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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8 10:17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대한의 딸 한비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줄거리 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 안에서만 살 수가 없다. 안전하고 먹이도 거저 주고 사람들이 가끔씩 쳐다보며 예쁘다고 하는 새장 속의 삶, 경계선이 분명한 지도 밖으로 나갈 것이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다닐 거다.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하고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은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이자 수업료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한 대학생이 물었다. “재미있는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세요?” 나는 답했다.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내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동 병원에 사십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를 만나려면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였다. 그럼에도 그런 강촌에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었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이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러자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해졌다. 구호 일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기술을 습득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삶을 거칠게 이분화한다면 이런게 아닐까.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있는 자에게 보태며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 할 것인지, 그것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 기회의 불평등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할 것인지. 혹은 평생 새장 속에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지,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며 창공으로 비상할 것인지. 나는 지금 두 번째의 삶에 온통 마음이 끌려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해도 현실은 다르지 않느냐고.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난 적어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제발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전문가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누구든지 처음은 있는 법. 독수리도 기는 법부터 배우지 않는가. 처음이니까 모르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겠지. 저런 초자가 어떻게 이런 현장에 왔나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니 이 일을 시작한 지 겨우 6개월 된 나와 20년차 베테랑을 비교하지 말자.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만을 비교하자. 나아감이란 내가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앞서나가는 데 있는 거니까. 모르는 건 물어보면 되고 실수하면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면 되는 거야. 내 나이와 다른 분야의 경력을 염두에 두고 뻗대면 뻗댈수록 나만 손해다. 자, 나는 이제부터 두 달간 집중 훈련을 받으러 온 훈련병이다. 나이 같은 건 잊어버리자. 두 달간 죽었다 생각하고 모든 상황과 사람을 스승 삼아 열심히 배우는 것만이 살 길이다. 이렇게 하면 뭐가 남아도 남겠지. 내가 긴급구호를 시작한다고 할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물었다.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거 아니에요?”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80년, 사람의 인생을 하루라고 친다면 그 절반인 마흔 살은 오전 12시, 정오에 해당한다. 그러니 사십대 중반인 나는 이제 점심을 먹은 후 커피 한잔 마시는 시간에 와 있는 거다. 아직 오후와 저녁과 밤 시간이 창창하게 남았는데 늦기는 뭐가 늦었다는 말인가. 뭐라도 새로 시작할 시간은 충분하다. 하다가 제풀에 지쳐 중단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다. “비야, 비야.(비야 언니, 빨리 가요.)” 우리 현지 여직원 미리암이 재촉한다. 여기서는 남녀노소 없이 사람들이 하루 종일 비야 비야 내 이름을 부른다. 물론 날 알아서가 아니다. 이곳은 파르시아라는 페르시아 말을 쓰는데, 비야는 이곳 말로 ‘여보세요’, ‘빨리 해요’, ‘이리 오세요’ 등 수십 가지의 뜻을 가진,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다. 그래서 내 이름을 말해줄 때마다 얼마나 재밌어하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웃다가 사래까지 들렸다. 하기야 사람 이름이 ‘여보세요, 빨리 해요’라니 웃기지 않은가. 어떻게 이렇게 이상한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재활병원에서 일하는 지뢰 전문의사 데이브가 말했다. “지뢰의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들이요. 