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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수학여행을 갔다. 그날의 수학여행을 통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다.
첫째는 가기 전 해야하는 일이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신호도 통일시켜야 하고 안전교육도 해야 하고 가서 채워야 하는 학습지도 나눠주고... 참고로 안전교육을 하는 모든 시간을 합치면 약 6시간 정도 되었을 것이다. 남의 방에 마음대로 들어가면 안되고, 벨트 매야 하고, 또 시간도 지켜야 하고 지킬 것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평소 매일 듣던 말인데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이것은 너무 심한것 같았다. 둘째는 우리는 수학여행을 즐겁게 생각하지만 선생님은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놀러가는 것이지만 선생님은 그곳에 가서도 아이들을 돌보고 지켜야 하고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좋아하는 선생님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학여행에서는 엄청난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가서 다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다. 뭐 그 확률은 0.01%정도 될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뉴스를 보면서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가 사고가 나 학생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적이 1번 될까말까정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수학여행을 가는 친구한테 경고해 줄 것이 있다면 가서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 친구는 감기에 걸려 놀이공원에도 못 가고 집에 갔어야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서 감기에 걸리면 수학여행이고 뭐고 끝이라는 것이다. 부디 잘 새겨 듣기를 바란다. 뭐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겠지만...
오늘은 리조트에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났다. 보통 집에서 7시 40분에 일어나지만 지금은 나를 제외한 7명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만약 7시에 일어났다면 세수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일어나보니 친구들 3명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한두명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 몇명과 함께 이불을 개었다. 생각해보니 이불을 깔고 잔것도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7시에는 교관들께서 우리를 깨우러 오셨다. 하지만 모두 깨어있었기 때문에 깨울 필요가 없었다. 빠르게 준비하고 줄을 서러 갔다. 선착순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반 친구들도 모두 나와 있었다. 이때는 내가 반 친구들이 모두 모여야 되는지 알고 여자 친구들까지 재촉하다가 그만 늦어버렸다. 너무 미안했다. 밥은 꽤 먹을 만 했다. 그러나 집밥보다는 맛이 없었다. 다먹고 식기를 반납한 후에 방으로 돌아왔다. 먼저 와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오늘 일정을 살펴 보았다. 수원화성을 갔다가, 점심을 먹고, 민속촌을 갔다가,에버랜드를 간 후에 10시가 넘어서 숙소에 들어와야 했다. 바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양치를 하려고 했으나 귀찮아서 하지를 않았다. 잘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8시 10분이 넘고 우리 학교 학생들(그중에서 6학년)은 모두 리조트 2층 중앙으로 모였다. 방키도 반납하고, 멀미약도 먹고, 다른 많은 체크들도 하였다. 우리반이 먼저 버스를 타러 밑으로 갔다. (이때 우리반은 5반이어서 항상 꼴등을 하다가 일등을 하여 기뻐했다.)
주차장으로 가면서 우리 학교 버스와 다른 학교 버스를 비교해 보았다. 좀 차이가 나긴했지만 별 상관 없었다.
버스에 탔고 다음 목적지인 수원화성으로 출발했다. 둘째날 일정의 시작이었다.
수원화성에 대해서는 몇 가지 들은 적이 있었다. 조선 후기 정조가 임금이었을 때 세워진 성으로 배다리를 놓고 이곳에 왔다는 기록과 정약용이 설계한 거중기를 이용하여 지은 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내 생각에는 여기서 핵심은 조선 최초의 신도시라는 점인것 같다. 이제 내 생각과 비교해 볼 차례였다. 수원화성에 들어와서 나는 아무 생각도 안하고 당을 보충하기 위해 친구한테 사탕을 받아 먹었다. 그런데 그때 4반 선생님께서 우리가 사탕 먹는 것을 보시고 혼을 내셨다. 죄목은 이러하였다. 신성한 역사현장에서 사탕을 먹어 예의 없는 행동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탕을 아깝게 뱉어야 했다. 수원화성을 둘러보면서 해설자 선생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는데 잘 들리지도 않고 시간은 부족하여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곳은 사도세자가 갇혔던 뒤주를 재현해 놓은 것이었다. 비록 경복궁에서 일어났던 사건이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끌렸던 부분이었다. 그 다음 무예 24기를 관람하러 갔는데 여기서 무예 24기란 중국이나 왜의 병법서를 참고하여 쓴 병법서에 실린 동작들이었다. 그 동작이 매우 섬세하고 다양하였으며 훈련 모습이나 실제 전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의미 있었다. 그러다그만 시간을 놓쳐 미아가 될 뻔했다. 다 모인후 다음 목적지인 민속촌을 향해 출발했다. 배에서는 밥 달라고 난리였다. 빨리 점심을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마 다른 친구들도 그럴 것이다.
