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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경전 명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에 배우는 자들은 남을 위한 학문을 한다.”
유학에서 공부의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즉 자신의 수양을 목적으로 한다. 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덕목에서도 자신의 수양[修身]을 바탕으로 외연(外延)을 확대하여 천하 평정까지 이르고자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공부는 개인의 출세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이로 인해 입시 위주로 변해 가는 학교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은 차츰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심지어 중고등학교에서 인성교육의 일부분을 담당했던 도덕교과마저 이른바 집중 이수제라는 이름으로 1년만 배우면 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위기지학(爲己之學)’보다 ‘이기지학(利己之學)’을 중시하는 교육현장과 사회현상으로 인해 결국 개인의 도덕성은 약화되고 사회 병리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학교에서는 교사에게까지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학생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사회나 가정에서도 예의범절을 모르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학교나 청소년들에게서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우리 사회는 국무총리,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대학 총장 출신의 인사가 국무총리 지명을 받아 간신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지만 위장전입과 병역, 논문 이중게재 등의 문제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등장한 국무총리후보자는 젊고 유능하다는 하마평에도 불구하고 온갖 거짓말과 공(公)과 사(私)를 구분 못하는 행실로 인해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하였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은 개인의 능력에서는 부족함이 없을지 몰라도 출세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의 개인수양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공자께서 이미 2500여 년 전에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고자 했던 말씀이 오늘날에도 진부하게 들리지 않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
출전: 『논어(論語)』「헌문(憲問)」
도가 아울러 행해져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앞에 “만물이 함께 생육하되 서로 해치지 않는다(萬物竝育而不相害)”가 있어 대구(對句)를 이룬다. 주희는 이 구절을 풀이하여 “하늘이 만물을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데 만물은 그 사이에서 함께 생육하되 서로 해치지 않으며, 사계절과 해와 달은 교대로 운행하고 교대로 밝음을 비추어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함께 운행하되 어긋나지 않는 것을 찾으려니 해와 달 사계절의 운행으로 ?낯灼求?것이 적절할 것이지만, 물질 가운데는 서로 어긋나는 관계에 있는 것이 많다.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도(道)에는 모순된 것이 적지 않다. “만물이 천지 사이에서 함께 생육하여 해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말은 더욱 실제 사실과 다른 듯하다. 호혜적 공생 관계에 있는 동물들도 있지만 개구리와 뱀처럼 천적관계도 많은데 어찌 “함께 생육하여 서로 해치지 않는다”를 사실적 명제로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중용에서는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했을까? 이는 당위성의 차원에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즉 “만물들아! 함께 생육하며 서로 해치지 말아라! 다 함께 걸어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 그런 길로 다녀라!”라고 말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누구든지 서로를 목적으로 대할 것이요,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는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를 염원했고 우리가 그 사회의 시민이기를 바랬다. 모두가 서로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그런 원칙을 가지고 산다면 그러한 도리는 서로 상충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그 사회는 서로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맹자는 세상 사람이 모두 각각의 이익을 위하여 출정하는 이른바 ‘상하교정리(上下交征利)’의 사회가 된다면 그 곳에서는 결코 ??遲?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가 강조하는 공의(公義)는 결코 서로 어긋나지 않는 길이다.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이면 그것을 남에게 시행하지 말라”는 명제가 예나 지금이나 실천에 있어서 황금율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것이 결코 누가 걸어도 어긋남이 없는 참된 길이기 때문이다.
