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혁(沿革)
대구광역시 중구 서야동 1번지에 소재한 대성사(大聖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말사이다.
대성사(大成寺)는 1922년에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지였던 광문사(廣文社) 터에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역사적 의미가 깊은 사찰이다. 따라서 1993년에 대구광역시의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으나, 2002년에 사찰을 헐고 그 자리에 철근콘크리트 4층 건물을 세워 1층은 임대하고, 나머지 2~4층까지는 법당 및 이에 따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2018년경부터 현 주지 진우스님이 주석한 도심 속의 생활불교 포교당으로 동 연대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銀海寺) 말사로 등록하였다.
2) 중요 가람 구획
가람(伽藍)의 구성은 대법당을 4층에, 종무소를 3층에 2층을 선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1층은 가운데 칸은 대성사 출입 통로로 이용하고 그 양옆에는 6개의 공구 상회가 들어서 있다.
이곳 대구시 중구 북성로는 공구(工具) 골목으로 유명하며, 대성사(大聖寺)의 일부 자리는 대구에서 시작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발상지이기도 하다.
4층의 대법당에는 중앙에 보살상을 봉안하고 후불탱화 대신 약사 원불을 봉안하였다.
우측면에는 지장보살을 주불로 좌우에 무독귀왕과 도명존자, 후불로 지장 탱화를 봉안하였고, 좌우 벽면에는 칠성탱화와 신중탱화를 봉안하여 도심 속 생활불교의 포교 격식을 갖추었다. 법당의 불구로는 동종 1구가 있고, 산신각은 옥상에 조립식 건물로 조성하고 산신탱을 봉안하였다.
3) 대성사와 탱화
(1) 신중탱화
대성사(大聖寺)의 신중탱화는 중앙의 제석천왕을 중심으로 모두 7단으로 신중을 배치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중탱화는 화엄신중신앙(華嚴神衆信仰)에 바탕을 둔 것으로 39위(位) 신중탱화가 그 원형을 이룬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차츰 불교가 민간 신앙과 강하게 결합되면서 보다 많은 신들을 수용하여 104위 신중탱화를 이루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신중탱화는 전체 화폭의 3분의 1을 이 금강신이 차지하고 좌측에 제석천(帝釋天), 우측에 대범천(大梵天), 아래에 동진보살(童眞菩薩)을 도설(圖說)하였다. 주위에는 성군(星君)·명왕(明王)·천녀(天女) 등을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대성사의 신중탱화는 모두 7단으로 구성하였음은 매우 이례적이나 이는 도심 속 생활불교 도량으로서 민중의 고난과 삶의 애환을 신중(神衆)께 의존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2) 칠성탱화
보편적으로 칠성 신앙의 대상은 칠여래(七如來)의 화현(化現)인 북두칠성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칠여래의 증명을 거친 칠성신이다. 따라서 칠성도를 그릴 때는 칠여래와 함께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을 봉안하는 다음과 같은 유형을 따르고 있다.
첫째는 칠여래와 칠원성군만을 도설하는 형이다. 이는 중앙에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두고 좌우보처로서 일광보살(日光菩薩)·월광보살(月光菩薩) 그리고 상단 좌우에 칠여래, 하단 좌우에 칠원성군을 도설하는 형식과 둘째는 첫째의 구도에 삼태(三台)·육성(六星)·이십팔수(二十八宿)를 도설하는 형식, 셋째는 둘째의 구도에다 일광보살·월광보살의 바깥 좌우에 다시 보필성을 도설하고, 칠원성군의 중앙에는 자미대제통성(紫微大帝統星)을 도설하며, 넷째는 제3형의 구도에 신불 습합 관계의 칠성이 아닌 칠성 원래의 모습을 아래쪽에 도설하는 것으로, 대성사의 경우 또한 이러한 의례를 따르고 있다.
(3) 기타 성보 유물
이밖에 대성사의 성보유물로는 동종(銅鐘), 마애 인왕상, 포대화상(布袋和尙), 산신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