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너무나 정이 깊어 불같이 뜨거웠지.
한 줌 진흙으로 당신 하나 빚고 나 하나 만드네.
우리 둘 함께 부수어 물에다 섞어서는
다시 당신을 빚고 나를 만드네.
내 속에 당신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네.
살아서는 한 이불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네.
儞儂我儂 忒煞多情 情多處 熱似火
아농아농 특살정다 정다처 열시화
把一塊泥 捻一個儞 塑一個我
파일괴니 념일개이 소일개아
搜索將咱們兩個一齊打破 用水調和
수색장찰문양개일재타파 용수조화
再捏一個咱 在塑一個我
재난일개차 재소일개아
我泥中有儞 儞泥中有我
아니중유이 이니중유아
與儞生同一個衾 死同一個椁
여이생동일개금 사동일개곽
‘아농사’라는 시를 쓴 관도승(管道升·1262~1319)은 원나라 때의 여성 화가이자 시인이다.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려 ‘묵죽(墨竹)의 명인’으로 유명했다. 당대 최고 서예가 조맹부(趙孟頫)의 부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늦게야 결혼했는데 서로 끔찍이 아껴서 금슬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중년에 들어 조맹부에게 여자가 생겼다. 지금은 말도 안 되지만, 당시 사대부는 대부분 첩을 얻었기에 대수롭잖게 여겨도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뛰어난 인생 도반을 둔 조맹부로서는 차마 아내에게 그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詞)를 한 편 지어 넌지시 건넸다.
‘나는 학사고 당신은 부인이오. 왕(王)학사에게 도엽(桃葉) 도근(桃根)이 있고, 소(蘇)학사에게는 조운(朝雲) 모운(暮雲)이 있다는 소리를 어찌 못 들었겠소? 나는 곧 몇 명의 오희(吳姬) 월녀(越女)를 얻을 것이오. 당신은 이미 나이가 넘었으니 나의 심신을 독점하려 하지 마시오.’
왕학사(왕안석)와 소학사(소동파)까지 동원하며 에둘러 말했지만, 듣는 부인으로서는 애가 타는 일이었다. 첩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시절이었으니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보여준 것이 이 시 ‘아농사(我儂詞)’이다.
이를 본 조맹부는 잠시나마 딴생각을 품었던 자신을 책망하며 크게 뉘우쳤다. 첩 얘기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진흙으로 섞어 빚은 두 사람의 존재와 일체감을 이토록 감동적으로 표현하다니, 짧은 시 한 편으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면서 흔들리는 남편의 마음까지 바로잡아준 것이었다.
‘내 속에 당신이 있고, 당신 속에 내가 있다(我泥中有爾, 爾泥中有我)’는 구절은 지금도 중국의 연인들 사이에서 널리 애용되는 명구이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이 했던 바로 그 대사 “이 안에 너 있다”처럼 말이다.
원래는 원나라 희곡 '서상기'의 여주인공 앵앵(鶯鶯)이 연인인 장생(張生)에게 들려준 말이라고 한다. '서상기'는 젊은 서생 장생과 명문가 규수 앵앵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내용이 똑같지는 않지만 우리의 '춘향전'과 비슷하다.
아무튼 ‘앵앵 안에 장생이 있고, 장생 안에 앵앵이 있다’는 대사를 빌려와 부부간의 참사랑을 되살린 그녀의 재주가 참으로 놀랍다. 이후 두 사람의 사이가 더욱 좋아졌고 예술의 경지도 더없이 높아졌으니 그 남편에 그 아내라 할 만하다.
그녀는 늘그막에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는 남편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중 각기병이 도지는 바람에 세상을 떴다. 그때 58세였다. 죽은 아내를 보듬고 고향으로 돌아온 조맹부는 홀아비로 지내다 3년 뒤 아내 곁에 합장됐다. 살아서는 한 이불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고 싶다던 그녀의 바람이 온전히 이루어진 셈이다.(고두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