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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사랑을 남기신 교황님께...
글 : 이 클라우디아(해인) 수녀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순교자의 피와 눈물로
신앙의 꽃이 피고 열매가 자란

이 자그만 나라에 당신께서 오시어
축복의 기도로 함께해 주신 시간들,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계신 동안 온 나라는 따뜻했고,
사람들은 평화롭고 정겨웠으며,
잠시 근심도 잊고 마주 보며 웃었습니다.
스치기만 하여도 평화가 느껴지시는 분.
돌아서면 이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 미소가
그리움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하느님의 사람.
많이 사랑하면 당신처럼 우리도 눈이 맑아지나요?
많이 용서하면 당신처럼 웃지 않아도 웃는 얼굴이 되나요?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면 당신처럼 우리도 용기 있고 지혜로워지나요?
우리도 당신처럼 모든 이의 벗이 되어
겸손하게 힘들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쁘게 살겠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갈고닦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외롭고 아프고 슬픈 이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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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 영적지도신부 훈화 >
‘ 가을의 들녘에 서서... ! ’
글 : 윤 클레멘트(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파아란 하늘이 높고,
잠자리들 밭가에서 노니는

가을의 한복판에 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황금빛 들녘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한해 내내
땀 흘리며 일해 온 농부들의 마음이
온 들녘과 밭들에서
풍성한 가을의 열매로 맺고 있다.
하늘은 하늘에서
땅은 땅에서
들녘은 들녘에서
밭들은 밭들대로
수확하는 가을의 아름다움이다.
많은 상념들이 오가는 가을의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이 가을의 한 들녘에 서서
작은 기도의 시간들로 머문다.
하늘을 우러르면 죄스러움이고,
사람들을 바라보면 송구함이며,
자신을 헤아리면 부끄러움이 많다.
하늘은 여전히 높고
들녘은 지금도 황금빛 물결인데,
이내 마음속 수심은 가을의 저녁만큼이나 깊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하늘을 우러르고,
사람들 두루 함께,
자신을 바쳐가는 봉헌의 길에서의 사제의 길 일진데...
하늘을 향한 기도와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길에서
나는 오늘 여기에서
기도와 소망의 가슴으로 이 하루를 머문다.
때때로 다가와 부서지는 영적인 어둠과
현실의 벽들에 둘러싸여
힘듦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면서,
고독과 소망의 영혼으로 한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어느 때, 어느 날쯤이면 세월을 넘어설까?
어드메 어느 길쯤에서 생의 고독이 지나갈까?
나는 오늘도 여기에서
하늘을 향한 소망으로 사람들에 대한 아픔인 채
파아란 가을 하늘을 우러르며
가을의 길 위를 지난다.
가을의 들녘에 서 있다.
가을의 땅 위에서 산다.
- 신부님의 ‘순례자의 노래’ 中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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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2주일 /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2019. 9. 1
루카 14, 1. 7~14
♠ 복음 공부 : 제자 교육(겸손과 사심 없는 인간관계)
☞ 길잡이 : 오늘 복음은 루카의 특수 자료로 7-11절은 초대받은 이들에게 주는 교훈이고, 12-14절은 초대한 이에게 주는 훈계로 영적 생활과 공동체 관계에 중요한 태도인 겸손과 사심 없는 태도를 지닐 것을 권고하신다. 이 두 부분은 서로 병행을 이루며, “누가 너를 혼인잔치에 초대하거든”과 “네가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베풀 때”라는 조건문으로 시작한다. 조건문에 이어 “앉지마라”, “부르지 마라”라는 부정문이 나오고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10절), “행복할 것이다“(14절)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끝난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심리학 더 나아가 그분의 탁월한 교육학과 루카의 문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7~11절 : 끝자리에 앉아라 -- 1절에서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의 연회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7절에서 손님들이 저마다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훈계를 비유 형태로 제시하며, 혼인잔치에 낮은 자리를 택하라는 훈계와 종말에 지위가 바뀌게 된다고 하신다. 10절은 잠언 25. 6-7을 반영하며, 11절은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의 지위가 바뀐다는 에제키엘 21, 30을 반영한다.
