어 자식들 9억 9만 9999명을 잉태했다. 이자나미는 3년 3개월 동안 그 자리(터전)에서 머물면서 75일에 걸쳐 자식들을 모두 낳았다.
처음 자식들이 태어났을 때에는 길이가 5푼에 불과했으나, 99년이 지나자 조금 더 커진 뒤에 죽어 다시 환생하였고, 이자나기도 이때 같이 은신(몸을 숨김)하였다. 이렇게 99년 주기로 죽고 환생하기를 세 번 거듭하며 4치까지 성장하자, 이자나미(흰 뱀) 역시 "이만큼 성장했으니 언젠가는 5척 사람이 될 것이다" 하면서 은신하였고, 자식들도 죽었다.
그 뒤 이자나미의 자식들이 8008번 환생을 거듭하며 벌레, 새, 짐승이 되었고 마지막에는 암원숭이 한 마리가 남았으니 쿠니노사쓰치 신(国狭槌尊)이다. 원숭이의 태중에서 남녀 5쌍이 태어났다.
처음 태어났을 때에는 모두들 키가 5푼에 불과했지만 나날이 조금씩 성장하였다. 8치가 되었을 때 물과 흙, 높고 낲은 곳이 생겼다. 1척 8치가 되었을 때 바다와 산이 나뉘었다. 이때까지는 한 배에 열 명씩 태어났으며, 3척까지는 한 배에 남녀 한 쌍씩 태어났다. 3척이 되었을 때부터 한 배에 한 사람씩 태어났으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3살이 되어야 말을 하고 지혜도 생기는 것이다.) 이때부터 음식을 찾아 먹게 되었는데, 가라나 천축에까지도 갔다. 사람은 5척이 될 때까지 물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5척이 되자 하늘과 땅이 모두 생겨 사람이 뭍에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터전에서 벗어나 이주하여 다른 곳에서도 살게 되었다.
이렇게 9억 9만 년간은 진흙바다에서 살고, 6천 년간은 천리왕이 인간에게 지혜를 전했으며, 3999년간 문자를 가르쳤다. 그래서 총 걸린 시간은 9억 9만 9999년이며, 연수를 다 채우던 해에 나카야마 미키에게 천리왕이 내려 천리교를 입교(立敎)하였다.
천리교단은 흰 뱀(이자나미)의 영혼이 교조 나카야마 미키로 태어났으며, 인어(이자나기)의 영혼이 미키의 남편 나카야마 젠베에로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한국 천리교는 흰 뱀-이자나미를 여자추형묘상의 리(女子雛型苗床의 理), 인어-이자나기를 남자추형종자의 리(男子雛型種子의 理)라고 (천리교의 교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매우 어렵게 표현하지만, 일본 천리교도들은 그냥 이자나미, 이자나기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천리교는 위 이야기에 나오는, 인류 창조시에 협력한 물고기들에게 각각 신토에서 말하는 신들의 이름을 사용한다. 해와 달,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그리고 범고래부터 복어까지 여섯 어류들까지 전부 10위 신들의 이름으로 표현하며, 특히 고사기에서 말하는 태초에 나온 신세7대(神世七代)에 속한 신들의 이름 중 일곱 개가 포함됐다.
천리교단은 으뜸인 리에서 신령 10위가 인류창조에 관여한 것을 십전의 수호(十全の守護)라고 부른다. 유일신 천리왕이 인간을 수호하는 열 가지 섭리를 각각 신토 신들의 이름을 빌려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에게도 그 역할이 쉽게 이해되는 신명이 아니므로 종교학자들은 천리교가 아직 천리왕 유일신 교리를 확립하기 이전, 다신교 시절의 흔적으로 본다. 특히 북쪽에 서는 쿠니노토코타치는 오모토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신명이다.
