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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나안 귀환
에스겔 37:15-28
2023년 2월 12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2023년 현재까지 가나안, 팔레스틴 지역에 세워진 이스라엘 국가(정부)는 아프리카, 유럽, 동유럽, 아메리카 등 각지에서 흩어졌던
열두지파의 후손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희망자들을 이스라엘 나라로 입국시켜서 시민권을 주고 있다(유튜브 등 참고).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팔레스틴(가나안)에 국가를 세운 것이 약 이천년 만에 에스겔 37장의 예언(이스라엘 회복과 귀환)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유튜브, 구글 등 참조). 이것은 부분적(표면적)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본질적(영적으로)으로 2023년 현재 참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다. 예수 안에서 남유다도 북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메시아닉 쥬 등 유대인들 중에 점차 예수를 믿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유튜브, 구글 등 참조).
에스겔 37장 1절-14절은 죽음에서 부활하는 기적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의지를 드러냄으로,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회복되는 것을
다루었다.
바벨론이나 앗수르 등 강대국의 포로에서 해방되는 것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죄악의 포로 상태에 있다. 혹은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포로
상태에 있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누릴 때 사람들은 자유와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오늘 본문 15절 이하는 왕정 시대 두 개로 갈라졌던 왕국이 하나로 합하여지는 회복을 말했다. 이것은 상징 행동을 통하여 표현되었다.
16
선지자는 두 개의 막대기를 가지고 각각 다른 글씨를 새겼다. 하나는 유다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셉에 대한 것이다. 북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로 '이스라엘'을 쓴다(Walther Eichrodt, Ezekiel, London: SCM press, 1970, 512).
여기서는 그 대표로 '요셉'을 쓴 것 같다. 요셉은 그 두 아들 에브라임, 므낫세 두 지파 몫이다.
17
그 두 막대기 혹은 지파들은 선지자의 손 안에서 함께 맞춰진다. 하나의 막대로 보인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하나가 된다는 상징 행위였다.
18 다른 상징 행위처럼 그것을 관전하는 이들이 이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게 된다.
19 이 질문에 따라서 19-22의 설명이 발표된다. 야웨의 이중적 말씀이다. 선지자가 행한 것을 하나님 자신이 실행하리라는 보증이다.
또한 요셉(이스라엘)의 홀과 유다의 홀을 연합하여 그(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의 지팡이를 이룬다. 즉 그(하나님)는 두 개의 갈라진 나라들과
왕국들을 하나로 세우고자 뜻한다.
20 그가 행하는 것으로 그 선지자(에스겔)는 야웨 자신의 대표자로 백성 앞에 나타난다.
21 야웨께서 그 나라들 중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에 속한 모든 이들을 데리고 그들의 이전 고국땅으로 돌아오게 한다.
22 그들이 돌아와서 한 왕 아래서 영원히 한 나라가 되어 살게 된다.
23 더 이상 그들이 범죄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24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이 나의 법규와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다.
25 내가 야곱에게 준 땅에서 그들이 자손대대로 살 것이다.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
26 내가 그들과 영원한 평화 언약을 맺을 것이다.
27 내 처소(성소)가 그들 중에 있어서 나는 그들의 하나님,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내 성소가 그들 중에 영원히 있어서, 그 나라 들이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케 하는 야웨인 줄 알 것이다.
회복은 유다에 국한되지 않는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포함한다.
에스겔 4:4-8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함께 언급했다. 에스겔의 상징 행위(4:4-8)는 선지적 행동이다. 비유적 혹은 회화적 형태로
백성들(포로기)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표적(sign)을 주기 위하여 에스겔은 190일간 누워있었다. 믿기 어려운 고난의 행위였다. 비난하는
이들이 그를 강경증(catalepsy, 몸이 굳는 병)을 앓는 병자로 여겼을 수 있다(Walther Eichrodt, Ezekiel,
London: SCM press, 1980, 83).
그 선지자(에스겔)는 범죄한 나라들, 이스라엘과 유다를 함께 통합하는 것을 자기 몸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그들의 범죄에 대한 형벌을 받고
그 기간이 같은 시점에 끝나게 된다. 그 선지자가 침묵과 마비의 상징 행동으로 예루살렘 멸망을 나타낼때, 그 선지자는 열두지파들이 모두 함께
다시 하나가 되는 소망을 묵상하고 있었다(Walther Eichrodt, Ezekiel, London: SCM press, 1980, 513).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범죄로 인하여 그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갈라졌다. 그 초기 약 3년 동안 솔로몬 아들 르호보암은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했다(역대하 11:17). 그러나 르호보암 왕국이 굳건해지니 그가 야웨의 토라를 떠났고 모든
이스라엘도 그와 함께 떠났다(역대하 12:1).
