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만왕의 왕 내 주께서 (151장)
※말씀: 요한복음 1장 29-42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29절)
■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선교에 일생을 바친 영국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사역자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행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누군가를 간절히 닮기를 원했던 시간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선생님, 이성이나 동성의 친구, 대중스타, 사관생도 등, 대상의 행동이나 말, 옷차림이나 걸음걸이 말투까지 흉내 내려 애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간절함과 소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얼마나 닮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제자로 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겠습니다.
□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 31절을 보면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목적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따로 공동체를 만들거나 교리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하기 위해” 온전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힘썼습니다. 여기서 “나타내려 함이라”의 뜻으로 쓰여진 “파네로데”는 세례요한의 사역이 시간적으로 한정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그의 사역이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단어는 “계시하다”라는 “아포칼립토”와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의 범위를 정확히 알고 그 일만을 성실하게 수행했던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본을 보여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세례요한은 개인적으로 어떠한 욕심도 가지지 않았으며,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힘써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다면 바로 이것, 곧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알게 되고,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본문 38-39절을 보면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떠나 자기를 따른 두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질문을 하십니다. 목적에 대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에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자신의 본심을 감추고 거짓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몰라서 아니라 우리의 태도를 확인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진실 된 마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숨기지 말고 내어놓았을 예수님께서는 바로 잡아주시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러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을 때 예수님이 계신 곳이 어디든지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제자로 선택된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본문 40-41절을 보면,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마자 제일 먼저 자기 형제인 베드로를 찾아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하면서 전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무도 안드레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거나 강요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와서 보라”는 예수님 말씀을 따라 행하였고, 그 결과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안드레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도저히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형제 시몬 베드로에게 먼저 달려가서 그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알려 준 것으로 끝내지 않고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구원의 감격과 전도는 함께 따라다닙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나눠 주면 줄수록 더욱 풍성하게 됩니다. 전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2)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은 곧 예수님을 뒤따르라는 요청적 명령입니다. 단순히 뒤를 따라오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적, 도덕적, 종교적인 추종,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는 적극적인 요청입니다. 이 같은 제자로의 부르심을 듣고도 많은 사람이 자원하여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요구가 너무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제자 됨은 이미 창세전에 정해진 일이며, 오직 위로부터의 도우심을 바라며 예수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제자 됨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므로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누리는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기도
하나님,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