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7.16.) 말슴/ 마태:1: 21, 예레미아 1:5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지난 토요일 엘리사벳 딸 주아의 돌 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사위랑 사모와 누가가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사위 부모 사돈과 시누이도 내려와서 현대 호텔에서 돌잔치를 했습니다. 엘리사벳이 임신 후에 유산을 몇 차례한 후 인공 수정을 해서 태어난 아이라 더 귀하게 느껴지고, 온 가족의 축하를 받으면서 주아가 한 살을 맞이하였습니다. 금반지도 받고, 금 팔지도 받았습니다. 주아? 그런데 주아가 왜 태어났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이것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수동적으로 태어났을 뿐 입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인생이란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내가 누군가 아는 것이 인생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골치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것이고, 골치 아파도 이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어떻든 간에 개똥 철학자가 되든지 하나님을 만나든지 하면서 존재 의미를 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1997년에 이민섭이란 분이 작사·작곡한 CCM 찬양 복음성가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초기에 일부 대한민국의 개신교 교회에서만 사용되었으나, 폭발적인 인기로 대한민국 전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수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 곡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단 한 순간이라도, 단 하루만이라도 사랑을 받고 느끼며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무엇을 해도 어디를 가도 사랑도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인간 존재의 근본을 잘 표현해 준 노래입니다. 사랑은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의 핵심 단어입니다. 요한 복음 13장을 보면 하나님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대신 죽게 하신 이유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또 스바냐 3:17절을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였습니다. 사랑은 모든 신앙, 모든 삶의 원칙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을까요?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일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할 수 있을까요? 그 일을 사랑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왜 삐뚤어지고 강퍅해지고, 어린 청소년들이 탈선을 합니까? 사랑의 결핍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버림받은 아이처럼 불쌍한 것은 없지요, 젖과 우유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을 때 사람들은 삶의 의욕과 존재 의미를 느끼지만 사랑을 잃어버리면 곧 삶아야 할 의미를 잃게 됩니다.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다 열광하며 좋아하는 곡입니다. 저도 색소폰 연주를 많이 했는데 이 노래 가사의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입니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땜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에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길이 무겁고, 지치고, 힘들고, 외로워도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마디,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거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한다는 말 아끼지 맙시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지친 날를 영접하시고 사랑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사랑을 받으면 사람은 살아나고 행복 해진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랑은 기적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산 사람도 시름시름 죽어갑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면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다. 독일 토마스 목자도 의식을 잃고 죽었다 살았다 하였지만 전 세계 여러분들의 사랑의 기도 지원을 받고 살아났습니다. 지난 주 퇴원을 했습니다. 기적입니다. 우리는 살리는 언어를 쓰고 살리는 행동을 해야합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란 곡이 나온 후에 이 곡의 답가로서 설경욱이 작곡한 곡이 또 있습니다. 그 곡의 제 목은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입니다. 이 노래는 우리가 태어난 두 번째 이유를 말해줍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 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젠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사랑받은 사람은 이제 또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며 또 하나의 열매를 맺도록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랑을 받기만 하면 이기적이 되기 쉽습니다. 그 받은 사랑이 완성되는 것은 또 그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전에 나와 같이 외롭고 세상 짐이 무겁고 힘들고 지쳐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사랑함으로 또 하나의 열매를 맺을 때 사랑은 더욱 커지고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나와 너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역시 기뻐하시고 행복 해 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또 사랑을 하는 자가 되라고 세상에 보내진 것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뜻입니다.아멘! 예레미아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예레미아를 부르실 때 그의 탄생에 대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 예레미아를 복중에 지으신이는 하나님 이시라고 합니다. 