출전: 『중용(中庸)』30장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에서부터 배워나가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이는 하늘인가보다
이 내용은 학문의 요체가 어디에 있으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이야말로 올바른 학문의 길이라는 점을 피력하고 있다. 덕성의 함양은 일상적인 삶에서 시작해야 하며 구체적인 실천을 떠나 공허하게 학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와 그 의의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사물의 이치가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서 파악될 수 없듯이 도덕수양의 최고경지도 인간의 실제적 삶과 그 속에서 실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학문은 반드시 현실 생활에서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추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의 성과는 단지 공중누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는 중용에서 “군자는 덕성을 존중하고(尊德性), 학문을 묻는다(道問學)”라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학문의 진실성 혹은 진정성이란 尊德性, 즉 덕성을 높이는 일이 결코 道問學, 즉 일상적인 공부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학문은 지식을 넓히는 일이요 이는 바로 덕성을 쌓는 일이다. 유학자들이 修己治人의 원리를 구현하려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라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말과 행동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유가의 윤리도덕적 강령인 것이다. 여기에는 유가의 자아완성 혹은 자아실현(self-realization)의 궁극적 경지가 함유되어 있다. 도덕수양은 일상적인 삶에서 자연스레 수반되는 결과이며, 그렇다면 인격의 완성을 위한 敎化 혹은 교육의 합당성의 문제는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 이러한 해소의 단계가 자율적이고도 능동적인 인간으로서의 이상적인 人間像, 즉 美와 善이 일치하는 최종적인 목표이다. 인간이 美와 善의 일치를 추구하는 것이 자율적이고도 능동적인 인간을 위한 윤리적 敎化는 실현된다. 그러므로 덕성의 함양과 그 실천의 조화는 도덕수양의 궁극적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출전:『論語』 「憲問」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미국 남북전쟁 직후의 일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중국 산동성 출신 농부 딩롱(丁龍)은 성격이 포악한 미국인 주인집에서 막일로 생계를 꾸렸다. 포악한 주인 때문에 그 집 하인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잦은 폭행을 견디지 못한 하인들은 주인 몰래 도망치기도 하였다. 딩롱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어느 날 주인집에 불이 났다. 평소 주변의 인심을 잃은 주인집엔 달려와서 도와주는 손길이 아무도 없었다. 불난 집을 바라보며 오히려 잘됐다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도망갔던 딩롱이 나타나 혼신을 다해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를 본 주인이 이상하게 여기며 물었다. “너는 내가 싫어서 도망친 놈이 아니냐? 내 집에 불난 것이 좋지 않느냐? 그런데 왜 와서 위험을 무릅쓰고 불을 끄느냐?” 딩롱이 대답했다.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상대가 곤궁에 처하면 그걸 구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다. 불난데 부채질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위난을 당한 것을 보면 길가는 사람이라도 달려가 돕는 것이 아름다운 풍속이다.” 주인은 혹 딩롱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딩롱은 어떠한 종교도 갖고 있지 않았다. 종교는 없더라도 그가 공부를 많이 한 식자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딩롱은 일자무식이었다. 일자무식일지라도 집안만은 학자집안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딩롱은 대대로 농사만 짓던 농사꾼 집안태생이었다. 주인이 생각한 딩롱의 행위는 분명 희생적인 종교인 아니면 도덕적 훈련을 받은 학자 아니면 그런 전통을 지닌 학자집안의 후손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딩롱은 종교인, 학자, 명문가 집안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희생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딩롱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것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요 무엇을 믿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느껴서 할 뿐이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뭐가 이상한가?” 딩롱은 맹자를 읽지 않았어도 곤경에 처한 이를 보면 누구나 측은한 마음씨가 있다는 맹자사상을 실천한 것이다. 그것은 또 어떤 대가나 명예를 바라고 행한 공리적 행위가 아닌 순수하게 우러난 양심에 입각한 행위였다. 공리적 인간이 아닌 도덕적 인간상을 보여준 것이다. 이 말에 감동한 주인은 자기 재산을 전부 팔아 콜롬비아대학에 기증하였다. 대학은 그것을 기리며 ‘딩롱 강좌’를 설치하고 동양사상을 연구하게 했다. 평범한 농부 한 사람의 도덕적 행위가 부자 주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교육받지 못한 농부 한사람의 도덕적 실천이 동양사상의 위대성을 일깨운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맹자』의 내용은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을 설명하는 대전제이자, 인간 본성의 선함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딩롱의 행위는 『맹자』를 읽지 않았어도 맹자 성선설의 전형적인 본보기를 보여준 좋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출전: 『맹자(孟子)』「공손추 상(公孫丑 上)」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처럼 국한되지 않는다.”
위의 내용은 군자가 어떻게 학문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위의 내용에 대해 주자(朱子)는 “그릇은 각각 그 용도에만 적합하여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덕을 갖춘 선비는 진리를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으므로, 그 사용 또한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 단지 한 재주, 한 기예일 뿐만은 아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릇의 의미는 바로 어느 특정한 기능인, 또한 전문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군자는 결코 특정한 분야에 갇혀 여타영역과 소통하지 않는 가능인과 전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최근 어느 TV 방송국에서 방영된 에서 성균관 스승인 정약용이 제자들에게 강의하는 내용 중에 ‘군자불기(君子不器)’에 대해 강의한 내용이 한국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공자의 이러한 학문관은 전문인과 기능인만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 부합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한국사회는 서구 근대성의 영향으로 인해 효율성과 경쟁의 논리가 절대적 가치로 간주되고 현실에서, 현대인은 다양한 영역에 대한 폭 넓은 이해보다는 자신의 분야에만 전념하게 될 때에만 비로소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지식인이나 특정한 분야에만 전념하고 있으며, 학교의 교육내용 또한 특정한 분야의 지식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절친한 친구나 형제일지라도 상대방의 전문영역에 대해 전혀 무지할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소통도 점점 단절되어지고 있다. 최근 대학 또한 특성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보편적인 코드가 되어 버렸으며, 그래서 많은 대학에서 ‘Only-1’ 인재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어느 특정한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인을 양성하겠다는 발상이다. 이와 같이 ‘군자불기(君子不器)’의 학문관은 분명 현대사회의 효율성 논리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현대인의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결코 하나의 기구나 기계와 같이 특정한 영역의 기능만을 다 하는 일차원적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타인들에 대한 애정, 한 떨기 꽃을 통한 미적 감정, 건강한 신체,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 등의 전차원적 존재이다. 실제로 유가전통에서의 선비들은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육예(六藝)를 두루 익혔을 뿐만 아니라 고전, 역사, 철학을 통해서 사회의 비판능력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함양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전인격적인 존재가 바로 공자가 추구한 군자의 모습이다. 공자가 전인격적 학습이 현대사회와 같은 전문성을 부정하였다고는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현대의 전문직종에서와 같이 그 자체의 범위에만 갇혀 있기 때문에서 찾을 수 있다. 옛 속담에 “우물을 깊게 파고자 한다면 넓게 파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진정한 전문인이 되기 위해서라도 특정한 분야뿐만 아니라 좀 더 폭 넓은 이해가 필요함을 암시해 주고 있다. 모든 직종은 인간이 하는 일이면서 사회적 실천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이상, 모든 영역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인간, 사회,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가 전제될 때 비로소 진정한 Only-1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는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전문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숙고하게 해 주는 명언이라 할 수 있다.
