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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사(李安社) 목조(穆祖) | 이행리(李行里) 익조(翼祖) | 이춘(李椿) 도조(度祖) | 이자흥(李子興) | 系 : 이천계(李天桂) 1333~1392 | |
이자춘(李子春) 환조(桓祖) | 이원계(李元桂) 1330~1388 | 이양우(李良祐) 1346~1417 | |||
2女:남편 ① 변중량(卞仲良) ② 유정현(柳廷顯) | |||||
3女: 남편 ① 홍노(洪魯) ② 변처후(邊處厚) | |||||
이천계(李天桂) : 出 | |||||
이성계(李成桂) 1335~1408 태조(太祖) | 이방원(李芳遠) 1367~1422 태종(太宗) | ||||
이화(李和) 1348~1408 | 女 : ① 왕모[王某] ② 최주(崔宙) |
이자춘(李子春)은 부인이 2명이고 첩 1명을 두었는데 , 첫째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李內隱藏), 둘째부인 영흥최씨(永興崔氏), 그리고 김씨(金氏:金古音加. 미상~1404)이다.
첫째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 소생의 2남 1녀는 이원계(李元桂), 이천계(李天桂)인데, 이천계는 백부 이자흥의 후사를 이었다.
둘째부인 영흥최씨(永興崔氏)는 아들 이성계로 인해 의혜왕후(懿惠王后)로 추승되었는데, 중국 등주(登州, 지금의 중국 산동성 봉래시) 사람으로 함경도에 이주해서 부자가 된 중국인 조조(趙祚)의 딸인데, 볼일 때문에 들린 이자춘(李子春)에 반해 둘째부인이 되었는데, 그녀의 아버지 조조는 성을 외가의 성(姓)인 최씨(崔氏)로 바꾸고 자(字)를 이름으로 개명해서 최한기(崔閑奇)가 되는 바람에 조씨(趙氏)였다가 최씨(崔氏)로 성을 바꿔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남 1녀를 두었는데, 태조 이성계와 정화공주(貞和公主)이다. 정화공주는 조온(趙溫, 1347~1417)에게 출가했는데, 고손자가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이다.
김씨[金古音加]는 원래 이자춘의 여종이었는데 첩으로 삼았고, 훗날 정빈(定嬪) 추증되었다. 소생은 아들 1명인데, 이화(李和)이다.
위 실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태종 이방원에 의해 이자춘의 첫째부인이었던 한산이씨는 졸지에 첩이 되었고, 이복형 이원계 이천계는 서자[형]가 되었다.
관련근거 : 『동문선(東文選)』(1478) 권119에 수록된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이자춘(李子春)의 (舊)신도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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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凡三娶。李氏生男曰元桂。今爲推忠節義補理功臣,重大匡完山君。夫人崔氏封三韓國大夫人。贈門下侍中永興府院君諱閑奇之女。生男曰成桂。今爲忠誠亮節翊贊宣威定遠功臣三重大匡判三司事兼判典農寺事上護軍完山府院君。金氏封貞安宅主。生男曰和。今爲誠勤輔祚功臣奉翊大夫同知密直司事上護軍。女適純誠翊衛協贊輔理功臣三重大匡龍原府院君趙公仁璧。今封眞和宅主崔氏出也。孫男女若干人。
공은 무릇 세 번 장가들었다. 이씨(李氏)가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은 원계(元桂)로서 지금 추충 절의 보리공신 중대광 완산군(推忠節義輔理功臣重大匡完山君)이 되었다. 부인 최씨(崔氏)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을 봉하였다. 증 문하시중 영흥부원군 휘 한기(閑奇)의 딸이다.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성계(成桂)라고 한다. 지금 충성 양절 익찬 선위정 원공신 삼중대광 판삼사사 겸 판전농시사 상호군 완산부원군(忠誠亮節翊贊宣威定遠功臣三重大匡判三司事兼判典農寺事上護軍完山府院君)이 되었다. 김씨(金氏)는 정안택주(貞安宅主)를 봉하였다.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화(和)라고 하며 지금 성근보조공신 봉익대부 동지밀직사사 상호군(誠勤輔祚功臣奉翊大夫同知密直司事上護軍)이 되었다. 딸은 순성 익위 협찬 보리공신 삼중대광 용원부원군(純誠翊衛協贊輔理功臣三重大匡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 공에게 시집갔다. 지금은 진화택주(眞和宅主)로 봉하니 최씨가 낳았다. 손자와 손녀 몇이 있다.
관련근거 : 이색(李穡)의 문집 『목은고(牧隱藁)』(1626) 권15에 이자춘(李子春)의 신도비명이 남아있지만, 약간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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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人崔氏。封三韓國大夫人。贈門下侍中永興府院君諱閑奇之女也。生男曰成桂。今爲忠誠亮節翊贊宣威定遠功臣,三重大匡,判三司事兼判典農寺事,上護軍,完山府院君。女適純誠翊衛協贊輔理功臣,三重大匡,龍原府院君趙公仁璧。今封貞和宅主。側室李氏生男曰元桂。今爲推忠節義輔理功臣,重大匡,完山君。金氏生男曰和。今爲誠勤輔祚功臣,奉翊大夫同知密直司事,上護軍。
부인 최씨(崔氏)는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봉해졌는데, 증 문하시중(門下侍中)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휘 한기(閑奇)의 딸이다. 아들의 이름은 성계(成桂)인데, 지금 충성양절익찬선위정원공신(忠誠亮節翊贊宣威定遠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판삼사사 겸 판전농시사 상호군(判三司事兼判典農寺事上護軍)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이다. 딸은 순성익위협찬보리공신(純誠翊衛協贊輔理功臣) 삼중대광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공 인벽(趙公仁璧)에게 출가하였는데, 지금 정화택주(貞和宅主)로 봉해졌다. 측실(側室) 이씨(李氏)는 아들 원계(元桂)를 낳았는데, 지금 추충절의보리공신(推忠節義輔理功臣) 중대광(重大匡) 완산군(完山君)이다. 김씨(金氏)는 아들 화(和)를 낳았는데, 지금 성근보조공신(誠勤輔祚功臣) 봉익대부(奉翊大夫) 동지밀직사사 상호군(同知密直司事上護軍)이다.
이자춘의 장남 이원계는 동생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반대했었고, 또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신념을 지켜 유명한 절명 유언시를 남기고 1388년 10월 23일 음독 자결하였다. 또한 이원계의 동생인 이천계와 이원계의 아들 이양우는 태종의 족보 조작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 나라 땅 안에 이 몸 둘 곳이 어데일꼬, (三韓故國身何在 삼한고국신하재)
죽어 지하에서 태백중옹을 만나 놀고 싶어라. (地下願從伯仲遊 지하원종백중유)
같은 처지에서 마름질[處身]함이 다르다 말 마오, (同處休云裁處異 동처휴운재처이)
형만 땅에는 바다에 뗏배 띄울 일 없어라. (荊蠻不必海桴浮 형만불필해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