이미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그를 아셨고, 세상에 보낼 계획을 하셨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여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예레마아만 이겠습니까? 재중 집사님. 명남 주정미, 지홍집사님, 현옥, 경숙 집사님, 서광호 목사님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아셨고, 계획하셨고, 구별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이껴두셨다가 우주교회를 세우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내 자녀들을 사랑하라고 맡기시고, 또 내가 사는 삶의 주변에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엘리와 서연동 둘째 사위, 서주아 모두 하나님이 사랑받고 또 사랑하라고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을 충분히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받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잘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존귀한 존재로 대접을 받지 않고 남을 대접할 수 없습니다. 내가 섬김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먼저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로소 사랑이 무엇인지 섬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유독 자립하지 못하는 유아 시절이 깁니다. 다른 동물들은 6개월이면 자립하지만 사람은 몇 년, 아니 중 고등학교 시절까지 사랑과 섬김을 받으며 자라게끔 되어 있습니다. 아니 평생입니다. 어린 시절은 부모의 사랑, 젊어서는 아내나 남편의 사랑, 그리고 학창 시절은 학교에서 스승과 주변의 친지, 이웃,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또 늙어가면서는 자식들의 사랑을 받으며 평생을 보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먹고 살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받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고, 나는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주고 베푸는 삶이 훌륭한 삶이요 믿음이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을 먼저 충분히 받고 섬김을 잘 받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5:5)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그렇구나!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위로부터 충분히 부음이 되어야 되는구나. 그것을 깨달은 후에는 내가 먼저 사랑받고, 내가 먼저 행복한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 가고 ,먼저 자기 성숙과 성장을 위한 시간들을 가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먼저 좋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양질의 젖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먼저 알고, 내가 먼저 경험하고, 내가 먼저 체험하고,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면 또한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동시에 우리는 열심히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돈을 벌고 재물을 쌓고, 전원 주택을 짓고, 평생 부요하게 살아도 베풀고 나누는 삶이 없으면 그것은 반쪽 인생입니다. 완전한 성공도 아니고 완전하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누가복음에 창고를 늘리며 혼자만 배부른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미국과 같은 선진국을 보면 사업을 성공하고 나서 그 원리는 깨닫고 베풀고 나누며 사는 기업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록펠러나, 빌게이츠, 저커버같은 사람들입니다. 참 훌륭합니다. 그들은 많은 재물을 얻는 후에 거기에 빠지지 않고 나누며 베푸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자식들 보다도 사회에 기여를 합니다. 몇 년 전 신문기사를 통해서 보고 참 감동이 된 기사가 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억만장자 로버트 F 스미스 비스타에퀴티 파트너스 최고경영자(CEO)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칼리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졸업식 연사로 나섰는데 축사 도중 뜬금 없이 “올해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금을 모두 갚아주겠습니다”. 하고 깜짝 발언을 한 것입니다. 준비된 연설문에는 없었던 내용 이었습니다. 올해 졸업생 396명의 대출금은 4000만 달러(약 478억원)로 추정되고 있었습니다. 땡볕 아래에서 무심하게 축사를 듣던 학생들의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객석에서 수군거림이 오고 가다가 잠시 후 식장은 졸업생과 학부모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부모들은 서로 부둥켜 안았습니다. 환호하는 졸업생들은 대부분 흑인 이었습니다. 로버트 F 스미스는 지난해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를 꺾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최고 부호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의 재산은 50억 달러(약 5조9000억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졸업생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대가로 스미스가 내건 조건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학위는 여러분이 신세를 진 모든 사람들에게 재능과 열정을 헌신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계약입니다. 앞으로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고 말했습니다. 받은 사랑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꿈에서나 나올 법한 선물을 받은 학생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멋진 부자! 이 보다 멋진 연설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성공은 자신이 받은 사랑 또 값없이 나눠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부자가 되어서 어느 날 뜬금없이 우리 지체들에게 100만원씩 아니 천 만원씩 나눠주면서 “내가 주님께 받은 사랑은 이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조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젠가 조건 없는 사랑을 크게 쏘는 자가 되어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일등을 해서 장학금을 주는 경우는 많습니다. 