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ENLIGHTENMENT
The human mind can wrestle to no avail for an understanding of enlightenment. As Dr: Hawkins points out: "In actuality, enlightenment is neither a state nor a viewpoint; yet it is both, and there is no statement about it that is completely accurate. Often synonymous with Self-realization, enlightenment is the nondualistic state that begins to emerge at the level of consciousness denoted as Peace. Enlightenment isn't a goal to be obtained; it's a condition that manifests when the ego/mind is transcended. Enlightenment isn't an end in itself. Again, from Dr. Hawkins: "Enlightenment is a progressive realization and does not represent a finished product, or a final end, or the completion of the evolution of spiritual possibility."
인간의 마음(human mind)으로는 깨달음을 이해하기 위해 씨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Dr: Hawkins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사실 깨달음은 상태도 관점도 아닙니다. 그러나 둘 다이며 완전히 정확한 진술은 없습니다. 종종 참나-각성(Self-realization)과 동의어인 깨달음은 평화로 표시된 의식 수준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비이원성의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목표가 아니고, 그것은 에고/마음이 초월될 때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다시 호킨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깨달음은 점진적 자각(progressive realization)이지, 완성품, 최종 목적 또는 영적 가능성의 진화의 완성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Enlightenment is merely the emergence of Truth when the obstructions to the realization of that Truth have been removed. By analogy, the shining of the sun is not conditional upon the removal of the clouds, it merely becomes apparent.
깨달음은 진리의 각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제거되었을 때 나타나는 진리의 출현(emergence of Truth)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태양의 빛남은 구름의 제거로 비추는 상태가 아니고, 그것은 단지 명백하게 있을 뿐이다.
The term enlightenment is semantically correct. It is the recognition and realization that one's reality is the light of the Self and that it stems from within as an awareness and profound, self-evident Reality.
깨달음이라는 용어는 의미적으로 정확하다. 깨달음은 자신의 실상(one's reality)이 바로 참나의 빛(light of the Self)이라는 지각(recognition)과 각성(realization)이며, 그것은 자각(awareness)과 심오하고 자명한 실상(Reality)으로서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To even hear of enlightenment is already the rarest of gifts. Anyone who has ever heard of enlightenment will never be
satisfied with anything else.
깨달음에 대해 듣는 것조차 이미 귀한 선물이다. 깨달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A "good person" is one thing; enlightenment is another. One is responsible for the effort and not the result, which is up to God and the universe.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깨달음은 다른 것이다.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책임이 있을 뿐이다. 결과는 신과 우주(God and the universe)에 달려 있다.
One can spend endless lifetimes studying all the religious and philosophical teachings of the world and merely end up confused and discouraged. Seek to 'know," not to "know about." "Know" implies subjective experience; "know about" means to accumulate facts. In the end, all facts disappear and there are none to be known. If one realizes that one's own Self is the All of Everything that is, has been, or ever could be, what is left that one needs to know? Completeness is, by its very nature, total and finished.
우리는 세상의 모든 종교적, 철학적 가르침을 연구하면서 끝없는 일생을 보낼 수 있고, 그리고 단지 혼란과 낙심으로 끝을 맞이 할 수도 있다. '무엇에 대하여 아는 것(know about)'가 아니라 '아는 것(know)'를 추구하라. '아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subjective experience)을 의미하고,, '무엇에 대하여 아는 것'은 사실을 축적(accumulate facts)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실은 사라지고, 그리고 알아야 하는 것은 없다. 만약 자신의 참나가 모든 것이 있고, 있었고 또한 있었을 수 있는 전부(All)라는 것을 우리가 각성한다면, 알 필요가 있는 어떤 것이 남아있겠는가? 완전함(completness)이란 바로 그 본질상 전체이고 완성이다.
That which I am is Allness. To realize that one already is and always has been All That Is leaves nothing to be added.
내가 있다(I am)는 그것이 바로 전체임(Allness)이다. 우리가 이미 있고, 항상 있어온 모든 것 있음(All That Is)이라고 각성하는 것에는 더이상 보탤 것이 없다.
The way to sudden enlightenment is through strict adherence to spiritual awareness and specifics of consciousness so that the personality(ego) is transcended rather than perfected.
갑작스러운 깨달음의 길은 영적 자각(spiritual awareness)과 의식의 세부사항(specifics of consciousness)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이고, 그래서 성격(에고)이 완벽해지기 보다는 초월하는 것이다.
In Reality, time is merely an illusion and an appearance. No "time" is really wasted once one has chosen the spiritual goal. Actually, it makes no difference in the end whether enlightenment takes a thousand lifetimes or one. In the end, it is all the same.
실상(Reality)에서, 시간은 단지 하나의 환상이자 현상일 뿐이다. 일단 우리가 영적 목표( spiritual goal)를 선택한 후에는 어떤 "시간"도 실제로 낭비되지 않는다. 사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천년 생이 걸리든, 한번의 생이 걸리든, 그 끝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결국 그것은 모두 같은 것이다.
To understand the nature of consciousness makes enlightenment possible. This essentially entails the realization of the difference between duality and nonduality, as well as how to transcend the realm of duality.
의식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깨달음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이원성과 비이원성 차이의 각성 뿐만 아니라 이원성의 영역을 초월하는 방법을 수반한다.
The essence of man includes the potentiality for enlightenment. Readiness implies that one has evolved through the lower levels of consciousness, so spiritual inspiration now becomes the spark that ignites the quest.
인간의 본질은 깨달음의 잠재성을 포함하고 있다. 준비됨(Readiness)이란 낮은 의식수준을 통해 진화해오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래서 영적 영감(spiritual inspiration)은 이제 탐구를 촉발하는 불꽃이 되는 것이다.
