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평화의소녀상 · 기림비를 모셔 세우며...
“생각만 하면, 심장이 찢어지는 것같이 아파요. 내 나이 16살 옥보다 더 고운 그런 시절이었어”
“속에 파묻은 걸 말할라믄 내 가슴도 터져요”
“어느 날 혼자 집에 있는데 두 명의 일본군이 와서 ‘군인 나가자’하며 기차역으로 끌고가 말 싣는 화물칸에 실려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었어요”
“계급장은 없이 군복을 입은 일본인 2명과, 순사 그리고 반장이 와서 공장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거절하면 반역한다면 전 재산을 몰수하고 외국으로 추방된다고 해, 받아들여 그래서 간 곳이 공장이 아니고 군인들 상대하는 공장이었습니다. 눈물로눈물로 보냈습니다. 맞기도 마이 맞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습니다”
“열 여섯살 봄에 일본가라는 영장 통지서가 나왔는디. 도망 댕기고 숨어 댕기고 그러다가 잽혔거든요. 솔직히 말해 거 일본놈 앞잽이 조선사람이 겁나게 나쁜 사람이에요. 그 놈들이 더 지랄여요.”
“고향에 돌아가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려왔어. 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고 말 줄 어찌 알았겠냐. 지금까지 우리가 당한 굴욕은 차마 돌이켜 볼 수도 없어. 일본이 나의 인생 모든 것을 망친 것이야.”
“그런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서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서 발길을 돌려 타향으로 떠났지”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안되어 외숙모가 와서 양반 집에 있을 수 없다면서 야단을 했다. 이후 일가 친척들에게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았다.”
- 왜 우리 지역에 소녀상과 기림비가 세워지는가? -
나비 한 마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상징성
제국주의의 망령에 들씌운 일본은 조선 침략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아시아 전역을 점령해 가려는 야욕에 불타 만주와 중국, 러시아의 일부, 그리고 동남아 지역까지를 온통 고통과 슬픔, 분노와 비굴이 중첩되는 불행의 역사로 몰아넣었습니다.
그 비극의 한 복판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있습니다. 2차세계대전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 전쟁에서 일본제국군은 아시아 곳곳에서 1938년 이래 성노예 20만여명, 징용징병 850만명을 끌고 갔습니다. 여기서 벌어진 갖가지 인권과 재산을 짓밟는 일들은 낱낱이 열거할 수 없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인류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행들로 가득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그 모든 학살과 파괴, 그리고 인권을 짓밟는 불행을 만들어낸 모든 잔혹한 침략자의 모습을 다 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게다가 온갖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다 견디고 겨우 살아남아 돌아온 고국은 아무도 그 피해여성을 받아들여주지 않았습니다. 묵은 가치관이 그들을 단지 더러운 존재로만 여길 뿐 마지막 따뜻하게 받아주어야 할 가족마저도 싸늘한 외면만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리되지 않은 우리의 역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비 두 마리.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일제 군국주의의 망령
70년이 다 지나도록 만행에 대해 인정도 반성도,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는 일본을 보는 우리는 광복 70년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더 많은 도민의 뜻을 모아 일본의 포악한 군국주의를 경계하는 깃발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역사의 준엄한 요구였습니다. 그럼에도 거듭되고 있는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려는 갖가지 시도들은 그들의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을 알리는 갖가지 징후는 이미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공포이고, 앞으로 동아시아라는 세계에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정치지형 역시 이런 일본의 위협보다는 경제적 · 정치적인 작은 이익 때문에 일본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데, 이는 이만저만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의 공조, 그에 뒤이은 한국과 일본의 외교라는 이름을 빌어 벌이고 있는 위험한 도박은 다시 한 번 일본이 평화지형을 깨트리려는 의도를 수용하는 것과 같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독도 영유권 주장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외교적으로 부당한 과거사를 지워가려는 갖가지 술수들은 일본이 얼마나 위험한 집단인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한 선열의 목소리 앞에서 우리는 단호하게 일본의 이런 움직임을 거부하지 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또 비극의 악순환이 거듭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권과 인권, 그리고 국권의 존엄함이 무엇인지를 이미 뼈저리게 확인한 일제 식민지 치하의 죽음보다 무서운 경험을 단지 경제적 · 정치적 이익 때문에 다시 감수할 수는 없다는 것은 명확한 교훈입니다.