천리교 본부 신전에서만 행하는 감로대 근행(신악근행)에서도 십전의 수호를 의례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한국의 천리교에서는 십전의 수호에서 일본 신들의 이름과 연결되는 부분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XXXX의 리(理)'라고 교학적 용어로만 이야기한다. 신들의 이름이 너무 노골적으로 일본식이라 이를 피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천리교는 천리왕(天理王), 일본어로는 텐리오노미코토(天理王命)라고 부르는 신이 사람들이 즐겁게 사는 광경을 보고 싶어서 오늘날 일본 나라현 텐리시 천리교 본부의 감로대가 있는 자리에서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으며, 천리왕을 어버이신님(오야가미사마)이라고 부른다. 천리교는 천리왕을 죄와 벌을 주는 신이 아니라, 즐거운 삶을 누리도록 보살펴 주는 신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질병이나 재난 없이 즐겁게 사는 것이 바로 신이 의도한 이상세계의 실현이며, “천국이나 극락은 죽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라고 믿는다.
사람에게 병이 생기는 것은 천리왕에게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본다. 병을 치유하는 수훈이 있지만, 먼저 자기 삶을 뉘우치고 돌아볼 것을 요구한다. 환생을 이야기 하기 때문에 이승에 덕을 쌓지 못한 사람은 후생에서 뭔가 안 좋은 상황에 처한다고 믿는다.
천리왕이 정해준 인간의 수명 또한 원래는 115세이며, 인간의 혼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지도 아니하고 소멸하지도 아니하고 다시 환생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모든 사람이 죽자마자 바로 태어나지는 않고 사람에 따라 환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고 하며, 살아서 덕을 쌓은 사람은 행복한 인간으로 환생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행한 인간으로, 혹은 아예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올바르지 못한 마음씨를 티끌이라고 부르며, 덕을 쌓고 수양함으로써 이러한 마음의 티끌을 없애야 비로소 천리왕의 진정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미키가 1887년에 90세에 사망했음이 그래서 문제가 되었다. 물론 90세도 충분히 장수한 것이지만, 천리왕이 정한 인간의 본디 수명이 115세라고 가르쳤는데, '신령의 집'인 미키 본인부터 115세를 채우지 못했음은 큰 문제였다. 미키가 죽기 전에 추종자들은 미키가 115세까지 살리라 당연히 믿었으므로, 미키가 죽자 충격에 빠졌다. 그래서 이부리 이조가 신탁을 말하기를 미키가 신자들을 돌보고자 일부러 수명을 25년 줄여 은신(사망)했다라고 한 것이다. (만약 정말로 미키가 115세까지 살았다면, 1912년에 사망했을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는 천리왕에게 육신을 받고, 죽을 때에는 천리왕에게 육신을 돌려준다고 믿는다. 따라서 천리교의 교리에 따르면, 인간의 몸은 천리왕의 입장에서는 대물(貸物: 빌려준 물건)이며, 인간의 입장에서는 차물(借物: 빌려 쓰는 물건)이다. 그래서 죽음을 기존의 육신을 반납하고 새로운 환생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여겨, '처음부터 다시 한다'라는 뜻인 데나오시(出直し)라고 부른다.
천리교는 교조 나카야마 미키가 살던 집터, 오늘날 나라현 텐리시 천리교 본부 신전(神殿)이 있는 자리를 '지바'(地場)라고 부르며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상술했듯 미키가 처음 신들렸을 때에도 "이 집 터에 인연이 있어 내려왔다"라고 말하기도 했고, 천리왕이 바로 그 자리에서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 '터전과 감로대' 항목을 볼 것.