From the viewpoint of consciousness and enlightenment, the reign of fear does not cease until the desire for existence itself is surrendered to God. In the silence that ensues comes a great realization that one's existence has always been due to the Presence of the Self, which has attracted from the Universe whatever is necessary for survival.
의식과 깨달음의 관점에서, 공포의 지배는 존재 자체의 욕망이 신에게 완전히 내맡겨질까지 멈추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인간 존재는 항상 우주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끌어온, 참나의 현존(Presence of the Self)덕분에 존재해왔다는, 커다란 각성(great realization)이 찾아온다.
When one stops identifying with either the body or the mind, the functions continue autonomously, but merely without an identification as "myself." The sense of authorship disappears. Ongoing survival is autonomous, and continuance is an expression of consciousness in its alliance with the Holy Spirit.
우리가 몸 또는 마음과의 동일시를 멈출 때에도, 인체 기능은 자율적으로 계속된다. 하지만 단지 "나 자신(myself)"으로서의 동일시는 없다. 저작권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속적인 생존은 자율적이며, 생존의 지속은 신성한 영(Holy Spirit)과의 동맹속에서 의식의 드러냄(expression of consciousness)이다.
Q: Is there no escape from the ego and its karma?
A: Enlightenment is the only total escape, and spiritual endeavor helps to loosen its hold.
Q: 에고와 그 카르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나요?
A: 깨달음이야말로 유일한 완전한 탈출구이며, 영적 노력은 에고와 카르마의 장악력을 느슨하게 풀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Salvation requires purification of the ego; enlightenment requires its total dissolution. The goal of enlightenment is more demanding and radical.
구원은 에고의 정화를, 깨달음은 에고의 완전한 해체를 필요로 한다. 깨달음의 목표가 더 힘들고 근원적이다.
Clarify that it is not a personal “you” who is seeking enlightenment, but an impersonal quality of consciousness that is
the motivator.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개인적 당신(personal you)"이 아니라, 그 자체가 동기요인인 의식의 비개인적인 특성(impersonal quality)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라.
Q: Can you summarize the critical element for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to the state of enlightenment?
A: Note that the ego habitually takes a positionality. In the naïve person, it is usually unspoken or unconscious. Positionality then automatically creates a duality of seeming opposites. At this point, the mind is creating the world of perception which is like a lens that distorts, enlarges, or diminishes meaning and significance. This perception is the product of belief systems and presumptions and thus becomes a distracting filter. Therefore, essence cannot be perceived from a dualistic positionality.
Q. 의식이 깨달음의 상태로 진화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critical element)를 요약해 주실 수 있나요?
A: 에고는 습관적으로 위치성을 취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순진한 사람의 경우, 일반적으로 입밖에 내지않거나, 무의식적입니다. 그러면 위치성은 자동적으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원성을 생성합니다. 이 지점에서 마음은 의미와 중요성을 왜곡, 확대 또는 축소하는 렌즈와 같은 인식의 세계(world of perception)를 만들어 냅니다. 이 인식은 믿음 체계와 가정의 산물이며, 따라서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필터가 됩니다. 그래서, 이원론적 위치성에서는 본질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Input is run through the software programs that simultaneously edit the incoming programs. Reality is consequently obscured and hidden behind a perceptual screen; therefore, the self lives in a perceived, edited translation of information. This processing creates an extremely small time delay (estimated at 1/10,000th of a second). This editing function of perception simultaneously interprets meaning in which the intellect and especially the memory play significant roles.
입력은 들어오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편집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실행된다. 결과적으로 실상(Reality)은 인식이라는 스크린 뒤에 가려지고 숨겨진다. 따라서 작은 나(self)는 인식되고 편집된 정보의 번역속에서 살아간다. 이 처리는 (대략 1/10,000초로 추정되는) 작은 시간 지연(time delay)을 생성한다.
이러한 인식의 편집 기능(editing function)은 지성 및 특히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의미(meaning)를 동시에 해석한다.
There is no separation in the Allness of Creation, so it is impossible for the created to be separate from the Creator. Enlightenment is therefore the revelation of the Self when the illusion of the reality of a separate self is removed.
창조물의 전체성(Allness of Creation)에는 분리가 없으므로, 그것이 창조자(Creator)로부터 분리되어 창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깨달음은 분리된 작은 나(self)의 실상에 대한 환상이 제거될 때, 참나의 발현(revelation of the Self)이다.
The seeking of enlightenment is a very major commitment and is, in fact, the most difficult of all human pursuits. Enlightenment as the primary goal of one's life occurs in only one in ten million people.
깨달음의 추구는 매우 중요한 몰두(major commitment)이며, 사실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인생의 주요 목표로서의 깨달음은 천만 명 중 한 명에게만 발생한다.
The oneness of Self-identity is the substrate of the phenomenon known as Revelation or Realization. Enlightenment is the finalized state that ensues and it is unconditional, total, and complete.
참나-동일성의 하나임(oneness)은 계시(Revelation) 또는 각성(Realization)으로 알려진 현상의 바탕(substrate of the phenomenon)이다. 깨달음은 잇따르는 완성된 상태(finalized state)이고, 무조건적이고, 전체적이고, 완전한 상태다. .
To be enlightened merely means that consciousness has realized its most inner, innate quality as nonlinear subjectivity and its capacity for awareness.
깨닫게 된다는 것은 단지 비선형적 주관성과 그것의 자각 능력으로서 최고인 내면의, 타고난 특성을 의식이 각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The personal "I" is "content," whereas the “I” of Reality is context. By analogy, the cloud is subject to change and dissolution. Weather comes and goes, but the sky itself remains unchanged. Enlightenment is merely the shift of identity from the cloud to the sky.