제일 약하다는 대인지뢰를 밟았는데도 한쪽 팔다리는 물론 얼굴의 반까지 날아간 아이가 여기 이 층 병실에 누워 있어요. 나비 지뢰는 전혀 해가 될 것 같지 않은 초록색 나비 모양이라, 아이들이 호기심에 만지고 놀다가 터져 수많은 사고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뿐인 줄 아세요? 초콜릿, 예쁜 색깔의 계란, 아이스크림 모양의 지뢰는 아이들을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뭘까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건 책이나 곰 인형 안에 지뢰를 묻어놓는 거란다. 피난 갔다 돌아온 아이가 반가운 마음에 곰 인형을 잡는 즉시 터져, 아이는 물론 집안 식구들이 모두 죽게 된다고. 아이들이 자라면 곧 자기들을 죽이는 적군이 되니까 씨를 말려야 한다는 것이 이유란다. 더욱 힘 빠지는 것은 1년에 제거되는 지뢰는 겨우 10만 개지만 새로 묻는 지뢰가 무려 2백만 개라는 사실.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의족을 만들어준다고 해도, 결국 바닷물을 컵으로 퍼 나르겠다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생각한단다. 어떤 사람은 전쟁을 일으키며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저 산맥을 넘었을 텐데, 또 어떤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산맥을 넘나드는구나. 양쪽 다 전쟁은 전쟁이다. 한쪽은 진짜 전쟁, 다른 한쪽은 구호 전쟁. 전쟁에서는 모두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 총칼로 하는 진짜 전쟁처럼 식량과 사랑으로 구호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도 그렇게 일한다. 구호는 마음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구호 전쟁을 하려면 사랑의 총알이 필요하다. 구호 자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구호 자금에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보낸 1백만 원도 들어 있었다. 세뱃돈과 용돈, 상금 등을 알뜰히 모은 것이라는데, 그 아이는 지난해 가을 백혈병으로 죽고 말았다. 아이 부모님은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월드비전에 보내셨다. ‘우리 아이도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살리는 데 줬다고 하면 무척 좋아할 거예요’라는 편지와 함께. 그 외에도 늦깎이 사법연수생의 첫 월급, 어느 할머니가 칠순잔치 안 하고 보내신 잔칫돈,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생의 일주일 치 급료 등 정말 한푼 한 푼이 귀하고 멋진 돈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정신이 번쩍 난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서 이분들을 포함한 후원자 모두에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해주고 싶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로서 당신들이 맡기신 돈으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살렸다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마음 가볍고 떳떳한지 모른다. 작년에 한정된 구호 자금 때문에 한 마을은 씨를 배분하고 그 옆 마을은 주지 못했단다. 안타깝게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씨를 나누어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 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아사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는 조건이었음에도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려놓은 것이다. 이곳에서 씨앗이란 존재만으로도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 했나? 생명의 반대 역시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외면하는 곳이라도 식량이, 깨끗한 물이, 기초 의약품이 없어서 사람이 죽어간다면 우리는 달려가야 한다. 흔히 사람들은 굶주림의 원인을 세상에 식량이 부족해서, 혹은 자연 재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지구에는 60억 인구를 모두 먹여 살리고도 남을 충분한 식량이 있다. 10년 가뭄이 들어도 부자들은 굶어 죽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분배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못 고치는 습관을 고치려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인정하자고. 세상에는 성별, 국적, 부모형제 등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것들이 있다. 그 주어진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탓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하루빨리 인정하고 그 다음을 생각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 내 경우에는 말을 빨리 하는 습관이나 덜렁이 습관을 ‘난치병’ 혹은 ‘불치병’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빠른 말투는 어쩔 수 없으니 말을 할 때 ‘속도’보다 각 단어의 발음을 정확히 할 것과 문장과 문장 사이를 적절히 끊을 것에 더 유념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도 편하고 의사소통도 훨씬 좋아졌다. 덜렁이 습관을 위해서는 두 가지 묘책을 짜냈다. 첫째, 될수록 손에 뭘 들고 다니지 말 것. 둘째, 꼭 그래야 한다면 잃어버려도 부담없는 가격대의 물건으로 살 것. 그래서 지금은 웬만큼 비가 와도 그냥 맞고 다니고 웬만큼 추워도 장갑 없이 지낸다. 꼭 필요한 날에는 값이 싼 ‘길거리표’를 애용한다. 