나카야마 미키를 일본 천리교 신자들은 교조(敎祖)라고 쓰고 '오야사마'(어버이님)라고 부른다. 천리교 측의 설명에 따르면 만물을 창조한 어버이神 천리왕이 미키의 몸에 머물렀기 때문에 어버이님이고, 천리왕의 가르침으로 신자들을 보살폈고 지금도 보살피기 때문에 어버이님이며, 천리왕이 인류를 창조할 적에 미키의 영혼을 인류의 여성성, 모성의 모델(이자나미)로 삼았기 때문에 어버이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만 일본어로는 '오야가미사마'(어버이신님)와 '오야사마'(어버이님)가 소리로 꽤 구분이 되지만, 우리말로는 별로 구분이 안 되어서 그런지 한국인 신자들은 미키를 '교조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키가 신들림을 겪은 뒤 하던 종교적인 주장이 처음에는 당시 일본 풍습대로 다신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미키의 기록을 보면 천리왕 이외에도 당시 일본 민속이나 불교, 신토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다른 신을 언급하며, 천리왕의 위상도 '토지에 붙인 신명'이라고 하는 등 지금의 천리교 측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점차 천리왕이 유일한 신격이고 (미키가 언급했던) 다른 신들은 단지 천리왕을 가리키는 다른 호칭, 혹은 비유일 뿐이라고 해석하여, 천리왕 유일신교로 바뀌었다.
미키는 메이지 시기의 근대화를 나쁘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반외세 감정이 있었다. 미키가 신들림하여 썼다는 친필에서 "가라가 지금까지 일본을 멋대로 다루었다"라든가 "지금까지는 가라가 훌륭하다고 했지만 앞으로는 꺾일 뿐이야"라는 식으로 말했다. 일본에서 가라는 본디 가야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중국 당나라, (일본 입장에서) 서양을 포함하여 외국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요컨데 미키는 "지금까지는 외국인들이 일본을 쥐락펴락 했다"라고 말한 것이다. 미키가 생각한 세상 사람들은 일본인들이었다. 위로는 천황부터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형제라고 하였으나, 대상은 일본인들만이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혁명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형제애가 되지는 못했다.
콜레라가 돌 때에도 미키는 "세상은 그것을 콜레라라고 부르지만, 실은 신의 노여움"이라면서, 근대적인 의학 지식에 거리를 두었다. 외래문화, 외래지식을 거부하고 순수한 일본문화를 그리워하며, 천리왕이 이런 상황을 바꿀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현대의 천리교단은 가라라는 말을 외국으로 해석하지 않고, '천리교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은 곳'이라고 우회적으로 해석한다.
천리교 신명(神名)의 변화
지금은 천리교에서 받드는 신의 이름이 천리왕(天理王命)으로 고정됐지만 초기 교단에서는 여러가지 표기가 있었다.
天輪王命, 天龍王命, 天輪王明神, 転輪王命, 天倫王命, 天理大神, 天理王命
한자 표기를 어떻게 하든, 그리고 신명의 뒤에 붙이는 존칭어(命, 神 등)를 무시하고 신명의 발음만으로 말한다면 텐린오 / 텐리오로 좁혀진다. 예외적인 호칭으로 천룡왕(天龍王 텐류오)라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무시할 수 있다.
신빙략기에서 천리왕을 나카야마 저택의 집터에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처음부터 천리교의 신명이 천리왕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천리교 외부의 학자들은 천리교의 초기 신명이 전륜왕(転輪王 텐린오)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속서에서 미키에게 모습을 드러난 신령 10위를 전륜왕이라고 한다는 서술이 있다.
그 뿐 아니라 1865년 이마이 스케조가 미키와 대립한 뒤 갈려져서 천륜왕교회(天輪王敎会)라는 종교를 세웠다. 1867년에는 이마이 스케조의 동생이 전륜왕교회(転輪王敎会)를 세웠다. 1880년에는 슈지가 전륜왕강사(転輪王講社)를 세웠는데, 미키 추종자들이 슈지가 불교로 돌아왔다고 좋아했다고 하니, 추종자들의 종교적 성향이 신토보다는 불교에 더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마 미키가 내세운 본래의 신명이 전륜왕, 일본식 발음으로 텐린오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만약 미키가 전륜왕을 의도했다면, 미키의 종교적 의도를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전륜왕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키가 슈겐쟈 나카노 이치베에(中野市兵衛 1792-1870)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카노는 본디 슈겐쟈 중에서도 진언종 계열로, 미키에게 49일간 진언종의 가르침을 전하기도 하였다. 미키는 본디 정토종 신자였지만 나카노 때문에 진언종의 영향도 받았다.