출처: 『논어(論語)』,「위정(爲政)」
군자가 세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이 세상에서 왕 노릇을 하는 일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맹자가 말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은 부모께서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아무 탈 없이 지내는 것,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을 하고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력자인 왕이 되는 것이 이 세 가지 즐거움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맹자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상의 세 가지 즐거움을 얼마나 공감하며 살고 있는가? 부모와 형제는 늘 내 곁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수업 중 학생들에게 “당신은 스스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하고 질문하면 대부분은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개인들은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없는데 이 사회는 왜 그렇게 부도덕하고 불평등하고 부정이 만연하는가? 정말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 누군가 나에게 사는 즐거움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많은 돈과 재물로 욕망을 채우며 사는 것을 즐거움이라고 대답할까? 아니면 권력과 명예를 얻는 것을 사는 즐거움이라고 할까? 이것들은 모두 세속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맹자는 천하의 임금이 되는 것을 군자의 즐거움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현대인은 3S에 빠져 있다고 한다. ‘sex’, ‘screen’, ‘sports’가 바로 그것이다. 눈과 귀를 병들게 하고, 육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병에 우리 현대인은 빠져 있다. 우리가 찾는 인생의 즐거움은 맹자가 말하는 군자삼락과 달리 3S는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출전: 『맹자』「진심상(盡心上)」
증삼이 말하였다. “선생님의 도(道)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충서에 대한 언급은 뿐만 아니라 , 에도 나온다. 그리고 , 에도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공자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해서 ‘충서’라고 말하였다. ‘충’은 군주에 대한 충성보다는 자기에게 진실을 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에 관해서 그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안연」 2, 「위령공」 24)와 ‘자기가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하면 먼저 남의 지위를 확보해 주고, 자기가 지위를 올라가고자 하면 먼저 남도 지위를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옹야」 30)라고 설명한다. 공자는 제자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충서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공자가 그만큼 타인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에서는 이 문제를 혈구(絜矩: 측정기준)로 설명한다. “네가 너의 윗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너의 아랫사람을 부리는 데에 사용하지 말라. 너의 아랫사람에게 원하지 않은 것이 있거든 너의 윗사람을 섬기는 데 사용하지 말라. 네가 너보다 나은 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너보다 못한 사람을 대할 때 사용하지 말라. 네가 너보다 못한 사람에게 원하지 않는 것이 있거든 너보다 나은 사람을 대할 때 사용하지 말라.”(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에서 ‘충서’는 공자의 뜻을 부연설명하여 행위의 도덕적 기준을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맹자와 순자에서는 ‘서’가 공자만큼 중시되지 않고 다만 언급하는 정도에 그친다. “만물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내 자신을 돌이켜보아 성실해지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힘써 행하는 것보다 인자함을 획득하는 더 빠른 방법은 없다.”(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强恕而行, 求仁莫近焉.)( 「맹자」 「진심상」 4)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서(恕)의 규칙이 있다. 자신의 군주를 섬기지 못하면서 자신을 섬길 하급자를 고용하려 한다면 서(恕)가 아니?? 자신의 부모에게 보답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효성스럽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서(恕)가 아니다. 자신의 형을 공경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동생에게 자기 명령 듣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서(恕)가 아니다. 만일 학자들이 이 세 가지 종류의 ‘서’를 이해한다면 그들은 그들 자신을 곧게 할 수 있을 것이다.’(孔子曰, 君子有三恕. 有君不能事, 有臣而求其使, 非恕也. 有親不能報, 有子而求其孝, 非恕也. 有兄不能敬, 有弟而求其聽令, 非恕也. 士明於此三恕, 則可以端身矣.)( 「法行」) 맹자나 순자가 공자처럼 ‘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 이유는 공자의 사상을 체계화하려는 데 역점을 두기 때문이다. 즉 제자들과의 끊임없는 교류보다는 이론적 체계성에 매몰되었다. 따라서 ‘서’는 중요한 이론이긴 하지만 성선설이나 성악설에 비해 한 등급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를 하였다. 