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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東方] 서극[西極]의 묘향산[妙香山]과 살수[薩水] 상[上]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서경[西京] 지역에 있는 묘향산[妙香山]은, 조선[朝鮮]의 사대명산[四大名山] 중[中]에, 그 중[中]의 하나이다.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일찍이 조선[朝鮮] 팔도[八道]의 명산[名山]들을 두루 돌아보고 사산평어[四山評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금강산[金剛山]은 수려[秀麗]하나 웅장[雄壯]하지 못하고 金剛秀而不雄
지리산[智異山]은 웅장[雄壯]하나 수려[秀麗]하지 못하다. 智異雄而不秀
구월산[九月山]은 장엄[壯嚴]하지 못하고 수려[秀麗]하지도 않으며 九月不壯不秀
묘향산[妙香山]은 장엄[壯嚴]하고 또한 수려[秀麗[하기도 하다. 妙香亦壯亦秀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묘향산[妙香山]에 대한 이러한 평은, 묘향산[妙香山]의 모습을 간결[簡潔]하면서도 함축적[含蓄的]으로 표현[表現]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歷史]를 왜곡[歪曲]과 거짓으로 포장[包裝]하고 있는 반도사관[半島史觀]은, 한반도[韓半島]의 북[北]쪽에 있는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 역사[歷史]에 실려 있는 묘향산[妙香山]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先祖]들이 남긴 묘향산[妙香山]에 대한 생생[生生]한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한반도[韓半島]에서는 존재[存在] 할 수 없는 산[山]이라는 것을 웅변[雄辯]하고 있으며 이를 증거[證據]하며 증명[證明]하고 있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에서 말하고 있는 묘향산[妙香山]의 자연[自然] 환경[環境]과 지리[地理]와 지세[地勢], 그리고 그러한 산세[山勢]와 그러한 형세[形勢]의 경관[景觀]을 지닌 산[山]은. 반도[半島]에서는 존재[存在] 할 수 없는 산[山]이다.
조선사[朝鮮史]의 역사[歷史]에서, 하늘에 저 높이 떠 있는 별처럼 영원[永遠]히 빛나고, 천하[天下]의 명장[名將]으로 서릿발 같은 기상[氣像]을 드리우며, 천하[天下] 만고[萬古]의 영웅[英雄]으로 추앙[推仰 ] 받는 고구려[高句麗]의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구려[高句麗]의 웅혼[雄渾]한 기상[氣像]과 지략[智略]을, 천하[天下]에 유감[遺憾]없이 발휘[發揮]하고, 천하[天下]에 그 위세[威勢]를 드날린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
밀려오는 수[隋]나라의 백만대군[百萬大軍]을 일거[一擧]에 쓸어버리고 전멸[全滅]시킨 고구려[高句麗]의 을지문덕[乙支文德],
고금[古今]의 전사[戰史]에 영원[永遠]히 빛나는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이 살수대첩[薩水大捷]은, 청천강[淸川江]이라고도 부르는 살수[薩水]에서 벌어졌다.
이 살수[薩水]는,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여 평안도[平安道]의 안주[安州]를 거쳐 서[西]쪽으로 흘러갔다.
묘향산[妙香山]은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서도[西都]였던 평양[平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位置]하고 있었다,
조선사[朝鮮史] 일만년[一萬年] 역사[歷史]의 서경[西京]은, 근세[近世]의 조선[朝鮮]까지 서관[西關]으로도 불렸다.
그것은 조선[朝鮮] 서북[西北]의 최[最] 변경[邊境] 지역[地域]에 위치[位置]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을 따라가며, 살수[薩水]가 흘러가는 평안도[平安道]의 안주[安州]와 묘향산[妙香山]을 살펴보기로 한다.
추강집[秋江集]
宿安州百祥樓
안주[安州]의 백상루[百祥樓]에 묵으며
樓前大江。源自妙香山。古名薩水。今呼淸川江。
누각[樓閣] 앞의 큰 강[江]은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한 것으로, 옛 이름은 살수[薩水]이고, 지금은 청천강[淸川江]이라 부른다.
隋煬帝前鋒宇文述等三十七萬。溺死於此
수 양제[隋煬帝]의 선봉[先鋒] 우문술[宇文述] 등 37만[三十七萬] 명이 여기에서 익사[溺死]하였다.
수[ 隋]나라와 고구려[高句麗] 싸운 이후로 隋麗事跡後
큰 강[江] 머리에 누각[樓閣]만 남아 있구나. 樓在大江頭
하룻밤에 신령[神靈]스러운 비 一夜神靈雨
쓸쓸히 삼주[三洲]를 지나간다. 蕭蕭過三洲
하물며 백만[百萬] 군사 전멸시켰으니 況覆百萬兵
수[隋]나라 그 일은 수치라 하리라. 隋家事堪羞
고구려[高句麗]는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高麗雖小邦
세상에서 예의지국[禮義之國]이라 일컬으니 世稱禮義區
동명성왕[東明聖王] 신령[神靈]하고 성[聖]스러운 덕 東王神聖德
오늘까지도 백성[百姓]들이 노래 부르네 至今被歌謳
을지문덕[乙支文德] 계책이 신묘[神妙]하기 그지없어 乙支神算周
한 대의 수레도 돌아가지 못하고 隻輪一不返
귀신[鬼神]의 울음소리만 처량히 울린다. 鬼哭鳴啾啾
천년[千年]이 지나도 땅은 변하지 않아 千年地不變
살수[薩水]는 예전처럼 서남[西南]으로 흐르고 薩水西南流
싸움 도왔던 강변[江邊]의 일곱 돌부처 江邊七大士
아무렇게나 서 있은 지 몇 해 이던가 ? 謾立幾春秋 [중략]
옛 조선[朝鮮] 평안도[平安道] 안주[安州]의 오늘날 모습이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대로 이 곳에서 멀리 동북[東北]으로 묘향산[妙香山]이 바라다 보인다.
세상[世上]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수[隋]나라의 백만대군[百萬大軍]을 천리[千里]에 유인[誘引]한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은, 한 편의 시[詩]로서 수[隋]나라의 장수를 조롱[嘲弄]하며 크게 꾸짖는다.
을지문덕[乙支文德]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그대의 신묘[神妙]한 계책[計策]은 하늘의 이치[理致]를 다했고 神策究天文
오묘[奧妙]한 계략[計略]은 땅의 이치[理致]를 다했노라. 妙算窮地理
전쟁[戰爭]에 이겨 그 공[功] 이미 높으니 勝戰功旣高
족[足]함을 알거든 이제 그만 두기를 바라노라. 知足願云止
심전고[心田稿]
晴。安州六十里安興館宿。兵使李鐵求,牧使尹秉烈,兵虞候朴敬悳。
맑음. 안주[安州] 60리를 가, 안흥관[安興館]에서 잤다. 병사는 이철구[李鐵求], 목사는 윤병렬[尹秉烈], 병우후[兵虞候]는 박경덕[朴敬悳]
百祥樓在城東。宏壯軒豁。過於練光亭。而淸川江平鋪於野外。遠近群山。羅立如兒孫。
백상루[百祥樓]가 성[城] 동[東]쪽에 있는데, 넓고 크고 시원스럽기가 연광정[練光亭]보다 나으며, 청천강[淸川江]이 들 밖에 평평하게 펼쳐 있고, 멀고 가까운 산들이 아들과 손자들이 늘어서 있는 듯하다.