개인적 '나'는 '내용'인 반면, 실상의 '나'는 맥락이다. 비유하자면, 구름은 변화와 해체의 대상이다. 날씨는 흐렸다 맑았다를 반복하지만, 하늘 자체는 변함이 없다. 깨달음은 구름에서 맑은 하늘로 정체성이 전환되는 것일 뿐이다.
Be resolute on the level of absolutely no reservation. Avoid the lure of the astral realms. Beware of the wolves in sheep's clothing, for they are attracted to the devotee who is making significant progress. Do not accept anyone into your life who does not pass the calibratable level of Truth. Keep your spiritual goal ever in awareness, no matter what the activity. Dedicate all endeavors to God. Remember the true nature of God and avoid any teachings that state otherwise.
다음사항을 절대적으로 의구심이 없는 수준으로 확고히 하라. 아스트랄 영역의 유혹을 피하라.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들은 상당한 발전을 하고 있는 헌신자에게 끌리기 때문이다. 진리의 측정가능한 수준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당신의 삶에 받아들이지 마라. 어떤 활동을 하든 항상 자각안에 영적 목표를 간직하라. 모든 노력을 신에게 봉헌하라. 신의 참 본성을 기억하고, 달리 진술하는 어떤 가르침도 모두 피하라.
The desire to search for God or enlightenment is already evidence of having been spiritually inspired. As the ego vacates, the Radiance of the Self uplifts and inspires. Henceforth, it is not possible to be alone. At the critical moment, spiritual commitment and dedication bring forth the unseen help of the Great Beings who are no longer in physical bodies yet their energy stands at the great doorway of the final moment when one is sustained by the Holy Spirit and the wisdom of the teachers of Truth.
신(God)이나 깨달음(Enlightenment)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영적으로 영감을 받았다는 증거다. 에고가 비워지면, 참나의 광휘(Radiance of the Self)는 고양되고 영감을 준다. 이후로는 홀로 되는 것(to be alone)은 불가능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영적 몰두와 봉헌은 위대한 존재(Great Beings)의 보이지 않는 도움(unseen help)을 불러오는데, 그 위대한 존재는 더이상 육체에 머물지는 않지만 그들의 에너지는 구도자가 신성한 영(Holy Spirit)과 진리의 스승의 지혜로 지탱되는 마지막 순간(final moment)이라는 큰 문앞에 서 있다.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the destiny of those who choose enlightenment is enlightenment-who else would be on such a quest? To merely seek spiritual purification and awareness is already a gift.
깨달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운명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누가 그러한 탐구를 하겠는가? 단순히 영적 정화(spiritual purification)와 자각(awareness)을 구하는 것도 이미 하나의 선물이다.
The straightest way to enlightenment is through devoted introspection, meditation, and contemplation of the inner workings of the ego so as to understand consciousness. The process is energized by intention, dedication, and devotion; and the total effort is supported by spiritual inspiration. The dedication is focused on the process itself as a surrender to God. The focus needs to be intense, and it is energized by fixity and deliberateness of intention. The process is one of discovery and becomes progressively self-revealing.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헌신적 자기성찰(devoted introspection)과 명상(meditation),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 에고의 내적 작용에 대한 관상(contemplation of the inner workings of the ego)을 경유한다. 이 과정은 의도(intention) 봉헌(dedication) 및 헌신(devotion)에 의해 활성화되고, 그리고 전면적인 노력(total effort)은 영적 영감에 의해 지지된다. 봉헌은 신에게 내맡김으로써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초점은 강렬할 필요가 있고, 의도의 변치않음(fixity)과 신중함(deliberateness)을 통해 활력을 얻는다. 그 과정은 하나의 발견이며, 점진적으로 스스로 드러난다.
To follow the strict pathway to enlightenment is a specific discipline and commitment. It is not the same as practicing a religion. While there are many tenets of religion that support the search for enlightenment, there are also many that do not and actually constitute a hindrance. To be pious is one thing; to be enlightened is quite another.
깨달음에 이르는 엄격한 길을 따르는 것은 하나의 특정 훈련(specific discipline)과 몰두다. 그것은 종교를 실천하는 것과는 다르다. 깨달음 탐구를 지지하는 종교 교리가 많이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고 방해가 되는 교리도 많다. 독실하다는 것과 깨닫는 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Enlightenment means that the former personal identity and all that had been believed about it have been erased, removed, transcended, dissolved, and displaced. The particular has been replaced by the universal, qualities have been replaced by the nonlinear, and the discrete has been replaced by the unlimited.
깨달음이란 과거의 개인 정체성(personal identity)과 그것에 대해 믿어왔던 모든 것이 지워지고, 제거되고, 초월되고, 용해되고,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수한 것은 보편적인 것으로, 특성이 있는 것은 비선형적인 것으로, 개별적인 것(discrete)은 제한이 없는 것(the unlimited)으로 대체되어 간다.
When a devotee commits to the pathway of enlightenment, then the wheat has to be winnowed from the chaff. This is automatically so, because positionalities are based on beliefs. Beliefs disappear in the face of the knowingness of Truth.
헌신자(devotee)가 깨달음의 길에 몰두할 때, 그때 밀 알곡은 쭉정이가 키질이 되어 골라내지듯 해야 한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데, 왜냐하면 위치성은 믿음(beliefs)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진리의 앎( knowingness of Truth) 앞에서 사라진다.
The road to enlightenment is not for bleating sheep. To be offended signifies that one is defended, which, in itself, signifies the clinging to untruth. Truth needs no defense and therefore is not defensive; Truth has nothing to prove and is not vulnerable to being questioned for an answer.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양이 음메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기분이 상한다는 것은 에고가 방어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그 자체로 비진리에 대한 집착(clinging to untruth)을 의미한다. 진리는 방어가 필요하지 않고, 따라서 방어적이지 않다. 진리는 증명해야 하는 것이 없고, 정답을 위한 질문에 영향받지 않는다.