르호보암이 토라의 길로 갔던 그 3년 동안 모든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그들의 목초지들과 소유지를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왔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과 그 고관들이 야웨께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임의로 제사장들을 세워서 산당들과
숫염소들과 그가 만든 송아지들을 섬기게 했기 때문이다(역대하 11:14-15).
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따라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를 찾으려고 그들의 마음을 정한 자들이 그들 조상의
하나님 야웨께 제사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왔다(역대하 11:16).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소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 할것이며 그 때에 유다 족속이 이스라엘 족속과 동행하여 북에서부터 나와서 내가 너희
열조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함께 이르리라
예레미야 3:14-18 KRV
북이스라엘의 포로 생존자들 혹은 그 후손들이 유다 족속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는 것이다. 그 백성이 일단 택함 받으면 끝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다(Walther Eichrodt, Ezekiel, London: SCM press, 1980, 513-14).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이스라엘(남북)에 주시고 지식과 명철로 그들을 양육한다고 예언했다. 부분적으로 스룹바벨이나
에스라 혹은 느헤미야 등이 그런 목자에 부합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에스겔은 두번째 다윗을 하나님이 세우실 것을 예언했다. 두번째 다윗, 즉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두번째 다윗이 세워지면 갈라진 이스라엘 나라가 통일되어야 한다. 유다는 자기 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았던 북이스라엘 형제들을
배척했다. 두번째 다윗의 지도하에 하나님의 본래 구원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다(Walther Eichrodt, Ezekiel, London:
SCM press, 1980, 514).
하나님의 본래 구원의 목적이 무엇인가? 택한 자들을 끝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28 내 성소가 그들 가운데 영원히 있을 때 그 나라들은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야웨인 줄 알 것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의 이런 행위들이 이교도에게 주는 인상에 대한 암시로, 그 약속이 결론을 맺는다(참고 에스겔 36:36).
너희 주위에 남은 그 이방 나라들은 나 여호와가 그 허물어진 것들을 지었고 그 황폐한 곳에 심은 줄 알 것이다. 나는 야웨다. 내가 말하고
내가 행한다(에스겔 36:36).
야웨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그의 성소를 영원히 세운다는 사실에서, 야웨께서 이스라엘을 성결케 하는 분 임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거룩하게 하는 것(히, 카데쉬)"은 죄 혹은 그 결과와 연계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하여 불완전하게 성취된 이 약속(성소를 세우고 백성을 성결케 함)은, 이스라엘이 야웨의 길로 행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로워질 때 미래에 온전히 실현될 것이다(C. F. Keil, Ezekiel 29-48,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3, 137).
야웨께서 그의 회복된 백성가운데 그의 성소를 세우리라는 것과 거기에 영원히 그가 그들 위에 거하리라는 약속은 중요하다(37:26-28).
그 조상들에게 준 그 땅 안에서 가나안 회복의 성취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것은 이스라엘 족속이 팔레스틴에 회복된다는 의미인가.
혹은 영적으로 이스라엘 족속이 함께 모여 야웨 그들의 하나님과 구주(Savior)에게 회심하고, 그리스도가 창설한 하나님 나라에 입문하는
것인가. 이 경우, 가나안은 구약의 하나님 나라 장소이다. 가나안은 하늘 나라에 대한 땅의 예표이다. 하늘나라는 기독교 교회 안에
나타났다(C. F. Keil, Ezekiel 29-48,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3, 138).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고대하고 여전히 그의 도래를 소망한다. 그들이 팔레스틴에 회복되는 것 뿐만 아니라, 시온 산 위에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고, 성전이 재건되길 소망한다. 또한 레위법의 희생 제사가 드려지길 바란다.
반면에 신약 성경 교리를 근거로 기독 교회는, 옛 언약과 레위 성전과 예배(희생 제사)가 폐지되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온전한
성취를 이루셨고 그리스도가 드린 (십자가) 속죄 제사가 영원한 효력을 갖는다고 믿는다(C. F. Keil, Ezekiel 29-48,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3, 138).