* 12~14절 :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여라 -- ‘보상을 바라지 말고 사람을 대하라.’ 는 훈계다. 비슷한 사상이 6.27-36에서도 나온다. 잔치에 초대할 대상은 초청을 받아도 되갚을 수 없는 네 부류의 사람들, 곧 경제적으로 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를 가진 이들, 즉 ‘병들고 소외된 이들을 초대하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는 부활 때 보상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신다.
♠ 복음 요약 : 종교적, 정치적 권력까지도 있었던 바리사이들을 초대한 그들도 갑질에 속한 사람으로 그들은 응당 상석에 앉아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요지경의 세상 속에서 초대한 사람 역시 이해타산으로 자기 자신의 과욕과 허영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끼리끼리 우리의 신앙공동체를 위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모욕을 당하지 않도록 마음을 쓰신다. 겸손의 힘이 우리 교회에 그리고 가정에 절실해지는 때이다.
♠ 대화 방향 : ① 일상의 삶 안에서 자신을 낮추어 결과적으로 높아진 경헌을 나누어 봅시다...
② 보답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푼 경험담을 나누어 보세요.
♠ 참고 문헌 : ▪ 루카복음 주해 ( 유충희 지음 / 바오로딸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 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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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3주일
2019. 9. 8
루카 14, 25~33
♠ 복음 공부 :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
☞ 길잡이 :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군중을 향하여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 후에, 탑 건축자와 전쟁을 계획하는 임금의 비유를 25절과 33절 앞뒤에 덧붙였고, 추종의 자세로 자기포기와 희생을 강조한다. 추종의 자세는 무소유를 강조한다. 루카에 있어서 소유는 가난한 이웃을 위한 나눔의 대상이다.
* 25~33절 :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첫째로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워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나 아람어에 비교급이 없기 때문에 ‘덜 사랑하라’를 ‘미워하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수님은 부모 공경을 강조하나 혈연관계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소중히 여기셨다.(마태 8.19-22=루카9.57-60:마르1.16-30등) 따라서 가족이나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뜻을 소중히 여기며, 가정이나 자기 일에 덜 집착 하라는 것이다. 둘째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에게 닥칠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타인을 섬기는 자세다. 후반부(28-30절)에 탑과 전쟁의 이중 비유는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특수 자료로 잠언 24.3-6을 서로 연결하여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이 충분한 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일을 벌이는 것은 매우 어리석듯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제자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제자가 되려면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가? 등의 각오와 결단이 요구된다. 셋째로 자신의 마음이 사물이나 인간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함으로써 탐욕을 버리고 물질적 재화나 재산에 집착하지 않고 나의 소유가 아닌 충실한 청지기의 삶을 요구하신다.
♠ 복음 요약 : 왜 그리스도를 믿는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은 제자가 되는 조건을 말씀하시며,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많은 무리가 따랐지만, 그분이 가시는 길을 몇이나 알고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당신을 추종하는 제자의 삶은 계속되는 ‘자기 버림의 삶’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분의 삶 자체가 ‘십자가의 삶’이고 ‘무소유의 길’ 로 우리가 생각하는 평안한 삶이나 정신적 안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 안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한 부류는 그분 안에서 뭔가를 얻고자 하는 자들로 주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여 따르는 욕심쟁이들이다. 또 한 부류는 주님을 믿고 가르침을 배우면서 주님을 닮으려고, 때로는 죽음까지 불사하는 신앙인이다.
♠ 대화 방향 : 살아가면서 많은 일에 있어 선택한다는 것은 버림과 포기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러니 점점 수고로움이 가치 없이 열매만 바라는 나를 발견한다. 나의 신앙여정을 돌아보고, 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에 가까운지요...?
