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아홉이라는 숫자가 들었을 때를 흔히 ‘아홉수’라 칭한다.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마흔아홉, 쉰아홉, 예순아홉 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 아홉수가 든 해엔 상서롭지 못한 일들이 빈발한다며 사업을 벌이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여행, 부동산 거래 등을 피하라고 권고하곤 한다. 미신이라 생각하고 대개 무시해 버리지만, 혹시나 하는 걱정스러움 때문에 마음 한편엔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나도 올해 아홉수를 맞았다. 오십 대 끄트머리인 쉰아홉의 고갯마루에 내 삶이 걸쳐져 있다. 알, 유충, 번데기에 이어 우화의 과정을 거쳐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나비처럼 내 인생도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를 거쳐 이제 실질적인 노년기에 진입하는 단계를 앞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고개를 넘고 다음 아홉수를 맞기 전에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노령기에 접어들 테니 말이다.
올해는 정초부터 지독한 불면증과 과중한 피로로 몸이 몹시 고달팠고, 봄 내내 속이 편치 않아 약에 의존하다 급기야 종합검진까지 받아야 했을 정도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힘든 시기를 보냈다. 또한, 암 투병 중인 부모님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잔뜩 위축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만 아홉수의 덫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이 머리를 쳐들 때도 있었다.
사실 올해 겪은 내 심신의 고초는 인과관계로 얽혔고 동시에 나타나 문제가 되었던 거지 아홉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부질없는 생각이 헛된 망상을 일으켜 마음을 어지럽힌 것일 뿐이다. 다만, 이번에 맞는 아홉수는 내 인생의 전환기를 앞둔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년부터는 나이가 갖는 의미가 다를 터이니 마음가짐과 생활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살면서 무슨 일이건 신중하게 살피고 경계하는 것 자체가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조심해서 손해 볼 게 무엇이겠는가? 아홉수를 삿된 미신으로 여기고 배척만 할 게 아니라 참고할 가치가 있는 삶의 지혜라 여긴다면 외려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격적으로 더 깊어지기 위해 흐트러질 수 있는 마음을 다잡으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아무튼, 이번 아홉수의 해도 어느덧 반 가까이 지나가고 있다.
첫댓글 노령기(?)는 아니지요?
요즘 환갑을 챙기는 사람도 없고, 7순. 행사도 안하겠다는 분위기인거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아홉수는 현명하게 잘 넘기시기 바랍니다.
"이 고개를 넘고 다음 아홉수를 맞기 전에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노령기에 접어들 테니 말이다." 65세가 넘으면 노령층이죠. 사람들이 그걸 부정하려 하더군요. 엄연한 사실인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