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969호
무장댁
이슬안
구멍 난 공사판 떠돌던 서방
술 취해 들어오면
살기가 돋아 온 집안 깡그리 부수고 다녔다
울며불며 세월 구겼지만
서방 잡아먹은 술독은 말릴 수가 없었다
술을 등지지 못한 무장댁 서방
서까래에 목을 매달아
술김에 애먼 목숨 버렸다
과부가 된 무장댁
귀신도 자는 밤에 깨어나 묵을 쑤었다
죽은 서방 한 시절 가마솥에 풀어 넣고
밤새 한숨만 배배 저었다
나가 맹탁읎는 말은 안히써야 힜는디,
마른 눈물 훔치며
새벽닭 울음소리랑 집을 나섰다
서까래 무너진 무장댁
그래도 탱탱하게 묵만 잘 쑤는 무장댁
은색 다라이 가득 묵들이
기우뚱기우뚱 골목을 빠져나간다
-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달아실, 2025)
*
이슬안 시인의 첫 시집이지요.
『달의 기억이 뒤척일 때』에서 한 편 골랐습니다.
- 무장댁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졸시 「개망초」를 떠올립니다. 무장대과 병점댁이 왜 겹치는 걸까요?
덕구 형이 황망히 세상을 떠나고 몇 번의 계절이 지났을까
병점댁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오늘 구례를 떠납니다 먼 훗날 다녀가실지 몰라 산수유 밑에 달항아리 묻어두었습니다
남편 잡아먹었다고 집안 말아먹었다고 시댁에서 내쳤잖여
집이며 밭이며 보험금까지 전부 시댁에서 가져갔잖여
읍내 터미널에서 딸내미랑 구걸하는 걸 봤다는 소문
미쳤다, 섬에 팔려가 작부가 됐다는 소문
덕구 형과 가꿨던 비탈밭에 붉은 작약 대신 개망초가 하얗게 번졌던 그 해 유월,
소문은 흉흉하고 무성했지만 몽골 여자 병점댁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 졸시, 「개망초」(『그런 저녁』) 부분
무장댁이나 병점댁이나 과부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 없는데
왜 저는 무장댁을 읽으며 병점댁을 떠올린 것일까요?
무장댁을 내세워 이슬안 시인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병점댁을 내세워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어쩌면 같지 않을까 싶었던 까닭입니다.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냐고요?
글쎄요.
그건 당신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힌트 하나만 드리자면
무장댁이나 병점댁으로 상징되는 이 사회에서 소외된 투명 인간들, 잉여 인간들을 생각하면
답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비가 섞여 내리는 흐린 아침입니다만, 오늘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었지요.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이라 해도 지난해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명절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5. 1.27.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첫댓글 무장댁, 병점댁, 모두 슬픈 시대를 살았던 분들이겠네요.
술만 먹으면 집에 있는 것들을 내동댕이치던 그 옛날 아버지들.
슬프게 살다간 그 옛날 어머니들.
문장수선공께서는 오늘도 열일을 하시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책 좋은 시, 많이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오래 월요시 편지를 보내시면 좋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