저위에 높이 솟은 묘향산[妙香山]의 봉[峯]우리들은 안주[安州]에서 아득히 멀리 구름 사이로 그 모습이 들어나 보인다.
其東北峯。縹緲突起於雲間者。藥山東坮也。眼界爽豁。已覺朔氣逼人。
그 동북[東北]쪽의 봉우리가 아스라이 구름 사이에 우뚝 튀어나온 것이 영변[寧邊]의 약산[藥山] 동대[東臺]이다. 시야가 시원스럽게 트여 벌써 삭막[朔漠]의 차가운 기운이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兩楹揭一聯曰。
두 기둥에 한 연구[聯句]가 걸려 있는데,
들이 광활[廣闊]하니 강물이 가느다랗고 野闊江流細
다락이 높으니 삭막[朔漠]의 기운이 가득하도다 樓高朔氣多
金周默筆也
하였다. 김주묵[金周默]의 글씨이다. [중략]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살수[薩水]가 돌아 흐르며 묘향산[妙香山]과 인접[隣接]하고 있는 평안도[平安道]의 안주목[安州牧]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반도[半島]의 안주[安州]와 묘향산[妙香山]과는 전혀 다른 설명[說明]을 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평안도[平安道]
안주목[安州牧]
형승[形勝],
김극기[金克己]의 시[詩]에, 안팎이 호와 산[湖山],
총총히 성한 정기 외로운 성[城] 얼싸안고, 안팎 호[湖]와 산[山]엔 정말로 영물[靈物] 있구나. 하였다.
이색[李穡]의 시[詩]에, 바다는 서쪽 벽에 연이어 통하고, 산은 동쪽 이웃에 솟아[海連西壁山聳東隣].
바다는 서[西]쪽 벽에 연이어 남국[南國]으로 통하고, 산[山]은 동[東]쪽 이웃에 솟아 북방[北方]으로 들어간다. 하였다.
누정[樓亭], 백상루[百祥樓]
주[州]의 북[北]쪽 성[城]안에 있다.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의 시[詩]에, 청천강[淸川江] 위 백상루[百祥樓]에, 삼라만경[森羅萬景] 벌려 있어 한 눈에 보기 어렵고, 풀은 멀리 긴 둑에 한 줄로 푸르렀네.
하늘에 뻗은 멧부리 천[千]으로 줄지었고, 비단 병풍 속을 나는 외로운 따오기, 옥[玉] 거울 속에 뜬 한 점의 작은 배이네.
속세[俗世]에 선경[仙境]이 있는 것을 믿지 않았더니, 오늘 밀성[密城]에서 영주[瀛洲]를 보는구나. 하였다.
묘향산[妙香山]의 승경[勝景]은 금강산[金剛山]에 견주어도 손색[遜色]이 없다고 하였다. 밀성[密城]은 안주[安州]의 고호[古號]이다.
만경루[萬景樓]
진감[陳鑑]의 시[詩]에, 홀로 높은 누에 올라 경기[京畿]를 바라보니, 만공[滿空]에 차가운 안개 나그네 옷 적셔주네.
만 그루 송음[松陰]의 푸른 언덕 희미하고, 사면[四面]의 성문[城門]은 푸른 산을 굽어본다.
장녕[張寧]의 시[詩]에, 아홉 하늘 서[西]쪽 가면 그곳이 황기[皇畿]인데, 만경루[萬景樓] 안에 들어 잠시 옷을 풀어보네.
진가유[陳嘉猷]의 시[詩]에, 층층[層層]의 난간을 옮겨 기대어 황기[皇畿]를 바라보니, 산[山]의 푸른색은 나그네 옷 물들이네.
기순[祁順]의 시[詩]에, 나그네 길 서[西]쪽으로 가 경기[京畿]를 가리키고, 삼월[三月]의 이역[異域]에서 옷 아직 못 받았네.
요동[遼東] 동[東]쪽 늦은 산[山]은 비를 맞아 푸르고, 계주[薊州] 성문[城門]의 봄 나무는 연기 머금어 희미하다.
인정은 승경[勝景]을 즐겨 두 눈동자 탁 트이고, 시[詩]는 행낭[行囊]에 들어와 만상[萬象] 그려 돌아가네.
안주[安州]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살수[薩水]인 청천강[淸川江],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여 서북[西北]으로 흘러, 오늘날 복해[福海]의 물과 합류[合流]하여 다시 흐르다가, 압록강[鴨綠江]과 합류[合流]하여 요동[遼東]을 관통하고 천하[天下]의 대수[大水]를 이룬다.
진감[陳鑑], 장녕[張寧], 진가유[陳嘉猷], 기순[祁順]등은, 모두 명[明]나라의 사신[使臣]들이며, 당시[當時]의 조선朝鮮]에 사절[使節]로 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평안도[平安道]의 안주[安州]에서 명[明]나라의 황도[皇都]였던 연경[燕京]을 바라보며 그 정경[情景]을 시[詩]를 통하여 노래하고 있다.
안주[安州]의 동북[東北]에는 묘향산[妙香山]이 연접[連接]하여 있었다. 그 들은 서[西]쪽으로 멀지않은 거리에 연경[燕京]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삭막[朔漠]은 사막[沙漠]이 펼쳐진 대막[大漠]의 북[北]쪽 지역[地域]을 말하는 것인데, 평안도[平安道]의 안주[安州]와 묘향산[妙香山]은 이러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은 말하고 있다.
택당집[澤堂集]
題百祥樓
백상루[百祥樓]에 제하다
묘향산[妙香山] 남[南]쪽 아래 유서 깊은 안주[安州] 땅 香山南陸古安州
전승[全勝]을 기약하는 절도사[節度使]의 군영이로다. 大斾開營本勝籌
성[城] 위에서 가지런히 굽어 뵈는 칠불사[七佛寺]요 城勢平臨七佛寺
거꾸로 강[江]에 비친 백상루[百祥樓]의 그림자라. 江光倒暎百祥樓
날뛰는 오랑캐들 병란[兵亂]의 티끌 여전하니 風塵未盡狂胡運
술잔 들며 어떻게 장사[壯士]의 근심이 없으리요. 樽酒能忘壯士憂
수당[隋唐] 때 싸웠던 일 한번 물어보려 해도 欲問隋唐征戰事 [중략]
을지문덕[乙支文德] 사당[祠堂] 아래 물만 무심히 흐르누나. 乙支祠下水空流
동북[東北]으로 보이는 저 산[山]이 묘향산[妙香山]의 기슭이다. 살수[薩水]는 서남[西南]으로 흘러 안주[安州]를 돌아 감싸며 흘러 나간다.
