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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新舊(신구) 이사장 대담
“연결자 아띠, 마중물 감나무”
2/17(토)에 열린 제17차 정기 대의원 총회에서는 5기 임원선거와 이사장 선출이 진행되었습니다.
6년간 솔선수범하여 살림을 돌보았던 강정혜(이하 감나무) 이사장이 퇴임하고,
최순옥(이하 아띠) 이사장이 취임하였습니다.
역사적인 그 순간, 감나무와 아띠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만나봤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띠 조합원 번호 76번, 구산동 주민 아띠(최순옥)입니다. 발기인대표와 초기 이사 활동으로 살림의 출발 준비를 함께 했고, 2024년 총회에서 5기 이사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감나무 어제 자료 정리를 하다가 글을 읽었는데, 2017년 발표 자료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에게 은평에 살림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 언니가 ‘아띠’더라고요.(웃음) 그 이후에 조합 가입 권유 전화가 와서 살림의원 개원하기 전에 조합원을 가입하면서 살림과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1기 대의원, 2기 이사를 거쳐 3~4기 이사장을 하고 10년 만에 조합원의 위치로 돌아온 감나무(강정혜)입니다~
Q. 살림 조합원이 되고, 활동하면서 살림에 대한 마음이 커지고, 더 참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감나무 1기 대의원을 했는데 여행이랑 겹친다고 총회도 안 갔던 날라리 대의원이었어요. 같이 대의원을 했던 반디라는 친구가 1기 대의원 워크숍(씨앗의 연대)을 강화도에서 한다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했어요. 집도 좀 벗어나고 싶고, 참가비 만원에 1박을 재워준다고 하니까 같이 갔어요. 그때 소셜 네트워크 워크숍의 일종으로 아는 사람을 선으로 연결해서 그어보는 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첫 번째 충격을 받았어요. 선을 이을 수 있는 사람이 다섯 사람도 안 되는거죠. 하필이면 제 위치를 제가 한 쪽 구석에 잡았는데 마치 ‘섬’과 같이 보였어요. 그 때 “내가 아는 사람이 너무 없구나, 너무 고립되어 살고 있구나” 하는 걸 깨달으면서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딱 든거죠. 두 번째 충격은 전희경(시타) 여성학 전문이사의 여성주의 교육과 추혜인(무영) 살림의원 원장의 일본 미나미의료생협 그룹홈 나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왔어요. 우리 마을이 누구나 안심하고 나이들 수 있는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걸 만들고 싶은지 아이디어를 나눠보는데 번개를 맞은 것 같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림이 너무 좋아진거죠. 그 이후로 다짐에서 운동하고, 강의도 들으며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랬더니 당시 이용홍보위원회(현. 소통과참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봉미숙 이사가 위원을 제안해서 바로 수락하기도 했어요. 살림은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그냥 두지 않잖아요.(웃음) 결국 민앵 이사장에게 이용홍보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위원장을 하려면 이사를 꼭 해야한다며 2기 이사를 제안받았어요. 본격적인 활동을 반 년 정도 했을 때라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어요. 그랬더니 봉미숙 이사가 당분간은 이용홍보위원회를 겸임해서 같이 지원할거라고 했죠. 걱정은 되지만 하고 싶어서 한다고 했어요. 여성주의의료생협 살림이 만들고 싶어하는 마을이 은평에서 실현된다면 나도 진짜 더 안심하고 살 수 있겠다, 그리고 이 마을을 같이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띠 99년부터 열린사회은평시민회 간사를 시작했어요. 직업적으로 은평구 지역사회의 물리적, 환경적 여건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볼 수 밖에 없었죠. 동네 활동들을 좋아하고 부추기고 씨앗이 보이면 같이 하기를 제안하는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10년 동안 만들어가고 있었어요. 그 과정 중에 두레생협 조합원이었던 민앵을 알게 되었고, 의료생협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은평이 어떤 곳인지 알려달라는 요청을 했어요. 은평에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의료생협이 큰 언어로 다가왔고, 만남의 자리를 가졌어요. 은평 시민사회의 구조나 활동, 역할에 대해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교육, 문화, 자치, 자원봉사, 환경 등 여러 영역이 있는데 아직 의료 분야가 없고, 시도할 수 있는 역량도 없다고 이야기하며 여성주의 의료생협이 은평에 자리잡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죠. 사람, 조직, 단체 하나하나는 별 볼 일 없게 보일 수 있지만 연결될수록 큰 힘이 발휘되는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꼭 은평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연결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했어요. 어라, 무영, 오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은평 지역의 모든 단체의 행사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절실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마을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감동하고 많이 배우기도 했죠. 이런 경험을 하며 살림과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1기 이사를 하기도 했어요.
