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맴돈다. 저만치에서 정 사장의 시원스런 이마가 불쑥 나타날 것 같다. 설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그는 이 단대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장사 이전에 그를 찾아 무작정 가판을 맴도는 고객과의 신의이기도 한 일이다.
이산가족을 찾는 어미처럼 2지구 화재 현장을 둘러 친 안전펜스를 돌고 있는 것이 벌써 세 바퀴째다. 장바구니를 움켜진 손끝은 시리다 못해 아파오는데 속에선 열이 치솟는지 몸이 후끈거린다. 펜스를 벽으로 삼고 임시 가판을 편 상인들은 제각기 원래의 상호를 팻말에 매달아 세우고 지난날의 단골을 기다린다. 대 화재 사건으로 사라진 가게 대신에 임시로 낸 가판대 때문에 시장의 통로가 턱없이 좁다. 설 차례 장을 보러 한꺼번에 나온 사람들은 물건을 산다 기 보다는 너나없이 그냥 등 밀려서 자꾸만 시장을 돌고 있는 듯하다.
임시로 낸 가판 어물전도 여러 곳 보인다. 가까운데서 살까 생각해보지만 화장실에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많이 기다렸는교?” 하며 정 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걸어 나올 것 같아서 주저된다. 대를 이어 40년을 단골로 드나들었으니 사실상 우리 집 제수 중 한 부분을 책임져준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고 또 이번 같은 어려움에 그가 건재한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는 안전펜스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옛 상호와 전화번호를 확인하며 왔던 길을 되짚어 천천히 발을 옮긴다.
연말 저녁 늦은 시각, 모처럼 가족이 둘러앉아 연예프로그램을 보는데 텔레비전 하단에 「속보, 서문시장 화재」라는 문구가 지나갔다. “또”라는 비명이 먼저 나오고 몸이 먼저 소름을 일으켰다. 이어 화마로 뒤덮인 서문시장이 화면을 채우고 제일 먼저 형제상회 새 며느리의 얼굴이 뇌리를 황망히 스친다. 지난해 옛 큰장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의지로 어물전을 리모델링 했는데 이참에 젊은이에게 넘긴다고 정 사장이 인사시킨 예쁘고 단정한 새 며느리였다.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손님 맞기가 쑥스러운지 자꾸 시아비 뒤로 몸을 숨기던 새댁이 이제는 멀리서 단골의 얼굴이 보이기만 해도 활짝 웃으며 큰소리로 먼저 인사를 해서 행여 다른 가게로 눈길을 주는 것조차 차단할 줄 아는 프로가 되었었다. 최근 몇 년간 늘어나는 백화점이나 대형 소매점으로 발걸음이 옮겨져서 내게도 시장출입이 뜸 해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어물전만은 떠날 수가 없었다. 산적을 꿰는 상어는 질도 다른 곳에서는 따라갈 수 없었지만 손질하고 난 후의 부산물, 뼈나 껍질부분들을 덤으로 주는 후덕함도 현대식 대형마트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보너스였다.
며칠간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하철 참사에 이은 서문시장의 대 화재로 시민들의 마음도 숯 검뎅이가 되었다. 인간의 분노와 증오가 길을 잘 못 들면 대화재가 발생한다는데 대구가 왜 자꾸 이러냐는 사람들의 불안이 겨울거리로 넘쳐흘렀다. 초등학교 때부터 큰 장 동네에 줄곧 살았던 우리는 서문시장을 큰장 이라 불렀고 화재 이후에도 마음은 늘 큰장 가를 서성였다. 차라리 눈으로 확인하고 오면 마음의 정리가 될 것 같아서 버스를 탔다. 시장이 가까워 오자 잔뜩 내려앉은 하늘이 더욱 무겁다. “서문시장 장사합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매캐한 바람에 펄럭이고 출입구부터 폴리스라인을 치고 지키는 경찰들과 소방관 그리고 손님보다 구경나온 시민들이 그날처럼 큰장을 메웠다.
언제였더라. 꿈속같이 막연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큰장의 불구경을 나왔었다. 수많은 불자동차의 사이렌소리와 불 끄는 사람, 물건 꺼내는 사람 게다가 도둑까지 가세했는지 군데군데서 악다구니 고함이 끊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괴성은 내 목을 후려치고 나는 뛰고 쫓는 사람들에 밀려 어머니의 손을 놓치고 넘어졌다. 울음도 나오지 않고 빠져 나오려 해도 옴짝 달싹 할 수 없어 그 자리에서 차이고 밟히는 돌이 되었다. 군데군데서 질척한 물이 흘러내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자다가도 오줌을 싸곤 했다.
그을음과 재가 뒤범벅이 되어 폭격 맞은 듯 주저앉은 2지구는 처참했다. 발화지점이 서편 1층이라는데 나흘이나 지난 서편 2층에서는 아직도 여기저기서 연기가 새어나온다. 원단들이 워낙 단단하게 재여 있어서 빨리 탈 수도 없다는 것이다. 1층 그릇가게와 지하상가에서 연신 트럭이나 작은 수레로 물건을 실어낸다. 사흘이나 꺼지지 않은 불과 밤낮없이 뿜어댄 물 길 속에서 온전하게 빠져나올 물건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놀랍다. 바람이 불때마다 눈이 맵다. 엿가락처럼 흘러내린 철제빔과 1층 동편의 한 커턴 점포에 진열된 커튼에는 아직도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터전을 잃은 주인의 눈물을 대신했다.
시간은 흐르고 마음이 바빠진다. 낯익은 상호를 매단 가판 앞에서 멈췄다. 주인이 힐긋 보더니 아는 체를 한다.
“형제상회 찾으시지요?”
“...... .”
“형제상회 앞집입니다.”
“형제상회는 어디에서 장사 하나요?”
“이참에 그만 뒀습니다.”
“.......”
“지긋지긋 하대요. 선대부터 수십 년 장사해 왔지만 큰장에 불이 한두 번 입니까? 영남권 최대의 재래시장, 그거 다 끝난 일입니다. 다 추위 더위 모르고 번드레한 대형 마트로 발길 돌린 지 오래입니다. 우리도 살 길이 없어 이러고 있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필요한 생선을 고르고 집에 가서 다듬을 테니 그냥 달라고 했다. 주인이 힐긋 쳐다보며 “염려 마세요. 형제상회 만큼 우리도 잘 합니다” 하고는 칼질을 시작한다. 장갑 낀 손도 이미 얼었는지 움직임이 둔해 보인다. 지하 어물전을 현대식으로 수리 한 것이 채 2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 터전을 화마에 묻고 노점으로 나 앉은 사람들,
“그럼 형제상회는 어디로 간대요?”
생선을 손질하느라 못 들었는지 그는 더 이상 대답이 없다. ‘이제는 어디에도 정을 주지 않겠다. 이제는 누구에게도 단골이 되지 않겠다. 스스로 다짐하고 시장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 고개를 돌렸다.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무너진 2지구 옥상 위의 ‘서문시장쇼핑은 2지구에서’ 라고 쓰인 입간판이 그을음을 덮어쓴 채 저 혼자 외롭다. 느닷없이 바늘 끝이 가슴을 찌른다. 갈증이 난다.
첫댓글 한꺼번에 생활터전을 잃은 사람들, 마음이 아픕니다. 단골을 찾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민숙님의 아름다운 마음씨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