When enlightenment occurs, the ensuing state also completely reconstructs the appearance of the world. Everything is seen to happen of its own. There is no longer a "me" or a personal "I." The orientation to the world is completely altered, and functioning may be impossible or very difficult.
깨달음이 일어날 때, 그것에 수반하는 상태는 또한 세상의 모습(appearance of the world)을 완전히 재구성한다. 모든 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나를(me)"이나 개인적 "나(I)"는 없다. 세상에 대한 방향이 완전히 바뀌고, 기능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울 수 있다.
Because no languaging of the state of enlightenment is actually possible, a Zen master may just suddenly shout “Ha!” and hit you with a stick. What is hoped for is a sudden flash, during which the inexplicable Reality stands revealed.
실제로 깨달음의 상태를 언어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사(Zen master)가 갑자기 "하!"라고 외칠 수 있고, 그리고 막대기로 당신을 때릴 수 있다. 선사가 희망하는 것은 영묘한 실상(inexplicable Reality)이 모습을 드러내는 갑작스러운 번쩍임(sudden flash)이다.
In the state of enlightenment, all is self-revealing of its essence as its existence. Everything already is what it “means."
깨달음의 상태에서, 모든 것은 존재로서 그것의 본질을 스스로 드러낸다. 모든 것은 이미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다.
Enlightenment is the ultimate aesthetic awareness, for it allows the beauty of creation to shine forth with stunning clarity.
깨달음은 궁극적인 심미적 자각(aesthetic awareness)인데, 왜냐하면 깨달음은 창조의 아름다움이 놀라운 명료성(stunning clarity)과 함께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Another simple analogy is that a shadow does not become a sunbeam, but rather is replaced by it. The ego is the shade; enlightenment is the consequence of the light of the Self that replaces it.
또 다른 간단한 비유는 그림자가 햇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햇빛으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에고는 그림자이고, 깨달음은 참나의 빛(light of the Self)이 에고를 대체한 귀결이다.
The capacity to reach the condition or state classically called "Enlightenment" represents the fulfillment of the potential of consciousness in its evolutionary progression.
고전적으로 "깨달음"이라고 불리는 조건 또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의 진화적 진전에서 의식 잠재력(potential of consciousness)의 성취를 대표한다.
Enlightenment is merely the full, conscious recognition that innate Truth is the core of one's own existence and that God as Self is the illumination whereby that realization is made possible. The Infinite Power of God is the manifestation of the power of Infinite Context. The Unmanifest is even beyond Infinite Context.
깨달음은 타고난 진리가 자신 존재의 핵심이며, 참나로서의 신이 그 각성을 가능하게 하는 빛비춤이라는 것을 완전히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것이다. 신의 무한한 파워(infinite Power of God)는 무한한 맥락(infinite Context)의 파워의 나타남이다. 나타나지 않은 것(Unmanifes은 오히려 무한한 맥락을 넘어선 것이다.
The straightest way to Enlightenment is by transcending the limitation of the ego/mind by dedication to verified Truth itself. This process is suitable for modern humankind and devoid of conflict with science and religion.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직선적인 길은 검증된 진리 자체(Truth itself)에 봉헌함으로써, 에고/마음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현대인에게 적합하며 과학 및 종교와의 충돌이 없다.
As the Buddha pointed out, being mortal automatically entails suffering, which is why he taught to seek enlightenment in order to preclude that karmically determined recurrence. At very high levels, the subjective experiencing of existence is no longer limited by the narcissistic ego or the psychological blocks of the positionalities. This condition is the consequence of progressive surrendering at great depths of all limitations and belief systems. The requirement is the persistent "one-pointedness of mind", processing out the emotional/mental residuals of lower consciousness levels and surrendering all self-identities and mental belief systems.
붓다가 지적했듯이, 언젠가 필멸하는 존재(being mortal)는 자동적으로 고통이 따르고, 이 사실이 붓다가 카르마적으로 확정된 되풀이(determined recurrence)을 방지하기 위해 깨달음을 구하라고 가르친 이유인 것이다. 매우 높은 수준에서는, 존재의 주관적인 경험이 더 이상 자기애적 에고나 위치성의 심리적 차단(psychological blocks)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 이 상태는 모든 한계(all limitations)와 신념 체계(belief systems)의 아주 깊은 곳에서 점진적인 내맡김의 귀결이다. 요구 사항은 지속적인 "마음집중(one-pointedness of mind), 낮은 의식 수준의 감정적/정신적 잔류물(emotional/mental residuals) 처리, 그리고 모든 자기-정체성(all self-identities)과 정신적 신념 체계(mental belief systems)를 내맡김하는 것이다.
Consistent application of any spiritual principle can unexpectedly result in a very major and sudden leap to unanticipated levels. At that point, memory may not even be available; instead, the Knowingness of Spiritual Truth presents itself silently.
어떤 영적 원리(spiritual principle)를 일관되게 적용하면 예기치 않게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매우 크고 갑작스럽게 도약할 수 있다. 그 시점에서, 기억은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대신에 영적 진리(Spiritual Truth)의 앎이 스스로 조용하게 나타난다.
Enlightenment is the consequence of the surrender of all dualistic illusions to Truth. All suffering ends with dissolution of the ego's positionalities. Thus do we praise the Lord God for radiating Light to the world.
깨달음은 모든 이원론적 환상을 진리에 내맡김한 귀결이다. 모든 괴로움은 에고의 위치성이 해체되면서 끝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상에 빛을 비추는 주 하나님(Lord God)을 찬양하게 된다.