내가 처음 아프리카에 왔던 1994년에도 에이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래서 일회용 주삿바늘을 한 다섯 개 정도 넉넉하게 가지고 다녔다. 혹시 말라리아 등에 걸려 병원에 가야 할 때를 대비해서였다. 여행한 루트가 에이즈 창궐 지역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환자들을 스쳤겠지만 그때는 누가 에이즈 환자인지 알아볼 안목이 없었다. 알았다면 피해 다니느라 여행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만약 인질로 잡히면 여러분 몸값이 얼만지는 잘 알죠?” 잘 알고 있다. 긴급구호 요원의 몸값은 0원이라는 것을. 우리 단체는 납치범들과 몸값 협상을 하지 않는다. 납치 세력이 인도적 지원을 원하면 무엇이든 들어준다. 구호 단체인 우리가 아군이건 적군이건 굶어 죽는 사람, 아파 죽는 사람들에게 식량이나 약품을 갖다주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질 석방의 대가로 돈을 요구할 때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 우선 우리 후원자가 한 푼 두 푼 모아준 후원금으로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호 단체 직원을 인질로 잡아 몸값을 뜯어내는 그런 세력에게 돈을 주면 그 집단의 힘이 점점 세져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도우려는 사람들을 더욱 괴롭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식수대를 놔주는 건설업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물과 함께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와 같이 일하게 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우리 비서가 ‘love’를 어떻게 통역했는지 갑자기 환호성이 터지면서 짝짝짝 박수가 쏟아졌다. 느닷없는 내 사랑의 폭탄 세례를 받은 이라크 남자들, 좀 놀랐겠지만 기분은 무진장 좋았을 거다. 아이들은 내가 그 동네에 있는 내내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이 꼬리, 마이 꼬리’ 합창을 했다. 옆에 있는 아모르도 싱글벙글 좋아한다. “마이 꼬리가 뭐예요?” “마이는 물, 꼬리는 한국인. 그러니까 ‘물을 가져다주는 한국인’이라는 뜻이에요. 비야 씨에게 딱이네요.” 그 후 이 별명은 그곳에서 내 이름이 되었다. 그날 따라갔던 우리 운전사를 시작으로 곧 통역이, 수석 엔지니어가, 사업을 진행하는 동네 사람들이, 나중에는 사무실에 있는 현지 직원 모두, 급기야는 안전 요원 토마스까지 나를 ‘마이 꼬리’라고 불렀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신난다. 그리고 사랑받고 있는 기분이다. 하루는 호주 직원과 길을 가다가 어깨에 정통으로 돌을 맞았다. 돌을 던진 아이를 쳐다보았다. 열 살 남짓의 꼬마. 내가 화를 내는 대신 웃어 보이니까 아이가 어쩔 줄 몰라 했다.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옆의 어른들은 당장 그만두라고 야단치지만 지난날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누구던가.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저 어린 아이들이 알 리가 있겠는가. 이런 일을 당하면 마음도 상하고 힘도 빠진다. 우리가 이 대접을 받으려고 땡볕 더위에 무쇠로 만든 방탄조끼를 입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어쩌랴. 구호 현장에서 도우러 왔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오해도 받고 미움도 받을 수 있다. 이것 역시 긴급구호 현장의 엄연한 현실이다. 한번은 아모르가 “You are on my head.”라고 하며 자기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기에,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는다’라고 한국식으로 해석하고는 내가 언제 너한테 버릇없이 굴었냐니까 다들 까르르 웃는다. 이라크에서 이 말은 “당신은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뜻이란다. 나도 아모르처럼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당신들이야말로 내 머리 위에 있습니다.’ 양도식까지 끝냈으니 식수 사업 자체는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일의 전부는 아니다. 현지 직원들과의 첫 미팅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물과 함께 사랑을 나누어줘야 한다. 이들에게 세상의 누군가는 석유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야 한다. 당신들이 하루빨리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무엇 때문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하는 일, 그것까지 잘 했는지 항상 점검해보아야 한다. 몸은 고생하지만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훨씬 행복한 것 아닌가. 이렇게 더 이상 못 할 것 같아도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꾹 참으면 되는 것 아닌가. 이게 나의 최선이야. 이 정도면 나에게도 남에게도 떳떳해, 라고 생각할 때 그때 한 번 더 해볼 수 있어야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닌가. 그래, 그래, 지금 99도까지 온 거야.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드디어 100도가 되는 거야. 물이 끓는 100도와 그렇지 않는 99도. 단 1도 차이지만 바로 그 1도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 그러니 한 발짝만 더 가면 100도가 되는데 99도에서 멈출 수는 없어. 암, 그럴 수는 없지. 99도까지 오느라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말이야. “외롭지 않으세요?” 글쎄, 조금도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늘 외롭다거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롭지는 않다. 