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름재 자전거 사고*
태양이 내리쬐는 한 여름 오후!
산야에는 장대비를 흠벅 먹은 나무잎과 이름 모를 잡초들은 제 세상을 만난양 푸르름을 더해 온통 녹색 옷을 갈아입고 들판에 벼 콩 수수들 도 다가올 가을 준비를 하느라고 내실을 다지고 있었다.
그 때가 내 나이 14살 그러니까 진도중학교 2학년 다닐 무렵의 여름방학 주기 직전 자전거 타고 정거름재 내려오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다. 월가리 남자 중학생들은 아침 일찍 새벽밥을 먹고 대부분 제경동길을 넘어 등하교를 하였다. 나 역시 친구들하고 제경동길로 다녔는데 중학교 2학년 봄에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사와 신작로 길로 자전거 통학을 해보고 싶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윘다. 먼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신작로 따라 국민학교 다녔던 길을 가보기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읍내까지 가는 길 위의 방죽 고개와 정거름재를 넘어가는 연습하다가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유윌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이용해 통학하였다.
그 당시 시골에서 자전거로 학교가는 학생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더욱 새 자전거 타고 등하교 하는 아이들은 흔치 않아 새 자전거로 통학하는 나를 친구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자전거로 중학교에 오가는 길에는 커다란 고개가 2개 있는데 월가리 방죽 아래에서 위까지 가는 고개와 방죽 끝 부분에서 정거름재 정상까지 오르는 고개가 있어 고개 중간에서 내려 자저거를 끌고 올라가야 하고 나려올 때는 경사가 심해 조심 조심 브레이크를 잡아가며 내려가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날은 여름방학이 얼마 남지않은 7월 어느 무더운 여름 날이었다. 신작로 가로수에서 매미와 와가리가 제철이 왔다고 여기 저기 울어대고 장마 뒤끝이라 온갖 풀들이 키를 넘을 정도로 무성한 때였다.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여는 날과 마찬가지로 책가방을 자전거 짐싣는 뒷부분에 끄나풀로 단단히 고정시키고 자전거에 올라타고 집으로 향했다. 교문을 통과하여 철마광장과 동외리를 거쳐 정거
름재를 향하여 힘차게 폐달을 밟다가 정거름재 정상에 도달하기 전에 힘이 차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다. 땀이 비오 듯하여 정상에 앉아 십여분 동안 휴식을 취하였다. 잠시 후 자전거에 몸을 싣고 폐달을 밟아 서서 히 정거름재 아래로 전후좌우를 살피며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인가?
아침에 등교할 때까지 아무 이상이 없던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았다. 앞브레이크 뒤브레이크를 양손으로 아무리 힘을 주어 잡아도 듣질 않았다. 급경사 내리막 길에 속력은 가속도가 더해져 아래로 갈수록 빨라졌다. 마치 총알이 날아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 순간 '죽었구나!' 하는 두려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른쪽은 낭떠러지고 왼쪽은 야산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야산에 자전거를 박아야 겠다고 생각이 미치자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와 내가 쓰러지면서 앞바퀴가 야산쪽을 들이 받고 온몸은 붕 뜨면서 풀숲에 떠넝구쳐졌다. 자전거 앞바퀴 휠이 엿가락처럼 휘어졌으며 교복이 찢어지고 온몸에 상처 투성이었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일어나 자전거 휠을 바로잡고 절룩거리며 흙 범벅이 된 자전거를 끌고 집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부터 자전거 통학을 포기하고 월가리 친구들처럼 제경동 산을 넘어 등하교하였다.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과거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아득한 중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지만 공포감이 엄습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며 정신을 잃었다면 어찌되었을까(!?) 생각하기도 싫은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아마 가속도가 더 붙어 방죽물 속으로 자전거와 함께 들어갔거나 오른쪽 낭떠러지 논으로 처박혀 뻘 뒤집고 큰 상처를 입어 병원 신세를 졌을 것이다.
우리말 속담에 호랑이 한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처럼 긴장하고 정신차렸기에 이 정도 사고로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 받기도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3번 정도 어려운 때가 닥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지혜의 강물을 건너서 바다로 나가고 그렇지 못한 이는 사나운 풍랑에 허우적거리다 익사하고 만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때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순간이 떠오른다. 앞으로 살면서 그 때의 일을 교훈삼아 외줄타기 같은 위태로운 순간이이나 감내하기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설지라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