일찍이 에서도 황금률로 이 문제를 정식화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너에게 마땅히 해주어야 한다고 바라는 모든 것을 너도 그들에게 똑같이 해 주어라”(마테오 7:12). “그리고 남들이 네게 마땅히 해주기를 바라는 방식대로 너도 또한 그들에게 그렇게 해 주어라”(루가 6:31). “너는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마테오 22:39). 황금률은 공자의 ‘서’와 깊은 관련이 있지만, ‘서’의 올바른 해석은 아니다. 황금률에서는 타인에 대한 애정과 헤아림이 신(神)의 명령이라는 형식이나 내 마음의 선천적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가능해진다. 그러나 공자의 충서는 이런 명령과 복종의 형식이 아니라 주체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적 정감으로부터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황금률에는 ‘충’이란 부분의 중요성이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충서(忠恕)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양쪽 모두를 고려하고 하나로 관통하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출전: 「리인(里仁)」
실천하고도 남은 힘이 있거든 글을 배워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젊은이들이여!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경하며, (자신을) 삼가 낮추고 미덥게 행동하라. 무릇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되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여라. (이렇게 모든 것을) 실천하고도 (혹시) 남은 힘이 있거든 (그때 가서) 글을 배워야 한다.”(子曰 “弟子 入則孝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공자는 만세사표(萬世師表)라 불릴 정도로 한평생을 교육자의 모습으로 마감하였다. 혹자들은 그를 봉건사회에서 지배계층을 옹호한 정치인이라고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법무장관에 해당하는 ‘대사구’의 관직에서 일한 경험이 1년도 채 안될 만큼 정치적 행보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논어 전편을 헤아려 보아도, 아니 논어의 머리[首篇]에 해당하는 「학이」의 본지만 살펴보아도, 그는 호학(好學) 정신과 효제충신(孝悌忠信)에 관한 가르침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원문에서 입(入)과 출(出)은 춘추시대 당시의 가옥구조로 고증해 보았을 때, 위정자들의 생활상에 국한된다고 한다. 따라서 위 문장은 공자가 위정자와 지배계층의 자제들을 불러다가 강력하게 꾸짖는 어조로 훈계하고 있는 모습임을 예상할 수 있다. 계급에 상관없이 인간됨이 바르지 못한 자들에 대한 엄중한 가르침의 메시지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참된 모습은 집안에서의 효도[愛]가 사회에서의 공경[愛]로 확대되어가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 나 자신을 낮추라[謹: 言+菫] 함은 말을 삼가 조심하여 남에게 미더움을 보이라는 경고이다. 이후 모든 사람들을 측은히 여길 줄 알되, 인자한 사람을 더욱 가까이하여 자신을 돌이켜 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실천을 모두 몸으로 옮기고 난 이후에, 비로소 글자를 배워도 좋다는 의미다. 아마도 공자는 지배층의 자제들에게 이 뒤 구절을 가슴에 새겨주기 위하여 앞의 덕목들을 나열했을지 모른다. 부유함도 있고, 권력도 가진 지배층의 자제들이 공부깨나 한다며 으스대는 모습을 본 공자는 인간됨이 되어 있지 않은 녀석들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타이르며 주의시키고 있다. 배움[學]도 중요하고 지식[知]도 중요하며, 더욱이 글자를 알아가는 과정[學文]도 중요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준칙을 몸으로 실천하는[行]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혹 실천하지 않고서 무작정 문자를 배우고 공부만 하며 온갖 지식을 습득했다손 치더라도, 그러한 사람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혐오스러움만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출전: 『논어(論語)』「학이(學而)」
사람의 허물이 각각 그 종류가 있으니, 허물을 보면 그 인(仁)을 알 수 있다
집을 지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신영복 선생은 일찍이 ‘집을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만, 집을 지어본 적 있는 목수는 주춧돌부터 그린다’고 말했다. 이것은 ‘경험의 소중함’과 ‘기초의 중요성’을 집약한 말이다. 한 가족이 안락하게 사는 집을 짓는 데에도 이처럼 기초가 중요한 데, 겨레가 살아갈 국가를 경영하는 데에 기초의 중요성을 다시 말해 무엇 하겠는가? 공자는 일찍이 ‘군자는 근본을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芽?君子務本 本立而道生)’라고 말했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인격이 갖추어진 지도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공자의 말을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해 보면, ‘지도자는 근본에 힘써야 한다. 근본이 바로 서면 나머지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라고 볼 수 있다. 국가의 근본은 국민이다. 국민이 없다면, 국가라 칭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번영은 반드시 국민번영의 기초 위에 달성되어야 하며, 국민번영은 또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공자는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않는 사람(過則勿憚改)’을 군자라고 말했다. 즉 자신의 허물을 가능한 빨리 고치는 것을 군자의 기본으로 본 것이다. 공자를 동양의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것은 단지 그가 이렇게 멋진 말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공자는 몸소 자신이 말한 것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말이 옳았음을 삶을 통해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위대함이요, 존경받는 이유이다. 