Q. 활동하는 과정에서 ‘이사장이 되고 싶다 혹은 될거다’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어떻게 이사장이 되겠다는 결심까지 할 수 있었나요?
감나무 진짜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죠. 의료사협연합회 워크숍을 시타, 무영 등 이사 몇 명과 갔는데 그 때 이야기를 들어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왜 저죠?”라고 묻기도 했고요. 2기 이사를 했으니 이사회 연임할 정도는 생각했지만, 이사장 제안은 상상도 못했죠. 제안한 분들은 제가 이사가 되고 1년 후에 이사장감이라고 생각했다는거예요. 각종 위원회를 들어오라고 했던 것들이 이것을 위한 제안이었다는 걸 뒤늦게서야 깨달았죠. 제안받고 가장 첫 번째 든 마음은 “살림에 폐가 되면 어떡하지?”였어요. 하루에도 제가 이사장을 하면 안되는 이유를 수십가지 떠올리며 고민했어요. 그래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건 2기 이사회 자리에서 했던 말 때문이었어요. “처음 살림을 창립하고 만들어왔던 분들이 얼마나 애쓰면서 여기까지 오기까지 마중물이 되면서 애쓰신 것을 가까이에서 보니까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저도 누군가에게 마중물이 되고 싶다.”는 말을 제 목소리로 뱉은거예요. 이런 보은의 마음을 표현한 순간이 생각나고,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작은 역할부터 차근차근 해보자는 마음으로 수락했어요. 3기 이사장을 하고 4기 이사장 연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어요. 첫 3년은 배우는 시기이고, 다음 3년은 끌고 가야한다는 결심이 있었죠. 살림이 워낙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아띠 ‘당연히 해야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지’가 아니라 ‘살림 전체를 보면서 3년은 배우고 실험했다면 그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하는 마음으로 했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을 믿고, 하나의 밀알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저 같은 경우는 2년 전에 퇴직을 하면서 당연히 다시 지역사회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살림은 다른 활동과 비교해보면 3순위쯤 됐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이런저런 행사와 건강모임을 하면서 잊었던 활동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고, 몸이 아파 의료기관을 다니면서 사업소도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총회 때 들었던 개념들을 피부로 느끼는 순간들이었죠. 함께건강실천단, 살림데이케어센터 돌봄활동, 일본 바람의마을 연수 등을 통해 살림이 삶에 들어오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 과정 중에 살림이 지역과의 연결성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연결자의 역할로써 이사장으로 활동하면 어떠냐는 제안이 있었어요. 살림은 들어가는 순간 1순위가 되는 놀라운 마법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금 활동하고 있는 열린사회주거복지협동조합이나 시민활동이 축소되진 않을까 하는 염려와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되었죠. 일본 사회복지법인 <바람의마을> 연수를 다녀온 것이 결정타였어요. 미래의 은평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저렇게 하려면 살림 활동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 협동조합의 힘을 믿고 살림을 중심으로 건강한 마을 공동체의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조금 더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살림을 위해서 뭐라도 한다는 마음과 더 나이들기 전에 내 현재와 노후를 책임질 살림의 발전에 열심히 기여하고 이후에 당당히 누리겠다고 생각한거죠.(웃음)
Q.이사장을 제안 받았을 때 ‘당신이 이사장이 되어야하는 이유’에 대해 어떤 말을 들었나요?