살수[薩水]의 하류[下流]가 되는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仑古湖]에 이르면, 오늘날도 수[數]백리[百里]에 이르는 지역[地域]이 수 많은 작은 호수[湖水]와 수 많은 물길, 그리고 늪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홍재전서[弘齋全書]
경사강의[經史講義]
수 양제[隋煬帝]
高句麗以蕞爾小邦。敵隋煬天下之兵。而終使隋軍敗績。煬帝僅以身免。其戰守之策。雖不可攷。而至於樂浪玄菟。今爲何郡。襄平南蘇。今屬何道歟。
고구려[高句麗]가 조그마한 나라로서 수[隋] 나라 양제[煬帝]의 천하[天下] 막강한 군대와 대적하여, 끝내는 수[隋] 나라 군대를 패퇴시키고 양제[煬帝]는 겨우 목숨만 구하여 돌아갔다.
그 군사 전략에 대해서는 비록 고찰해 볼 수 없지만, 낙랑[樂浪]과 현도[玄菟]가 지금의 어느 군[郡]에 해당되며 양평[襄平]과 남소[南蘇]가 지금의 어느 도[道]에 속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安市城或曰在遼東。或曰在鴨江東。又有安市卽今安州之說。
안시성[安市城]의 위치에 대하여 혹 요동[遼東]에 있다고 하기도 하고, 혹 압록강[鴨綠江] 동[東]쪽에 있다고 하기도 하고, 또 안시성[安市城]은 곧 현재의 안주[安州]라는 설도 있다.
果是安州。則安是野中孤城。四面受敵之地。其所以獨守不下。以禦百萬北來之師者。果用何計歟。
안시성[安市城]이 과연 안주[安州]라고 한다면 안시성[安市城]은 들판 한가운데 외로이 위치한 성[城]으로서 사면[四面]에서 적[敵]을 맞이하게 되는 곳이니, 그 성[城]이 함락되지 않고 홀로 남아 북방[北方]에서 내려온 백만[百萬]의 군사를 막은 것은 과연 무슨 계책[計策]을 썼기 때문인가?
薩水或曰今爲淸川江。乙支文德之潛師請降。宇文述之中流兵潰。未知果在此江。而淸川卽一衣帶水也。尙何能倚爲天塹。恃險出奇歟。
살수[薩水]에 대하여 혹 지금의 청천강[淸川江]이라고 하는데, 을지문덕[乙支文德]이 군사를 몰래 감추어 놓고 항복을 요청한 것과 우문술[宇文述]의 군사가 물속에서 궤멸[潰滅]된 것이 과연 이 강[江]에서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없다.
청천강[淸川江]은 일의대수[一衣帶水]에 불과한데, 어떻게 천연[天然]의 참호[塹壕]를 만들어 험준[險峻]함을 믿고 기이[奇異]한 계책[計策]을 낼 수 있었겠는가 ?
綱目所載。旣失其詳。東史所錄。亦多贗傳。或於野乘佚史有可以考據者歟。
강목[綱目]의 기록[記錄]이 상세[詳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도 또한 대부분 잘못 전해지고 있으니, 혹 야승[野乘]이나 일사[佚史]에서 근거[根據]할만한 자료[資料]가 있는가 ?
幼學李晩膺對。高句麗小國也。而乙支文德破隋師三十餘萬於淸川江上。殺其將辛世雄。如摧枯拉朽。何其壯也。
유학[幼學] 이만응[李晩膺]이 대답하였다.
고구려[高句麗]가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수[隋] 나라 군사 30여만 대군을 청천강[淸川江]에서 격파[擊破]하고 마치 고목나무 가지 꺾듯이 적장 신세웅[辛世雄]을 죽였으니, 어쩌면 그리도 장쾌 합니까 ?
孟子曰地利不如人和。誠哉是言也。但恨文獻無徵。不能詳其戰守之策也。
맹자[孟子]에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다만 증거[證據]할만한 문헌[文獻]이 없어 그 군사전략[軍事戰略]에 대하여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樂浪今之平壤也。玄菟今之德源文川也。襄平南蘇。俱在遼東。今屬奉天府。
낙랑[樂浪]은 지금의 평양[平壤]이며, 현도[玄菟]는 지금의 덕원[德源]과 문천[文川]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양평[襄平]과 남소[南蘇]는 모두 요동[遼東]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은 봉천부[奉天府]에 속해 있습니다.
安市城亦遼東屬縣。而後人妄欲求之於鴨江之東。誠過矣。薩水卽淸川之一名。乙支之潛師請降。宇文之中流兵潰。俱在此江。
안시성[安市城] 역시 요동[遼東]의 속현[屬縣]인데, 후인[後人]들이 망녕되이 압록강[鴨綠江]의 동[東]쪽에서 이를 찾고자 하였으니,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살수[薩水]는 곧 청천강[淸川江]의 다른 이름으로, 을지문덕[乙支文德]이 군사를 몰래 감추어 놓고 항복을 요청한 것과, 우문술[宇文述]의 군사가 물속에서 궤멸[潰滅]된 것은 모두 이 강[江]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而今則不過一小津耳。無乃古之大江。今或堙而爲小耶。抑古之渡涉在下流廣闊處耶。山川變易。沿革無常。以臣謏寡。不敢質言。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소진[小津]에 불과하니, 옛날에 큰 강[江]이었던 것이 지금은 혹 물줄기가 막혀 작아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옛날에 수[隋]나라 군사가 강[江]을 건넌 것은 하류[下流]의 광활[廣闊]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산천[山川]의 변화[變化]란 무상[無常]하게 진행되는 것이어서 신[臣]의 좁은 식견으로는 감히 확실[確實]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중략]
살수[薩水]는 하류[下流]에서 복해[福海]인 오륜고호[乌仑古湖]와 합류[合流]하여 흘러 나간다. 그들은 지금 살수[薩水]를, 액이제사하[额尔齐斯河]라고 부른다.
허백당집[虛白堂集]
登安州百祥樓。戲用前韻
안주[安州] 백상루[百祥樓]에 올라 놀이삼아 지난번에 지은 시[詩]의 운[韻]을 써서 짓다.
살수[薩水]가 어찌 중국 땅의 강[江]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 薩水何殊帝子洲 [중략]
허백당집[虛白堂集]의 시[詩]에서 말하고 있는, 살수[薩水]가 어찌 중국 땅의 강[江]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 薩水何殊帝子洲, 의 이 말은 당시[當時]에 조선[朝鮮]과 명[明]나라의 국경[國境]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안주[安州]의 살수[薩水]인 청천강[淸川江]은, 서[西]쪽으로 흘러 당시[當時] 조선[朝鮮]과 명[明]나라의 국경[國境]을 지나 흘러갔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살수[薩水]가 패수[浿水]와 연접[連接]하여 흐르는 강[江]이라고 말하고 있다.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는, 압록[鴨綠江]을 패수[浿水]라고 한다면, 실[實]은 패수[浿水]의 상류[上流]가 된다.
평안도[平安道] 패수[浿水]의 위치[位置]에 대해서는 당시[當時]에도 여러 이설[異說]이 있었다.
압록[鴨綠江]을 패수[浿水]라 하는 설[說], 평양[平壤]의 대동강[大同江]이 패수[浿水]라고 하는 설[說],
안주[安州]의 살수[薩水]를 패수[浿水]라고 하는 설[說], 황해도[黃海道] 평산[平山]의 저탄[(豬灘]이 패수[浿水]라고 하는 설[說] 등이다.