공자는 진(陳)나라 사패(司敗)와의 대화에서 노나라 소공(昭公)을 두둔했다. 그러나 얼마 후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한 사패의 말을 전해들은 후, 자신의 잘못을 기꺼이 인정한다. 이처럼 공자는 자신이 말한 군자의 도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허물’이란 자기도 모르게 사리(事理)를 잃은 것이다. 그러나 악(惡)이란 고의로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반성하고 고치는 데 열중한다면 허물이 도리어 선(善)이 될 수 있지만, 자칫 반성하는 데에 게으르다면 허물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악으로 흐르게 될 지도 모른다. 공자는 ‘사람의 허물이 각각 그 종류가 있으며, 허물을 살펴보면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다양한 계층과 정당들의 시각에서 현정부의 실정(失政)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모든 비판을 현정부의 잘못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 군자로서의 건전한 덕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현정부의 지도자급 인사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허물을 발견했을 때, 이를 과감하게 고치려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출전: 『논어』 「리인(里仁)」
요절하거나 수복(壽福)하는 데에 의혹되지 않고 수신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것이다
요즘 전 세계 뉴스의 초점은 일본이다. 2차 대전 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한다. 난리 통에는 비명횡사가 많다.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연들이 속출한다. 그러나 이 난리 속에서 숭고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영웅을 만나게 된다. 쓰나미에 휩쓸려간 가족을 찾기도 전에 이번에는 방사능 유출에 전 세계가 놀라고 있다. 이 와중에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을 사수하기 위한 결사대가 50명에서 580명으로 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죽음은 인간실존에 던져진 영원한 주제다. 불교는 생사를 논하고 ?竪떡낫?영생을 논한다. 맹자는 이렇게 말한다. ‘요절하거나 수복하는데 의혹되지 말고 수신하면서 기다려라 그것이 명을 세우는 것이다.’ 유교에서는 이 명을 운명(運命)이 아니라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맹자는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게 되고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다’(『맹자(孟子)』「진심 상(盡心 上)」)라고 수신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논어』를 편찬하면서 제자들이 마지막에 붙인 공자의 말씀은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아니다.”(『논어(論語)』 「요왈(堯曰)」) 이 대목에 주자(朱子)는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하여 “명을 알지 못하면 해되는 것을 보면 반드시 피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보면 반드시 나아가니 어떻게 군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논어』 “주자주”)라고 설명했다. 일본의 원전수호 결사대를 보면서 새삼 가슴에 새겨본다.
#출전: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 上)」
뜻이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하여 인(仁)을 해치는 일이 없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인(仁)을 이룬다.
공자께서는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라고 하셨다. 군자가 중시하는 의리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가치이다. 하지만 소인들이 추구하는 이익은 개인, 즉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치이다. 바로 군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대의(大義)이다. 지사(志士)는 도(道)에 뜻을 둔 선비라는 의미이고, 인인(仁人)은 어진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지사와 인인은 구차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제하기 위해서 ‘인’을 해치지 않고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인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보면서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관측 이래 최대라는 지진보다 또는 엄청난 위력으로 마을을 집어삼키는 쓰나미(지진해일)보다 사람들을 더 공포에 몰아넣은 것이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이다. 아무리 큰 자연 재해보다도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재해가 얼마나 더 큰 재앙을 가져오는지를 뼈저리게 보여주는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사고 발생 후 한달이 지나고 나서 일본 정부는 사고 등급을 국제원자력 사고등급 가운데 최고 수준인 7등급으로 높여, 사고 초기 단계의 미숙한 대응과 함께 사고 자체를 축소평가 하지 않았느냐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무능한 대응과는 달리 일선 공무원들의 직업정신과 시민정신은 빛을 발하였다. 이와테현(岩手県)의 30대 후반 경찰 공무원은 두 아이와 아내를 남겨두고 최후까지 주민들의 피난을 돕다가 쓰나미에 휩쓸렸다. 아사히(朝日)신문이 소개한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내는 남편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소개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없어질 수도 있어. 