전륜성왕수행경에서 보면 전륜성왕이 다스릴 때에는 백성들이 몇만 살까지 살고, 아무런 고통도 없으며 즐겁게 산다고 한다. 또한 전륜성왕은 미륵 신앙과 연계되어, 전륜왕이 통치할 시기에 미륵이 나타난다고 한다. 혹은 아예 미륵이 직접 전륜성왕이 되어 나온다는 경전도 있다. 미키가 자기가 사는 시대를 말세의 혼란기라고 여겼다면 전륜왕의 힘을 빌어 전쟁, 대기근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을 구하여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바랐다는 뜻이 된다.
혹은 미륵이나 이상적인 통치자로서의 전륜성왕이 아니라, 아미타불의 별칭인 전륜왕일 수도 있다.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에 서원한 것 중에 "내 불국토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어떠한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서원도 미키가 종교적 주장을 하면서 강조한 ' 즐거운 생활'과 흡사하다.
미키가 초기에 불교적 용어인 전륜왕을 신명으로 사용했다면, 천리교단의 초기 기도문은 '나무천리왕님'이 아니라 '나무전륜왕님'이 된다. 불교적 용어인 전륜왕에 나무(귀의한다)라는 말을 붙임은 자연스럽다.
야시마 히데오는 자기 어린 시절에는 천리왕이 열 분 신령님이라고 하더니, 패전 이후로는 갑자기 한 분이라고 말을 바꾸더라고 이야기하였다.
천리교단은 이러한 외부 학자들의 주장을 잘 알지만,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처음부터 천리왕을 신명으로 사용하였다고 설명한다. 다만 학술적으로 넘어가면, 초기에 발음이 비슷한 신명이 여럿 사용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터전과 감로대
천리교 내부적으로는 터전, 집터, 본고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많은 신자들이 세 가지 단어를 서로 혼용하여 사용하지만 엄밀히는 구별된다.
터전은 천리교 교회본부 부지에 있는, 감로대가 안치된 신전(神殿)을 가리킨다. (신전 안에서도 감로대가 있는 자리를 진좌(眞座)라고 부르는데, 패전 이후 1934년에 2대 신바시라 쇼젠이 처음으로 사용한 낱말이다.) 한국인 신자들도 종종 터전을 일본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바라고 부르곤 한다. 집터란 말은 원래는 나카야마 저택 부지를 가리켰지만 지금은 교회본부 부지를 뜻하며, 본고장이란 말은 집터와 그 바깥에 있는 천리교 제반시설이 있는 지역까지 가리킨다.
범위로 따지면 본고장 > 집터 > 터전.
천리교의 따르면 터전이야말로 인류의 고향이므로, 터전으로 귀참(순례)하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텐리시의 천리교 신자들은 터전귀참하러 오는 신자들에게 "어서 오십시오"가 아니라 "어서 돌아오십시오"라고 인삿말을 한다고 한다. 신자들 사이에서는 "터전/집터에 떨어진 귤 껍질만 주워먹어도 병이 낫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1875년, 미키는 나카야마 저택의 정원 한 자리를 지적하며, 그곳이 천리왕이 인류를 창조한 정확한 자리라고 말하고, 거기에 돌로 (1873년에 이부리에게 만들라고 했던 모형대로) 감로대(甘露臺)라는 육각형 아령 비슷하게 생긴, 높이 2.5 m짜리 13단 구조물을 세워라고 추종자들에게 명령하였다. 하지만 석공은 도망하고 공권력이 탄압하여 1933년까지는 만들지 못하였다.