Comfort and confidence can be derived from this verifiable reality: that the rare persons who are actually attracted to enlightenment as a life goal are attracted because that is already their destiny. For the same reason, only future golfers would be taking golf lessons.
이 검증 가능한 실상(verifiable reality)에서 위안과 확신을 얻을 수 있고, 실제로 삶의 목표로 깨달음에 이끌리는 드문 사람들은 그것이 이미 그들의 운명이기 때문에 이끌린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오직 미래의 골퍼가 골프레슨을 받을 것이다.
To seek enlightenment is a major decision. The decision itself is therefore akin to a "yang” position—but subsequently, the process itself is more intrinsically akin to a "yin" posture. While the ordinary ego is programmed to "getting" (yang), spiritual intention now shifts to "allowing" (yin).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한 결단이다. 따라서 그 결단 자체는 "양" 위치와 유사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과정 자체는 본질적으로 "음" 자세와 유사하다. 평범한 에고는 "얻음"(양)으로 프로그램되는 반면, 영적 의도(spiritual intention)는 이제 "허용"(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The dedication to Self-realization and enlightenment is a disciplined straight-and-narrow path. Thus, a serious devotee is advised to bypass the attraction of curiosity and appeal to the inner child offered by the magical and mysterious paranormal and psychic phenomena that are commonly merchandized and proffered as learnable skills.
참나-각성과 깨달음에 대한 봉헌은 계율적인 곧게 뻗은 좁은 길이다. 진지한 헌신자는 호기심이 가지는 매력과 내면의 아이-일반적으로 상품화되고 배울 수 있는 기술로 제공되는, 신비롭고 마법같은 초자연적이고 심통력있는 현상에 매료된 아이-를 우회하도록 조언을 받는다.
The state of enlightenment is therefore the potential Reality that replaces the illusions of the ego's perceptual positionalities. Spiritual intention, effort, and decision potentiate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from the linear limited to the nonlinear Allness of Reality.
그러므로, 깨달음의 상태는 에고의 인식적 위치성(perceptual positionalities)인 환상을 대체하는 잠재력있는 실상(potential Reality)이다. 영적 의도, 노력 및 결단은 선형적 한계에서 비선형 실상의 전체성(Allness of Reality)으로 의식의 진화(evolution of consciousness)를 강화한다.
Enlightenment is the consequence of a major shift of content and identification. The experiencer focus is like a screen that veils. Reality and drops of its own accord when the props are removed. This is the consequence of surrendering the will to God. The sense of reality of the self was actually due solely to the underlying Presence of the Self.
깨달음은 내용과 동일시(content and identification)가 중대한 변동(major shift)을 한 귀결이다. 경험자 초점은 베일에 가려진 스크린과 같다. 실상(Reality)과 그 자체의 물방울은 그 받침대가 제거될 때, 권위가 부여된다. 이것이 바로 신에게 의지를 내맡긴 귀결이다.
실제로 작은 나(self)의 실제 감각(sense of reality)은 오로지 참나 현존(Presence of the Self)의 덕택이었다.
To seriously seek enlightenment is a very strict discipline that therefore eschews the attraction of involvement in supposed spiritual movements that are actually intrinsically political in nature and factional. The attraction of "changing the world" (for the presumed better, of course) appeals to the naive idealism of the inner spiritual adolescent and is transcended with maturity. The nature of human life is the automatic consequence of the overall level of human consciousness itself. Therefore, to benefit the world, it is necessary to change not the world but oneself- for what one becomes is influential by virtue of its essence (nonlinear) and not its actions (limited and linear).
진지하게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엄격한 규율이므로, 사실상 내재적으로 본성에 있어서 정치적인, 그리고 파벌적인, 이른바 영적 운동(spiritual movements)에 관여하는 매력을 피하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것"(물론 더 나은 방향으로)의 매력은 내면의 영적 사춘기(spiritual adolescent)의 순진한 이상주의에 호소하며, 그것은 성숙함과 함께 초월된다. 인간 삶의 본성은 인간 의식 자체(human consciousness itself)의 전반적 수준의 자동적 귀결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제한적이고 선형적인) 그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비선형적인) 그 사람의 본질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Straight and narrow is the path, for without inner discipline, the spiritual energy becomes dissipated in diverse attractions.
깨달음의 길은 좁고 곧다. 왜냐하면 내면의 훈련(inner discipline)없으면, 영적 에너지는 다양한 매력으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The energy of life is a radiance from the field of consciousness, which is the mode of the Presence of Divinity that manifests in physicality as Creation. The capacity for enlightenment is merely a consequence of consciousness returning to its source, which is Divinity Immanent as Self.
생명의 에너지는 의식의 장(field of consciousness)에서 나오는 광휘이며, 이것은 창조로서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신성의 현존(Presence of Divinity) 양식이다. 깨달음의 능력은 의식이 그 근원인 참나로서 내재하는 신성(Divinity)으로 되돌아간 결과일 뿐이다.
The ego/self identifies with its various functions and qualities and labels them as "me" and says that is "who I am." This results in the vanity of authority, an error that originated during evolution as a consequence of identification with the experience of the senses. Thus comes about a typical conclusion that "I" itch, instead of "the body" itches. The same error of authorship/ownership occurs with feelings and thoughts in that the witness identifies with the subject and the content of the experiencer. The experiencer function is an information probe that collects linear data and therefore is an "it" and not a "me." It is a functional processing unit similar to the senses of smell or touch.
에고/자기는 자신의 다양한 기능과 특성을 동일시하고, 그리고 그것에 "나를(me)"이라고 꼬리표를 붙이고, 그것이 "나는 누구인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감각경험과 동일시한 귀결로서 진화하는 동안 발생한 저작권의 허영(vanity of authority), 오류(errors)를 초래한다.