큰일이 터졌을 때, 가족의 얼굴이 눈에 밟혀 위험에 처한 시민을 도와주지 못하는 경찰이 되고 싶진 않아.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들을 부탁해.” 아내는 “저도 남편이 가족만의 소유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의 빈자리는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와테현(岩手県)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시의 도바 후토시(戶羽太, 46세) 시장은 대지진 후 쓰나미가 덮치자 개인 가족의 안위보다는 시민의 피해 대책에 주력했다. 주민 2만3000여 명의 10%나 되는 2,300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상황에서 ‘개인적인 일’을 앞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실종되고 초등학생인 두 아들마저 친척집에 맡긴 채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된 한 학교 급식센터에서 먹고 자기를 계속했다. 보다 못한 큰아들(12)이 재해대책본부를 찾아와 ‘어머니를 찾아 달라’고 따로 요청했을 정도였다. 쓰나미가 덮치고 몇 주가 지나서야 자택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아내의 시신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피해대책을 지휘하느라 밤늦게야 안치소로 달려간 도바 시장은 “미안해요 여보.” 아내의 시신을 안고 펑펑 울었다. 이들의 태도가 바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실천이다. 맹자는 “사방 1리를 정이라 하고 1정(井)은 900묘(畝)이니 그 가운데에 공전(公田)을 둔다. 여덟 가구가 모두 사전(私田) 100묘를 받아서 함께 공전의 일을 다스리고 공전의 일이 끝난 연후에 감히 자신의 사전 일을 하니 이것은 야인(野人)을 ?맏건求?것이다.(方里而井이니 井九百畝니 其中이 爲公田이라. 八家皆私百畝하여 同養公田하여 公事畢然後에 敢治私事하니 所以別野人也니라.) (「등문공장구상(滕文公章句上)」)”라고 하였다. 맹자의 말씀이 바로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의미한 것이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의 안타까운 순간에도 공(公)을 먼저 내세우고 사(私)를 나중에 하는 자세를 일본의 공직자들이 보여주었다. 개인의 행복 추구를 인정하는 현대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책임이 있는 공인이나 지도층, 국민을 위해 봉직(奉職)하는 공직자라면 마땅히 선공후사(先公後私)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해야 할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나를 바르게 하여 다른 것들이 올바르게 된다.
내 곁의 사람이 못마땅하여 답답하고 애태우던 시절이 있다. 내가 그의 단점을 지적하면 지적할수록, 화를 내고 고쳐보려고 조급증을 낼수록 일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가 있다. “너는 얼마나 잘난 사람이니? 네가 먼저 변해보지 그래?” 그 사람을 바꾸려 애태우지 말고, 내가 변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샌가 그 사람은 변화되어 있다는 것. 그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사랑과 지혜와 용기가 모두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포용하려는 인내와 사랑, 문제해결의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지혜, 문제해결의 열쇠가 내게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맹자는 이 평범한 이야기가 얼마나 고급한 경지인가를 들려준다. 맹자 말의 전체 맥락은 이렇다. “주군의 마음에 들도록 잘 섬기는 그런 신하가 있고,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신하가 있고, 천하에 도를 행할만한 시기에 나아가 행하는 사람, 즉 하늘 백성이 있고, 마지막으로 대인(大人)이 있는데, 자신을 바르게 하여 다른 것들이 바르게 되는 자이다.” 나를 바르게 하여 다른 것들이 바르게 되는 것은 대인의 경지라고 최고점을 준 것이다. 여기에서 ‘다른 것들[物]’이란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 가정, 학교, 직장, 국가, 인류사회, 우주만물의 태초로부터 영원까지로 확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 대인의 경지는 국정을 운영하는 지위에 있는 자라야 이를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사회적 지위를 얻을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지겠지만 말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이 20세에 쓴 「자경문(自警文)」에는 이러한 조항이 있다. “한 집안 사람들이 ?권構?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나의 성의가 부족해서이다.” 신사임당이 돌아간 후 새로 들어온 어머니는 그 자리가 힘에 겨웠는지 간혹 성질도 부리고, 술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모양이다. 새어머니가 과음을 한 다음 날이면 율곡은 손수 해장술을 덥혀 들고 갔다고 하며, 새어머니는 율곡이 49세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못 이겨 3년이나 소복을 입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한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잘 가다듬은 후에 집안을 잘 다스릴 수 있고, 그런 후에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고, 그런 후에 천하를 평화롭게 잘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를 바로 하였는데 다른 것들이 바르게 된다’는 대인의 경지는 결국 ‘수신’ 즉, ‘자기 중심잡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이다. 어린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 세상에 누가 왕이야?”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왕이란다.”
#출전: 『맹자(孟子)』 「진심상(盡心 上)」
소는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 못하였다.