안주[安州]의 살수[薩水]는 하류[下流]에서 압록강[鴨綠江]과 합류[合流]하여 요동[遼東]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이다.
오늘날 현지[現地]에서는 조선[朝鮮] 평안도[平安道]의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와 그 주변[周邊]의 강[江]들을,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
묘향산[妙香山]은, 액이제사하대협곡[额尔齐斯河大峽谷] 그 인근[隣近]을 가가탁해[可可托海]라고 부른다.
살수[薩水]인 청천강[淸川江]은, 액이제사하[额尔齐斯河]라고 부른다.
살수[薩水]의 남[南]쪽에 있는 또 하나의 강[江]이 있는데, 이 강[江]은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여 하류[下流에서는, 오늘날의 복해[福海]에 들었다가,
살수[薩水]와 합류[合流]하여 북[北]쪽으로 흘러, 백두산[白頭山]에 발원[發源]하여 흘러 내려오는 압록강[鴨綠江]과 합류[合流]하여, 요동[遼東]을 관통하여 발해[渤海]로 들어간다.
복해[福海]라고 부르는 오륜고호[乌仑古湖]는, 옛 사람들이 서해[西海]라고 불렀다.
살수[薩水]의 남[南]쪽에 있는 이 강[江]을, 상류[上流]에서는 청하[清河]라고 부르는데, 살수[殺水]의 다른 이름이 청천[淸川]이다.
중류[中流]에서는, 청하[青河]라고 부르고, 하류[下流]에서는, 까마귀 오[乌] 자[字]를 써서 오륜고하[乌伦古河]라고 부른다,
고구려[高句麗]는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의 제국[帝國]이다. 옛 서해[西海]였던 바다는, 오륜고호[乌仑古湖], 또는 복해[福海]라고 부르는데, 그 뜻이 참으로 기묘[奇妙]하다.
옛 까마귀[烏] 무리의 바다라니, 그 뜻이 은연[隱然] 중에 절묘[絶妙]하다.
오륜고호[乌仑古湖]라고 부르는 이 호수[湖水]는, 조선[朝鮮]에서 서해[西海]라고 불렀다. 호수[湖水]의 물이 깊고 호수[湖水]또한 바다라고 부를 만도 하다. 바람이 심하게 일면 창일[漲溢]한 파도[波濤]의 물결이 밀려가고 밀려온다.
택당집[澤堂集]
寄義州崔半刺啓明 夢亮
의주[義州]의 최 반자 계명[崔半刺啓明] 몽량[夢亮] 에게 부친 시[詩]
요동[遼東] 땅 오랑캐의 긴박한 경보[警報] 虜警遼山近
살수[薩水]에 얽혀드는 전란[戰亂]의 기운 兵氛薩水迷
서해[西海]의 바다제비 이윽히 바라보다 應看西海燕
혼자서 미앙루[未央樓]로 발길 돌리곤 하리라. 獨返未央樓
요동[遼東]과 살수[薩水]는 이어져 있었고, 서로 마주 대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연원직지[燕轅直指]에서는, 삭막[朔漠]기운이 음음[陰陰]하니, 참으로 용병[用兵]하여 공명을 세우기에 알맞은 곳이다. 라고 하였고,
또 심전고[心田稿]에서는,
들이 광활[廣闊]하니 강물이 가느다랗고 野闊江流細, 다락이 높으니 삭막[朔漠]의 기운이 가득하도다 樓高朔氣多,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안주[安州]의 북[北]쪽으로는 요동[遼東] 대야[大野]의 천리[千里] 대막[大漠]과, 장백[長白]의 거악[巨嶽]이 삭막[朔漠]의 차가운 기운[氣運]을 머금고 있다.
연원직지[燕轅直指]
晴。寒少弛。留安州。
맑고 추위가 조금 풀렸다. 안주[安州]에 머물렀다.
夜。張妓樂於百祥樓。樓在城西。北枕山爲基。而患地逼仄。拓南城而廣之。俾容民居。
밤에 백상루[百祥樓]에서 기악[妓樂]을 벌였다. 백상루[百祥樓]는 성[城] 서북[西北]쪽에 있어 산을 등지고 세워졌는데, 지대가 좁고 기울기 때문에 남[南]쪽 성[城]을 개척하고 넓혀서 백성[百姓]들이 살게 하였다.
樓之刱。未知在於何時。而占地高。間架宏敞。前臨淸川。川外野色迷茫。朔氣陰陰。眞用武之地也。
누대[樓臺]의 창건[創建]이 어느 때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대가 높은 곳을 택하여 지었다.
그 누대의 간가[間架]가 크고 훤칠하며 앞에는 청천강[淸川江]이 있고, 청천강[淸川江] 건너는 들빛이 아득하며 삭막[朔漠]의 기운이 음음[陰陰]하니, 참으로 용병[用兵]하여 공명을 세우기에 알맞은 곳이다.
淸川卽薩水。而舊逼城而流。憑樓檻可唾。今則稍徙而遠。爲可欠。
청천강[淸川江]은 곧 살수[薩水]로서 옛날에는 성[城]에 바짝 닿아 흐르므로 누대[樓臺] 난간에 기대어 침을 뱉으면 강물에 닿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옮겨 가 멀어졌으니 아쉽다 하겠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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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 상[京都上]
안주[安州]가 또 졸졸 흐르는 강물에 의지하고 있다. 안주성[安州城]에서 살수[薩水]를 내려다보면 위에 백상루[百祥樓]가 있는데, 곧 수[隋]나라 군사가 고구려[高句麗]를 치다가 대패[大敗]한 곳이다.
이 강[江]을 또 청천강[淸川江]이라고도 하며, 성[城] 안에는 안흥관[安興館]이 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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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平安道]
평양부[平壤府]
을지문덕[乙支文德]
수 양제[隋煬帝]가 대장군 우문술[宇文述] 등을 명하여 고구려[高句麗]를 쳤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사자[使者]를 보내 거짓 항복하기를, 만일 군사를 돌리면 마땅히 우리 왕[王]을 모시고 행재소[行在所]에 가서 조회하겠다. 하니,
우문술[宇文述]이 평양성[平壤城]이 험[險]하고 견고[堅固]하여 함락시키기 어려우므로, 그 거짓으로 인하여 드디어 방진[方陣]을 만들어 돌아가는데,
살수[薩水]에 이르러 군사들이 반쯤 건넜을 때 을지문덕[乙支文德]이 들이치니 제군[諸軍]이 모두 무너져 걷잡을 수가 없었다.