감나무 제안받을 때 이사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없어요. 아마도 당시의 이사회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는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아띠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는 알 것 같음. 감나무와 30년을 같은 동네에서 지내며 관계를 맺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에너지를 밖으로 표출하는데, 감나무는 자기 에너지를 안에서 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기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순서를 정해서 하죠. 정리하면서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추진하면서 결과를 같이 만들어내는 힘이 있어요.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 보다는 같이 펼쳐서 논의하고 정리해서 안내하는 본인이 다짐한 것처럼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거죠. 사람들이 그런 감나무의 에너지를 알아봤을 것 같아요.
아띠 이사장 제안을 받았을 때 활동조합원에서 일하는 동료로 관계의 전환이 되는거라 개인적으로는 검증을 받는 과정이 있겠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있었죠. 하지만 차근차근 잘 맞춰가자, 훌륭한 임직원과 지금까지 만들어온 과정들이 있으니 믿고 가보는 마음으로 전환하고 있어요. 살림이라는 조직에서 협업과 협동의 경험을 제 인생의 경력으로 가져가는 것은 놀라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감나무 저도 6년 지나고 나니 이렇게 멋진 조직, 사람들과 함께해서 영광이라고 생각했죠.
Q. 퇴임과 취임의 순간, 여러가지 생각이 스쳤을텐데 총회가 끝난 이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감나무 두 가지 마음이었어요. 하나는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또 하나는 감사함이었죠. 혼자할 수 없는 일인데 함께 일했던 임직원 , 조합원, 응원해준 가족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잘했다, 수고했다는 마음이 액기스처럼 남았어요. 아직 총회 끝난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마음 한 켠에는 불안감에 일정을 체크하기도 해요. 그래도 앞으로 뭔가 더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요. 앞으로 이어나갈 분들이 너무 든든해서 걱정이 없는거죠.(웃음)
아띠 수많은 회의와 위원회 활동을 엄청 많이 하셨더라고요. 이제 그 남는 시간에 뭐 하실건가요?
감나무 살림 일을 하느라 아무래도 소홀했던 본업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좋은 교사가 되려고 더 노력하며, 정년퇴직까지 남은 5년 동안 아이들하고 더 잘 지내보려고요. 그리고 시간이 되는만큼 열심히 여행을 더 다니고, 그 이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며, 제 안에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에 충실해보려고요.
아띠 저는 총회를 여러 번 경험했는데, 아무래도 이사장으로 선출되고 나서 당선 인사와 의장으로서 첫 진행을 하며 엄청 떨렸어요. 떨림을 가지고 참여형 워크숍을 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때 에너지를 받았어요. 테이블마다 몰입하는 대의원들을 보며 이렇게 살림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는데 못할 게 뭐가 있나 라는 깨달음과 울림이 있었어요.
Q. 총회에서 올해 슬로건이 <서로 돌보고 함께 건강해지는 마을, 다양한 돌봄에 도전하는 2024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총회준비위원회(총준위)에서 슬로건(안)을 만들 때 치열한
논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슬로건에 어떤 고민과 결심이 담겨있는지와, 어떻게 함께 실천해
가길 바라는지요?
감나무 사실 총준위 참여한 분들이 앞으로의 방향을 모두 동의했고, 핵심 어휘도 다 나왔는데 어떻게 정렬해야 조합원들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갈까 고민했던 것 같아요. 중장기 비전을 쓰는 앞부분이 작년에 썼던 슬로건을 그대로 쓰는 것은 우리가 확신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끌고 갈 수 있는 단단한 힘과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죠. 다양한 돌봄에 도전하는 것은 막연했던 돌봄을 구체화하고 무엇을 해야할지가 그려나가는 좋은 시기가 될 것 같아요. ‘도전’이라는 말이 들어갔잖아요. 계획된 사업들을 펼쳐나가며 할 때 조합원들에게 돌봄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띠 총준위에서 슬로건 만들기 워크숍을 했는데 사실 금방 끝날 줄 알았어요. 올해 슬로건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활동의 구호처럼 쓰자고 이야기했던 ‘누구라도, 뭐라도, 하나라도!’라는 문구가 살림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돌봄이 돌봄을 주거나 받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만의 영역이 아닌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고 서로 돌보는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생각해요. 건강모임, 돌봄거점, 돌봄 노동의협동, 돌봄사업소 등을 통해 돌봄에 참여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내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돌봄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돌봄을 도전하자는 것을 더 쉽게 풀어낼 일이 올해 내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Q. 5기 임원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나요?