결혼한 친구들도 외롭다고 징징대는 걸 보면 혼자 사는 사람만 외로운 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 질문이 ‘독신이라 더 외롭죠?’라는 뜻이라면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외로움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인생 패키지 안에 있는 품목 같은 게 아닐까.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독신으로서의 자유로움과 독신이라서 좀더 외로운 것은 한 묶음이다. 자유로움만 택할 순 없다. 단독 포장이 아니라 패키지니까. 그러니 내 몫의 외로움이 없을 리 없다. 그 존재를 인정하고 같이 사는 수밖에.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에게는 딸이 셋 있다. 큰 딸은 에티오피아, 작은 딸은 방글라데시, 셋째는 몽골에서 살고 있다. 아주 똘똘하고 귀엽다. 올해 안으로 네팔 아들이 한 명 더 생길 예정이다. 모두 월드비전이 맺어준 아이들이다. 매달 내 통장에는 월드비전 이름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인출란의 통신비, 식사비 등 여러 항목 가운데 ‘월드비전’이라는 단어가 보이면 기분이 좋다.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이 6만 원이 내가 매달 지출하는 돈 중에서 가장 멋지게 쓰는 돈, 가장 힘센 돈임에 틀림없다. 그 돈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가는 동안 커지고 또 커져 내 세 딸과 그 가족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디딤돌이 되는 거니까. 나는 가방에 해외 아동 후원 신청서를 늘 가지고 다닌다. 혹시 만나는 사람이 이런 일에 관심을 보이면 마음 변하기 전에 결연을 맺어주고 싶어서다. 후원하는 사람이나 후원받게 될 아동에게도 좋은 일이지만, 이 두 사람을 이어주는 내 기분도 아주 좋다. 여기서 꼭 얘기하고 싶은 건 한 번에 큰 돈을 내는 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정기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는 점이다. 그래야 우리 둘째 딸 아도리네가 그랬던 것처럼 근본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 아동 결연. 2백만원도 아니고 20만 원도 아니고 단돈 2만 원을 한 달에 한 번 쏘는 걸로 좋은 일한다는 뿌듯함을 느끼고, 폼까지 잴 수 있다.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이런 밉지 않은 자화자찬, 아름다운 사치는 얼마든지 부려도 좋을 것이다. 아니, 부리면 부릴수록 좋은 것이다. 나에게 딸을 세 명이나 만들어준 월드비전. 5년 전 이 단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안경가게인가 했다. 지금도 안과병원이나 방송프로덕션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많다. 나중에 오렌지색 로고를 보고서야 세계 여행중, 특히 아프리카에서 수없이 스쳤던 단체였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세계적인 구호 단체의 발생지가 다름아닌 한국이라는 것.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 고아와 미망인을 돕는 일로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한경직 목사님이 아이들을 돌보시고 밥 피얼스 목사님은 외국에서 필요한 자금을 모아 오셨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출발한 긴급구호 팀이 지금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약 1억 명의 사람을 돌보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 및 개발 단체가 된 것이다. 단 한사람 때문에 어떤 나라 사람 전체가 고맙고 좋기도 하고, 반대로 그 나라 전체에 거부감이 생기며 꼴 보기 싫기도 하다. 대단히 단면적이고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이게 인지상정이다. 이러니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 대표라고 할 수 밖에. 우리는 각자 속해 있는 분야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 중 한 사람만 잘못해도 그 분야 사람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욕하고 믿지 못하게 되지 않나. 나 한 사람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싶겠지만 바로 그 한 사람이 자기 나라와 자기가 속해 있는 분야의 호감도와 이미지를 좌지우지한다. 나 역시 네팔에 있는 동안 ‘비공식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점을 잊지 않을 작정이다. 이런 저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소리 내어 말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 수줍은 미소, 살짝 스치는 작은 손동작 하나에도 고마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내 마음은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이처럼 늘 작은 것이 우리를 위로하고 감동시킨다. 언제나 작은 것이 우리를 괴롭히고 상처를 내는 것처럼…. 우리 요원들 모두 같은 마음일 거다. 이래서 긴급구호는 달콤한 중독이다. 하나님, 저의 재능도 건강도 시간도 모두 주님께 받은 것이니 제 것이 아니옵니다. 제 생명 역시 제 것이 아니옵니다. 바라옵고 원하옵기는 저의 모든 것으로 주님의 이름을 가리는 일이 아니라, 기리는 일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서, 기쁨과 충만함과 함께 고난과 시련도 있을 것이라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저요 저요, 제가 할게요’라며 기꺼이 하겠습니다. 맡기신 일이라면, ‘이런 것쯤 괜찮아요’라며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게 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오리까? 저를 온전히 바치오니 준비하신 대로 쓰시옵소서. 순종하겠나이다. 저는 주님의 “애썼다” 그 한마디면 족하나이다. 