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한 때 가까운 곳이었지만 가보지 못했던 고려대 뒷산 개운산과 개운사를 돌아보고 모교를 지나 홍릉수목원을 돌아보았다.
고려대 전철역 2번출구에서 교우회관앞으로 들어가 사범대와 경영관을 지나 중앙도서관 앞에서 대학원과 본관 뒤 오솔길을 지나
문과대학, 국제관, 정경관으로 지나가니 의과대 방향으로 나가는 샛길이 있어 개운사를 돌아보고 개운산공원으로 간다.
옛날 중앙도서관을 만난다. 1937년 민족의 성금으로 건립된 개교 30주년 기념 도서관인데 지금은 일반대학원이란다.
본관과 함께 서울시 사적 제 286호로 지정되었다.
본관 뒤 오솔길을 지난다.
시계탑이 있는 서관이다. 4년간 가장 많이 이용했던 건물이다. 지금은 문과대학이다.
국제관이다.
정경관을 지나 샛문으로 나가 개운사로 간다.
개운사는 조선시대 왕실의 귀빈들이 자주 찾던 사찰로 유명했는데
특히, 1779년 정조의 후궁인 홍빈 양씨의 묘인 명인원이 개운사 옆에 조성되면서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다.
명인원과의 인연으로 '개운사'로 개명되었는데
개운사는 '운명을 개운시킨다'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개운사에서 북쪽으로 향해 오르면 고려대 기숙사를 지나고 화정체육관과 민족문화관 중간 산길을 지나 북악산로를 건넌다.
개운중학교 로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가다가 다시 로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성북구의회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공원이 시작되고 입구에서 다화정 정자를 만난다.
성북구의회를 지나고 산마루 북카페를 지난다.
이육사 시인은 1904년 경북 예안군(현재 안동시 도산면)에서 퇴계선생의 14대손으로 태어나 일본과 중국에 유학 후
일제에 의해 수차례 반복된 구속을 겪고 1939년 이곳 종암동으로 이사하였는데 1943년 베이징주재 일본총영사관 교소소에
구속되었다가 1944년 옥사하였다. 종암동에 이육사시비가 있는 이유다.
담소정을 지나고
개운산의 정상이자 넓은 마로니에마당이 있는 곳이다.
화목정 정자가 있고 마당 둘레에 황톳길과 다양한 운동시설이 있는 쉼터다.
잔디밭 가운데 산딸나무꽃이 만발하였다.
산딸나무 옆 잔디밭 돌판에 새겨진 이육사 시 "꽃"
뒤돌아 하산하는 길이다. 몇 개의 파고라와 우거진 숲길이 이어진 아주 좋은 산책코스다.
숭례초등학교 근방으로 하산하고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로 갈증을 풀고 홍릉숲으로 향한다.
숭례초등학교에서 홍릉숲까지 900m다. 주말이라 예약없이 프리 입장이다.
재2수목원 침엽수원으로 들어선다.
어정(御井)은 고종황제가 명성황후의 능인 홍능에 행차하여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던 우물이다.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 했는데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1895년 8월 20일 새벽
낭인들을 동원하여 경복궁 건천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장지를 동구릉으로 조성하려 했는데 정치적 상황으로 무기한 연기되다가 2년 후 1897 이곳에 안장하고 능호를 홍릉으로 했다.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남양주 금곡동(현재 홍유릉)으로 이장하여 합장하였다.
숲속 여행길을 지나 천장마루길까지 갔는데 천장산 가는 길이 통행금지가 되어 되돌아 나온다.
기온이 추울 때 영하 20℃ 정도로 추운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풀이 아닌 나무로 울릉도 성인봉에는 분홍 꽃이 피는 홍만병초,
백두산에는 노랑만병초가 자란다. 이름과 달리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오히려 유독식물이란다.
처음 계획은 천장산을 오를 생각이었는데 기온도 높고 시간도 넉넉하지 않아
청량리 방향으로 내려 가다가 먹자골목 횟집에 들러 뒤풀이를 하고 일정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