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제단/김림
도로는 철저히 봉쇄되고
무리는 일찌감치 포위망을 만들었다
사냥감을 기다리는 포수처럼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서는 눈 가시줄울타리
누구를 위한 파수병인가
침묵을 강요당하며
목숨이 어느 사선을 걷든 말든
죽음조차 처분대로 맡겨야 하는
고집불통의 제단
얼마나 많은 제물을 바쳐야
얼마나 많은 피로 물들여야 비로소
제단이 풍족해질 것인가
메두사의 머리를 한 간교한 혓바닥
아무런 말도 장착하지 않은
침묵행진단을 막아선 완력 앞에
무참히 쓰러지던 소녀들
그들은 단지 '가만히 있으라'고 적힌
종잇조각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의 저항은 마구잡이로 연행되었다
발길질 위로 그들의 명령이 하달되었다
'가만히 있어라'
은밀히 진행된 세월 동안
말을 잊은 무리들이 생겨났다
귓속에 불통의 나무를 박은 이도,
뇌 속에 혐오를 가득 채운 이들도,
눈빛이 사나운 무리도
도처에 출몰하는 무법지대
가만히 있다가 굳어버린 돌무더기들
ㅡ계간 《시와문화》(2023, 가을호)
첫댓글 가만히 있지 맙시다. 돌무더기가 되어 굳어버리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