따라서 '그 몸(the body)'이 가렵다라고 하는 대신에, '내(I)'가 가렵다는 전형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목격자가 경험자의 대상과 내용을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느낌과 생각에서도 저작권/소유권의 오류가 동일하게 발생한다. 경험자 기능은 선형적 데이터를 수집하는 정보 탐사(information probe)이므로 "나를(me)"이 아니라 "그것(it)"이다. 경험자 기능은 후각이나 촉각과 비슷한 하나의 기능적 처리 단위인 것이다.
The relinquishment of the ego's positionalities reduces its dominance and opens the door for comprehension and awareness that are nonlinear and nonconceptual. Thus emerges the "Knowingness" of the Self, by which conflicts spontaneously dissolve. These inner transformations are accompanied by quiet joy and relief, as well as a greater sense of internal freedom, safety, and peace. The power of Love of the Self progressively predominates and eventually eclipses all negative feelings, doubts, and obstacles.
에고의 위치성의 포기는 에고의 지배력을 축소시키고, 비선형적이고 비개념적인 이해력과 자각을 위한 문을 연다. 이어서, 참나의 '앎(Knowingness)"이 나타나는데, 그것에 의해 갈등은 자발적으로 해체된다. 이러한 내면의 탈바꿈(inner transformations)은 고요한 기쁨과 안도감뿐만 아니라 더 큰 내적 자유, 안전 및 평화 감각을 동반한다. 참나 사랑의 파워는 점진적으로 우세해지고, 결국 모든 부정적인 감정, 의심, 장애물은 사라진다.
Transformation is thus not experienced as the loss of the self, but rather as the gain of the emergence and unfoldment of the Self, which is of a much greater dimension. What actually emerges is change of state or condition that supersedes and replaces the old. Thus, the lesser is replaced by the greater, by which spiritual evolution reveals the Presence of God as Immanent. This discovery is the change in the state of consciousness historically referred to as "Enlightenment" or "Godconsciousness."
따라서 탈바꿈은 작은 나(self)의 상실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큰 차원이라 할 수 있는 참나(Self)의 출현과 펼쳐짐의 획득으로 경험된다. 실제로 출현하는 것은 낡은 것을 대체하는 상태 또는 조건의 변화다. 이어서, 작은 것(the lesser)은 위대한 것(the greater)으로 대체되고, 그것에 의해서 영적 진화(spiritual evolution)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신의 현존(Presence of God)을 드러낸다. 이 발견은 역사적으로 "깨달음(Enlightenment)" 또는 "신의식(Godconsciousness)"이라고 불리는 의식 상태에서 변화한 것이다.
Note that the Self is the formless subjective source of the capacity for awareness. It is like the "hardware" of a computer-innocent, permanent, unchangeable, unlimited, timeless. On the other hand, the ego records and processes all data in the domain of form and constitutes the "software," which is an accumulation of programs. The average person identifies with the ego software programs as his identity: "me" or I. The condition of enlightenment is the replacement of the identification of self with the Self, the source of awareness itself. Thus, God is knowable and known as immanent (in here); whereas to the ego, God is seen as transcendent only (out there).
참나는 형상을 가지지 않은 자각을 위한 능력(capacity for awareness)의 주관적인 근원임(subjective source)을 주목하라. 그것은 순수하고 영구적이며 변치않고 무제한이며 영원한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같다. 반면 에고는 모든 데이터를 형상의 영역(domain of form)에서 기록하고 처리하며, 프로그램의 집합체인 '소프트웨어'를 구성한다. 평균적인 사람은 에고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자신의 정체성인 '나를(me) 또는 나(I)로 동일시한다. 깨달음의 상태는 작은 나(self)의 동일시를 자각 자체(awareness itself)의 근원인 참나(Self)로 대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God)은 알 수 있고, (여기에) 편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에고에게, 신은 (저기 밖에) 초월적인 것으로만 보여진다.
Awareness itself is beyond even consciousness. Therefore, it may be said that the Absolute is unknowable exactly because it is beyond knowing; that is, beyond the reach of consciousness itself. Those who have attained such a state of awareness report that it cannot be described and can have no meaning for anyone without the experience of that context. Nonetheless, this is the true state of Reality, universally and eternally, we merely fail to recognize it. Such a recognition is the essence of enlightenment, and the final resolution of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to the point of Self-transcendence. The Self replaces the self.
자각 그 자체는 의식조차도 너머에 있다. 그러므로 절대자(Absolute)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절대자는 말하자면 의식 자체의 범위를 넘어서는, 앎(knowing)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각 상태(state of awareness)에 도달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묘사할 수 없고, 그 맥락의 경험 없이는 누구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보편적이고 영원히 실상(Reality)의 참 상태(true state)이며, 우리가 단지 그것을 지각하는데 실패하는 것 뿐이다. 그러한 지각이야말로 깨달음의 본질(essence of enlightenment)이며, 참나 초월(Self-transcendence)이라는 의식 진화의 최종적 해결(final resolution) 지점이다. 참나는 작은 나를 대체한다.
The goal of society in general is to succeed in the world, whereas the goal of enlightenment is to transcend beyond it.
일반적으로 사회의 목표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고, 깨달음의 목표는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It is helpful to remember that neither Truth nor enlightenment is something to be found, sought, acquired, gained, or possessed. That which is the Infinite Presence is always present, and its realization occurs of itself when the obstacles to that realization are removed. It is therefore not necessary to study the truth, but only to let go of that which is fallacious. Moving away the clouds does not cause the sun to shine but merely reveals that which was hidden all along. Spiritual work, therefore, is primarily a letting go of that which is presumably known for that which is unknown with the encouragement that the effort is more than well rewarded from others who have realized the Infinite Presence.