하루 낮, 하루 밤에, 4백 50리를 가 압록수[鴨綠水]에 이르렀다. 처음 구군[九軍]이 요수[遼水]를 건널 때에 군사가 30만 5천[三十萬五千] 명이었으나 요동성[遼東城]에 돌아가니 겨우 2천 7백[二千七百] 명이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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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平安道]
안주목[安州牧]
산천[山川]
청천강[淸川江], 살수[薩水]라고도 이름하는데 묘향산[妙香山]에서 나와 주[州]의 북[北]쪽 성[城] 밑을 지나 서[西]쪽으로 30리를 흘러 박천강[博川江]과 합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천험[天險]으로 솟아 있는 묘향산[妙香山]의 계곡[溪谷]에서 발원[發源]하는 청천강[淸川江]인 살수[薩水]는, 바다[海]에 들었다가 다시 압록수[鴨綠水]와 합류[合流]하는 물이다.
조준[趙浚]의 시[詩]에, 살수[薩水] 출렁거려 푸른 하늘에 잠겼는데, 수병[隋兵] 백만[百萬]이 고기가 되었구나.
지금도 아직 어초부[漁樵夫]의 이야기 남았으나 나그네의 한갓 웃음거리도 되지 않네. 하였다.
김식[金湜]의 시[詩]에, 조선[東藩] 수십[數十] 주[州]를 두루 돌아서 물가 정자[亭子] 구름 속 높은 누각[樓閣]에 머무는 것 버릇되었네. [중략]
가득한 맑은 물은 박천[博川]을 닮았으며, 두 강[江]은 서로 가까우나 연하지 않았더라. 늘어선 산[連山] 끊어진 곳엔 모래 많고, 길은 평평한 들녘을 돌 때는 수전[水田] 사이를 지나네.
나루터 한가한 정자[亭子] 나직한 나무 스치고, 성두[城頭]의 높은 누각[樓閣] 하늘까지 솟았더라. [중략]
기순[祁順]의 시[詩]에, 살수[薩水] 흐르는 곳 얼마나 깊었는가 ? 춘풍[春風]에 사절[使節] 가지고 우연히 등림[登臨]하니, 양 언덕 끊어져 막힌 곳 티끌 흔적[痕迹] 하나 없고,
한 거울 평평하게 열어 놓은 듯 도심[道心]을 본 듯하네.
눈 쌓인 한 산[山]은 백벽[白壁]을 안은 듯, 구름 깨고 나온 햇빛 황금 물결에 출렁이네.
성두[城頭]의 피리 북소리 갈 길을 재촉하니, 중류[中流]에 띄워 놓고 시[詩]를 읊노라. 하였다.
사가집[四佳集]
次淸川江韻
청천강[淸川江]에 차운하다.
동한[東韓]의 좋은 산천[山川] 껴안고 돌아 흐르는데 東韓襟抱好山川
박천강[博川江]은 용용[溶溶]하고 살수[薩水]와 서로 연[連]하여 흐른다. 博水溶溶薩水連
수[隋]나라 욕보인 옛일은 한번 웃을 만하구나. 往事孤隋堪一笑
성조[聖朝]는 만백성[萬百姓]이 경착[耕鑿]의 태평을 이룩하였도다. 聖朝耕鑿萬家煙
묘향산[妙香山]으로 들어가는 계곡[溪谷]의 입구[入口]이다.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하여 흘러 내리는 청천강[淸川江]은, 계곡[溪谷]을 지나면서 물이 불어 강[江]의 모습을 이룬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백상루[百祥樓]
먼 나그네 시름이 끝도 없더니 遠客愁無緖
누[樓] 오르니 잠시나마 안색이 풀린다. 登樓暫解顔
밀물 소리 살수[薩水]를 두들겨 오고 潮聲鳴薩水
푸른 안개는 묘향산[妙香山]을 휘몰아치네. 嵐氣撲香山 [중략]
계산기정[薊山紀]
초칠일[初七日] 무술[戊戌]
淸川江
청천강[淸川江]
江在安營城北。西路之稱淸南淸北者。所以限此江也。亦名薩水。
강[江]은 안주[安州]군영의 성[城] 북[北]쪽에 있다. 서도[西道]의 길에서 청남[淸南]과 청북[淸北]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 강[江]을 한계로 한 것이다.
또한 살수[薩水]라고도 부른다.
俗傳漢龔遂。當渡淸川。勺而嘗之曰。上流當有菩薩。因以名水云。而史無龔遂東來之文。且西漢世安有菩薩名哉。必齊諧說也。
세속[世俗]에 전해지기는, 한 대[漢代]의 공수[龔遂]가 청천강[淸川江]을 건넜는데 그 물을 떠서 맛보고 말하기를, 상류[上流]에는 틀림없이 보살[菩薩]이 있을 것이다.’라고 해서, 그 말에 따라 강물의 이름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역사[歷史]에 공수[龔遂]가 동[東]쪽에 왔다는 글이 없고, 또 서한[西漢] 시대에 어찌 보살[菩薩]이라는 명칭[名稱]이 있었겠는가. 틀림없이 제해[齊諧]의 설일 것이다.
청천강[淸川江]은 남북[南北]을 갈라 놓았고 淸川限南北
천리[千里]에 막막한 구름 떠 있구나. 千里漠雲浮 [중략]
위성지도 출처, 구글어스
이계집[耳溪集]
환평양[還平壤]
성인[聖人]의 덕화[德化]는 고금[古今]을 초월하고 聖化卽今超古
인가[人家]의 밥 짓는 연기 천리[千里]의 용만[龍灣]과 접[接]해 있다. 人烟千里接龍灣
살수[薩水]인 청천강[淸川江]은, 북[北]쪽의 용만[龍灣]과 남[南]쪽 평양[平壤]의 천리[千里] 사이에 있는 중심[中心] 지역[地域]을 흐르는 강[江] 이었다.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에서도, 살수[薩水]는 관서[關西]의 반[半]을 관통[貫通]한다고 말하고 있다.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송약산사군이수[送藥山使君 二首]
황정으로 얼굴도 늙지 않고 그대로 顔有黃精駐
향악[香嶽]의 기이한 인연 당연한 일이니 緣應香嶽奇
살수[薩水]가 관서[關西]의 반[半]을 관통하고 薩水關西半
준령[峻嶺]의 지맥이 압류[鴨流]를 가로막는 곳 嶺支捍鴨流
요새지는 무엇보다 지리[地利]가 으뜸이니 控要元地利
도호부[都護府] 설치는 장대한 변방의 계책이라. 開府壯邊籌
천연[天然]의 절벽[絶壁] 그대로 높은 성첩[城堞]이요. 峻堞隨天壁
막부를 옹위하는 막강한 군대로다. 雄兵擁碧油 [중략]
묘향산[妙香山]은 동방[東方]의 천험[天險]을 지닌 천하[天下]의 명산[名山]이라고 하였다. 반도[半島]의 북[北]쪽에 있는 자칭[自稱] 묘향산[妙香山]과는 비교 할 수 있는 산이 아니다.
고봉집(高峯集
次百祥樓韻
백상루[百祥樓]의 시[詩]에 차운하다.
성북[城北]에 누[樓] 높으니 귀신이 솜씨 바쳐 城北樓高鬼效工
구름 위로 날아올라 맑은 하늘을 누르네 翶翔雲際壓晴空
묘향산[妙香山] 고운 기운 붉은 두공에 날아오고 香山縹氣飛朱栱
발해[渤海]의 서광[瑞光]은 그림 창살에 은은하네 渤海祥光隱畫櫳
구름이 짖게 드리운 가을날의 묘향산[妙香山] 모습이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대로 산[山] 자체가 기암[岩壁]의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數] 십리[十里]에 이르는 깎아지른 기암[奇巖]의 절벽[絶壁]은 가히 천하[天下]의 형승[形勝]을 자랑한다.