감나무 살림 임원은 그 사람이 살림에서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으로 제안해요. 그래서 기대하는 역할에 대해 인지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출마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대가 되는 것이 있어요. 살림 이사회는 ‘일하는’ 이사회여서 논의와 결정을 넘어 함께 실천합니다. 선출정수가 늘어나서 일할 사람도 그만큼 늘어났고, 구성원의 다양성을 고려했어요. 5기 임원이 만드는 팀워크와 훌륭한 이사장이 함께하니 든든하고,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아띠 임원들이 모두 자기 역량을 이사회에서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감나무가 말한 것처럼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끝이 아니라 현실화되는 과정들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요. 하지만, 다들 경험도 많고 연임하는 이사들도 있으니 든든합니다! 오늘 떨리는 마음으로 이사회 소집글을 처음으로 썼어요. 일단은 빡세지만 재밌는 마음으로 올 수 있도록, 이사하기를 잘했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Q. 서로에게 전하는 말
- 6년간 이사장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한 감나무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띠 감나무랑 사적으로 30년이 다 되어가는 관계인데, 제가 살림 활동하는 2년을 제외한 4년 동안 감나무 옆에 없었어요. 그 시간동안 ‘수고했다, 애썼다’ 이런 말들을 전하지 못했던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눈물) 감나무가 6년 동안 헌신적으로 개인 시간 없이 이사장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되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너무 애썼고, 너무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6년 동안 해왔던 과정이 살림에 충분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믿어요. 그 시기에 살림의 문화에 토대가 되는 중요한 원칙과 약속이 만들어졌는데 그런 기준과 원칙을 찾을 때마다 감나무의 흔적을 느낄 것 같네요.
감나무 언제나 옆에 있었죠. 제가 살림에 올인하는 사람이라 이사장이 된다고 했을 때 지역사회에서 많은 걱정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아띠가 엄청 응원해주었어요. 언제나 든든한 존재입니다.
- 6년 간 이사장을 하시면서 정말 많은 어려움을 만났을텐데 어떤 힘으로 돌파할 수 있었나요? 아띠가 지칠 때 꺼내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감나무 아띠가 총회 참여형 워크숍에 몰입하는 대의원을 보며 받았다고 하는 에너지가 임기 내내 힘이 될거예요. 저도 어려울 때 그런 순간들이 힘이 되었어요. 어떻게 할지 고민될 때도 만나서 이야기하면 해결되고 일하면서 만들어가면서 협동의 힘을 느꼈죠. 사실 노하우는 없고, 힘들 때마다 ‘돌아보기’를 했어요. 다음 한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정리가 되어야 그 다음 길이 보이는 것 같아서 돌아보는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그 다음의 행보를 같이 의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살림10원칙 해제집을 가끔 읽어요. 어떤 때는 거기에 문장 하나, 단어 하나가 힘을 주죠.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애쓰고 있는지의 마음들을 그 해제집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읽어봤어요. 아띠가 저보다 다양한 조직 활동 경험이 더 많아서 그 경험의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아 진짜…….. 읽을 때마다 너무 감동하고 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ㅜㅜ
그래서 댓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합니다.... 이사장님들 너무너무 존경하고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이히히 저도 두번 읽었어요. 1,2,3대 이사장님들 모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담겨 있으세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