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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일보 1933년 6월 신문에 보문산에서 발견된 불상을 소개하고 있다. 1000년전 불상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출처=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신문아카이브) |
대전 보문산에서 발견된 1000년 전 고려 때 불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일제강점기 동굴 7개가 발견된 보문산에서 향토문화계가 이번에는 머리에 두건을 두른 지장보살상을 찾는 탐사를 공개조사로 전환해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보문산에 고려 때로 추정되는 지장보살 불상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33년 일제강점기 때다. 보문산이 있는 부사동에서 산을 파던 중 흙 속에서 미륵불좌상이 발견된 것이다. 높이는 8척(242㎝)이요 폭은 4척(121㎝)이라 성인 두 명이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컸고, 어른 키 높이를 훌쩍 넘는 장신의 석상이었다.
특히, 보존상태가 완전하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얼굴의 상호 형태가 동자상같이 보이기도 했다. 1933년 6월 10일자 조선중앙일보는 대전읍 보문산에서 큰 석불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발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갑순 씨 소유 산을 절토하는 중 미륵불좌상이 발견되었고, 조사한 결과 1000년 전의 고려시대 불상으로 관측됐다"고 타전했다. 불상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경성일보를 비롯해 당시 발행된 신문에 여러 날에 걸쳐 보도됐을 정도로 화제였고, 불상을 보려는 방문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고 송백헌 교수의 기록에 남은 보문산 불상 모습. (출처=대전시사편찬위원회) |
보문산 미륵불좌상은 근대까지 보문산을 지켰던 것으로 보이는데, 테미고개라는 지명이 붙기 전에는 석불이 있다해서 부처당이고개로 불렸을 정도다.
고 송백헌(1935~2021) 충남대 명예교수는 대전시시사편찬위원회 '대전의 옛 이야기' 편에 불상을 소개하며 "테미고개로 잘못 알려진 부처당이고개는"이라고 글을 시작했다. 송 교수는 글에서 "갑부 김갑순이 집을 짓기 위해 터를 파다가 그 땅속에서 부처가 나와 그곳에다 절을 세우고 절 이름을 천복사라 하였고 불상을 모셨다"라고 설명하고 "6·25전쟁 때는 전사자를 모시고 성황당과 불상이 있어 부처당이고개, 부처당이 마을이라고 불렸다"고 설명했다.
보문산에는 지금도 산성 아래에 높이 6m, 폭 6m 크기로 바위에 새겨진 대전시유형문화재의 '보문산 마애여래좌상'이 있고, 호동 주민들의 안녕을 지켜준다는 제작년도 미상의 '호동불상'이 남아 있다. 또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는 부처의 약사여래좌상도 보문산에서 발견되어 공주박물관에 보존 중이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사진을 보았을 때는 머리에 두건(천관)을 두른 동자상으로도 보인다"라며 "두건을 두른 석상은 국내에서는 아직 보고된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우리의 것이 반출되어 일본 규슈박물관이 소장 중인 지장보살 유희좌상이 두건을 두른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귀한 불상"이라고 설명했다.
안여종 대전문화유산울림 대표가 14일 중구 석교동 남상호 씨의 안내를 받아 보문산에서 불상을 찾는 탐사를 벌였다. (사진=임병안 기자) |
문헌에서만 확인되는 불상의 실체를 찾아 연구한 대전문화유산울림 안여종 대표는 14일 마을 원로의 안내를 받아 보문산을 한 차례 더 탐사한 뒤 지역 내 탐문만으로는 미륵불좌상을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대표는 "보문산의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증명할 중요한 문화재"라며 "공개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알려서라도 불상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