진리나 깨달음은 발견되거나 추구되거나 획득하거나 얻거나 또는 소유하는 어떤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무한한 현존(Infinite Presence)인 그것은 항상 존재하며, 무한한 현존의 각성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제거될 때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진리를 연구할 필요는 없고, 다만 거짓인 것을 버리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구름을 치워서 해가 비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감춰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작업은 주로 추정컨대 알려진 것(which is presumably known)을 놓아버리는 것인데, 그 노력이 무한한 현존(infinite Presence)을 각성했던 다른 사람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격려와 함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위해서다.
To best serve the world, seek enlightenment and transcend illusions rather than contribute to them.
세상을 가장 잘 섬기려면 그것에 기여하기보다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환상을 초월을 초월하라.
Investigation into the nature of consciousness leads directly to the very source of illumination, for the Light of Consciousness is the condition of enlightenment. By its Light, the knower and the known are united in the realization of the Self as God Immanent.
의식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바로 빛비춤(깨달음)의 근원으로 직접 이끄는데, 왜냐하면 의식의 빛(Light of Consciousness)이 바로 깨달음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빛에 의해, 아는 자와 알려진 자는 편재하는 신으로서의 참나 각성으로 통합된다.
Consciousness does not recognize separation, which is a limitation of perception. The enlightened state is a "Oneness” in which there is no division into parts. Such division is only apparent from a localized perception; it is only an accident of a point of view.
의식은 인식의 한계(limitation of perception)라 할 수 있는, 분리(separation)를 지각하지 못한다. 깨달은 상태는 부분으로 분열됨(division)이 없는 '하나임(Oneness)'이다. 이러한 분열은 오직 국소적 인식(localized perception)에서는 명백해 보인다. 이는 단지 사고방식일 뿐이다.
The Infinite, Ultimate Potentiality is the Actuality of Existence. "All That Is" is therefore innately Divine, or it could not exist at all. The absolute expression of Divinity is Subjectivity. If I exist, then God Is. Enlightenment is the verification that all existence is not only the result of Creation, but existence itself is not different from the Creator. The created and the Creator are one and the same.
무한한 궁극의 가능성(Infinite, Ultimate Potentiality)은 존재의 실제(Actuality of Existence)다. 따라서 "모든 것 있음(All That Is)"은 본질적으로 신성하고(Divine),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전혀 존재할 수 없다. 신성(Divinity)의 절대적 외현(absolute expression)은 주관성(Subjectivity)이다. 만약 내가 존재한다면, 신은 존재한다. 모든 존재는 창조의 결과일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창조자(Creator)와 다르지 않다는 것,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창조된 것과 창조자는 하나이며 동일하다.
Through spiritual alignment, intention, and devotion-aided by meditation, contemplation, authenticated instruction, and Truth; and assisted by the energy field of an advanced teacher-great leaps of consciousness can occur unexpectedly. Thus, it is important to know of these leaps well in advance, as confirmed by consciousness research. The chances of becoming enlightened are now more than one thousand times greater than at any time in the past, which means that reaching the level of Unconditional Love (calibration 540) is a very attainable and practical goal. From the level of Unconditional Love, the pathway is increasingly joyful. At level 600, there occurs an infinite, silent stillness and peace-and progression from there is up to the Will of God, karma, and the potentialized Knowingness nascent within the spiritual aura.
의식의 큰 도약은 -명상, 관상, 검증된 교육 및 진리에 의해 도움을 받고, 그리고 진보된 스승의 에너지 장에 의해 보조된- 영적 정렬, 의도 및 헌신을 통해 예기치 않게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의식 연구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이러한 도약을 사전에 잘 알아 두는 것이 중요하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1000배 이상 높아졌고, 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측정수준 540)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매우 달성 가능하고 실제적인 목표임을 의미한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수준에서 그 길은 점점 더 즐거워진다. 의식수준 600에서는 무한하고 고요한 침묵과 평화가 일어나고, 그리고 거기서 진보는 신의 의지(Will of God), 카르마, 영적 오라(spiritual aura)내에서 초기 잠재적 앎(potentialized Knowingness nascent)에 달려있다.
Truth is recognized. It presents itself to a field of awareness that has been prepared in order to allow the presentation to reveal itself. Truth and enlightenment are not acquired or achieved. They are states or conditions that present themselves when the conditions are appropriate and the obstacles are removed.
진리는 지각된다. 진리는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제시를 허용하기 위해 준비되어온 자각의 장(field of awareness)에 스스로 나타난다. 진리와 깨달음은 획득하거나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이 적절할 때 스스로 나타나는 상태나 조건이다.
All avenues of questioning lead to the same ultimate answer. The discovery that nothing is hidden and Truth stands everywhere revealed is the key to enlightenment about the simplest practical affairs and the destiny of mankind. In the process of examining our everyday lives, we can find that all our fears have been based on falsehood. The displacement of the false by the true is the essence of the healing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always, a final question will eventually arise for every questioner, the biggest question of all: "Who am I?"
모든 질문의 방안이 한결같은 궁극적인 해답을 이끌어 낸다. 감춰진 것은 없고 진리는 모든 곳에서 드러난다는 발견이야말로 가장 단순한 실질적인 일(pracitcal affairs)이고 인류의 운명에 대한 깨달음의 열쇠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동안 내면 탐구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두려움이 거짓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거짓을 진실로 대체하는 것이야말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를 치유하는 본질이다. 그리고, 항상 모든 질문자에게 결국 발생할 수 있는 마지막 질문, 가장 큰 질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Who am I)'이다.
You have to let go of the illusion that you know who you are. In the Divine state, there is nothing to "know" about because you are it. That is a difficult leap to make but suddenly, it occurs of its own accord, and then one is free forever. Uncertainty is replaced by endless delight. Human life is then an endless comedy! You're not a "who" but a "what."