♠ 참고 문헌 : ▪ 루카복음 주해 ( 유충희 지음 / 바오로딸 출판사, 한남성서연구소 공동 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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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4주일
2019. 9. 15
루카 15, 1~32
♠ 복음 공부 :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복음 묵상 : 하느님 사랑을 맛보고자 모인 세리들과 죄인들을 위해 오늘 루카 복음은 그 유명한 ‘자비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 은전 한 닢을 찾아 기뻐하는 마음, 그 기쁨이 바로 돌아온 탕자를 보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마음’ 이라는 일련의 자비의 비유를 통해 복음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의 기쁨을 맛보도록 죄인들을 우선적으로 초대합니다.
특별히 세 비유 내용은 하느님의 안목에서 본 기쁨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잘난 자식이나 못난 자식이나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시고 토닥거려주시는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모습은 하느님 사랑의 또 다른 일면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누구보다도 더 힘들어하시는 하느님, 그러면서도 인내를 갖고 회개를 바라는 분이시며,
회개한 죄인을 보고 가장 기뻐하시는 하느님임을 생각할 때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내치시는 그런 매정한 하느님이 아니심을 묵상해 봅니다.
♠ 대화 방향 : “ 자,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면서 느낀 기쁨이나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느낀 기쁨에 대해서 나눠 봅시다.
♠ 참고 문헌 : ▪ 보득솔 ( 청년 성서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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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5주일
(성 김대건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2019. 9. 22
루카 16, 10~13
♠ 복음 공부
* 10절 :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주님께서는 하루하루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삶의 한 복판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일을 작은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하는 것을 잊기 쉽다. 세상 한 복판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실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인 충전이다. 그 시작은 미사에서 복음에서 기도에서 시작된다.
* 11~12절 :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또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 ” 이 말씀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직장인에게도 마찬가지며 농부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청지기’이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의 모든 것은 성모님의 것입니다.” 라는 문장을 사용하셨다.
* 13절 :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이 구절은 우리에게 작은 일에 성실하고 영적으로 충전이 잘 된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게 된다. 미국에서 햄버거로 유명한 칙켈레 치킨햄버거가 있다. 칙필레의 ‘세컨드 마일 서비스’ 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오 리를 가게 되면 십 리를 더 가라.” 고 하신 말씀처럼 고객들의 기대를 넘어선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뜻이다. 이러한 서비스정신으로 미국 소비자만족지표(ACSI)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객이 아닌 특별한 손님으로 대접한다. 만나그룹 CEO 폴 세이버는 38년간 레스토랑 사업을 하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말씀에 따라 고객을 최고의 서비스로 섬겼다. 만나는 먼저 직원들을 존경하며 섬기면 직원들도 고객들에게 똑같이 대접하며 손님뿐만 아니라 매장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가족처럼 대한다. 이익보다 더 중요한 옳은 길을 택하는 믿음으로 기업을 경영한다.
♠ 복음 요약 :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다. 그러나 그 씨앗 안에 있을 것이 다 있다. 씨가 자라서 줄기가 되고 잎이 생기는 것은 원래 그 씨앗 안에 있던 것이다. 일상 삶 안에서 사소한 일도 겨자씨와 같습니다. 사소한 일 안에 세상이 다 들어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루카 16,10) 모든 것은 하느님 섭리 안에 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이냐시오 성인은 아주 작은 일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 ‘영신수련’책을 저술했습니다. 피정의 교과서 격인 ‘영신수련’은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 지 인도해 준다. ‘영신수련’은 몸을 단련하기 위해 육체적인 운동이 필요하듯이 영혼을 단련하기 위해 영적인 훈련을 한다. 영적인 훈련을 통해 신앙 감각을 익히게 된다. 신앙 감각을 익히게 되면 어떤 순간에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은 발달된 감각에 의해 행동한다. 시인은 시적 감각이 발달된 사람이며 음악가는 음악적 감각이 발달된 사람이다. 요리사는 미각이 발달된 사람이다. 이러한 감각은 아주 작은 일을 거듭 행하면서 발달된다. 일상의 삶을 거룩하게 사는 방법은 작은 일 하나라도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다. 예수회 수사였던 라우렌시오 수사는 이런 연습을 통해 그가 항상 매 순간을 영성체하러 나가는 것처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다.” (마더 데레사)
♠ 대화 방향 : 세상 한 복판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루하루 매 순간을 성실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삶의 한 복판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일을 작은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야하는 것을 잊기 쉽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한다. 송봉모 신부님이 쓴 <세상 한 복판에서 주님과 함께...> 라는 책을 읽고 묵상한 내용을 서로 나누어 보자.