평안도[平安道]의 안주[安州]와 묘향산[妙香山]은, 발해[渤海]의 서광[瑞光]이 그림의 창살에 은은하다. 渤海祥光隱畫櫳 의, 이러한 지역[地域]에 위치[位置]하고 있었다.
계곡집[谿谷集]
送林東野點馬赴關西
말을 점고[點考]하기 위해 평안도[平安道]로 떠나는 임동야[林東野]를 전송하며
명승[名勝] 독차지한 평안도 지방 關右擅名勝
이번 걸음 그야말로 신선 놀음일세 此行眞若仙
묘향산[妙香山] 사찰[寺刹]의 안개와 노을 煙霞妙香寺
패강[浿江]에 배 띄우고 한 곡조 뽑으리라 歌吹浿江船
천하[天下]의 삼대수[三大水]로 본다면, 묘향산[妙香山]의 살수[薩水]는, 수 많은 압록강[鴨綠江] 지류[支流]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패수[浿水]는,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이 다르나, 평안도[平安道]의 지역에 있는 강[江]이었다.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에, 묘향산[妙香山]은 사백리[四百里]에 걸쳐 있는 큰 산[山] 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부절[符節]을 합친 듯이 일치[一致]하고 있다.
계산기정(薊山紀程)
博川江
박천강[博川江] 에서
大定江間於嘉山,博川。海潮往來。舟楫輻湊。江民多饒於財。而博川守。亦專賴此地之利
대정강[大定江]이 가산[嘉山]과 박천[博川] 사이에 있는데 바다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배가 몰려들므로, 강[江]가 백성[百姓]들이 대부분 부요[富饒]하고, 박천[博川] 원 역시 오로지 이곳의 생리[生利]에 힘입게 된다.
自此雨不作。前行經寧邊府。畧望見藥山盤據西南。松翠迷茫。雲烟搖。使人神往不能已。至淸川江。日已匿景矣。持火入安寧城東門。
여기서부터 비가 오지 않으므로 전진하여 영변부[寧邊府] 지경을 지나며 바라보니 약산[藥山]이 서남[西南]쪽에 서려 있는데, 소나무의 푸른 그늘이 아물아물 아득하고 구름과 안개가 날리며 모여,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을 팔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청천강[淸川江]에 이르자 해가 벌써 넘어갔으므로 횃불을 들고 안녕성[安寧城] 동문으로 들어갔다.
묘향산[妙香山] 가을의 모습이다. 묘향산[妙香山] 천첩[千疊]의 봉[峯]우리는 늘어선 옥 같으리라. 妙香千疊玉嶙岣
묘향산[妙香山]은, 천첩[千疊]의 봉[峯]우리리가 되고도 남는 웅장[雄壯]한 산[山]이다.
조선[朝鮮]의 세종[世宗] 때에, 여진[女眞]이 침입[侵入]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하여, 최윤덕[崔潤德]을 시켜서 설치했던 사군[四郡]중의 하나인 자성[慈城]은, 압록강[鴨綠江]의 연변[沿邊]에 있었으며, 묘향산[妙香山]의 북[北]쪽에 있었다.
세종[世宗] 23년에 무창[茂昌], 여연[閭延], 구성[龜城], 우예[虞芮], 강계[江界], 자성[慈城] 네 군[四郡]을 설치하였다.
이 자성[慈城]에 대하여, 매천집[梅泉集]에서는 다음과 같이 시[詩]를 읊고 있다.
매천집[梅泉集]
送錦士明府移任慈城
자성[慈城]으로 임소를 옮겨 부임하는 금사 명부를 전송하다.
청천강[淸川] 한 굽이는 강물이 은빛이고 淸川一曲江如銀
묘향산[妙香山] 천첩[千疊]의 봉우리는 늘어선 옥 같으리라. 妙香千疊玉嶙岣
관서[關西]의 산수 풍광은 천하[天下]에 짝이 없으니 關西山水天下無
병주[幷州] 쪽을 바라보건대 구름이 실낱같으니 回首幷州雲似縷
판여[板輿]는 이 이천 리 길을 행차하기 어려우리라. 板輿難行二千里
기암[奇巖]으로 이루어진 묘향산[妙香山]의 수려[秀麗]한 암봉[岩峯] 모습
병주[幷州] 쪽을 바라보건대 구름이 실낱같으니 回首幷州雲似縷,..... 평안도[平安道]인 관서[關西]의 묘향산[妙香山]과 자성[慈城]은, 병주[幷州]를 바라 볼 수 있는 이러한 지역[地域]에 있었다.
병주[幷州]는 연경[燕京]이 있던 유주[幽州]에 속한 지역 이었다.
동강유집[東江遺集]에서는 병주[幷州]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시[詩]를 읊고 있다.
次上使夢歸韻 二首
상사[上使]가 돌아가는 꿈을 읊은 시[詩]에 차운하다 이수[二首]
병주[幷州]를 고향이라 말했던 이 그 누구인가 ? 誰道幷州是故鄕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 타고 빨리 달리며 逢人箇箇皆馳突
허리에 장검 차고 전통에 화살 꽂았구나. 長劍橫腰矢揷房
연경[燕京]이 오랑캐 고장 될 줄 어찌 알았으랴. 帝京那意作氈鄕
오랑캐가 말을 달려 석양 먼지 자욱한데 落日飛塵盡胡騎
풍경 소리는 여전히 선방[禪房] 에서 들리는구나. 磬聲依舊落禪房
묘향산[妙香山]은 외부[外部]는 흙산이나 안으로는 기암[奇巖]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옛 선조[先祖]들의 기록[記錄]들은 한 치의 오차[誤差]도 없이 정확[正確]하다.
사가집[四佳集]
次韻正使朝鮮雜詠十首
정사[正使]의 조선잡영[朝鮮雜詠] 10수[十首]에 차운하다.
수[隋]나라는 먼 나라 정벌을 일삼아 隋家事遠征
대군을 거느리고 요수[遼水]를 건널 제 勞師渡遼水
수많은 깃발은 태양 빛을 가리고 旌旗翳白日
군함은 아득히 천리[千里]나 뻗쳤기에 舳艫彌千里
드높은 위엄이 동해[東海]를 진동하여 威靈振東海
변성이 모두 바람에 쓸리듯 했는데 城守俱風靡
묘향산[妙香山]은 우뚝하기도 하여라 妙香山嵯峨
패수[浿水]의 근원이 여기서 시작하여 浿水發源派
묘향산[妙香山]은 산[山] 아래에는 꽃이 피고, 산[山]위에는 백설[白雪]이 하얗게 쌓이는 웅장[雄壯]하고 장엄[莊嚴]한 산[山]이었다.
