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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인은 평정심으로 보고 들은 걸 증거해야 합니다.(삼상3:15-20)
2024, 11/17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삼상3:15-20절 말씀으로“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잡아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우리나라에 수능한파란 말이 있을 정도로 수능 때쯤에는 많이 추웠는데 올해는 수능 날 반팔을 입고 조깅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왜 이런지 모르겠는데, 올 여름더위에 겨울이 주눅이 들어 겨울이 없어질까 봐 걱정됩니다.
북극의 그린란드도 전에는 별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기온이 높아져 얼음에 쌓인 땅이 드러나 쓸모 있는 땅으로 변모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이것이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걱정이 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신앙인은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15절)
둘째로, 신앙인은 보고 들은 것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16-18절)
셋째로, 신앙인은 단계적 과정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19-20절)
그러면 본문 말씀을 통해 신앙인이 왜 평정심을 유지하며 복음을 전해야 하고 단계적 과정이 필요한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신앙인은 항상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15절)
본문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아멘.
사무엘이 엘리가문의 앞날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들었지만 그걸 차마 엘리에게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울 뿐만 아니라 엘리가 이 내용을 들으면 깊이 낙담하여 괴로워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19-20절 말씀처럼 엘리가문이 몰락하면 자연스레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와 제사장이 될 수 있는데, 이런 빅뉴스는 어른이 들어도 홍분이 될 만큼 파급력이 엄청난 빅뉴스인데도 남의 불행을 생각해 입을 닫습니다.
사무엘은 비록 어린 나이임에도 남의 불행과 약점을 떠벌리며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던 것 같습니다. 신앙인은 이래야합니다.
그럼에도 남의 불행이야 어찌되든 참지 못하고 백설공주(백방으로 설치는 공포의 주둥아리)하는 분이 있는데, 이런 분은 본문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할 것입니다.
어쨌든 엄청난 소식을 들은 사무엘은 밤을 꼬박 세웠을 텐데도 아침에 일어나 성소 문을 열고 예전처럼 똑같이 자기가 하던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사무엘은 엄청난 상황변화에서도 평정심(平靜心)을 잃지 않고 내 할 일을 했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무엘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인지 그 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보통은 하나님께 쥐꼬리만한 은혜만 받아도 그걸 드러내 본인이 얼마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쓰는데 어린 사무엘은 하나님께 이런 엄청난 계시를 받고, 인정을 받으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조금도 교만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어린 사무엘에게서 반드시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사실 교회지도자나 신앙인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평정심과 자제력입니다. 성경에는 이 평정심을 잃어서 결정적인 낭패를 본 인물이 나오는데 바로 모세입니다. 그렇다고 모세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모세의 인격이나 인내력은 참으로 대단했는데, 오죽하면 하나님도 그의 온유함이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하셨겠습니까?(민12:3)
그런데 그가 어떤 실수를 했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이 지금까지 자기들을 인도해준 모세에게 감사는 없고 조그마한 문제만 생겨도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불만을 쏟아냈는데, 이날도 백성들이 신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물이 없자 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난리를 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지시합니다.(민20:8) 그러자 모세는 그들의 악한 말로 기분이 상하여 백성들 앞에서 화를 내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칩니다.
이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섭섭함과 원망이 분노가 되어 일시에 터진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동안 저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문제만 생기면 조용히 참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모세와 아론을 찾아와 화를 내며 괴롭혔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겠습니까?
하지만 그곳은 하나님의 거룩한‘총회’의 자리였고,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수행하는 자리입니다. 절제하고 절제하며 평정심을 유지해야할 곳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평정심을 잃고 자기 분풀이를 했으니 그에 따른 벌로 모세는 가나안 입국이 거부되고 맙니다. 한 번의 분노가 그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이런 모세의 징계는 우리가 오늘 사무엘처럼 항상 절제하고 평정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단 한 번의 실수의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읍참마속(位軟馬課)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보통 사람마다 트리거라는 게 있는데 그걸 건들면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지점입니다. 사람마다 그게 좀 다른데 어떤 이는 돈이고, 어떤 이는 자존심이고, 어떤 이는 명예나 가족입니다. 그래서 부부싸움 할 때 친정이나 시댁은 건들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싸워도 그 방아쇠만은 거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분노 조절장치가 망가져 작은 일에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교만하여 순간적으로 홍분하며,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평정심을 잃어버린다면 빨리 고치셔야합니다. 잠15:18절에 "분울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잘 되고, 잘 풀리고, 잘 나가고, 지위가 높아지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변함없이 겸손하며 평상심을 잃지 않는 신앙인에게 복을 주십니다.
부디 여러분은 고난이 오고 환난이 와도, 반대로 잘되고 잘 나가고 형통해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겸손해서 하나님께 복과 은혜를 받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신앙인은 보고 들은 것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16-18절)
본문 16-18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하는지라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아멘.