이번 목적지는 민속촌이었다. 그런데 민속촌이 민속촌같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주 세련된 옛날 모습이란 보기 힘든 첨단 건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민속촌보다는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무슨 식당이 지하에 있고 또 줄도 한참을 서야 억을 수 있는 곳이었다. 도무지 왜 선생님들께서 이곳을 밥먹는 장소로 골랐는지 이해도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아마 줄을 기다린 시간이 밥먹는 시간의 5배쯤 될 것이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우리는 겨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다린 시간에 비해 식단이 너무 대충인 것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밥을 다 먹은 후 민속촌 체험을 하러 갔다. 이번에는 아까 수원화성에서 사탕을 먹은 것 때문에 벌을 서야 했다.(약 10분간) 그래서 그냥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기로 했다. 그곳에는 재주꾼이 정말 많은 것 같았다. 접시 돌리는 사람도 있고, 긴 끈을 머리에 두르고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다. 물개 박수가 '짝짝짝'하고 절로 나올 정도였다. 승마도 관람하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재미있는게 아니고 오히려 가슴 아팠다. 왜냐하면 채찍소리가 번개소리처럼 들렸는데 이런 채찍으로 말들이 맞는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말들이 불쌍했기 때문이다. 이제 에버랜드로 갈 시간이다. 앞으로 에버랜드에서 그 몇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기대된다. 아마 내 친구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 가는 에버랜드의 주요 목적은 야간 퍼레이드를 관람하기 위해서이다. 그밖에 해야 할 일에는 밥 먹기, 놀이 기구 타기 밖에 없었다. 우리 조는 먼저 밥 부터 먹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식당으로는 '타임 000'식당을 골랐다. 메뉴로는 돈까스카레 덮밥을 결정했다. 맛을 뭐라고 딱 잘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냥 먹을만했다. 놀이기구 탄 것은 딱히 좋은 것이 없어서 이름만 말하겠다. 두 가지 중 한가지의 이름이 생각나는데 이름은 아마존 익스프레스이다. 뭐 그럭저럭 탈만하니 만약 간다면 타보길 바란다.
야간 퍼레이드는 전에 본 적이 있다. 이것도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오늘은 매우 추워 고생 좀 하였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의 에버랜드는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니 천만다행인 것으로 기억하겠다.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노래가 흘러 나왔다. 나는 어떻게 퍼레이드 용품이 끝도 없이 나오는지 놀라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노래였다. "Welcome to 에버랜드"라는 문장이 귀에 남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불꽃놀이까지 보아야 했으나 시간이 빠듯하여 보지 못했다. 10시라는 늦은 시간에 에버랜드에서 나오다니 뭐라고 표현대야 될 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빨리 하고 싶은 것은 쉬는 것이었다.
숙소에는 10시 30분인 늦은 시간에 도착했다. 모두 씻을 순서도 정하고 잠자리도 정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너무 늦게 숙소에 왔기 때문에 편의점에 다녀오는걸 허락하셨다. 또 핸드폰도 늦게 반납하는 것도 가능하였다. 엄마한테 전화도 하였는데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이미 집에서 3주동안 떠나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꽤 괜찮았다.
아니, 아주 괜찮았다. 숙소에서 늦은 시간인데도 친구들과 나는 게임도 하고,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렇게 밤은 깊어왔고 모두 씻고 나왔다. 나는 거의 마지막으로 씻으러 들어갔다. 아마 7번째였을 것이다. 8명 중에서...
양치를 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는데 왜 그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이가 썩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잠을 자기 위해 방을 청소했다. 나는 방을 청소하면서 잃어버렸던 로션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바람과는 달리 로션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끄는 건 방장이었다. 방장이 되고 싶어 모두 가위 바위 보를 했지만 지금보니까 그냥 책임감만 막중하고 스트레스만 받는 일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빨리 자라고 소리를 질렀고 친구들은 그 말이 10번정도 나오자 겨우 잠들었다. 아주 힘든 하루였다. 물론 '힘든'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제 수학여행의 둘째 날도 끝났다. 길기만 할 것 같던 수학여행이 이렇게 끝나자 내심 섭섭하다.
이번 수학여행을 다녀오면서 나는 크게 깨달은 것이 몇가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이 사회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모두 공존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공동체사회에서 적을을 못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배려하는 것이다. 나의 의견만 고집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해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수학여행이 6시간 정도 남았을 때 우리 모둠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갈라졌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다. 마지막으로 문화재를 감상 또는 관람할때 항상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참여하자는 것이었다. 자칫하다 장난을 치고 뛰어다녀 문화재를 훼손시키거나 주변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크나큰 실수이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를 지켜 앞으로 어딘가를 여행하거나 방문할 때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겠다.
지금까지 나의 수학여행에 대한 일기를 써 보았다. 일기를 쓰면서 며칠 되지 않았지만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는 수학여행의 추억을 새록새록 다시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이번 수학여행을 한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최고'였다. 앞으로 이런 여행이 여러번 있겠지만 절대 못 잊을 것 같은 여행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때로 돌아가 다시 꿈 같았던 추억의 여행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