도대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그동안은 평화롭게 같이 살았는데 갑자기 왜 전쟁이 일어나고 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진 것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교 간의 대립이라고. 그러나 나는 서구 사회가 문명의 충돌이니 뭐니 하며 전 세계를 기독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으로 나누고, 이교도인 모슬렘을 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은 서방 언론들의 무책임한 이분법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현장에 가보면 이 문제는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양측 누구도 종교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관한 어떤 협상이나 합의에도 종교가 언급된 적이 없다.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 유대교인이 밉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삶을 파괴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미워할 뿐이다. 아마추어의 눈으로 봐도 이건 명백한 영토 분쟁이다. 한쪽에서는 우리가 대를 이어 살아온 땅이라 하고, 한쪽에서는 수천 년 전에 우리에게 예정된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분쟁의 시작과 끝은 땅 때문이고, 그 땅에 누가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주권의 문제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현장을 다녀온 후 한동안 고기는커녕 생선도 먹지 못했다. 자꾸만 시체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다. 악몽도 여러 번 꾸었다. 꿈의 내용은 신기하게도 매번 같았다. 내가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 안에 갇혀 있는데, 발밑에서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건물 더미 밖에서 내 손을 잡아끌어주어 구출되려는 찰나, 저 밑에서 누군가가 내 발목을 잡아당기는 꿈이다. 깨어보면 티셔츠가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흥건하다. 현장에서 많이 놀란 모양이다. 북한문제 하면 늘 인권 문제가 짝을 이루어 거론된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 문제를 나 같은 문외한은 감히 언급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이 있다. 인간의 권리 중 가장 중요한 권리는 살아 있을 권리, 바로 생존권이라는 것이다. 그건 방글라데시건, 말라위건, 아프가니스탄이건 마찬가지다. 저 감자꽃이 통일꽃으로 활짝 피어나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누군가 우리들에게 북한이 먹을 것이 없어 곤궁에 처했을 때, 사람이 죽어갈 때, 형제인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그 후년에도 1년에 두 번 이렇게 감자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북녘 동포들이 토실토실한 감자를 실컷 먹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내가 긴급구호 식량배분 담당으로 여기에 올 일이 절대 없기를 바란다. 저 벌판 가득 피어있는 감자꽃을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이 놓인다. 나는 인생이란 산맥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산맥에는 무수한 산이 있고 각 산마다 정상이 있다. 그런 산 가운데는 넘어가려면 수십 년 걸리는 거대한 산도 있고, 1년이면 오를 수 있는 아담한 산도 있다. 한 발 한 발 걸어서 열심히 올라온 끝에 밟은 정상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그게 끝은 아니다. 산은 또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것. 그렇게 모인 정상들과 그 사이를 잇는 능선들이 바로 인생길인 것이다. 삶을 갈무리할 나이쯤 되었을 때, 그곳에서 여태껏 넘어온 크고 작은 산들을 돌아보는 기분은 어떨까? 오늘도 나는 행군한다. 지금은 몸에 익지 않은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좀 괴롭다. 무엇보다 앞서가는 사람 없이 길 없는 길을 가야 하는 게 제일 힘들다. 이 길 끝은 과연 정상인가, 내가 가진 식량과 장비는 충분한가, 앞으로 닥칠 크레바스(crevasse. 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와 암벽은 어떻게 넘어가나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무겁고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기가 꺾여 자신이 없어 질 때마다, 몸이 지쳐서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일 때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싶을 때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진군의 북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절체절명의 명령 소리가 들린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나는 사람은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심과 감동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여자인 것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디딤돌이 된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걸림돌로 만들 것인가, 디딤돌로 만들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과 활용 방법에 달려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