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 편____배상수
고목 외 1편
배상수
서로에게 사무친
가슴을 내어주며
사이 깊은 나무를
떠난다
오래된 믿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 잉태의 아픔을
파리한 꽃잎이
대신 하던 날
잠들지 못하며
가위 눌린 그림자를 떼어낸다
잎을 내린 나무는
서늘한 밤을
건너
땀에 젖어 밀려난
그림자를 안아준다
어둠에서 외친다
지친 자를 그리워
하라
떨리는 손길이
아니면 길게 드러누울 뿐
죽어가는 진실들을
흔들지 말기를
흐트러진 순간이
반복되며
낮게 엎드린
시름을 달래본다
아는가?
길 따라 마음이
가기마련
고단함에 눌린
퇴적층이 가을 동천에 씻겨간다
신음처럼 묻혀버린
경계 없는 처음을
기억하며
벽
더 갈 곳이
없으면
무너지는게 어디
나뿐이었을까
저만큼 등 기대고
바라보는
무던한 저녁은
웅크린 저항을
일으키려
두려웠던 애벌을
벗긴다
시간의 틈은
잘린 희망을
기워내며
황폐했던 날을
지켜주었을
옛집으로 스며든다
준비 안된 아침이
호된 빗줄기에
쫓겨난다
흘러가는 영혼이여
한 줌 빛이
아니어도
흔건한 쓸쓸함이라도
동행하였으면
나는 나를 한번도
이겨내지 못했다
모서리가 없는
각을 만들 듯
가로막기만 하던
벽은
길을 내준 뒤
어느새
내 뒤에서 훌쩍
커버렸다.
배상수 / 1994년 『문예한국』, 1997년 『시와 산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길위의 길』, 『돌아오는 길』이 있으며 서울시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사)시와산문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