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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70%정도 커팅한 요약본 입니다. 미술사 공부 첫장부터 하실분들은 소모임으로 들어 오셔서 함께 해요.
원시미술 [原始美術, primitive art]
나이브 아트 [naive art] - 앙리 루소,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
큐비즘[cubism] - 피카소
포비즘[fauvism] - 알프레드 앙리 모이어, 마르크 샤갈
서양 미술사를 서술한 대부분의 저서의 첫장은 원시미술 부터입니다.
그리고 그내용의 대부분은 라스코의 동굴 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등 선사시대인들의 벽화 또는 암각화에 대한 설명이고
물론 뮐렌도르프의 비너스상도 항상 빠지지 않는 중요한 유물이죠. 어디서나 볼수 있는 원시미술에 대한 설명을 다른시각으로
해볼수는 없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고민중에 현대회화에서 원시미술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들추어가며 글을 시작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Henri Rousseau (le Douanier) (French, 1844–1910)
The Repast of the Lion 1907 Oil on canvas
44 3/4 x 63 in. (113.7 x 16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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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성실 하지만 손재주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가난한 함석공이였는데 집안사정 때문이었는지 20살때 자원하여 군에 입대 합니다.
육군으로 입대한 그는 군악대로 배치를 받게됩니다.
-중략-
여기 저기 곳곳에 숨어있는 새들과 사자와 악어들을 성인용 동화책 이야기처럼
풀어 나가는 그의그림은 당시에는 놀랍다기 보다는 황당한 이야기였겠죠.
재주는 없지만 성실한 아이가 그려내는 크레파스화처럼 그의 그림은 성실한 밀도로
가득차있지만 별로 기교스럽지도 우아하지도 않습니다. 이작가는 앙리 루소였습니다.
후대 평론가들은 그의 이러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선입관 없는 미술의 양식문제에 구애되지 않는
자연과 현실의 시각적인 대상에 대하여 경건할 만큼 소박한 태도로써 건강한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림을
나이브 아트 [naive art] 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일본쪽에서 들어온 말인지는 확인 되지 않지만 소박파(素朴派)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유파입니다.
루소외에 앙드레 보샹, 카미유 봉부아, 레온 그레프등 많지는 않지만 어느한정된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이러한 나이브 아티스트들은 출현하고 있습니다.
Andre Bauchant ,1873~1958 (앙드레 보샹)
지나치다 싶게 꼼꼼히 모든것을 그리려다 보니 오히려 원근법은 무너지고 전체 화면은 평면화되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앉아 있는 두사람의 표현이 오히려 정감이 가게 만듭니다.
커다란 소나무와 해안 절벽을 따라 삼각구도를 만들어 내지만 소나무의 윗부분이 지나치게 잘려 나간듯한 느낌도 듭니다.
나이브 작가들의 그림은 대부분 성실한 밀도라고 할수있습니다. 앙드레 보샹의 이 그림도 성실한 붓터치와 기교적이지 않은
색채의 사용으로 현란한 색채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눈에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건강하고 순수한 표현은 화가들에게 큰 무기가 될수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Camille Bombois, 1883~1970 (카미유 봉부아)
이집트의 벽화양식에서 볼수 있는 정면성의 원칙을 재 시도한듯이 보이는 카미유 봉비아의 정물화는
화병을 비롯해 그려진 대부분의 꽃들과 잎사귀들이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이 보이는 시점에서 하나 하나를 성실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생략이나 과장 없이 모든 대상을 그려내려는건 고대 이집트 회화와 아이들의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정중앙의 사물배치를 의도적이라 할수 있겠지만 순박한 그의 그림은 쉽게 기억의 잔상에서
지워지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나이브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생소하고 어색하지만 프로패셔널한 작가들의 작품에선 좀처럼 느낄수 없는
생명력을 볼수 있습니다. 선행 학습이 없는 순수한 감성과 거친듯 담백한 표현법에서 우리는 원시인들의 동굴벽화에서
느낄수 있는 감동과 비슷한 것들을 느낄수 있습니다.
-중략-
Alfred Henry Maurer (1868 ~1932)
야수파 작가인 알프레드 앙리 모이어의 작품입니다.
나이브 하면서도 원색적이고 다듬지 않은 그의 작품은 야수파다운 힘찬 생명력이 엄쳐 납니다.
-중략-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업의 원천을 공포만 가득한 현실세계에서 떠나 좀더 근원적이고 유토피아적인것을
찿아 떠나려 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토속미술과 원시미술에서 그 자연적인 힘과 새로운 양식을 찿았던 거죠.
Lions hunting Bison, Chauvet Cave.
A pride of lions hunt bison, one of the rarest scenes ever found in Paleolithic art. Chauvet Cave
물소를 사냥하는 사자(쇼벳 동굴)
-중략-
원시미술은 그 당시인들에게 예술활동이 아닌 그저 생활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 그들이 엄청나게 많은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 합니다.
현대미술과 원시미술과의 연관관계를 보더라도 많은 작가들이 복잡한 매커니즘과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러 시도로 - 일례로 고갱을 들수 있겠죠 - 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충실하고자 원시미술에 한발을 담고 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수 있습니다. 이러한 본능 충실 욕구는 현대회화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지금도 현대회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커다란 원동력 가운데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중략-
인류 최초의 표현활동은 존재의 확인활동
-중략-.