♠ 참고 문헌 : ▪ 예수회 최 로베르또 신부 강론 ▪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과 함께...<송봉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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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6주일
2019. 9. 29
루카 16, 19~31
♠ 복음 공부
* 19절 : 이 부자는 왕같이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그의 의복은 자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이었다. 자색 옷은 당시에 왕이나 귀족들만 입던 비싼 옷이었으며, 고운 아마포 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두 배나 비싼 옷이었다.
* 20~21절 : ‘라자로’는 ‘하느님이 도우시는 자’라는 뜻의 이름이다. 그의 이름은 그가 비록 가난하고 고통 중에 있기는 하지만 그가 하느님을 의지하고 그 은총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라자로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불구자였으며, 또한 피부병 환자였다. 라자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고 살았다. 유대인의 경우 일단 그릇에서 바닥에 떨어진 빵조각은 먹지 않았고, 다시 접시에 담지도 않았다. 이것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생긴 습관이다. ‘떨어지는 것’은 부자의 식탁에 앉은 자들이 먹고, 남아서 버린 찌꺼기를 의미한다. 라자로는 움직일 수 없어서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기도 했다. 여기서 언급된 ‘개’는 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개가 아니라,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사나운 들개이다.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았다고 하는 것은 라자로가 ‘개’에게 조차 천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22~24절 : 그 부자는 세사에서 영광을 누렸지만, 연약한 자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이 부자는 연약한 자들을 멸시하던 유대 종교지도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라자로는 세리와 죄인들처럼 영적으로 비참한 삶을 살던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품이란 의로운 영혼들이 평화롭게 머무르고 있던 곳, 낙원을 의미하며, 악인의 처소로는 불로 고통을 당하는 곳, 지옥을 의미한다. 또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중재하면 지옥에서 까지도 자신들이 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 25~31절 : 부자는 탐욕과 이기심과 허영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돕지 않았다. 부자는 재물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살지도 않았으며, 또 영원한 생명을 위해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부자는 지옥에서 라자로는 낙원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그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 놓여서 서로 왕래할 수 없다. 26절에서 큰 구렁은 ‘벌어진 틈’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큰 구렁이 영원히 고정되어 있어서 서로 왕래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회개할 기회가 있지만, 한 번 죽고 나면 영원히 회개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 후에 떨어진 장소는 아무도 변경할 수 없다. 자신은 기왕 버린 몸이지만 제 형제들이나마 죽기 전에 회개하기를 부자는 바라고 있다. 그래서 부자는 라자로의 부활 같은 엄청난 기적을 보면 자신의 형제들이 회개할 가망성이 있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청한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부자의 요청을 거절한다. 회개를 촉구하는 성경 말씀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설사 죽은 사람이 부활할지라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답한다.
♠ 복음 요약 : 이 복음은 부자들과 처참할 정도로 가난에 찌든 사람들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격차를 다루고 있다. 돈이라고 하는 것이 의식주, 교통수단, 의료혜택, 위락 등에서 부자들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 살게 만드는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 부자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갈라놓고 있는 높은 담은 그가 죽은 후에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심연으로 된다.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사람들 각자는 영리하게 하느님을 섬겨 영원한 생명을 얻거나, 미련하게 돈을 섬겨 영원히 망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우리 공동체는 가난한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②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자기 품 안에 받아들이는가, 혹 자기와 그들 사이에 그들 사이에 심연을 파고 있는가?
➂ 우리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말씀에 어떻게 순종하고 있는가?