나비 세 마리. 우리 지역의 기상과 정서
우리 지역에는 역사를 지키고, 바로 세우기 위한 지난날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이 일어나 왜군과 싸워 최초의 승전으로 청주성을 탈환하였고, 일제의 침략 때에도 의병투쟁과과 독립투쟁에서 피 흘리며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렬의 정신을 가진 고장이라고 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곳이 바로 우리 지역입니다.
이러한 정신과 전통을 이어내는 일은 최근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재의 해소와 역사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과 모든 것이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우리 지역 충북 출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여덟 명이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폭로한 것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문제에 대응하는 ‘충북 평화나비’ 운동과 ‘충북 희망나비’ 운동은 비록 작지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움직임으로 소중한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운동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마침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여전히 미완의 광복을 완성된 광복으로 풀어내려는 고민과 함께 그 중요한 사업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부각시키는 ‘충북평화의소녀상 · 기림비’를 세우기로 결의를 하고 온 도민의 뜻과 정성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나비 네 마리. 그래서 풀고 가야 할 여전히 남은 숙제
우리는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일제에 무엇으로도 보상이 되지 못할 피해를 입은 식민지 치하 여성들의 아픔을 기억합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 그들이 늙고 하나씩 둘씩 유명을 달리하는 가운데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 현실적인 과제가 무엇인지를 찾고자 합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수많은 어린 여성들이 끌려갔고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으며, 겨우 돌아와서도 고향에 살지 못하고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몸을 숨겨 살아야 했던 이중 삼중의 고통을 위로해야 한다는 것도 이 사업을 펼치게 된 의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욱이 반성이나 사죄는 기대할 수도 없이 다시 우리나라를 다양한 모습으로 능욕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와, 국내에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일제 잔재의 모습들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움이기도 하고 과제이기도 한, 우리 시대에 반드시 풀고 가야 할 일들입니다.
특히 우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여성들이 마침내 자신들의 고통을 세계평화와 여성의 평화, 그리고 전쟁없는 세상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고 한 결의를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역사의 보석이라고 봅니다.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삭히고 소화시켜 평화의 씨앗으로 만들어낸 일이야말로 견줄 데 없는 위대한 각성이라고 보는 까닭입니다.
나비 다섯 마리. 소녀상과 기림비에 담긴 뜻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충북평화의소녀상 · 기림비시민추진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도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호응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중 · 고등학생인 청소년들의 결의와 적극적인 결합은 우리 지역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사례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 드러내고자 하는 뜻은 일제의 치욕을 기억하되 그것을 값진 미래를 여는 소중한 교훈이었다는 것과 청산되지 못한 국내 일제 잔재의 청산, 그리고 다시금 꿈꾸는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경계를 하면서 굳건한 민주 · 자주에 기초한 나라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또 하나의 이정표로 삼고자 함입니다.
세 단위의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고자 한 시도의 열정
떼지어 날아오르는 나비, 나비 나비들...미래의 세대들에게 주는 숙제와 교훈
‘나비’로 표현된 고통과 슬픔과 아픔, 그리고 절망의 승화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신비로운 각성이었습니다. 당사자들이 하나하나 평화와 희망의 나비일 뿐만 아니라, 이에 동참한 모든 이들의 손길이 또한 나비의 날개짓이었고, 앞으로 이어질 평화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바로 평화나비, 희망나비가 될 거라는 희망과 확신을 가집니다.
여기에서 우리 지역의 민족정기를 북돋우고, 이것이 또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며 세계 평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승화해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오늘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이곳이 ‘충북평화의소녀상 · 기림비’를 온 도민의 이름으로 세웁니다.
첫댓글 형님, 애쓰셨습니다. 앞뒤 없이 어지러워 뭐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삽니다. 보고싶습니다. 절
내가 뭐 애쓴 게 있는가. 다들 힘을 모아 주셨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 그 날 혹시 될 수 있다면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빛내 주지 않으려나? 아무튼 우리 또 그렇게 그렇게 가 보세나. 날마다 좋은 날!!! - 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