내려와 송양[松壤]의 도읍을 지나서 來經松壤都
현도[玄菟]의 경계를 안고 흐르는구나. 襟抱玄菟界
단군[檀君]은 서거한 지 이미 오래거니와 檀君逝已久
기자[箕子]가 남긴 풍속은 맑기도 해라 箕子遺風淸 [중략]
사가집[四佳集]의 이 시[詩]에서 말하는 패수[浿水]는, 압록수[鴨綠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도[玄菟]는 요동[遼東]의 북[北]쪽에 있었다고 역사[歷史]는 기록[記錄]하고 있으며, 요동[遼東]과 잇닿아 있었다.
송양[松壤]은 평양부[平壤府] 강동현[江東縣]의 옛 이름이다.
묘향산[妙香山에서 발원[發源]한 살수[薩水]는 송양[松壤]의 도읍[都邑]을 지나서,
서[西]쪽으로 흘러 서해[西海]에 들었다가, 다시 흘러 하류[下流]에서 압록수[鴨綠水]와 합류[合流]하여 요동[遼東]을 관통하며 현도[玄菟]의 경계[境界]를 안고 흘러간다.
묘향산[妙香山] 남[南]쪽 아래 유서 깊은 안주[安州] 땅 香山南陸古安州
청천강[淸川江]은 남북[南北]을 갈라 놓았고 淸川限南北
살수[薩水]가 관서[關西]의 반[半]을 관통하고 薩水關西半
준령[峻嶺]의 지맥이 압류[鴨流]를 가로막는 곳 嶺支捍鴨流
청천강[淸川江] 건너는 들빛이 아득하며, 삭막[朔漠]의 기운이 음음[陰陰]하니, 참으로 용병[用兵]하여 공명을 세우기에 알맞은 곳이다. 川外野色迷茫。朔氣陰陰。眞用武之地也。
들이 광활[廣闊]하니 강물이 가느다랗고 野闊江流細
다락이 높으니 삭막[朔漠]의 기운이 가득하도다 樓高朔氣多
향악[香岳]은 멀리서 굽어보고, 대야[大野]끝이 없는데, 香岳遠拱。大野無際
요동[遼東] 땅 오랑캐의 긴박한 경보[警報] 虜警遼山近
살수[薩水]에 얽혀드는 전란[戰亂]의 기운 兵氛薩水迷
그 동북[東北]쪽의 봉우리가 아스라이 구름 사이에 우뚝 튀어나온 것이 영변[寧邊]의 약산[藥山] 동대[東臺]이다. 其東北峯。縹緲突起於雲間者。藥山東坮也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트여 벌써 삭막[朔漠]의 차가운 기운[氣運]이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眼界爽豁已覺朔氣逼人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층층[層層]의 난간을 옮겨 기대어 황기[皇畿]를 바라보니, 산[山]의 푸른색은 나그네의 옷을 물들이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나그네 길 서[西]쪽으로 가 경기[京畿]를 가리키고, 삼월[三月]의 이역[異域]에서 옷 아직 못 받았네.
요동[遼東]의 동[東]쪽 늦은 산[山]은 비를 맞아 푸르고, 계주[薊州] 성문[城門]의 봄 나무는 연무[煙霧] 머금어 희미하다.
우리의 선조[先祖]들이 남겨놓은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지금도 생생[生生]히 살아 숨 쉬고 있으며, 현지[現地]에 그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남북[南北]으로 천리[千里], 동서[東西]로 천리[千里]를 훌쩍 넘어서는 조선[朝鮮]의 평안도[平安道],
이 지역[地域] 속에는, 지금도 일 만년[一萬年]의 조선사[朝鮮史]를 고증[考證]하고 증거[證據]하며 증명[證明] 할 수 있는 우리 선조[先祖]들의 고적[古跡]과 유물[遺物]들이, 천년[千年]의 깊은 잠을 자며 조선사[朝鮮史] 역사[歷史]의 후예[後裔]들을 기다리고 있다.
거짓과 왜곡[歪曲]의 반도사관[半島史觀]을 되뇌이는 자들은, 우리의 역사[歷史]를 입에 담을 자격[資格]이 없다.
그 자들은 국민[國民]들의 귀와 눈을 가리며, 국민[國民]들이 역사[歷史]의 본[本] 모습을 알지 못하게 하고,
국민[國民]들과 후세[後世]들을 어리석게 만들고 바보로 만들어, 나라를 망국[亡國]으로 치닫게 하는 자들이며,
자기 자신[自身]의 후손[後孫]들 미래[未來]까지도 철저히 짓밟고 있는 자들이다.
석주집[石洲集]
送朴監司子龍 東亮 赴關西二首
관서[關西]로 부임하는 감사[監司] 박자룡[朴子龍] 동량[東亮] 을 보내며 2수[二首]
방년에 오정[五鼎]의 높은 직위에 올랐으니 芳年五鼎貴
밝은 시대에 일가[一家]의 광영이로다. 昭代一家榮
번득이는 창검[槍劍]의 대열은 멀리 서토[西土]에 이르고 棨戟臨西土
정위[庭闈]는 옛 서울에 근접하여 있구나. 庭闈近古京
황주[黃州]에는 누각의 경치 좋은데 黃州好樓閣
상상 하노니 고금[古今]의 현인[賢人]과 나란히 하리라. 想見二難幷
長公爲養方牧黃州。州之去平壤僅一日程。故篇內及之。
장공[長公]이 어버이 봉양을 위해 황주 목사[黃州牧使]를 맡고 있었다. 황주[黃州]가 평양[平壤]과는 하루 일정의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편[篇]에서 언급하였다.
나라가 번유로 의지하는 중요[重要]지역에 國倚藩維重
공[公]이 지금 부임하니 절제[節制]가 높구나. 公今節制尊
기자[箕子]의 정전[井田] 지금까지 전[傳]해지고 流傳箕子井
대동문[大同門]은 형승[形勝]이 뛰어 나도다. 形勝大同門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의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은, 머나 먼 서토[西土]의 지역[地域]과 인접[隣接]하고 있는 지역[地域]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려[高麗]와 조선[朝鮮]이 일 만리[一萬里]의 대국[大國]이라는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들은, 우리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이며, 우리 역사[歷史]의 사실[史實]이며, 우리 역사[歷史]의 본[本] 모습이다.
위성지도 출처, 구글어스
숭실 대학교 기독교 박물관에 소장[所藏]되어 있는 묘향산도[妙香山圖], 작자[作者]는 미상[未詳]이다.
이 그림은 1700년대[千七百年代]말 후기[後期]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묘향산도[妙香山圖]와 현지[現地]의 묘향산[妙香山]은, 사진[寫眞]을 놓고 그린 듯이 일치[一致]하고 있다.
택당집[澤堂集]
敍事抒情。奉寄關西金方伯 時讓 節下。絶句十二首
관서[關西]의 방백[方伯] 김시양[金時讓] 절하[節下]에게 삼가 부친 칠언 절구[七言絕句]의 서사시[敍事詩]와 서정시[抒情詩] 열두 수
아스라이 줄지어 선 관서[關西] 지방 칠십 개 성[城] 迢遰關西七十城
단군[檀君]과 기자[箕子]가 태평[太平] 시대 열었던 곳 檀神箕敎舊昇平
하늘은 패수[浿水]를 내어 동해에 조회[朝會]하게 하고 天生浿水朝東海
땅은 향산[香山]을 둘러 상경[上京]에 절하게 하는구나. 地匝香山拱上京
반도사관[半島史觀]을 사학[史學]이라고 말하는 그 자체[自體]가, 우리의 역사[歷史]인 조선사[朝鮮史]에 대한 거짓의 왜곡[歪曲]이며 모독[冒瀆]이고 치욕[恥辱]이다.