조건 없이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ㅇ히려 더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건 없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 조건 없이 은혜를 베풀 수 있는 확률이 더 큰 것은 분명합니다. 에머슨의 성공이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가잘 잘 표현해주는 글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에는 가장 위대한 탄생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제자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을 이렇게 소개 하였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1: 21). 예수님의 탄생은 곧 온 인류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인류를 죽음에서 일으켰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탄생은 없습니다. 마태 4:15-16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 예수님 한 분을 인해서 저도 구원을 받고 여러분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절망은 희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탄식은 춤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흑암과 어둠 속에 있는 인생들에게 참 빛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참 빛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없는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지구의 밤을 밝힐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증거하며 살 때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세레요한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며 빛 된 인생을 살았습니다. 헤롯에 의해서 목이 베어 죽임을 당해서 일찍 죽었지만 짧은 생애와 상관없이 예수님은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그 보다 큰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한번 태어났다가 죽습니다. 100세 시대에 단지 시간적인 나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는가? 얼마나 멋지게 사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난 주 박중용 목사님과 김태구 목사님이 무안에 내려오셨습니다. 2박 3일 짧은 시간 이었습니다. 비도 내리는 장마철에 어디를 가기도 그렇고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도 들었습니다. 첫째 날 저녁 간장 게장을 꺼내 특별 손님 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독서모임을 함께 하였습니다. 생일 파티와 <아직도 가야할 길> 책거리도 하였습니다. 다음 날 하루를 풀로 어떻게 쓸까? 지홍집사님과 의논하고 도초 수국 팽나무 십리길, 정약전 드라마세트장을 보고, 그리고 트래킹을 하고 비금도 하트 해변을 보고자 배를 탔습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열 걸음> 책도 가지고 가서 중간중간 독서 모임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일단 건너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상 건너가 보니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훨씬 멋진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새롭게 피어난 꽃도 보고, 바다 신 세계의 황홀경을 체험하였습니다. 점심으로 자연산 홍합 라면과 김밥도 먹었습니다. 돌아오는 배 시간이 늦었지만 재중 집사님이 8시 식당 예약을 해놓고 민어회와 병어조림으로 멋진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늦은 시간 돌아와 잠이 들고 다음날 바닷가에서 비취 파티 해변 식사를 하고 또 독서모임을 하였습니다. 아주 유익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11시 천 권사님이 맛있는 전복 산삼 닭죽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30분 짬을 내서 커피 타임과 막간에 박중용 목사님 색소폰 연주를 듣었습니다. 그리고 나주로 행하여 2시 10분 기차를 탔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과를 마쳤습니다. 한마디로 하루를 천 년처럼 알차게 보낸 시간들이었습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질이라는 것이 맞습니다. 질 좋은 인생을 사는 비결은 빛 되신 예수님을 가까이 배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레 요한이 아무리 훌륭해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빛 되신 예수님을 중거하며 살지 않았다면 여자가 나은 자 중에 큰 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발광체가 아닌 달이 밝은 이유는 빛 된 태양을 응시하며 바라보기 때문인 것처럼 우리 인생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는 비결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큐티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점점 말씀 묵상 수준이 높아지고 서로 배우면서 객관적인 사고 폭도 넗혀가고 있습니다. 또 독서 모임을 통해서 위대한 인문고전 철학자들의 생각을 듣고 읽고 배우면서 우리의 생각도 넓혀지고 있는 것이 감사 제목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성장하고 커지고, 우리의 삶의 질이 업그레이드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행복하고 보람있고, 다른 사람 역시 나 때문에 행복한 살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엔트로피 힘의 의해서 무너지고 쇠퇴하고 굳어지고 마침내는 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플러스 인생이 되어야지 마이너스 인생이 돼서는 안됩니다. 나도 유익 다른 사람도 유익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 영광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결론적으로 어느 누구도 세상에 그냥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심 바 되어 그 계획 속에 위대한 사명을 띠고 태어났습니다. 위대한 사명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한 것이 인생 성공입니다. 한번 태어난 짧은 인생, 저와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닮아 사랑으로 후회 없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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