이에 더하여 구약의 하나님 나라 형식은 폐지되고, 팔레스틴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계시의 선택된 땅이라는 것도 멈추게 된다. 새 언약
아래서 가나안은 새언약의 이스라엘로 확장된다. 새언약의 이스라엘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땅끝까지 퍼져 나간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성령안에서
그리고 진리안에서 예배하는 곳이 시온 혹은 예루살렘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과 함께 하는 곳,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의 마음에
거하는 것이 시온 혹은 예루살렘이다(C. F. Keil, Ezekiel 29-48,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3, 138).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그와 함께 시작된 하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의 개념이 확장된다. 아브라함의 계보적 자손이 아니라, 유대인 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들의 교회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C. F. Keil,
Ezekiel 2948,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3, 143).
유대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거부했다. 그분 안에서 계시된 은혜와 진리를 거슬러서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 그러나 구약의 약속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로마서 11)에 의하면 유대 백성(택함받은)은 결국 회개할 것이다. 한 백성으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다(같은책, 143). 점차적으로 유대 백성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중이고, 그 일이 지속될 것이다(메시아닉 쥬).
주님의 교회가 지구촌 곳곳에 퍼져나가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거하는 곳은 거룩한 땅, 가나안이 될 것이다(같은책,144).
주님께 죄 용서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아브라함은 할례자의 조상이고 또한 우리와 같은 무할례자의 조상이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로마서 4:7-13).
가나안은 세상의 혹은 땅의 모형이다. 믿음으로 그 족장(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자들이 차지한다(창 12:).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이삭을 통하여 이어졌다. 아브라함과 하갈 혹은 그두라 사이에 태어난 자녀들은 그 약속을 이어받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지만 약속의 자녀들은 되지 못했다. 이삭과 리브가는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에서 야곱으로 이어졌다(C. F. Keil, 144-45).
이사야 34:5의 에돔은 에돔 족속에 대한 예언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로서 인류 세계에 대한 상징적 지칭이다. 그러한 인류 세계가
야웨의 속량함을 받아서 시온으로 돌아온다. 이방인도 유대인도 가릴것 없이 속량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에 더해지는 것이고, 하늘 예루살렘의
축복에 들어온다(C. F. Keil, 148).
에돔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계를 대표하듯이(이사야 35:1-36:15), 이스라엘 땅은 팔레스틴이 아니다. 메시이의 나라는 바다에서 바다로
펼쳐지는 경계이고, 강에서 세계의 끝으로 이어진다(시편 72:8, 스가랴 9:10; C. F. Keil, 149).
로마서 11장에서 바울 사도는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 까지 이스라엘 일부가 완악하여 지고, 그 이후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된다. '시온에서 구원자가 나와서 야곱의 불경건함을 돌이키리라(이사야 59:20)'(로마서 11:25-26; C. F. Keil,
150-52). 이스라엘 중의 택함받은 자들이 돌아온다.
예수님의 초림은 베들레헴(미가서 5:1)에서 나셨다. 주님의 재림은 시온에서 난다. 시온은 지리적 시온 산이 아니고, 선지적, 모형적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중심 좌소이다(C. F. Keil, 153-54).
신약 성경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과 레위 제사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골고다 위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이 화해를
완성하였다. 레위 법에 따른 제사와 성전 섬김은 성취되었고 폐지되었다(히브리서 7-10장). 그리심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참예배자들이
아버지께 성령과 진리안에서 예배할 때가 온다고 예수님이 선언하셨다(요한복음 4:21-24; C. F. Keil, 156). 바울 사도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했다(롬 12:1).
야웨께서는 그의 성소 즉 성전을 그의 구속받은 백성가운데 세우고, 거기에 그들과 함께 영원히 거할 것을 약속하셨다(에스겔
37:27-28).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돌아오는 것은 영적으로 모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믿게 될 때, 유대 백성이
팔레스틴에 돌아오는 것이다(C. F. Keil, 15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예레미야 31:31 KRV).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예레미야 31:33 KRV).
새언약은 그 마음에 기록한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마음에 새언약을 기록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유대인의 변화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일 역시 하나님의 성령으로 되는 것이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요한계시록 21:22 KRV).
성전 재건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기 때문이다. 또한 믿는 자들의 무리가 성전이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믿는 자들 가운데 영원히 거하신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하나가 되어 시온이요 예루살렘인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교회안에서 이방인도
유대인도 하나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가나안이요 시온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믿고 교회안에 들어오는 것이 참된 이스라엘의
가나안 귀환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된 저와 여러분이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