♠ 참고 문헌 : ▪ 주석 신약성경 <성요셉 출판사> ▪ 루카복음 읽기 <성바오로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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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주제 발표 >
우리의 ‘착한 목자’이신 메시아 예수님 < 요한복음 10. 27 ~ 30 >
송 시메온 (창수)
서울 이문동 / 일반팀 FB
* 내용 :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드러냄으로써 당신이 어떤 메시아인지를 규정하신다. 당신이 하느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해 주는 것은 법률적인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이다. 즉 당신 안에 계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당신 활동이 증명해주고 있다.
우리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도자들을 의심과 혼란에 휩싸이도록 내버려 두신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의 본모습을 밝히라고 다그친다.
당국자들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누구인지 밝히기 바란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당신이 누구신지를 아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지도자들의 거짓된 악한 뜻을 발가벗긴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업적이 당신이 누구신지 증거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네 실천을 예수님의 실천과 합치시킬 마음이 조금도 없다.
* 복음 요약 :
이스라엘 땅은 농사보다는 목축에 적합합니다. 목자들은 양과 염소를 신선한 풀이 자라는 곳으로 이동시켜 배부르게 하고 목을 축이게 합니다. 그런데 양은 귀가 밝지만 눈은 그만큼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소리로 양을 이끕니다. 목자는 앞장서 가며 양을 목소리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자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양들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잘 구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왔을 때 늘 배부르고 안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를 따를수록 더욱 목자의 목소리를 믿게 됩니다. 이는 아이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서 오는 그 사랑에 익숙해져 어머니의 목소리만 따르면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선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고 하시고,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양들은 이미 예수님께 길들여진 양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오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일들을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양들은 착한 목자만 따릅니다. 교회의 목자들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닮아갈 때, 양들은 더더욱 교회 목자들의 목소리를 신뢰하고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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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F․B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 2 )
안산 원곡본당 FB : 권 토마 (순)
<성서형제회의 기본 조직에 대한 이해>
성서형제회에는 분명히 창설자 신부님이 계시고, 단체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면 세계 어디서나 교구장의 인준을 받아야한다. 다만 준비하는 과정도 필요하니, 임의단체로도 지도신부를 본당신부로 두고 하면 활동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성서형제회가 한국교회 내에서 단체로 활동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교구 단계에서 승인을 받거나 교구 소속 본당에서 허락을 받아서 본당단체로 등록하는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구에 이미 인준을 받은 수도원이 그 활동방법으로 수도원소속으로 가능하며, 이 경우는 그 변경한 것에 대해서 소속 교구에 허가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서울교구는 청년성서모임이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의 활동으로 인정되어 서울교구와 협력해서 만든 단체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 소속 수도회인 ‘예수 그리스도수녀회의 협력을 받을 수 없는 형편이기에 교구나 교구에 속한 본당신부의 허가에 의해서 활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성서형제회도 어느 단체처럼 교구 중심으로 이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형제회 교본에도 표현되어 있듯이 성서형제회가 교구 단위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교구에서 이 단체가 승인을 받았다고 해도 다른 교구에서도 승인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형편상 한국에서는 전주교구만이 유일하게 교구 승인을 받았기에 다른 교구에서 독자적으로 교구 중심으로 이끌어나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편의상 전국 모임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전국모임이 되었든, 교구모임이 되었든 최고의 직분인 평신도 봉사자를 ‘조정말씀선포자’ 라고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지도신부님이 계시는 것이 전제로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형편으로는 서울지구모임이 서울교구모임이 되기 위해서라면, 서울교구의 조정말씀봉사자와 회칙, 그리고 지도신부님이 선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상 이들의 조직은 교구장이 승인하기 이전에 마련되어야 하기에, 사실 이런 단체에 들어서면 이미 교구에서 승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단계를 거친 수원교구가 지난 교구승인을 받지 못한 데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주교구는 수원교구, 서울교구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전주교구에서 발간한 자료를 보면, 그 이전에 선배 봉사자들이 교구장을 찾아다니면서 인준을 위해서 노력한 흔적이 보인 것이다. 그 사이에 서울교구나 수원교구는 내부적으로 200개 이상의 본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조직화되고 규정이 엄격히 적용되었기에 절차가 따로 필요했던 것이다.