역사[歷史]는 역사서[歷史書]를 따라가며 옛 모습을 살피고, 고금[古今]의 역사[歷史]를 상고[相考]하며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조선[朝鮮] 사대명산[四大名山] 중[中]의 하나이며, 서산대사[西山大師] 청천백일[靑天白日]의 절의[節義]와 법력[法力]이 깃들어 있는 묘향산[妙香山],
수[水]나라의 백만대군[百萬大軍]을 일거에 쓸어버린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서릿발 같은 기상[氣像]이 살아 숨쉬며, 천하[天下]를 울리고 있는 살수[薩水]인 청천강[淸川江],
삭막[朔漠]의 차가운 북방[北方]의 기운[氣運]이, 대막[大漠]을 오르내리는 요동[遼東]의 천리대야[千里大野]를 마주하며 바라보고 있던 평안도[平安道]의 안주[安州] 고을,
고조선[古朝鮮]으로부터 고구려[高句麗], 고려[高麗] 조선[朝鮮]에 이르는, 묘향산[妙香山]과 안주[安州]는,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의 경계[境界]가 되는 천하[天下]의 중심[中心] 지역[地域]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이어 집니다.
첫댓글 조선사의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뜨는 것 같습니다.
청천강은 살수다라는 것은 공통적인 사실인데, 이 하천이 바로 신강성 북부지방의 "액이제사하"라니!
그런데 "오륜고호(烏倫古湖)"는 상류에 "오륜고하(烏倫古河)"가 알타이산맥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오륜고호"로 들어가고, 이 "오륜고호"는 다시 액이제사하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지형도로 보면...그러나 지도 상으로 보이는 것이므로 알 수 없군요). 이 액이제사하는 西北(서북)으로 흘러 "제상박(자이산 호)"으로 흘러들어가고 이 호수의 물은 다시 북쪽을 향햐 가는데, 이게 이르티슈강이고, 계속 북쪽으로 흘러 오브강과 합류하여 북해에 들어간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오브강'은 그 지류가 굉장히 많은 하천입니다.
반도사관=식민사관에서 중국이라고 하는 왕조(王朝)들은 모두 중앙아세아와 동구라파 및 서남아세아 왕조들을 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역사서에서 말하는 동북 또는 동쪽의 조선이란 기록과 상통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대륙사서라고 하는 많은 원전들을 보면서 도출된 결과와 똑같은 모습입니다.
妙香山(묘향산)은 그 이름부터 예사로운 산은 아니라고 보는데, 과연 놀라운 절경을 가지고 있군요.
문제는 퍠수(浿水)입니다.
패수(浿水)와 평양(平壤)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면......하루아침에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조선사가 오늘날 이런 모양까지 되지 않았겠죠
조선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에, 눈을 뜨게 해주시는 "환국고려"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들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두들기면 열리리라!" 기대합니다.
"환국고려"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늘 겅강하시길 빕니다.
문무 선생님 안녕 하십니까 ?
문무 선생님께서 말씀 하시는 바가 모두 맞습니다.
패수[浿水]와 평양과의 관계는 아득히 멀리 운무 속의 산을 바라 보는 것 같습니다. 희미하게 보이기는 하는데, 분명한 모습을 보기가 녹록치 않습니다.
대동강을 패수[浿水]라고 부르던 것은 사실이나, 이 또한 역사의 기록과 서로 어긋나고 있습니다. 대체로 네개의 패수[浿水]를 사서에서 말하고 있는데, 평산의 저탄을 제외 하고는 모두 평안도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동강도 대륙사와 조선사의 기록이 다소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 속에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서도였던 평양의 대동강에 대한 본 모습을 보는 것이, 패수[浿水]와 평양과의 연관성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리라 보여 집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을 말씀 드린다면, 평양의 모습은 볼 수 있으나, 부벽루의 절벽 아래를 유유히 흐르던 대동강의 모습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옛 모습의 부벽루와 평양의 전각들, 그리고 을밀대의 모습들은 본래의 그 자리에서 변함이 없으나, 대동강의 하류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평양 대동강의 상류들은 변함없이 평양으로 흘러들고 있으나 부벽루 밑을 흐르던 대동강은 없어져 버렸으니, 옛 평양의 성곽을 감돌며 흘러드는 대동강의 모습은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180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만이 남아 있어 옛 평양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 입니다.
그러나 대동강을 제외하고는, 서도인 평양을 고증하고 증거하며, 증명할 수 있는 사료들은 명확하고도 분명 합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도 유유히 흐르던 대동강을, 인위적으로 없애 버린것은 당시의 사진을 통하여 분명히 들어 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자행된 것은, 조선사를 왜곡하려는 자들의 음흉한 책략이 아니고 무엇이 겠습니까 ?
다소 충격이라고 말씀을 드린다면 과장돤 표현이 되겠으나, 이 곳의 현지에는 이 지역이 고려의 평안도 지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 수 많다는 사실 입니다.
이 분들은 그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처음에 이 말을 들었을 때, 적잔이 놀랐던 일들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변함없이 조선사를 위하여, 어렵고 힘든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문무 선생님께, 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문무 선생님의 댁내에, 늘 평안 하시며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소중한 글 봉독하였습니다! 제가 해남 두륜산의 대흥사를 참배한 일이 있는데 그때 안내하시는 원로스님께서 "임진왜란의 승병장인 서산대사께서 돌아가신 후 유골을 묘향산에서 대흥사까지 모셔오는데 3년이 걸렸다는 말씀이어서 북한의 묘향산에서 해남까지 어떻게 그리 오래 걸릴까 의아했습니다.
서산대사께서 대흥사를 두고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종통이 돌아갈 곳(三災不入之處 萬歲不毁之處 宗統所歸之處)”이라 평했으며, 현재 대흥사에는 대사님의 유적비가 있으며 유물을 전시중입니다.
해남과 두륜산에 대해서도 바른 위치가 탐구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환국고려님께 감사드립니다.
로터스님 안녕 하십니까 ?
감사 합니다.
불교의 무상대도는 보이는 것은 공이요. 천하에 아와 상이 없는 것이니, 현재 반도에 있는 대찰들의 유래와 사적들에 대하여 깊이 탐구 한적은 없습니다.
다만 팔만 대장경의 경의를 알아보기 위하여 역사에 기록된 해인사와 불국사는 그 본래의 자리를 확인 하였습니다.
두륜산의 대흥사가 휴정 서산대사의 유골을 모시고 있다는 것은, 로터스님께 처음 듣습니다.
앞으로 해남의 두륜산을 역사의 기록을 따라 그 본 모습을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로터스님의 댁내에, 늘 평안과 건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