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印)’에 대한 이해 >
‘인(印)’이란 도장(圖章)이란 말이다.
자신의 소유를 나타내는 표시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중 가장 오래되고 고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도장을 이용한 방법이다.
도장은 개인이나 기관단체 혹은 관직 따위의 이름을 새겨
문서에 찍는 도구인데, 고대로부터 하늘의 영험과 신력(神力)을
인(印)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고려시대 일연(一然)이 쓴 <삼국유사>의
단군(檀君) 고사에 기록된 ‘천부삼인(天符三印)’이 있다.
천부인은 하늘의 상제(上帝) 환인(桓因)이 인간세상을 구원하고자
인간 세상에 내려가는 아들 환웅(桓雄)에게 건네준 것이며,
세 개의 천부인은 각각 풍백(風伯)ㆍ우사(雨師)ㆍ운사(雲師)의 표증으로서 신령을 상징했다.
그리고 기독교 성경에서도 인(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컨대 요한계시록 7장에 인(印) 맞은 144,000과 흰 무리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인(印)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인(印)’은 여래의 내증(內證), 즉 스스로의 깨달음과 서원(誓願),
또는 공덕(功德)을 상징하는 표지이다.
그리하여 인계(契印)라고 해서, 불상의 손 모양을 말하는데,
손에 아무것도 없이 손가락만으로 특정한 모양을 짓는 것을 수인(手印)이라 하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을 계인(契印)이라 한다.
이 두 가지 수인과 계인을 합쳐서 인계(印契)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무드라(Mudrā)라고 한다.
수인(手印)은 손과 손가락으로 표현하는 수많은 상징적 모양으로서,
조각이나 그림에서 손의 자세는 그 인물의 특성이나 그와 연관된 중요한 일화를 상징한다.
또한 수인은 모든 불ㆍ보살이 수행할 때 스스로의 바람을 이루고자 다짐한
본서(本誓)를 나타내는 손 모양이기도 하다.
수인(手印)이란 부처나 보살이 스스로 깨달아 몸에 지니고 있는 진리나 서원(誓願)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열 손가락으로 짓는 손 모양을 말한다.
그런데 부처나 보살이 지니고 있는 진리나 서원의 덕은 무한한 동시에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그 외면적 표식인 수인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이들 수인은 다시 모든 불상이 지을 수 있는 통인(通印)과
특정 불상만 지을 수 있는 별인(別印)으로 나누어진다.
선정인(禪定印)과 시무외(施無畏印)ㆍ여원인(與願印)은 어느 불상이나
지을 수 있는 통인인 반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전법륜인(轉法輪印)은 석가여래가,
구품인(九品印)은 아미타불이, 지권인(智拳印)은 비로자나불만이 지을 수 있는 별인이다.
그밖에 합장인(合掌印), 천지인(天地印)이라는 것도 있다.
천지인은 석가모니가 탄생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수인이다.
인(印)은 교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불상을 만들 때
함부로 형태를 바꾸어도 안 되고, 어느 특정한 부처가 하는 수인을 다른 부처에 표현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화엄경>은 해인삼매(海印三昧, sgaramudr-samdhi)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해인(海印, 산스크리트어 sgaramudr)삼매라는 수행법에 의해
모든 번뇌가 사라진 부처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도장 찍히듯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인다(印象)는 뜻으로
모든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의 정심(定心)에는 만법의 실상(實相)이 명료하게 비친다는 뜻이다.
즉, 모든 번뇌가 사라진 부처님 마음속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업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곧 부처님께서 얻은 삼매(三昧)의 이름이다.
해인에서 ‘해(海)’는 바다란 말인데, 마음을 뜻한다.
‘인(印)’은 도장 찍는다는 말인데, 불가에서는 “인(印)친다”라고 말한다.
해인은 바다에 도장 찍는다는 말이 아니고, 바다(마음)에 삼라만상이 비친다는 말이다.
즉, 진리의 바다에 망상(妄想)이 다 없어지고, 마음이 맑아짐에 만상(萬象)이 함께 나타난다.
대해(大海)는 바람에 의해 물결을 일으키되
만약 바람이 자면 맑아져서 현상의 나타나지 않음이 없음과 같다.
이에 법을 관조(觀照)함을 바다에 만상이 비추는 것에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즉, 바다가 잔잔하면
삼라만상이 그대로 해면에 나타나 그것이 마치 바다에 그대로 찍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해인이다. 결국 부처님 지혜에 이르면
우주의 모든 만물 실상을 깨달아 알게 됨을 의미한다.
또한 <화염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는 진여본각(眞如本覺)을 말한다.
진여본각이라 함은 일체를 깨달아서 아는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본래 진리의 세계이며, 곧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해인삼매(海印三昧)란 부처님이 <화엄경>을 설명하면서 도달한 삼매의 경지,
즉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바로 그 삼매를 말한다.
신라의 고승 명효(明皛)가 지은 <해인삼매론>에 따르면,
수행자로 하여금 물러섬이 없는 경지에 속히 도달하게 하는 삼매로,
작은 방편을 써서 큰 이익을 얻게 한다고 했다.
이는 <화엄경>에 나오는 ‘십지품(十地品)’의 요지이자,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다.
해인삼매는 <화엄경> 이외의 다른 경전에도 물론 보인다.
예를 들면, <대집경>, <보적경> 등 많은 경전에 설해져 있다.
그러나 해인삼매는 <화엄경>의 세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삼매로 간주되고 있다.
법보사찰로 유명한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의 이름이 이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것이 또 대원각(大圓覺)의 경지이기도 하다.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고요한 바닷물에 비치는 것과 같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 정심(定心) 가운데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법이 명랑하게 나타나는 것을 해인삼매 혹은 해인정(海印定)이라 한다.
이에 비해 내 마음의 바다가 출렁이고 비뚤어 있으면
삼라만상이 비뚤게 비쳐 바로 볼 수가 없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내 마음의 바다를 고요하게 해야
만상(萬象)을 바로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대원각(大圓覺)의 경지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부처님들이 해인삼매 안에 있고,
우리 또한 해인삼매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러 부처님이나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이 그대로
비로자나불이라는 크나큰 바다 위에 있는 것이다.
모든 삼매 가운데 해인삼매를 가장 뛰어난 삼매라고 하며,
해인삼매를 불지(佛智)로 보고 있다.
즉. 부처님의 지혜가 해인(海印)이라는 뜻이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