Lascaux 동굴 벽화(프랑스)
-중략-
소그림뒤에 사슴(?)같은 작은 동물들을 보시죠, 이들이 의도적인 원근법을 사용 하였다고 말한다면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최소한 그들은 보이는것을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인색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들 이후의 이집트나 그리스미술에서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표현법(과학적 원근법이 아닌 시각적 표현에서의 자유)이
없어집니다. 중세중반 이후에나 본격적인 원근법이 사용되기 시작하니 이들의 보이는데로 그리는 성실하고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는 제작 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방식인지 알수있습니다.
또한 이는 현대 회화에서 많은 작가들이 차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Chauvet Cave 쇼벳 동굴벽화(프랑스)
-중략-
Altamira 동굴벽화(스페인)
-중략-
Paradise – The green Donkey Marc Chagall
샤갈의 그림에는 당나귀, 수닭, 비둘기등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 합니다.
그림에 따라서 그 역할(상징)이 조금씩 변하기도 하지만 당나귀는 샤갈 자신 또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소재입니다.
동굴벽화에 그려진 수없이 많은 짐승들은 관찰과 표현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벽에 그려진 사나운 표범과 사자는 나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계대상이자 원시인이 동경하고 동일시 하고픈 수렵의 왕이었습니다.
새끼를 밴 두툼한 복부의 들소는 원시인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꼭 획득해야할 욕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동굴벽화에는 원시인들의 희망과 욕망과 공포와 기원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도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기도와 욕망과 꿈이 버무러져 있습니다.
동굴벽에 그려진 원시인들의 상징성은 샤갈의 그림에 담겨 있는 상징성과 근원은 같은 것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담았다는점에서 몇만년의 시차를 느끼지 못하는건
이상한 일이 아닐겁니다.
Acacus 아카서스 동굴벽화(아프리카)
-중략-
Venus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美)와 풍요(豊饒)의 여신.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농경생산과 관련된 풍요다산(多産)열락, 음탕의여신을 지칭 합니다.
윗쪽 사진은 잘알려진 뷜렌도르프의 비너스입니다.
BC 24,000∼22,000년제작,1883년에 발견 크기 : 석재, 11.1cm
아래 사진은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비너스 상입니다.
상, 하 사진 모두 그리스신화적 개념의 비너스는 절대 아닙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많은 노동력만이 부족의 안전과 풍족한 먹거리를
보장할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따라서 이시기에는 건강하고 많은 아이를 출산할수있는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여인상이었습니다. 수유를 위한 거대한 유방과 순산을 위한 튼튼한 골반과 자궁을 가진 여신을 숭배하며
부족의 영화를 기원했을듯 합니다.
이후 그리스시대에는 신(神)도 인간화 됩니다. 그리스신화에선 신들끼리 질투하고 전쟁하고 사랑도 합니다.
인간과 같은 신, 그들은 신에게서 인간의 이상향을 추구합니다. 더이상 여자에게서 다산만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중략-
원시 미술을 정리 하며 계속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의 미술 활동을 예술의 범주에 넣을수 있는냐 하는것입니다, 글중에 몇번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인용해
'예술(Art)'라는 명칭을 붙이려 애쓰기는 하였지만 글을 써내려 가면 갈수록
'이건 억지 스러운데?' 라는 생각에 혼란 스러웠습니다.
이런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 일부러 첫장에 예술에 대한 정의를 올려 놓았었는데도 말입니다.
분명 그들(원시인)은 예술행위를 하지 않았던건 사실 입니다.
그들의 행위로 나타난 부산물들(동굴벽화, 토기등)은 예술품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삶의 결과물이자 부적이었이었으며 꿈(욕망)의 표현이자 기원이었습니다.
고고학적 입장에서 보면 소중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적이자 보물이라 할수있지만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며 감상하기에는 뭔가 중요한 한가지가 빠진듯한 이 느낌은 미숙한 제가 앞으로 많은 시간을
더 고민해야할 부분인것 같고 이 고민은 다음장인 이집트 미술에서도 한동안 이어질듯 합니다.
* 원시시대의 시대별 분류나 연표등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입시용 자료가 아니니까 우리 여기에서 만이라도 복잡한 숫자에서 해방되어 보자구요(중간고사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은 "이집트 미술"입니다.
첫댓글 ㅎ보여줄려면 다 보여줘야죠. 70% 커팅된 부분을 얼마나 궁금해 할거라고~^^
스크롤의 압박~~연꽃~님이 하신 말씀을 적극 반영했죠,ㅋ
감사합니다
뷜렌도르프의 비너스인 줄 알고 있었는데... 뷜렌도르프 비너스에 관련하여 설이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피가 섞여서 나온 사람이라는...
뷜렌~이 맞습니다,,노안이..ㅋ,,감사합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원시미술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물론 일상생활의 기록일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보면 작가가 스스로 했을까요? 아니면 어떤 권력자에 의해서 부역을 했을까요?
소모임에 답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그림이 좋아서, 그린 사람이 궁금해서, 그 시대적 배경이 궁금해서..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미술사가 궁금해지더라구요 워낙 문외한이다보니 소모임 참여는 엄두도 못내고 아트리움 요약본으로 만족하려는데..그래도 30%는 좀..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어떻게 좀 안될까요? 죄송..염치..ㅠㅠ~~!!
오프에서 만나 공부하는 소모임이 아니니까 편안할때 언제라도 들어오셔서 공부하시면 됩니다, 용기를 내세요 ^^ 홧팅!
쉽게 소화 된 설명~ 공부 잘 됩니다. 소모임 들려 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