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법 부추기는 부동산정책
4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종합상가에 자리 잡은 부동산에 매물판 대신 `종부세 상담`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 2일 인천 송도의 한 택지개발지구를 찾았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이곳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A씨는 "같은 아파트, 같은 평형 분양권이 어떤 날은 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고 신고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4억원에 거래됐다고 신고되기도 한다"며 "단속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매도자나 매수자나 부담 없이 다운계약서를 작성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양도세 납부에 부담을 느낀 분양권 매도인들이 다운거래를 먼저 제안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트렌드가 바뀌었다. 공인중개사 B씨는 "양도세율이 뛰면서 분양권 매도인들이 매수인에게 양도세를 대신 납부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이렇게 되자 매수인들이 먼저 '다운계약서를 쓰자'고 요구한다"고 전했다. 매도인은 어차피 양도세를 직접 내지 않으니 다운계약서를 쓰든 안 쓰든 상관없지만 매수인에게는 다운계약서를 써서 매매가를 낮게 신고하면 양도세를 덜 낼 수 있어 이득이다. B씨는 "매수인에게 불리한 조건임에도 입주 후 아파트 값이 오를 것이라 보고 분양권을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8월 국회를 통과한 세법 개정안에 따라 지난 6월부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가 적용되면서 이 같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분양권 양도는 2주택자에게 기본 세율에 20%포인트를, 3주택자에게는 30%포인트를 중과해 양도세 최고 세율이 75%에 이른다. 보유 기간이 1년 미만인 단기 매매에 대해선 최고 70%의 양도세가 부과된다. 1년 이상 보유한 뒤 팔아도 입주 전까지는 60% 양도세를 물어야 한다. 기존에는 비규제 지역의 경우 분양권 1년 미만 보유자는 50%, 2년 미만은 40%, 2년 이상은 양도차익에 따라 6~45%의 양도세율이 적용됐다. 그러나 지난달부터는 조정 지역과 비조정 지역 간 양도세율 차등을 없애고 동일한 세금을 매긴다. 이렇다 보니 분양권 투자자들은 다운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비규제 지역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비규제 지역 '피팔이(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분양권에 프리미엄을 얹어서 파는 사람)'들은 '단타(단기거래)' 치면 70% 세금을 내야 하니까 어떻게든 다운 거래를 하려고 한다"며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매수자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다운계약서 작성과 함께 최근 늘고 있는 탈법 행위 중 하나는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명의신탁'이다. 다주택자나 부동산 법인이 본인 혹은 법인 소유 주택을 가족이나 친인척 명의로 분산시켜 종부세 합산 부담을 줄이는 방법이다.
다주택자 B씨는 지난해 말 3억원 이하인 인천 재개발 주택을 모친 명의로 매수했다. 본인 명의로 서울에 1채, 남편 명의로 경기도 안산에 1채를 보유해 추가 투자하려면 취득세와 보유세, 양도세 등이 치솟게 된다. B씨는 "자녀들 시집 장가 갈 때 보태줄 요량으로 투자하고 싶은데 규제 때문에 내 이름으로는 못하니 모친 이름을 빌렸다"며 "정부가 노후 보장은 안 해주면서 투자 길은 다 막아놓아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썼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는 "누가 법적으로 보호도 못 받고 적발 시 처벌도 받는 명의신탁을 하겠느냐"고 말하지만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에 따르면 실제 이 같은 내용으로 상담을 의뢰하는 사람이 많이 늘었고,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서울 서초동 한 변호사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다주택자는 알짜 지역 부동산을 어떻게든 계속 보유하려고 한다"며 "이때 보유세 부담이 커질 수 있는데 이를 회피하려고 명의신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부세에 부담을 느낀 은퇴자 부부가 '위장 이혼'을 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50대 후반인 C씨 부부는 서울 강남구 아파트 1채, 강동구 아파트 2채를 공동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올해 예상 종부세만 3000만원이 넘는다. 이들은 이혼 후 아파트를 나눠 단독 명의로 보유할 계획이다. 결혼을 유지한 상태에서 각각 아파트를 부부 중 한 명의 단독 명의로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이혼으로 인한 소유권 이동과 달리 증여세가 발생한다. C씨는 "오죽하면 가짜 이혼까지 생각하겠느냐"며 "말도 안 되는 정부 정책에 편안한 노후를 보내려던 계획이 엉망이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낸 다음 슬그머니 새 세입자를 들이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엄정숙 법률사무소 법도 변호사는 "세입자에게 위로금을 주고 '추후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를 문제 삼지 않는다'며 합의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많다"며 "하지만 추후 기존 세입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이런 합의서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탈법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전에 이 같은 탈법이 늘어나게 된 원인도 짚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엄 변호사는 "10년 동안 전세금을 올리지 않은 임대인에게 전월세상한제 5% 룰을 똑같이 적용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 보니 국민들이 탈법의 유혹에 끌리는 것"이라고 짚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행 세제는 약 20년 동안 집을 보유하면 집값만큼 세금을 내도록 만들었다"며 "이러다 보니 2021년에 마치 1980년대에나 볼 수 있던 탈세 기법들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 이선희 기자,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