사무엘은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차마 엘리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엘리제사장이 불러 채근을 하자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들은 계시를 그대로 다 말해줍니다. 사무엘은 엘리의 요청으로 다 말해주었고, 이후로는 엘리가 감당할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에게 전해준 계시를 듣고 즉시 회개를 하든, 하나님께 반항을 하든 그건 엘리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겁니다. 사무엘이 신경을 써야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내 생각 주입하지 않고 온전히 전하느냐 입니다.
오늘 사무엘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나 징조들, 그리고 깨닫는 말씀이 있다면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며 전해야한다는 감동이 있다면 사무엘처럼 가감 없이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자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면 그것이 백성들이 듣기 좋은 것이든 나쁜 소식이든 바르고 신속하게 전했던 것입니다.
물론 말씀을 전할 때 그게 상대를 기분 좋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부담 없이 전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전하지 않거나 왜곡해서 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렇게 전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에 교회에 어려움이 있었을 때 하나님이 제게 꿈을 통해 그걸 알려주셨고, 저는 이를 알고 잘 대처해달라는 마음으로 전해주었지만 순종으로 받지 않고 오히려 기분 나쁘게 생각하여 교회를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지만 말한 것은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선하게 받을지 악하게 받을지는 그 사람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때 꿈 내용대로 진행되어 교회에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중이 듣기 좋아하는 설교가 있고, 반대의 경우가 있는데, 설교자가 듣기 좋은 말만하는 것이 말씀을 보고 들은 대로, 깨닫는 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목사님, 성도들이 일주일동안 세상에서 힘들게 일하며 살았는데 주일만이라도 교회 나와 설교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기분 좋은 설교만 해주면 안 되냐’는 분이 있었는데, 성도가 힘을 얻는 것은 주님이 함께 하신다 잘 되라 복 받으라는 설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돌이킬 때 은혜가 넘치고 세상을 이길 힘을 얻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고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진짜 은혜 받으면 얼마나 기쁘고 힘이 생기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나 은혜를 그대로 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내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전하지 않거나, 좋은 말만 전하면 결국 말씀이 왜곡되거나, 하나님의 뜻이 왜곡됩니다. 고전9:16절에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임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나 말씀을 형제들과 얼마나 나누며, 이웃에게 전하고 있는지요? 이 일에 열심일 때 우리는 신앙인으로 바르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전도와 선교가 예전처럼 활발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무엘처럼 받은 말씀을 언제든지 가감 없이 전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신앙인은 단계적 과정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19-20절)
본문 19-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아멘.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셨다고 하시는데, 이는 사무엘의 말을 하나님이 보증해주셨다, 또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그의 말을 이루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배려는 백성들 눈에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으로 비쳤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백성들이 사무엘을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사무엘이 자라매’라는 표현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사무엘의 선지자 사역이 엘리집안에 대한 예언을 받았을 때 즉각적으로 개시되지 않고, 그가 자라면서 점진적으로, 혁명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선지자 사명이 계승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사무엘의 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을 때에 비로소 선지자의 사역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처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나이는 대략 12세 정도로 추정합니다. 만약 이때부터 선지사역을 감당하였다면 어찌됐을까요? 어린 그를 사람들이 인정했을까요? 물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면 따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질서는 이를 용납하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 사무엘에게 계시를 주실 때 그를 선지자로 세우지 않고 그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자라는 동안 사무엘은 엘리제사장 밑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선지자와 사사가 될 수 있는 충분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이게 무엇을 말해줄까요? 사람은 몸이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영적인 것도, 지적인 것도 단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학습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되기 때문에 그 단계적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과정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아무리 뛰어난 재주가 있어도 그 재주를 계발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런 과정들이 있는 것이지요. 또 아무리 똑똑해도 하루아침에 비행기를 몰수는 없습니다. 어학도 하고 기계조정법도 배우고, 규정도 알아야합니다. 목회자도 4년의 대학과정과 3년의 대학원과정을 마치고 그 후에도 일정 기간 훈련을 받아야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교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도 단계적으로 과정에서 잘 배우고 훈련을 받아서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초 신자가 재주가 있다고 당장 중책을 맡거나 중직이 될 수는 없는 것은 직분과 직책을 맡긴다 해도 권위가 서지 않아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학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단어를 외우고 문장을 외워도 그게 장시간 숙달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걸 다 알고 또 쉬워도 그게 내 몸에 체질화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주시고 은혜주시면 뭐든 다 할 것 같아도 거기에는 단계적 훈련과정을 전제로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시니 단 번에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이시라 기본적으로 그 질서에 따라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사무엘을 사용하실 때 12살 꼬마 아이를 사용하지 않고 자랄 때까지 기다리시는 그 모습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에서 일하는 나이를 30살로 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연륜이 있어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진중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땅에 세워진 사회질서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일상에서 뭐든지 조급하게 생각하여 평정심을 잃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훈련의 시간이나 힘들고 고단한 연단의 시간도 잘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렇게 준비가 되면 하나님은 준비된 사무엘을 크게 쓰신 것처럼 우리 또한 크게 쓰실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준비가 철저할수록 더 크게 쓰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단계적 과정에서 자기를 더욱 잘 준비시켜 교회와 사회에서 더 큰 일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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