어느 날 양혜왕은 마루에 앉아 있다가 흔종(釁鐘: 완성된 종에 소의 피를 바르는 의식)을 위해 끌려가는 소를 보게 된다. 죄 없이 사지(死地)로 끌려가며 두려워 우는 소를 본 양혜왕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소를 양으로 바꾸도록 명령한다. 많은 백성들이 그러한 양혜왕의 행동을 큰 소가 아까워 작은 양으로 바꾸었다고 하며 쩨쩨한 임금이라고 원망하였다. 하지만 맹자는 도리어 이러한 양혜왕의 마음이 바로 인을 행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를 양으로 바꾸라는 양혜왕의 명령은 분명 편파적이다. 두려워 울며 끌려가는 소가 불쌍한 만큼 양에게도 측은지심은 똑같이 발휘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의 생명권을 인정한다면 양의 생명권도 인정되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왜 맹자는 소를 양으로 바꾸라는 양혜왕의 논리를 인을 행하는 방법,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판단한 걸까? 서구 근대 철학에 입각한 정의의 윤리에서 주체들은 모두 동등한 권리를 지닌 개별 존재로 이해되며, 어떤 주체도 특권을 가질 수 없다. 정의와 공평성을 도덕 원리로 채택하는 가운데 편애성(partiality)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며 불순하다. 권리의 측면에서 정의의 문제를 논의할 때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편애성은 결코 도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편애성은 공평무사함과는 상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편애성이 비판받는 이유는 공평무사하지 않다는 것,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과연 공평무사함은 언제나 공정하며 평등성을 담보하는가? 편애성은 항상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가? 여성 고용할당제 법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법조항 등은 어떤 의미에서 분명히 편파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무사공평성(impartiality)의 원칙을 어긋나는 ?痼?아니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특별한 관계에서 사적으로 일어나는 감정 모두를 평등성, 불편부당성, 상호성 등을 보장하는 보편적 원리와 정면으로 대치시킬 수 없음이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를 할 수 있는 마음, 인을 행하는 방법일 것이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분명 눈앞의 광경에서부터 도덕심을 출발시키지만 그 도덕심이 단지 사적 감정의 측면에 제한되지는 않는다. 희생으로 쓰일 소가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하는 양혜왕에게 재물을 아낀다고 원망하는 백성들과는 달리 맹자는 그것이 바로 왕도정치를 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라 평가한다. 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구체적 경험, 그리고 특별한 관계에 있는 존재를 특별한 위치에 놓고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 모두가 사적 감정에 기반한 제한된 도덕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눈앞에서 두려워 떠는 소의 모습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은 단지 사적 친밀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보다 먼 관계, 공적 영역에까지 미치게 하는 도덕심의 발로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도덕 원리를 적용하고자 할 때, 또는 비슷한 상황에 동일한 원리를 적용하고자 할 때, 개인이 지니는 특수성이나 상황의 맥락에 따른 미묘한 차이들은 간과되어 버린다. 공평성과 보편성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허구일지 모른다. 공평성과 보편성의 이상에 따를 때 여성, 유색인종, 노약자, 장애인, 빈곤층 등 사회적 주변인의 생각이나 경험은 곧잘 무시되기 때문이다. 친친(親親)은 특정한 관계 안에서 당사자들의 필요를 고려하므로 편파적이 될 위험성이 많다. 하지만 공평성의 이상(理想)이 사람들을 동일한 개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개인들의 차이를 형평성 있게 고려하는 것이어야 하며 보편성 역시 개별적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생한 방식으로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출전: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 上)」
마을이 인(仁)한 것이 아름다우니, 인한 곳을 택해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이 말은 아름다움에 대한 공자(孔子)의 인식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공자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인(仁)으로 전제한다. 그런데 공자는 ‘인’을 한 마디로 잘라서 알기 쉽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제자들이 물으면 “남을 사랑하는 것.”,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 등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공자가 말한 ‘인’의 내용은 너무나 평범하고 당연한 말이기 때문에 만인의 추앙을 받는 공자가 이렇게 시시한 말을 했을까 사실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공자의 말은 평범함 속에 진리가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유자(有子)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 바로 효제(孝悌)라고 했다. ‘효’는 각 가정에서 실천하는 ‘인’이요, ‘제’는 각 가정의 집합체인 마을(사회)에서 실천하는 ‘인’이다. 그래서 효제를 잘 실천하면 ‘인’을 잘 실천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마을의 모습을 공자는 아름답다고 했다. 공자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공동체 속에서 ‘인’의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한 마을을 택해서 살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에서 우리는 유학(儒學)의 핵심사상인 수기안인(修己安人: 자기를 먼저 수양하고 남을 편안하게 함)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다. 그 어울림 속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인’이며, 그 ‘인’이 잘 실천 되고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인 것이다. 요즘처럼 인한 마을을 택하여 살기가 어려운 시대도 없는 듯하다.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모두가 폐쇄된 공동주택에서 살아야 하는 환경에서, 어느 마을이 인한 마을인지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이럴 때일수록 내가 먼저 ‘인(효제)’을 실천하여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보자.
袖 『논어(論語)』「이인(里仁)」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숨기고 자식은 부모를 위해서 숨기니, 정직함은 그 가운데에 있다.
