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동안 잠들어 있었는지...
몸도 지쳐있었고 황망함에
천근 무겁고 무기력한 마음이었나 보다.
너의 장례미사를 다녀오는 길,
슬픔에 상념들이 겹치며
오자마자 취한 듯 공황에 빠진 잠결이었다.
지난해부터 나는 불쑥불쑥 나타난
가슴에 오는 통증으로 인해
병원을 드나들기 시작했고
심근경색, 협심증 진단에 따라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네가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나니...
“우리 까까머리 두 중학생은...
성모님 앞에서 함께 손 모으고 사제가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신학교 입학동창인 너의 친구,
서울대교구 송영호 신부는 조사를 시작하며
한동안 울먹이느라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너는 사제를 꿈꾸고 있었나보다.
굴곡이 없었으면 넌 지금 사제 23년차 서울대교구 신부여야 했다.
서울대교구 신학생으로 입학해서
학교를 나가게 되고 다시 글라렛 선교수도회에 입적해서
동창들보다 4년을 돌아 수도회 사제가 되기까지
그 시간의 얘기들은 종종 너와 나눈 술보다
진한 취기의 이유가 되곤 했지.
딱 한 번
거구의 네가 짐승처럼 운 적이 있었다.
2003년이던가? 연수동 보좌신부를 하고 있을 때
본당 음악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내게
“형, 나 술 한잔 사줄래?” 붙잡던 그날
우리 둘은 늦도록 술잔을 붙잡고 있었다.
애절했고 두려웠던 네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도회에서 인천교구 입적 결과를 앞두고
전 해에 수도회에서 입적을 원하던 모두가
교구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인천교구마저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사제로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는
막막했던 너의 토로와 그간의 심정이
어린아이처럼 너를 그렇게 울게 했었다.
그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단지 슬프고 두렵고 지쳐있는
너와 함께 있었던 것뿐이다.
일어서며 지갑을 털어
값싼 양주 네 병을 키핑(keeping)하고
“준아, 네 동네니까 힘들 때 혼자 와서
한 잔씩 해라.“
그것뿐이었다.
그후 넌 성공적으로 교구에 입적했지만
네 그늘이 모두 가신 것은 아니었었다.
수도회에서 인천교구로 옮겨온 너를
바라보고 대하는 동료 후배 교구신부들로부터 받는
따가운 시선과 뒷담화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늘 호탕하고 친근감 있는 너의 감춰진 그늘을
왠지 너는 자주 내게 보여주고 있었다.
네 그늘 덕에 난 너와 친숙해지고
허물을 나누는 형제로 살아온 게 불과
몇 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황망히 떠나가는구나.
지난 해 내 부모님이 사시는
산곡3동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후
네가 가장 자주 한 말은
“형, 이제 형 아버지는 내 아버지야.
형이 좀 속상해도 내가 내 아버지로 모셨어.
아버님은 나랑 모든 게 너무 잘 맞아서
내가 뺏기로 했어.“
그 말이었다.
자주 아버지와 산책도 하고
얼마 전 내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며
“내가 얼마나 좋은 자식인지
형은 잘 모를거야.“ 그렇게 내게
덩치답지 않은 수다를 늘어놓곤 했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로부터
네가 미사를 마치고 헉헉대며 과일박스를
부모님 집에까지 가져왔다는 얘기도 솔직히
“그 고마움도 함께 살면서 네게
차근차근 갚아가마.“ 생각뿐이었는데...
난 참 네게 고마운 게 많다.
오래 전부터 넌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가톨릭문화원 후원회원을 기억하고
기도해 준 사제였다.
후배이지만 오히려 나를 격려하고
“형은 겉은 화려하지만 그래서
힘든 게 더 많을 거야. 힘내.
뭐든 내가 힘 다해 도울 거거든.
형, 난 항상 형님 편이야.“
말해주던 사제였다.
그늘과 고독을 딛고 일어선
네 특유의 친화력과 굵고 호탕한
웃음과 네 모습이 오래도록 그리울 게다.
지난 해 말 네 어머니도 선종하셨고
좀 더 외로워졌는지 올해부턴
더 자주 함께하자고 했던 게 너였는데...
불쑥 전화가 올 듯하다.
“형 나 지구장된 거 알지? 너무 방치하는 거 아냐?
축하해줘야 되잖아. 언제 술 사줄 건데?“
하지만
차가운 대지에서 맞아야하는 첫 밤이다.
오래 전 신학교 첫 날의 첫 밤처럼 익숙하지 않겠지만
넌 금방 또 새로운 세상과 친숙해 지리라 믿고 싶은
슬픈 밤이다.
하늘의 문 성직자묘원은 이곳에서 가까우니
함께 누울 때까지 종종 만나러 가마.
오늘 네 장례식 때 문화원 직원이 부른 추모곡이
네 몸 앞에서 들려준 내 마지막 선물이구나.
“내 영혼 바람되어” 가사처럼
너는 천의 바람이 되고
찬란히 빛나는 눈빛으로 살게나.
곡식 영그는 햇빛과
하늘한 가을비도 되어보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되거나
밤하늘 별빛 되어
슬픔 없는 자유를 살아가라.
내 기억속의 너는
영원히 아름다운 사제로 있을 거야.
며칠 전 고 김수환 추기경님 7주기를 추모하는
문화원 음악회에서는
추기경님의 생전의 말씀이
화면에 흐르고 있었다.
"당신이 태어날 때 혼자 울었고
주위에 모두가 환히 웃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은 혼자 미소 짓고
주위에 모두가 눈물짓는
그런 삶을 사십시오.“
그대, 오늘 나를 눈물짓게 하는
짧고 멋졌던 삶에 넉넉한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준아, 잘 자라...
신부님..
저에요..신부님이 직접 세례명 지어주신
이신애 마더데레사입니다.
대모님한테 이 영상 받고 또한번 울고 일상에 가려 잊었던 신부님을 다시 또 이렇게 추억합니다.장례미사땐 울고불고 하느라 정신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했습니다.
신부님..주님 품안에서 평안하시지요?
거기서도 분명 많은 사람들 중심에서 사랑받고 계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신부님..그립고 또 그립습니다.
이제는 뵐수도 들을수도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지만..
여기에다가라도 글을 남길수있어 다행입니다.
감사했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늘..기억하겠습니다.
주님 계신 그곳에서 어머님과 함께 항상
평안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다.
사랑합니다.
♡♡♡♡
신부님ᆢ
안녕히 가세요.
아멘...
주님,고 장준신부님을 천상에서 기쁘게 맞이해주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