1933년에 오늘날 위치에 교조전을 세우고, 감로대 자리 북쪽에 북예배장을 세웠다. 34년에 감로대가 들어설 자리를 다듬고 나무로 감로대를 만들어 그 자리에 세웠다. 원래 나카야마 미키는 돌로 감로대를 만들라고 하였는데, 당시의 신바시라 쇼젠은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미키가 명령한 모양과 크기는 그대로 따르되 나무로 감로대를 세우도록 하였다. 또한 남예배장도 이때 함께 만들었다.
1981, 84년에 서예배장과 동예배장을 각각 만들어, 지금의 신전 형태를 완성하였다. 신전은 동서남북 예배장을 통털어 다다미 3157장이며, 건물의 재질은 내화재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편백나무이다. 법적으로 예배장의 토지소유권은 종교법인 천리교에 있지만, 감로대 자리의 소유권은 나카야마 집안에 있다고 한다.
신전과 교조전, 그리고 조령전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오갈 수 있다. 신자들이 이 곳의 회랑을 청소하는 모습은 천리교 제작 동영상에서 흔히 나온다.
미키가 신자들에게 명령한 대로라면 감로대를 돌로 만들어야 하며, 맨 위에 그릇을 하나 올려두어야 한다. 그러면 하늘에서 천리왕이 감로(甘露)를 내려주는데, 이 감로를 마시는(먹는?) 모든 사람은 115세까지 무병장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감로대가 있는 곳은 감로가 내려올 수 있도록 천장에 구멍을 뚫었다.
감로대를 중앙에 두고 ㅜ 자 형태로 신전(神殿)이 거의 정남향으로 서 있다. 신전 내부는 동서남북으로 예배장을 두어 구획을 나누었으며, 감로대가 있는 중앙부 위에는 네모난 구멍을 만들었다. 아래 사진상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감로대 위쪽으로 지붕에 한 평 넓이로 네모난 구멍이 뚫려 하늘과 통하며, 비가 오면 감로대는 비를 그냥 맞는다. 다다미가 비를 맞으면 큰 일이 날 테니, 천리교단은 감로대 사방으로 한 변이 17 m, 깊이가 2 m쯤 되는 사각형으로 파인 공간을 만들어, 건물의 기반이 되는 대지 위에 감로대를 직접 세웠으며, 바닥에는 바닷가에서 가져온 조약돌을 깔았다. 처음에는 지붕 위 구멍에 창을 달아 비가 오면 닫게 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결국 지금처럼 하기로 결정하였다. 감로대 안쪽으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사방으로 계단이 있다. 감로대가 지면 위에 바로 서 있으므로, 신전에 들어가도 가까이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아야만 감로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미키가 신자들에게 말한 바를 따른다면 감로대를 돌로 만들고 위에 그릇을 올려놓아야 한다. 하지만 2대 신바시라 쇼젠은 미키의 가르침대로라면 그리해야 되는 줄 알면서도, 미키가 말한 감로대의 형상과 수치는 그대로 따르되 나무로 감로대를 만들도록 하였다. 지금 있는 감로대는 진짜가 아니라 모형으로 간주한다. 비가 내리면 감로대가 빗물을 그냥 맞기 때문에 대략 십여 년에 한 번씩 새 것으로 바꾼다. 현 천리교단은 인류의 마음이 맑게 깨이는 날 돌로 감로대를 만들고 위에 그릇을 놓아 천리왕이 내리는 감로를 받으리라고 설명한다. 그런 날이 오긴 할까? 하지만 그럴 거라면 왜 미키가 생전에 돌로 감로대 만들기를 요구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천리교단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외인들에게는 현 천리교단이 미키의 말을 무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천리교 안티들이 천리교단을 비아냥거리는 소재 중 하나이다. 쟤네들은 심지어 자기네 교조의 말도 대놓고 무시한다고 말이다.
천리교 교회본부 교조전의 모습. 구리기와를 덮어서 지붕이 푸르스름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구리기와도 전쟁물자로 바쳐야 하는가 문제로 꽤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위 사진상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감로대 위쪽으로 지붕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하늘과 통한다.