수원교구는 평신도 단체모임이나 사제들 모임에서 심사를 받아서 총대리신부(혹은 총대리주교)에 의해서 안건이 주교에 제출되면 주교가 승인을 내는 체제이다. 그러나 이들을 준비하는 과정이 다 문서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해야 하는데, 이를 준비하는 동안 수원교구의 사목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평신도모임에서 거부되고, 또한 한 번은 사제모임에서 거부되었다고 한다.
수원교구는 이 단계에서 이미 수원교구 지도신부님을 정했고, 성서형제회 주관 행사에 많은 신부님들이 참여해 왔다는 사실이다.
수원교구는 200여개 본당에서 속한 사제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을 일치하기란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서 과거 6개 대리구에서 2개 대리구 체계 하에서 대리구장을 평사제에서 보좌주교 사제로 달라지게 된다. 이들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내포하는 그 내용을 성서형제회봉사자들이 잘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교회소식이 인터넷에 의해서 알려지는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전국모임이 교구모임의 일을 하게 된 것이고, 교구승인을 받지 못하고 받기가 어려워짐에 따라서 수원교구와 서울교구의 성서형제회의 구성은 교구 체제를 포기하고 지구체제로 전환되어야 하였다. 교구체계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의결권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주교회 공동체문제로 인해 전주 지역 봉사자들이 전국모임에 참여하는 경우가 적어짐에 따라 서울지구모임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다.
성서형제회가 전국모임을 월1회 갖는다고 되어있는데, 이는 교구모임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그 아래의 지구모임은 당연히 매달 1회 하기로 되어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가장 짜임새가 있는 레지오 등의 단체도 그런 체제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50주년을 불과 얼마 앞두고, 전국모임과 지구모임을 격월제로 하기로 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지구모임이 교구모임으로 가기 위한 전초 단계로 여길 수는 있지만, 지구모임이 교구모임으로 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있기에 그들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기에 지구모임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전국모임도 잘 안되고, 지구모임으로 해야 하는 큰 아이템이 별로 없는 사이에 전국모임에서 의결할 내용을 가지고 논의하는 이상한 구도로 흘러갔던 것이다.
지금 전국모임의 한 축인 전주공동체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국모임이 파행된 것도 아니고, 전국모임체제가 살아있음에도 전국모임에서 위임의결도 받지 않은 지구모임에서 의결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단순히 생각해서, 지구모임에서 전국조정이 참여하기만 하면 그 모임이 전국모임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전국모임이 교구에서 승인받은 단체도 아니고, 또한 서울교구에서는 지도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좋은 의미에서 하는 모든 활동에 대한 정당성을 얻기가 어렵게 되어간다는 안타까운 일들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수원 등 대단위 교구와 전주, 광주 등의 조그마한 교구는 그들이 지향과 사목방향이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 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도’ 라는 말은 ‘파견된 자’ 를 말한다.
도시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한 지역에 한 분의 선교사들이 파견되었다고 한다. 교황청은 이들을 주교로 임명한 것이고, 그들의 역할은 ‘사도’ 인 것이다. 오늘날의 교구장이고 주교인 셈이다.
대도시가 발달하고 지역에 여러 개의 교회가 형성되고, 이들에 대한 본당개념이 들어서고, 주교의 역할을 위임받은 본당사제가 관할 지역을 관리하게 되는 셈이었다. 주교가 인준하는 정식단체에서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교로 부터 위임받은 본당사제의 허가로 하는 임의 단체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교구에서 인준되었다고 해도 본당사제가 허가하지 않으면 본당에서 단체 등록이 안되는 것은 임의 단체와
마찬가지이지만, 교구사목방향에 따라서 움직이는 본당의 입장에서는 다르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구에서의 제 역할을 하거나 하는 문제를 잘 살펴서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는 그 다음 차원의 문제라 여겨진다.