위의 내용은 정치인 섭공(葉公)과의 대화에서 공자가 했던 말이다. 섭공은 “우리 동네에서 정직한 이는 그 아비가 양을 훔치자 그를 당국에 고발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우리 동네에서 정직한 자는 그와 다르다.”라고 말했다. 인륜의 근본인 부자간의 기본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직당국에 고발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 공자의 견해이다. 이처럼 자애와 효성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점은 유교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2007년 5월 26일, KBS에서는 ‘유교-2500년의 여정’이라는 제목의 스페셜 4부작(인의예지)을 방영하는 맨 처음에서 ‘효(孝)’를 강조하는 과정으로 바로 위의 내용들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것은 ‘법과 처벌’보다는 ‘인정과 도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감명을 낳게 할 수는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해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자식이기 때문에 그러한 잘못을 보더라도 효를 뒤로 할 수 없어 그저 묵인할 수밖에 없다는 비사회적 정서만 남기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유교의 참모습일까? 부자관계라는 이유로 이웃집 양을 훔치는 사회적 비리는 못 본 체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것이 유교라면, 유교는 처음부터 설 자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집단속의 이익만 강조하는 비사회적 존재를 인정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유교에서는 ‘간쟁’의 논리를 중시한다. 간(諫)이란, 윗분의 잘못에 대하여 직언으로 일깨워드려서 스스로 그러한 곳에서 벗어나도록 조력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효성의 내용으로도 간쟁의 태도를 중시했다. 『논어』에서는 ‘기간(幾諫)’이라는 용어로, 또한 『효경』에서는 ‘쟁자(爭子)’라는 말로써 그 점을 나타냈다. 바로 이러한 간쟁의 역할을 주목해보면, 부모의 잘못이 자식에 의해 고발되지 않고 즉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고쳐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점에서 공자는 ‘정직함은 숨겨주는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자로(子路)」
군자는 일생을 마치도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못하는 것을 싫어한다
‘질(疾)’이라는 말은 ‘걱정하다’ ‘싫어하다’는 뜻이다. ‘몰세(沒世)’는 ‘죽을 때까지’ ‘세상 마칠 때까지’ 또는 ‘죽은 후’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칭(稱)’은 ‘일컫다’ ‘칭찬하다’는 의미이다. 즉 “군자는 이 세상을 다할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칭찬하는 경우가 없다면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공자가 평상시에 주장하는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 보다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 모순되는 것 같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 구절은 일부러 명성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 선한 행위나 덕을 펼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기 때문에 걱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나 혹은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은 시작부터 정도(正道)를 벗어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행동이나 생각의 표준이 올바른 도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만 두게 된다. 이런 사람은 결코 올바른 도리에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하고, 삶의 모든 주도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조종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인물을 과연 군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충실히 하고 선행을 말없이 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입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과시하여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심껏 행하고 소리 없이 선행을 하다보면 마치 깊은 산 무성한 수풀 속에 한 떨기의 난초가 종일토록 향기를 내는 ?稿낮?저절로 명성이 얻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하나의 명성도 이루지 못할 경우 당연히 죽어서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군자는 육신을 따라 이름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을 크게 슬퍼하는 것이다.
#출전: 『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이 말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중시하고 있는 정의의 가치실현이라는 화두를 꼭 짚어 이야기하고 있다. 정의냐 실리냐? 이것이 문제인데, 군자는 의리를 중시하며 타자와의 관계에서 ‘상호 인정’이라는 가치를 앞세운다. 반면에 소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타인을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기 일쑤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인정’받는 것만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도 없다. ‘인정’의 계기가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공동의 노력으로 발생한 이익을 그 구성원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분배하고, 아울러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서양에서 정의의 기본개념은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주라”는 것으로 표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의(justice)는 그리스어 dike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은 동등하게 “둘로 나눈다”라는 뜻의 dich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어원론에서도 justice의 jus는 ‘결합’을 의미하는 범어의 ju(yu)라는 어근에 ??유래를 둔다. 그렇다면 정의란 둘로 나눔으로써 구성원들을 결합시켜주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덕(四德) 중의 하나이면서 유가윤리의 핵심 덕목인 의는 justice의 개념과 의미를 공유한다. 군자가 의리에 밝다고 하는 말이 그에게 모든 이익을 다 포기하라고 하는 뜻은 아닐 게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먼저 생각한다”라 하고, 또한 “이득을 보고 의를 생각한다”라고 말하며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어떤 이익을 얻음에 있어서 먼저 의에 합당한지 여부를 살펴서 그것을 취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때의 취리여부(取利與否)의 판단기준이 바로 의라는 것이다. 군자는 의를 가치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양하는 미덕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이익을 분배하며 사회의 낙오자를 빼놓지 않음으로써 타인에게 의로운 사회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고민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군자의 고민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진행형이다. 만약 공자에게 군자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하냐고 묻는다면, 공자가 지금 여기 태어나 살고 있더라도 어김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 “군자는 의로써 바탕을 삼고, 예(禮)로써 그것을 행하고, 겸손함으로써 그것을 표현하고, 믿음을 지켜 그것을 완성한다”고.
#출전: 『논어(論語)』「리인(里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