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정 성지 주변에 있는 박해 초기의 교우촌 공소
진목정은 단석산 줄기인 도매산 중턱에 있는 해발 350m 정도 고지대에 위치한 깊은 산골짜기다. 예로부터 참나무가 많았을 뿐 아니라 참나무 정자가 있어서 진목정(眞木亭)이라고 칭했다. 이곳에서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단석산 동편 정상에 넓은 분지가 있는데 이곳은 옛날 신라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했던 도장으로 유명하며 현재는 그곳에 OK목장이 있다.
부근의 탑골과 상선필에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언양 지방에 신자촌이 형성되고, 그 후 차츰 전교가 되어서 이곳에도 신자촌이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후 1815년 을해박해 때 청송의 노래산 등지에서 살던 신자들이 청송군과 영천군의 경계 지점인 보현산(1124m)을 넘어 영천군의 용평, 질구지 및 이곳 구룡과 진목정 신자촌으로 피난 와서 살았던 듯하다. 그래서 이미 박해 시대 때인 조선 순조 때(1801∼1834)부터 신자촌이 형성되었다.
1837년 파리외방전교회의 신부들이 입국하여 포교 활동을 할 때 언양, 구룡과 이곳에 와서 성사를 주었다고 전한다. 1850년경부터는 최양업(崔良業, 1821~1861, 토마스) 신부가 상선필과 이곳 등 부근의 지방을 순회 전교했으며, 이어서 다블뤼(Daveluy, 安敦伊, 1818~1866, 안토니오) 주교와 리델(Ridel, 李福明, 1830~1884, 펠릭스) 신부(1870년 주교로 서품)도 병인박해 이전에 상선필과 이 부근의 지방을 순회 전교한 것 같다.
병인박해 때는 부근의 단석산 중의 범굴에서 살았던 허인백(許仁伯, 1822~1868, 야고보), 김종륜(金宗倫, 1819~1868, 루카), 이양등(李陽登, ?~1868, 베드로) 3명이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순교하였다. 증언록에 의하면 허 야고보와 동료 치명자들은 울산 죽령 교우촌에서 잡혔다고 나온다. 범굴 얘기는 《영남순교사》(김구정, 1966)에 나온다.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신자들은 1866년 병인박해 후에 이사 온 신자들이다. 병인박해 중에 이곳에 살았던 신자는 1893년 뮈텔 주교가 경상도 지방을 순회 전교할 때 이 공소의 회장이었던 박 요한 가정과 박씨 문중인 듯하며, 그의 형제 중에는1892년에 울릉도로 이주한 사람이 있었다. 병인박해 때 김문학 알로시오 가정이 경주 양남에서 우중골과 소태골로 피난을 다니다가 박해가 완전히 끝날 무렵인 1898년경에 이곳에 정착해 산 후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살고 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