단체는 교계를 통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여기에도 적용받기 때문인 것이다.
1970년에 성서형제회는 생겨났지만, 그 이후로 여러 세월이 지난 후에 창설자 신부님은 몇 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교본을 유지해왔음을 우리는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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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
故 김 스테파노(치삼) 신부님을 그리며...
전주 중동본당 FB / 김 아나스타시아(치영)
‘요셉동산’에서 만난 정승현 신부님이 “부탁한 글 썼느냐?” 고 물으셨는데, 부담스러워 펜이 잘 잡히지 않았다.
지금 새벽 1시 39분, 책상 하나 놓고 “주님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한 후 펜을 들었다.
거슬러 올라가서, 2011년 11월 9일 그 날, 점심식사를 정성들여 준비하고 있는데 신부님 방에서 “아나스타시아야” 라고 부르는 소리에 잠시 멈추고 신부님께 가 보았다.
“저를 부르셨어요?”
“그래. 이번 피정 때 만나서 정승현 신부님이 진달래 집에 꼭 한번 오라고 해서 이번 토요일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항상 주일 강론 준비를 토요일에 하는데, 오늘은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다. 혹시 성경에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하는 성경 구절이 몇 장 몇 절에 있는지 찾아봐 줄래...?”
속으로 은근히 불만이 올라왔다.
‘아니,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 그중 끝부분을 찾으면 쉬울 텐데, 밥 하느라 바쁜 나를 불러서 찾아 달라 하시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요즘 성경을 88번째 읽었다고 자랑했더니, 내가 성경을 달달 외우는 박사인 줄 아시나?’ 하고 속으로만 두런거리면서도 ‘그래, 신부님이 어련히 부탁하셨을까, 힘이 들겠지만, 편하게 해드리자.’ 마음 고쳐먹고 성경을 들고 얼른 얼른 찾으려 하니, 마태오복음에는 안 나온다.
다시 마르코 복음을 급히 찾아도 역시 안 보인다.
할 수 없이 루카복음까지 찾아보니, 23장 46절에 그 구절이 있지 않은가.
너무 반가워서 후다닥 그 성경책을 들고 보여드리려 들어갔는데, 방금 계셨던 신부님이 샤워실로 들어가신 것이다.
다시 나와 서성대며 기다리다가 들어가니, 또 안 나오셨다.
‘내가 이렇게 서성대며 왔다갔다 시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메모지에 간단히 써서 성경 놓인 책상 위에 놓고 오면 괴는 것을...’ 번뜩 지혜가 떠올랐던 것이다.
메모지에 커다란 글씨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루카 23장 46절”이라고 쓰고 맨 밑에 ‘비서실장 아나타시아 올림’이라고 써서 책상 위에 놓고 살며시 나왔다.
이제 12시가 다 되어 평소대로 “신부님, 즐거운 식사시간입니다”하는데 인기척이 없다.
평소에는 “신부님, 즐거운 식사시간입니다”하면 쓰시던 글자도 멈추시고 식사시간 만큼은 철저히 지켜주시었다. (신부님은 식복사에 대한 예우가 식사시간 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셨기에 시간에 큰 배려를 해 주고 계셨다.)
안 나오시기에 다시 들어가려는데 막 나오신다. 신부님의 얼굴을 살피니 입가에 미소가 그득 벙글벙글 기분이 좋으시다.
워가 그리 좋으시냐고 묻기도 전에 말씀을 여유 있게 건네신다.
“내가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비서실장을 참 잘 둔 것 같다.”
성급한 나는 “정말 그렇지요? 비서실장 잘 두었지요? 나 같은 비서실장 어디서 구할 수 있데요, 조선 사방팔방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아하하하.”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러믄요.” “그러하구나. 나도 너를 여왕마마처럼 받들고 다니지 않니? F.B(성서형제회) 간다면 다 태워주지 차만 타기만 하면 큰 소리로 들으라고 필리비서 4장 4절 말씀을 네가 언제나 하니 내가 다 암기가 되었단다.
