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음
<니체의 위험한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원)
-이덕재-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처음 들었던 느낌은 거부감이였다. 니체는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순전한 논리가 아닌 감정적인 문학으로 자신의 철학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니체는 이전까지 내가 알아 왔던 (일종의 기독교적)철학들과는 사뭇다른, 낯선 사상이자 거부감이 드는 사상이였다.
이 책의 이름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의 독일식 이름이다. 그러나 조러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거의 정반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만큼의 사상의 차이가 있다. 조러아스터교의 조로아스터는 이원론적 세계관, 즉 선과 악의 강력한 대립의 세계관을 가진 종교인 방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선과악이라는 기준 자체를 부정한다. 니체가 왜 자신과 정반대인 사상을 가진 사람을 가져다 자신의 책의 제목으로, 또 책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으로 썻는지는 의아 하다. 단지 차라투스트라가 완전한 인간을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에 그의 사상과는 무관하게, 완전한 인간이라면 본인이 생각하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히려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상을 비꼬는 의미로 썻을까? 현재의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어찌되었든 이 책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이 책의 주인공인 차라투스트라는 홀로 산에 들어가 명상을 하던 중 지혜를 깨닫고 산에서 내려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지혜를 설파 하려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일들을 겪고 우여골절 끝에 아침이 되는 징조를 확인하며 이 책은 막이 내린다.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적인 지혜이자 차라투스트라가 깨달은 첫 번째 지혜인 신의 죽음, 이것은 종교의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니체는 산의 죽음을 통해 절대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의 죽음을, 그리고 인간을 초월한 인간 (위버-멘쉬) 가 되는 방법을 말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전 까지의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무조건, 그냥 무저건 믿기만 하라는 긍정의 강요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자신이 생각 하고 고뇌 해서 선택한 가치에 따라 사는 것의 부활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무조건 복종하라는 말에 무조건 긍정하기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상태의 인간에서 신의 죽음을 통해 무조건 긍정하라는 말을 부정함으로서 자유를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자유는 찾았지만 본인의 자유를 어떻게 써야하는지 모르는 허무주의의 상태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강요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순수하게 자신에 대한 욕구(일반적으로 말하는 지나친 탐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는,마치 아기 같은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다른 것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 선택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이 단계를 니체는 ‘위버-멘쉬’(인간을 초월한) 의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니체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차라투스트라의 이러한 주장은 일종의 ‘추구해야할 것’ 즉 ‘좋은 것’ 이 된다 그러나 니체가 모든 절대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부정한다면 신을 죽이고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 또한 ‘좋은 것’ 이라고 말할 수 없고 따라서 자신을 타인에게 이렇게 살라고 권고할 이유도 없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을 모를 일 없는 완전한 인간 차라투스트라는 어째서 자신의 복음을 ‘좋은 것’인양 전파하는가? 그것은 차라투스트라가 선택한 가치가 곧 ’자기 창조’(자신이 선택한 기준에 따라 자유롭게 사는 것) 이기 때문에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가치에 따른 가치판단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기준에 따라 그의 사상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이며 그의 가치의 기준에 따라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복음을 외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선과 악의 절대적 가치판단 기준이 없다는 말에는 도덕률에 대한 여러 근거들을 통해 반대 하는 바이지만 니체가 최종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세상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따라 살라는 말에는 동감 한다. 니체의 주장을 개인 적으로 나에게 적용해보자면 물질주의적, 인본주의적 가치에 따라 맹목적으로 따라 오라는 세상의 죽음으로 이야기 할수도 있을 것 같다.
첫댓글 지금 읽는 책 바로 전에 민음사에서 나온 이 책을 읽었었지요. 이덕재군 글처럼 아주 감정적으로 씌여있어서 읽기가 참 버거웠답니다.마치 헴릿같은 고전을 읽는 느낌이랄까~ 이런 요상한 책을 읽고 이렇게나 멋진 서평을 적다니, 매우 놀랍습니다^^ 잘 읽었어요. 멋진 님~^^
어려운 책인데 잘 풀어 썼네요.
사부님을 닮아 그런지 어려운 책을 이렇게 잘 정리하는군요~ 함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