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소회
문 춘 식
며칠 전 가까운 친구 한 사람이 카톡방에 아래와 같은 그럴듯한 적분(積分) 수식을 올려놓고
수수께끼를 풀어보라는 듯,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참 생각해 보다가 나도 평소에 느끼는 바가 있던 참이라서 인생팔십무위야(人生八十無爲也: 80년을 살았으나 한 게 없구나)라는 의미이냐고 대꾸했더니 나중에 그 친구가 그렇다고 응답을 해주더군요.
지구 위에 달라붙어서 각자 나름대로의 인생행로를 따라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이제 80 고개에 올라서서 되돌아보니 특별히 한 게 없어 보인다는 다소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을 서로 공유한 것이지요.
또 다른 팔순 이야기.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지난 10월 초교 팔순동창회 모임을 고향에서 2박 3일로 가진 바 있습니다. 6년간 한 반에서 서로 부대끼며 정이 들어서 그동안 여러 번 동창 모임을 가져오긴 했었지요. 사진에서 보듯이 50명 정도가 졸업했는데, 먼저 저세상으로 갔거나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을 빼고 이번 모임에는 겨우 17명이 참여
했답니다.
초교 졸업사진
팔순동창회 때 위 사진과 같은 장소에서
모교의 같은 자리에 섰어도 흑백 사진이 칼러 사진으로 바뀌는 사이에 어느새 팔순이 되어
이제는 대부분 노쇠하고 병들어, 다음 모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만났을 때 반가워 환호하고 포옹하던 것과 달리, 작별하는 마당에서는 손을 붙잡고 울먹이며 저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던 까닭입니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우리의 과거는 어느새 저만치 흘러가 버렸고 우리는 여든 즈음에도 매일 하루씩 그 과거와 이별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결코 나만의 것은 아닐 테지요. 좋은 음악이나 영화에 심취해 한참 즐기고 나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음악/영화 때문에 보낸 시간도 역시
되돌릴 수 없는 과거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 인생에 유턴(U-turn)이 없다는
슬프고도 자명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혼란스러웠던 해방공간을 의식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유아기는 그나마
다행이었지요. 6·25 동란의 와중에 학교 문턱을 밟았지만 춥고 배고팠던 쓰라린 소년기,
그래도 좋은 사람과 교제를 시작하며 꿈을 가지고 군문에 들어섰던 청년기, 소망하던 진로가 좌절된 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헛수고를 많이 했던 시련의 중년기, 군문을 나온 후 바깥
세상 물정에 익숙해지며 새삼 철들어가던 장년기, 세상을 관조하며 친구들과 우애를
다져가는 노년기,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 인생행로를 거쳐온 것 같습니다.
그동안 특별히 이룩한 것도 내놓을 만한 것도 없으면서 잘 못한 일과 후회스러운 점이 많은 그런 삶을 살아온 셈입니다. 그렇게 살아온 것을 번번히 상황과 여건 탓으로 돌리며 자기
합리화를 해왔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좀 더 냉정히 생각해보면 나의 재능과 노력의 부족
그리고 옹졸한 마음, 우쭐한 생각이 보다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군요.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그래도 1944~2023년 시대 구간을 살아왔다는 것은 큰 축복이며 행운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선, 지구촌에 와서 세상 소풍하며 지금 껏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또 고생은 했어도 시골에서 자라면서 오염이 덜 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시사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며 개인적인 자산입니다. 도회지에서 자란 사람들도 나름대로
축복이 있겠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교감, 동화하는 데는 많은 차이가 나겠지요.
과학기술과 컴퓨터가 지배하는 요즘 세상 젊은이들은 특히 더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나의 행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두 군데와 대학원 두 군데를 다니며
다양한 공부를 하고 그것을 후진들에게 전수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행운이었지요. 비록 가르치는 재능이 의욕을 따르지는 못했어도 후진들의 장래 희망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작으나마 보람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행운은 그 작은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생의 반려자를 찾았다는
사실임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아내 덕에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내 행복이
있음에랴!
팔순동창회 모교 방문 때 발견한 놀라운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현재 그 초교의 학생 수가 전부 합쳐 7명뿐인데, 교사의 수도 7명, 행정직원은 8명!
농촌 인구 감소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전반적인 인구 감소 추세가
국가 경제, 국가 안위와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가 되고 있지요. 실로 염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왕 국가 미래 얘기가 나온 김에 염려되는 것 한 가지 더.
대도시는 말할 것 없고 요즘 웬만한 시골 지역에도 아파트들이 들어서서 아파트 공화국,
또는 콘크리트 공화국이라 할 만하지요. 빌딩 숲으로 유명한 뉴욕 맨해튼 아파트들은
그 수명이 80-100년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파트들은 대개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아예 30~40년 정도 견디도록 철근과 시멘트 배합, 등의 설계를 한다지요?
아파트 수명이 다 되는 시기가 머잖아 거의 한꺼번에 닥쳐올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많은
아파트를 어떻게 파쇄하고 그 엄청난 부스러기들을 어떻게 처리하며 어디에 버릴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싫습니다.
후진 세대들이 지혜를 모아 국가적으로 엄중한 이런 문제들을 잘 처리하리라 애써 자위해
보지만, 여전히 염려는 남아 있지요.
어쨌거나, 친구들과 더불어 특별히 이 시기에 팔순을 맞이한 것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지난날의 아쉬움일랑 떨쳐버리고, 또 나라의 앞날 걱정은 팔팔한 젊은 것들에게
맡기고, 노쇠하고 병약한 우리는 살짝 비켜서서 오늘이 우리 여생의 첫날이라거나
오늘을 잡으라(Carpe Diem), 또는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Enjoy your life while
you can), 등 선인들의 권고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행복을 챙기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여러분들의 새해가 기쁨과 축복으로 가득하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인생무상"
지난 세월 너무 아쉬워 하지 말게나,
다필 칭구~~!
그 대가 지난 80년 간, 남긴 황금같이 고귀한 발자취,
후 손들에게 큰 등불이 될 터이고,
이제,
이승에서 남은 시간,
그 동안 수고한 자신에게
고이 헌납하고 가면 어떨까?
이런 귀한 글을 오늘에야 발견하고 읽었으니 나 자신이 무척 한심스럽게 생각되네. 일제 말에 태어나 1950년 4월 얼떨결에 국민학교에 입학한 코흘리개가 전쟁이 무언지도 모르는 시절 학교는 불타고 선생님이 동네를 방문하여 학생들을 모아 놓고 "장백산 줄기 줄기~~"노래를 가르치던 기억도 생각나고 조그만 칠판 하나 나무에 매달아 놓고 나무 밑에서 공부하던 일, 교실이라고 지은 것이 나무와 새끼줄로 얽어 매고 헌 양철로 지붕을 덮으니 비가 오면 빗물이 줄줄 새고; 교실 같은 교실은 4학년에 가서야 비로소 생겼지만 책상도 의자도 없이
마루바닥에 엎드려 공부하다 5힉년에 가서 비로소 책상 의자에서 공부했지요'
그래서 그런지, 고교 1학년 때 7반에서 자네를 만났을 때 자네는 대단한 개구쟁이로 보이더구만.
자네와 더불어 교실 바닥에서 의자다리 부서진 조각을 발로 차며 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
암튼, 늦게라도 내 글을 읽고 소감을 피력해주어 엄청 고망우이.
@다필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을 알려주니 무쟈게 반갑네. 내 생각에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