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리우스 카이사르]
카이사르가 오늘날의 서유럽지역인 갈리아를 정복한 뒤, 자신의 전공을 널리 알리기 위해 썼다는 <갈리아 전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 글 자체가 지난 2000년 동안 전 세계 여러 출판사들에서 수십 수백차례 발간된 데다, 심지어 프랑스에서는 (그들 조상의 수난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스테릭스’라는 코믹 만화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만화 아스테릭스]
하지만, 카이사르의 또 다른 작품 <내란기>는 상대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그리고 로마 공화정 말기 및 제정으로 넘어가게 되는 시기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히 <내란기>를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애당초 <갈리아 전기>는 카이사르가 명성과 정치자금을 얻기 위해 당시 로마인들을 괴롭히던 ‘갈리아 오랑캐’를 정벌하는 기록이었을 뿐이다. 그에 비해, <내란기>는 그라쿠스 형제의 암살과 뒤이어 그들의 개혁이 실패한 후 ‘마리우스’와 ‘술라’ 및 기타 여러 원로 정치인들에 의해 진행되던 로마의 내분과 그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떠오르던 영웅 카이사르’가 끝장내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라쿠스 형제 - 타락하기 시작한 공화정의 주축 원로원(오늘날의 의회)을 개혁하려 했으나 당시 수구세력의 방해로 실패 및 살해당함]

[마리우스 - 타락할 대로 타락한 공화정 시대가 낳은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또한 이자의 친척이었으나, 그렇게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스스로를 ‘행운아’라 칭한 술라 - 마리우스를 타도하고 새로이 공화정 로마의 독재자가 된 인물. 당찬 청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였으나 실패하자 그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그가 도망다니는 것을 방관해주었다.]
<갈리아 전기>와 마찬가지로, 이 글 또한 카이사르의 글의 특징인 ‘카이사르는…’이라는 3인칭 주어로 서술되어 있다. 마치 프랑스 작가 카뮈의 <페스트>에서 의사인 주인공이 제3의 관점에서 전염병을 퇴치하는 자신의 모습을 기술하는 식으로, 카이사르 또한 제3의 관점에서 갈리아 인들과 전쟁하고, 정복하고, 또한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진 자신의 정적들과 싸워 이들을 굴복시키거나 제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카이사르]
이는 그가 객관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기술방식을 사용하여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다’라는 당대의 그리고 후대의 독자들의 비아냥거림에 대한 나름대로의 방어대책을 세운 것이라 하겠다. 물론 이로서 카이사르의 두 불후의 명작들, 즉 《갈리아 전기》와 《카이사르의 내란기》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등의 불후의 영웅들이 활약하던 시대의 로마와 그 주변 상황에 대해 생생하고 객관적인 사료를 제공해준다.

[루비콘 강을 도하하는 카이사르]
카이사르는 그의 <내란기>에 그 유명한 문구 “주사위는 던져졌다!”를 삽입하지 않았다.
이 문구는 단지 플루타르코스와 수에토니우스 등의 후세 역사가들의 선정적인 작품에 등장할 뿐이다. 그는 다만 “이리하여 자신을 지지하는 병사들의 마음을 확인하자, 카이사르는 나머지 군단들에 동계 진영을 떠나 자신의 뒤를 쫓아오라고 명하고 이 군단과 함께 아리미눔을 향해 출발했다”(범우사 《카이사르 내란기》 Page24 Line12~14)라고만 기록하여 루비콘 강에서의 일화를 기록하기를 애써 피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공격해야 하는 심정의 기록을 피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보다 자신이 자신의 정적들보다 얼마나 우월하거나 정의로운가 또한 기술하고 싶지 않았던 탓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점은 오늘날 자신의 정의로움과 올바름을 부풀려 내세우면서, 반대파들의 치부는 억지로라도 만들어 보여주려는 오늘날의 정치가들이 부끄러워하며 본받아야 할 부분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