천리교 교리에 따르면 신전이야말로 인류 탄생의 지점이자 인류의 고향이자 세상의 중심이다. 또한 감로대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기둥이라는 의미가 있다. 신전 자리의 중심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가 신전에 있다. 감로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예배장이 있는데, 신전 자체에는 따로 정문이 없고, 각 예배장에 뚫린 문을 전부 정문으로 간주한다. 정말로 감로대가 있는 자리가 세상의 중심이라면, 특정 방향이 정면이 될 수가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지 내 건물들이 기본적으로 남향을 하고, 신전 역시 부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선상에 있으며, 신전과 교조전이 남북으로 나란히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남예배장 쪽이 정면으로 기능한다.
천리교 교조전에 보면 어느날 미키가 문뜩 사방 8정(町)이 모두 집터(나카야마 저택 부지)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정(町)은 360척 길이를 뜻한다. 계산하면 1정이 약 109 m이며, 8정은 약 872.7 m이다. 사방이 8정이라면 한 편이 8정인 정사각형 대지가 되어 면적이 약 23만 4백 평, 76.2 헥타르로 여의도 택지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2대 신바시라 쇼젠은 1955년, 미키가 했다는 말을 실현하기로 작정하였다. 감로대를 중심으로 하여 한 변이 8정짜리 정사각형 모양으로 천리교 교회본부를 확대하기로 하고, 부지 경계선을 따라 건물을 회랑처럼 만들어 부지를 둘러버린다는 무지막지한 청사진을 만들었다. 계획을 시작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 절반도 만들지 못하였다. 천리교의 교세가 점차 하강세이기 때문에 건물 건축 속도는 앞으로 더욱 늦어질 듯하다. 그래서 천리교단조차도 예상완공년도를 감히 말하지 못하는 상황.
위에서도 설명했듯, 교조 미키는 1887년에 향년 만 88세, 세는나이 90세로 거처에서 사망하였다. 신자들은 미키 사후에 이부리 이조가 받은 계시에 따라 미키의 본디 수명이 115세였지만, 신자들을 더 잘 보살펴주려고 일부러 수명을 25년 줄여 90세에 물질세계에서 자기 몸을 숨겼다고 믿으며, 지금도 터전 신전 뒤쪽(북쪽)에 있는 교조전(敎祖殿)에서 그 혼령이 여전히 머물며 생활하고, 신자들을 돌본다고 믿는다. 천리교에서는 이것을 교조존명(敎祖存命)의 리(理)라고 표현한다. 교단에서는 매일 교조전에 식사를 올리고 교조가 목욕할 수 있도록 목욕물을 데우며, 계절에 맞추어 붉은 옷을 지어올리고, 더우면 냉방을, 추우면 온방을 한다고 한다. 보통은 혼령이 머문다고 믿어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천리교의 이러한 행동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의 종교전통에서 이와 비슷한 것이 없지는 않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진언종(眞言宗) 개조 쿠카이(空海) 대사(774-835)를 예로 들 수 있다. 대사가 고야산에서 입적하였으나, 진언종 사람들은 입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사는 죽지 않고 다만 계속 선정(禪定)에 들었을 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매일 소임을 맡은 승려들이 대사가 먹을 음식을 마련한다고 한다.
하지만 천리교는 진언종과 비교해도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진언종은 쿠카이 대사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믿으므로 식사를 제공하지만, 천리교는 미키가 죽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혼령을 대상으로 새로 집(교조전)을 지어드리고, 철마다 옷을 지어 바치고, 매일 식사를 지어 올리며, 냉온방을 하고 목욕물을 데운다. 지금도 그런 소문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리교 신자들 사이에서는 교조전에서 목욕물을 데우면 그 안에서 물 끼얹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미키가 115세가 되기 전에 죽어 신자들이 동요하자, 이부리 이조의 입을 빌어 미키가 일부러 수명을 줄여 사망했으며, 지금도 그 영혼이 터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살아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더 이상 동요하지 않도록 조처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