당신은 다음과 같은 환상을 놓아버려야 한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 신성한 상태에서는, 당신이 그것이기 때문에 무엇에 대해 "알" 것이 없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어려운 도약이지만, 저절로 일어나며, 그런 다음에 우리는 영원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불확실성은 끝없는 기쁨으로 대체된다. 그러면, 인간의 삶은 끝없는 희극이다! 당신은 "누구"가 아니라 하나의 "무엇"이다.
One reason for the seemingly endless delays on the way to enlightenment is doubt, which should be surrendered as a resistance. It is important to know that it is actually extremely rare for a human to be committed to Spiritual Truth to the degree of seriously seeking enlightenment, and those who do make the commitment do so because they are actually destined for enlightenment.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서 끝이 없어 보이는 지체의 한 가지 이유는 의심(doubt)이며, 그것은 저항으로서 신에게 내맡겨져야 한다. 다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이 진지하게 깨달음을 구하는 정도까지 영적 진리(Spiritual Truth)에 몰두하는 것은 실제로 극히 드물며, 그런 몰두하는 사람은 실제로 깨달을 운명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Who am I? Who is asking? You find out who is asking, and that answers the whole question. It's not a "who" but a "what."
나는 누구인가? 질문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결국 당신은 질문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되고, 그리고 그 온전한 질문에 답하게 된다. 그것은 '누구'가 아니라 '무엇'이다.
At the last doorway to enlightenment stands the ego's final challenge, which is the central core belief that it is the source and locus of not only identity but also of life itself. At that point, one is all alone and shorn of all protection or comforting props, belief systems, or even memory. There is solely available within one's aura the highfrequency vibralion of the consciousness of the Enlightened Teacher, with its encoded Knowingness. The last step is intuited as a finality from which no turning back is possible, and thus there is consternation at the absoluteness of the finality.
깨달음으로 가는 마지막 문에는 에고의 마지막 도전(ego's final challenge)이 놓여 있는데, 그것은 에고가 정체성뿐 아니라 삶 자체의 근원이자 장소라는 핵심신념(core belief)이다. 그 시점에서, 사람은 모든 보호 또는 위안을 주는 버팀목, 신념 체계, 심지어 기억까지 박탈당하고, 모두 홀로 남겨진다. 암호화된 앎(encoded Knowingness)과 함께, 깨달은 스승 의식의 고주파 진동이 온전히 자신의 오라 내에서 이용 가능해진다. 마지막 단계는 되돌릴 수 없는 완결성(finality)으로 직감되고, 이어서 그 완결성의 절대성(absoluteness of the finality)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Then arises the knowing to walk straight ahead, no matter what, for all fear is illusion. As this last step is taken by the Spiritual Will, death is experienced, but the fierce anguish lasts for only a few moments. The death of the ego is the only actual death that one can possibly experience, in contrast to which the previous deaths of leaving the body were relatively trivial. The experience of death is terminated by awe at the revelation of the Ultimate Reality-and then even the awe disappears and the Self transcends the duality of Existence versus Nonexistence, Allness versus Nothingness, and Omnipresence versus Void.
그러면 모든 두려움은 환상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앎이 생긴다. 영적 의지(Spiritual Will)에 따른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딤에 따라, 죽음이 경험되고, 하지만 극심한 고통(fierce anguish)은 단지 잠깐 동안만 지속된다. 에고의 죽음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실제적인 죽음(actual death)인데, 반면에 육체를 떠나는 죽음은 상대적으로 하찮은 것이 된다. 죽음의 경험은 궁극 실상(Ultimate Reality)의 드러남에 대한 경외감에 의해 종료되며, 이어서 경외심마저 사라지고, 참나(Self)는 존재 대 비존재(Existence versus Nonexistence), 전체임 대 무(Allness versus Nothingness), 편재 대 공(Omnipresence versus Void)의 이원성을 초월하게 된다.
In the end, to the true devotee, the pursuit of spiritual reality supersedes all other considerations. The commitment to become enlightened involves the decision No matter what.
결국, 진정한 헌신자(true devotee)에게 영적 실상(spiritual reality)의 추구는 다른 모든 고려 사항보다 우선하게 된다. 깨달으려는 몰두는 무슨 일이 있어도(No matter what)라는 결단을 포함한다.
The serious student needs to know well in advance that at the very last doorway (Final Doorway calibrates at 999), he will be confronted by his willingness to surrender life itself-or at least that which has been believed since the beginning of evolution to be the very core of life itself. This final gateway is very rarely passed, and one reason is the lack of preparation, the lack of certainty, and a final doubt of major magnitude.
진지한 제자는 맨 마지막 출입구(최종 출입구는 999로 측정)에서 생명 자체(life itself)를 내맡기려는 자발성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미리 잘 알 필요가 있다. 또는 적어도 삶자체의 핵심이 되는 진화의 시작 이후로 믿어왔던 것까지도 잘 알 필요가 있다. 이 최종 관문은 매우 드물게 통과되며, 한 가지 이유는 준비 부족(lack of preparation), 확실성 부족(lack of certainty), 그리고 커다란 규모의 마지막 의심(final doubt)이다.
At the final moment, the last vestiges of doubt and existential fear may surface from the depths. At that point, faith in the teachings of the masters that direct us to "Walk straight ahead, no matter what" arises and proves to be correct, for the glory of God awaits on the other side of the last great barrier.
마지막 순간에, 의심(doubts)의 마지막 흔적(last vestiges)과 실존적 두려움(existential fear)이 깊은 곳에서 수면위로 떠오를 수 있다. 그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라"는 스승들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그리고 그것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신의 영광(glory of God)이 마지막 큰 장벽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