자유스럽게 행동하면서 기쁘기 살아가니 행복하지 않니?”
“그래요. 그러고 보니 둘이는 서로서로 same이네요.”
호호 웃으며 이날 점심식사는 유례없는 진한 농담을 나누며 마음속에 평화를 심어준 날이었다.
그 다음 날(목요일) 매일 산책을 하시는데 5시에 가셔서 6시에 돌아오신다.
저녁이 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오늘은 신부님이 산책을 안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입구에서 마주쳤다.
서로 반기는 표정으로 “신부님, 오늘도 산책 가시게요?” 내 생각으로는 꼭 말렸으면 좋겠는데 이미 등산복 차림으로 모자까지 쓰고 나오셨다.
차마 ‘가시지 마세요. 지금 비가 좀 오네요’라는 말이 안 나왔다.
이미 산책 준비 하시고 반갑게 “나 오늘 산책 잘 다녀오마! 전에 없는 행복한 미소를 띠시면서... 난 엉겁결에 “지금 비가 오는데 산책 가시려고요?” “응” “그럼 잘 다녀오세요! 그게 신부님과의 마지막 대면이었고 마지막 대화였다.
그 누가 천국으로 산책 가실 줄 알았으리요.
콩나물국이 다 식어가도 신부님은 돌아오시지 않고 묵주기도 하며 오늘은 신자 분 만나 담소 나누느라 늦어지는 줄만 알다가 밤 8시가 되어도 안 들어오시기에 옆방 젬마와 산책길을 두 번이나 돌고 들어왔다. 시간이 거의 밤9시가 되어간다.
F.B 회원 보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매님, 놀라지 마세요. 신부님이 전주 병원에 계시다네요. 가보세요.”
가서 보니 허 데레사 자매님과 관리국장 백승호 신부님이 계셨다.
시신을 중앙 성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난 정신이 없어, 그냥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보나 자매님이 귀에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보나야, 나를 치게 한 그 사람을 용서해 주어라. 조건 없이 용서해 주고 단 그 가족이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거라.” 그 말씀이 들리더라고 이야기해 주기에 ‘조건 없이 용서해 준다고. 다만 신앙을 가지라.’고 전해 주었다.
동정녀로서 그리고 김 신부님의 동생으로서 신부님 돌아가실 때까지 식복사로 수고한 아나스타시아 자매님이 허 데레사 자매님을 모시고 우리 집을 찾아오셔서 건네준 원고는 여기까지 였다.
그러면서 사고를 내신 분이 장례 예식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시고 마지막으로 “이분이 이렇게 높으신 분인 줄 몰랐습니다.”라고 고백하더라는 말을 전해 주었을 때, 저는 루카 복음의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광경이 떠올랐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외치셨다. “아버지, 제 영을 아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정말 이 사람을 의로운 분이셨다.”하고 말하였다.(루카23,46-47)
< 신부님이 남기신 말씀 >
“인간의 시간은 천년을 살아도 하룻밤 꿈인 유한한 하루이지만, 하느님의 시간을 살면 하루를 살아도 그 안에 천년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하느님의 영원성에 닿아 있는 하느님의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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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이노니아 팀 소식 >
전주 중산성당 F․B팀 야외 모임
중산성당 F·B 팀이 7월 9일(화요일) 운암자연산장에서 야외모임을 가졌어요.

자연 속에서 옥정호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곳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앞으로도 주님 뜻대로 살아가고자 다지는 시간이었어요...
오른쪽 사진에서 왼쪽부터 김 율리안나(동이) 자매님, 김 율리엣다(미경) 자매님, 김 아나스타시아(치영) 자매님, 조 세실리아(혜경) 자매님, 그리고 맨 오른쪽은 최 루시아(화숙) 자매님입니다...
전국의 모든 F·B 회원 여러분, 우리 팀이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겸손과 용서와 배려 속에서 건강,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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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많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9년 7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